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2016년 8월경, 경상북도 포항에서 폴크스바겐 골프가 갑자기 주행중 시동 꺼짐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속도를 내던 중에 갑자기 시동이 꺼지면서 하마터면 큰 사고로 이어질 뻔했던 아찔한 상황. 그러나 폴크스바겐의 공식 반응은 더 당황스러웠습니다.

"(거의 죽을 뻔 했는데) 시동 꺼짐으로 인해서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됩니까?"
"지금 (죽은 상황이) 벌어지지 않았지 않습니까?"


2016년경에 달리던 차가 멈춰서, 나의 폴크스바겐 차량은 9시뉴스까지 등장했다.
 2016년경에 달리던 차가 멈춰서, 나의 폴크스바겐 차량은 9시뉴스까지 등장했다.
ⓒ KBS

관련사진보기


당시 황당한 폴크스바겐의 반응은 KBS 9시뉴스에까지 등장하며 논란을 일으켰지만, 소비자에게 무슨 힘이 있을까요? 그게 다였습니다. 치명적 결함에도 뒷짐 지는 제조사의 반응, 그 뒤로 1년여간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4천만원 주고 산 자부심, 주차장 애물단지로

세차도 하지 않은채 9개월간 거의 버리다시피 방치했다. 아파트에서도 차량이 장시간 방치되자 경고문을 부착하였다.
 세차도 하지 않은채 9개월간 거의 버리다시피 방치했다. 아파트에서도 차량이 장시간 방치되자 경고문을 부착하였다.
ⓒ 정주영

관련사진보기


4천만 원 상당의 자부심에서 이제는 주차장 애물단지로 전락한 폴크스바겐의 골프, 언제 멈출까 불안한 시한 폭탄이 되어버렸습니다.

소비자로서 이왕 도로 위에 폭탄이 된 거, 싸움을 시작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지금의 베엠베(BMW) 화재 소비자든, 2년 전의 저 같은 폴크스바겐 시동 꺼짐 소비자든, 피해 소비자로서 제일 먼저 할 수 있는 것은 한국교통안전공단의 '자동차 리콜 센터' 접수입니다.

"언제쯤 결과를 알 수 있나요?"
"그건 케이스가 모여 봐야 압니다."
"달리다가 차가 멈췄는데 조사조차 안 된다고요?"
"접수하신 분 혼자 사례시잖아요."


국가기관인 리콜센터에서도 돌아오는 답은 뻔했습니다. 위험한 상황을 겪고도 힘없는 소비자들은 속수무책으로 기다려야 합니다. 그 상태로 9개월이 지났습니다.

차는 먼지가 너무 많이 쌓여서 경비원이 조심스레 묻기 시작합니다.

"그 차 운행 하시는 거죠?"

시동 꺼지는 불량 부품 수리 받고, 눈물의 '헐값쇼'

아주 친절하게 처리를 해주었지만, 경제적 손실을 최대로 입고 난 뒤였다.
 아주 친절하게 처리를 해주었지만, 경제적 손실을 최대로 입고 난 뒤였다.
ⓒ 정주영

관련사진보기


제조사와 소비자의 팽팽한 신경전은 아홉 달이 지나도록 그 상태 그대로였습니다. 마침 디젤 게이트도 터져서, 중고차 가격 또한 수직하락 하기 시작했습니다. 중고차 전문 쇼핑몰 SK엔카에 따르면 폴크스바겐 배출 가스 조작 사건이 터진 해당 년도에만 12%가량 중고차 시세가 떨어졌다는 보고가 나올 정도입니다.

이쯤 되면 차주들은 포기하는 심정입니다. 4천만 원가량 주고 샀던 차량이 절반에 절반 가격으로 거래되는 것도 모자라서, 저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시동이 꺼지는 400만 원가량의 결함 부품 폭탄까지 안게 된 셈이죠.

화가 치민 소비자들은 이쯤 되면 보통 적극적으로 행동하기 시작하는데 상황이 이 지경까지 가니 저도 그랬습니다. 문제의 리콜센터에 차를 아예 가져가서 안 돌려줘도 좋으니 분해를 하든 무엇을 하든 뭐가 문제였는지 철저하게 검사해 달라고 요청한 것이죠.

이미 9개월째 시동 한 번 두려워서 못 켰거든요. 그러자 이번에는 폴크스바겐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결국 이런 사건들은 오랫동안 항의해야 해결되는 걸까요? 이번에 한해 예외적으로 불량 부품 교체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정작 수리를 받아도 차가 달리다 멈춘 것은 보통 무서운 일이 아닙니다. 지금의 BMW가 수리하면 화재가 안 난다는 말을 믿어야 되는 것처럼요.

