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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가 시작되기 전 담소하고 있는 녹색당 의원들.
 회의가 시작되기 전 담소하고 있는 녹색당 의원들.
ⓒ 신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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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현지 시각) 제가 사는 스웨덴 태비 코뮨(kommun, 기초자치단체)의 의회가 열린 날이어서 방청석에 앉아 회의가 진행되는 것을 지켜 보았습니다.

4년마다 실시되는 총선거에서 국회(riksdag), 광역의회(landstingsfullmäktige, 스웨덴 전체 20개), 기초의회(kommunfullmäktige, 스웨덴 전체 290개) 의원을 선출하는데 현재의 태비 의회는 2014년에 선출된 61명의 의원들과 대리인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대리인 제도는 결원이 발생했을 때 같은 정당에서 충원을 하기 위해 만든 제도로, 100% 비례대표로 주민의 대표자를 선출하는 선거제도에서 각 정당이 제출한 후보자 명단에 적힌 순서대로 충원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회의에 참석해야만 의원들에게 사례비 지급

의원들은 회의에 참석하는 경우에 한해 사례비를 받는데, 국회는 개원중인데 회의장에는 출석하지 않아도 세비는 꼬박꼬박 받는 한국의 국회의원들과 비교됩니다.기초의회는 한 달에 한 번씩 개최되는데 개최되는 날은 항상 월요일입니다. 국회의원과 광역의회 의원들 중 일부는 기초의회 의원도 겸직하기 때문에 기초의회의 회의가 열리는 월요일에 국회와 광역의회는 회의를 하지 않습니다.

회의가 시작되면 의원들 출석을 확인한다.
 회의가 시작되면 의원들 출석을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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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장석에 앉은 회의진행요원이 의원들의 출석을 확인합니다. 의석수가 가장 많은 정당인 온건당(Moderaterna) 의원들부터 호명합니다. 출석한 의원들은 '야!(Ja!)'라고 답합니다. 온건당에서 세번째로 호명된 필립파 라인펠트가 결석했군요. 스웨덴 전 총리인 프레드릭 라인펠트의 전 부인인데 라인펠트 총리가 재직하던 시기에 이혼했습니다. 대리인들까지 모두 출석점검이 끝난 후에 이날 결석한 의원들을 대체할 대리인들이 누구인지를 의장석에서 발표합니다.

녹색당에서는 말린 칼손도 결석해 토마스 엘레반트가 대체하게 되었습니다. 말린은 광역의회 의원도 겸직하는데 이날 그쪽에서 다른 행사가 있다고 합니다.

2017년 결산발표가 시작되고 있다.
 2017년 결산발표가 시작되고 있다.
ⓒ 신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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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회의의 주요 안건은 2017년 결산 보고입니다. 주민의 대표로 선출된 감사부(6명)에서 감사 발표를 합니다. 이 감사부는 주민들을 대표하는 조직이고, 정식회계감사는 KPMG에서 의뢰를 받고 진행했습니다.

7만 명의 태비 주민들의 평균소득은 스웨덴 평균보다 높은데, 이런 이유로 보수정당의 지지율이 높습니다. 코뮨의 행정을 운영하는 대표기관인 코뮨위원회 의장(시장에 해당하는 보직)은 보수의 대표당인 온건당 소속 레이프 그리페스탐입니다. 감사부의 발표가 끝나고 위원회 대표로 의견 발표를 하는데 작년 코뮨 운영이 약 1억5천만 크로나(약 189억) 흑자가 났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를 하는군요. 공공예산 집행은 흑자를 내는 게 목표가 아닌데 말입니다.

2017년 결산에 대한 의견을 발표하는 사회민주당의 아니카.
 2017년 결산에 대한 의견을 발표하는 사회민주당의 아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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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섭게 재정 문제 따지는 사회민주당 의원

야당인 사회민주당의 아니카 그뤼헤드가 준비를 단단히 하고 나와서 의견 발표를 합니다. 2017년 코뮨 행정목표 22개 중 달성된 것은 9개 뿐인데 재정 흑자를 낸 것이 자랑이 아니다, 그 재정 흑자는 계획되었던 사업에 지출이 되지 않은 결과이며 달성된 목표가 9개에 불과한 것은 일을 잘 한 것이 아니다라는 내용입니다.

2017년 결산 중 환경분야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는 녹색당의 엘리사벳.
 2017년 결산 중 환경분야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는 녹색당의 엘리사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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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당의 엘리사벳이 2017년 코뮨 환경목표 중 달성된 것이 하나도 없는 점을 지적하는 발표를 합니다. 2014년 선거 때 중앙당(중간이라는 뜻의 중앙)에서 녹색당과 비슷한 환경공약을 내걸었는데 그동안 (친환경과는 거리가 먼) 온건당과 연정을 하느라 목표 달성에 필요한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점을 꼬집습니다.

이후 여야의 의견 발표가 계속 이어지는데, 발표할 의원들은 의장석에 손을 들어 의사표시를 하고 의장석에서 발표할 순서를 그때마다 알려줍니다. 다소 흥분된 상태에서 의견 발표를 하는 의원들도 있지만 고성이 오가는 일은 없습니다. 이날 서로 의견이 충돌된 또 하나의 사안은 (전국에서 임대아파트 비율이 세 번째로 낮은) 태비의 주택건설 문제였는데 사회민주당에서는 (녹색당도 같은 의견) 비싼 주택만 짓기 때문에 소득이 적은 주민들, 부모로부터 독립해야 하는 신세대들이 코뮨에서 집을 구하기가 힘드니 이들을 위한 주택을 충분히 지어야 한다는 것이고, 온건당에서는 코뮨에서 주택을 건설하면 자유경쟁으로 그 조건에 맞춰 들어올 사람들이 들어와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제 생각엔 보수당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코뮨위원회와 최고 의사결정기관인 코뮨의회가 신세대들을 포함한 소득이 낮은 이들이 주로 진보성향의 정당을 지지하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코뮨 안에 머물지 못하게 하려는 전략으로 코뮨 내에 임대주택을 거의 짓지 않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이들은 또한 상대적으로 세금을 적게 내기 때문에 보수정당의 입장으로 보면 지출만 많이 잡아먹는 도움 안 되는 주민들이죠. 상대적으로 돈이 많은 외부의 주민들이 태비 코뮨으로 이사오는 것은 쉽게 만들어져 있는 셈입니다.

한국의 자칭 보수와 확실히 다른 스웨덴의 보수정당

스웨덴의 보수정당은 한국의 '자칭보수'와는 확연히 다릅니다. 1930년대부터 이어져 온 사회주의 복지의 전통이 있기 때문에 극우정당인 스웨덴민주당(겉으로는 아니라고 하지만 인종차별주의)을 제외하고는 가장 보수당인 온건당 마저도 기본적으로 시행되는 복지제도에는 찬성을 합니다. 복지제도 측면에서만 보면 한국의 민주당보다 더 진보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건당과 사회민주당의 노선은 차이가 많습니다.

그보다 더 왼쪽인 좌익당은 말할 나위도 없지요. 노선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나는 정책에 대한 의견 개진을 하는 자리에서도 차분하게 예의와 규칙을 지키는 의식, 극우성향의 정당도, 공산당의 후신인 좌익당도 허용하는 사회가 진정한 민주주의의 실현의 장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태그:#스웨덴, #기초자치단체, #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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