그래서 수리를 마쳐도 불안감에 결국 차를 내놓게 되었습니다. 이미 9개월간 배출 가스 조작 사건과 함께 차의 잔존가치는 휴짓조각만큼 떨어진 상태였고, 수리된 기록 또한 중고차 판매가를 꺾는 데 아주 큰 힘(?)이 되었습니다.

"왜 이 부품을 수리하셨죠?"
"차가 달리다 멈춰서요."


이 모든 사건의 결론으로 저의 사연 많은 첫 외제차는 국산 경차의 중고차 시세로 판매가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돈이 많아서 외제차를 샀던 것도 아닙니다. 정직하게 가족과 제가 돈을 반반 합쳐서 샀던 생애 첫 수입차였죠.

거짓말 같은 BMW와의 만남

폴크스바겐을 국산 경차보다 헐값으로 팔고 나서, 폴크스바겐이 있는 매장 쪽에는 눈길도 주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외제차는 타고 싶었는데, 그러다 보니 '이번에는 다르겠지...' 하면서 저의 발걸음은 BMW로 향했습니다.

2년 정도 BMW를 뽐내며 즐겼을까요? 이번에는 제 차종에 불이 나기 시작한다고 합니다.
그냥 귓등으로 흘려 듣고 싶었습니다만, 점점 여론에도 불이 붙기 시작하는 모양새입니다. 귀신이 곡할 노릇입니다. 왜 하필 또 제 차량일까요?

포털사이트에서 고속도로에서 불이 난 BMW 디젤 차들이 속속 올라오기 시작하면서, '1일 1불'이라는 오명까지 쓰면서 사태가 제법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냥 운 없는 차들이 불이 몇 건 난 거겠지…' 애써 모른 척 하려 하는데, 이번에는 BMW에서 빠르게 리콜 받으라는 문자가 다급하게 세 차례에 걸쳐서 오기 시작합니다. 이번에는 자동차에 불이 난다고 하는데, 정작 BMW 콜센터는 전화폭주로 통화가 이어지지 않습니다.

BMW로부터 연달아서 받은 문자. 나도 5천만원 내고, 피해 소비자 32,300명중에 한 명이 되었다.
 BMW로부터 연달아서 받은 문자. 나도 5천만원 내고, 피해 소비자 32,300명중에 한 명이 되었다.
ⓒ 정주영

관련사진보기


 ‘안전이 확보될 때까지 최대한 운행 자제’를 요청하는 국토부 발표
 ‘안전이 확보될 때까지 최대한 운행 자제’를 요청하는 국토부 발표
ⓒ 국토교통부

관련사진보기


BMW 피해자들을 수용하지 못할 만큼 큰 일이 터지자, 급기야 정부에서 지난 금요일에 이례적으로 제 차량에 대해 운행을 자제해 달라고 권고하기까지 나섰습니다.

뉴스가 뜬 첫 날에 가족들이 모두 연락해 옵니다. 걱정하기보다는 모두들 저에게 분노한 목소리였습니다.

"주영아, 이제 수입차 좀 그만 해라."

정부까지 나섰으니 말 다했죠. 이 차도 휴지조각처럼 눈물의 '헐값쇼'가 예상되니 말입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폴크스바겐에 데이고도 외제차를 그래도 끝까지 몰아보겠다던 저의 허영심? 아니면 책임질 사람은 없지만 책임지는 소비자만 생기는 정부의 뒷짐 태도? 국내 소비자를 봉으로 보는 외국 제조사의 배짱 영업?

"BMW가 소비자를 기만하고 있다"

4일 오후 2시 15분께 목포시 옥암동 한 대형마트 인근 도로에서 주행 중인 2014년식 BMW 520d 승용차 엔진룸에 불이 나 연기가 치솟고 있다. 경찰과 소방 당국은 결함 등 화재 원인을 파악하고 있다. 전남 목포소방서 제공
 4일 오후 2시 15분께 목포시 옥암동 한 대형마트 인근 도로에서 주행 중인 2014년식 BMW 520d 승용차 엔진룸에 불이 나 연기가 치솟고 있다. 경찰과 소방 당국은 결함 등 화재 원인을 파악하고 있다. 전남 목포소방서 제공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폭염의 절정에 무섭기만한 BMW 차를 그늘에 식혀 두고, 대덕대 자동차학과 이호근 교수에게 BMW 사태에 대해 질문을 던져 보았습니다. 저의 첫 폴크스바겐 차가 주행중 시동이 꺼지자 문제 원인을 규명하려고 대구까지 한달음에 내려왔던 분이기도 합니다.

소비자가 이러한 폴크스바겐과 BMW 사건을 겪는다면 한 명의 소비자로서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이호근 교수의 대답은 명료했습니다.

"이 사태에 대해 소비자로서 강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다들 정부 입만 바라보는데 정작 칼자루가 정부에게 없죠."

마치 국토교통부가 BMW 피해 소비자들에게 "운전 자제 요청"한 것이 전부였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왜 화재일까요? 이 질문에는 BMW가 배출 가스 저감 효과를 극대화 하기 위해 "DPF(배기가스 후처리장치)가 작동할 때 600도 가량의 배기 온기가 EGR(배기가스 재순환장치) 밸브로 들어가면서 쿨러가 녹아 버리고 흡기관 플라스틱이 녹으면서 화재가 일어나는 것"이라 답합니다.

결국 저는 폴크스바겐 배출 가스 조작을 피해서 BMW를 사러 왔지만, 배출가스만 괜찮았고 사실은 또 다른 폭탄을 수천만 원 안고 샀던 것입니다.

폴크스바겐과 BMW에 1억을 써보고 얻은 교훈이 있습니다. 신뢰의 상징 같았던 독일 외제차도 별 수 없구나. 치명적인 결함이 터져도 세 번 연속으로 부품 교체 받으러 오라고 문자 보내는 게 전부구나. 그러면 BMW가 보낸 문자 그대로 EGR만 교체하면 이 모든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이호근 교수는 지금의 BMW가 소비자를 기만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일단은 제가 볼 때 BMW가 소비자를 기만하고 있어요. 부품 교체 후에 안전하다고 하지만 전문가 입장에서는 정작 해당 사태는 부품 교체와는 무관하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가 메인이라 보거든요."

왜 하필 유독 한국에서 올해에 이런 사태가 일어나는 걸까? 그것 또한 한국의 기록적인 폭염과 상관관계가 있다고 이 교수는 말합니다.

"현재 BMW의 화재는 BMW 차량으로 고속도로를 과도하게 운행하고, 고속 주행을 많이 하는 경우에 주로 고온 문제로 발생합니다. 최근에 기록적인 폭염이 급작스럽게 다가오면서 결국 DPF나 EGR이 식지 않기 때문에 차량에 불이 나는 거지요."

그러면서 이호근 교수는 "결국 이것은 예견된 사고였다"라고 주장합니다.

이게 다 외제차 부심 부리려다

40도 폭염에 BMW 차를 두고 버스로 출근하던 날에 찍은 사진
 40도 폭염에 BMW 차를 두고 버스로 출근하던 날에 찍은 사진
ⓒ 정주영

관련사진보기


2년 전 폴크스바겐 사태처럼 이번에는 정부의 권고대로 5천만 원 상당의 BMW를 주차장에 세워두고, 뚜벅이로 다시 출근하는 첫 날, 서울의 날씨는 40도를 가르킵니다. 땀이 육수같이 쏟아지는 현장에 기가 막힌 상황 속에서 눈에도 가끔 따가운 듯 물이 나오는데 눈물인지 그냥 땀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입니다.

도로 위에 멀쩡한 한국차들이 괜히 부럽습니다.

"BMW 사더니, 정말 Bus Metro Walking(버스, 지하철, 걷기) 하네."

친구들은 놀려대고 그리고 꼭 이 때, 중고차 딜러인 친구에게서도 전화가 걸려 옵니다.

"니 차 최소 천만 원 중고가 떡락(폭락) 예정이다."

이제 외제차를 멀리하면 될까요? 그러나 "운행 자제"만 강권하는 정부의 모습을 보면서,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불이 나서야 불을 끄기 시작하는 대응들에 소비자는 충분히 지쳤습니다.

저는 이미 시동 꺼짐을 당하고, 다른 브랜드를 선택해 보았지만, 역시 문제는 브랜드에 있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차량의 결함에 시종일관 무심한 정부의 미지근한 태도입니다.

이호근 교수가 인터뷰 말미에서 2년 전 폴크스바겐 사건에 기겁해 하던 그때의 저를 떠올리며 유쾌하게 꼬집습니다.

"외제차 살 때마다 굵직한 사건들에 휘말리네."

왠지 외제차 타고 운수 좋은 요즘이라 생각했는데, 제 주제에 어울리지 않았나 봅니다. 아직 할부값만 수천만 원 남아 있는데 말이죠. 불나는 BMW에 불같이 화난 소비자들만 남았습니다.


태그:#BMW, #화재, #소비자, #피해
댓글37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