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방송된 tvN 시사교양 프로그램 < SHIFT > '김정운의 마이스페이스'편

지난 27일 방송된 tvN 시사교양 프로그램 < SHIFT > '김정운의 마이스페이스'편 ⓒ tvN

 
이사를 했다. 나의 공간이 마련되었다. 이후 예전에 살던 집에서는 하지 않던 일을 하기 시작했다. 유튜브에서 클래식을 찾아 틀고, 벼르고 벼르던 글을 다시 써보겠다며 책상 앞에 앉기도 한다. 그 변화가 신기해서 '뭐지?' 하던 차에 tvN < SHIFT >에 등장한 김정운 박사가 답을 알려줬다. 그건 바로 '공간' 때문이라고 말이다. 

김정운 박사는 인간은 정신적 존재가 아닌 공간적 존재라고 단언한다. 대한민국 사람들은 평생을 큐브에서 벗어나지 못하지만, 같은 큐브라도 그 내부가 달라지면 인간도 변하게 된다고.

지난 27일 방송된 tvN 시사교양 프로그램 < SHIFT > '마이스페이스'편의 시작은 김정운 박사가 열었다. 그는 한때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노는 만큼 성공한다> 등 도발적인 제목을 단 책으로 대한민국 사회를 들었다 놓은 사회심리학자다. '헬기를 타고 강연을 다녔다'고 자랑할 정도로 대한민국에서 잘 나갔던 그는 어느날 훌쩍 일본으로 갔다. 그냥 간 게 아니다. 뜬금없이 그림 공부를 시작했다. 그렇게 '자칭' 화가가 된 그는 이제 여수 바닷가에 산다. 망한 횟집을 '아틀리에'로 개조한 그는 자신의 그 '유랑'이 바로 공간에 대한 욕망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고백한다. 

김정운 박사는 공간은 바로 '나'라고 단호하게 정의한다. 그런 그의 주장에 건축학과 교수 서현은 "공간을 통해 내가 표현되는 것이 맞다"며 동의한다. 과학 철학자인 장대인 교수는 70%의 동의를 표하며 "공간의 개념을 물리적 의미 그 이상으로 확장해야 한다"라고 덧붙인다.

우산 안에서 연인들이 키스를 하는 이유
 
 지난 27일 방송된 tvN 시사교양 프로그램 < SHIFT > '김정운의 마이스페이스'편

지난 27일 방송된 tvN 시사교양 프로그램 < SHIFT > '김정운의 마이스페이스'편 ⓒ tvN


그래서 방송은 김정운 박사의 주장을 실험해본다. 우선 기억의 공간을 더듬는다. 한 초등학교 교실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자칭 '셜록'이라는 인물의 '과거'를 '힌트'를 따라 추적해 본다. 

우산, 텐트, 그리고 맨 앞자리와 그 시절 썼던 공책, 계단참이란 힌트가 주어진다. 그 과정에서 누구나 무심히 쓰는 우산이나 텐트가 '자기 만의 공간'으로 해석된다. 그 작은 우산 안에서 연인들이 키스를 하는 이유는 바로 '나만의 공간'이기 때문이라고.

'맨 앞자리'에서는 인정 욕구가 강한 자기애가 드러나고, 다른 학생들과 부딪치지 않는 계단참에서는 자신의 세계를 갖고 싶어하는 자의식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늘 아이들에 둘러싸여 지내게 되는 우리의 학교가 아이들 스스로 자신의 세계를 들여다 보고 성장할 여유를 갖지 못하게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렇게 김정운 박사의 예리한 분석과 함께 등장한 건축학과 교수 유현준는 초등학교라는 공간이 '거푸집'같은 곳이라 정의한다. 컨테이너처럼 쟁여진 그 과거로부터 기억을 재구성하고, 지금 내가 여기서 무슨 기억을 만들고있는가 내 삶을 돌아볼 수 있게 만드는 매개체가 바로 '공간'이라고 말한다. 

기억, 권력, 그리고 감정

그렇다면 지금의 나를 드러내고 있는 공간은 어떤 곳일까? 방송은 현재의 대한민국 공간을 대표하는 '직장'으로 시선을 옮긴다. 

업무를 위해 직장의 오너를 만나러 가는 과정. 경비원에게 자신이 누구인지를 밝히고 출입증을 받고, 비서실을 통과하는 '시퀀스'는 그 자체로 만나러 가는 사람을 '겸손'하게 만든다. 그렇듯 오늘날 대한민국의 직장은 바로 '권력'으로서의 공간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 '수직적 권력 구조'로 대변되는 공간이 변화하고 있다. '창의성'을 중시하는 트렌드는 회사를 놀이터처럼, 카페처럼 심지어 술도 한 잔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변모시키고 있다. 그런데 '권위'를 파괴하는 공간이 마냥 좋기만 할까? 

한 카드 회사에 다니는 입사 2년차 강 대리의 자리 찾기로부터 시작된 실험은 팀장, 강 대리가 함께 한 자리에서의 허심탄회한 토론으로 이어진다. '공간이 바뀌면 권력이 바뀌는가'라는 질문에 팀장과 강 대리 모두 공감했다. 그러나 수평적으로 바뀐 공간이 '팀장'은 마냥 편하지만은 않단다. 

직장에 들어와 오랜 시간을 보내며 그에 대한 보상으로 공간이 주어진 것이기에, 수평적인 사내 문화는 때론 상급자의 '상실감'을 자아내기도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 직장에서 펼쳐지고 있는 수평적 공간에 대한 실험은 군대 내 위계 질서를 고스란히 담아왔던 한국 사회 내 직장 문화를 바꾸기 위한 새로운 시도다. 

300만 원 들여 지은 집 한 채, 행복해진 남자
 
 지난 27일 방송된 tvN 시사교양 프로그램 < SHIFT > '김정운의 마이스페이스'편

지난 27일 방송된 tvN 시사교양 프로그램 < SHIFT > '김정운의 마이스페이스'편 ⓒ tvN


이어 또 하나의 실험이 등장한다. 김정운 박사와 유현준 교수가 한 부부의 집을 통해 그 답을 찾는다. 역시나 이 집에 사는 사람은 어떤 이일까라는 공간 심리 실험. 거실에 들어앉은 명품 자동차, 곳곳에서 눈에 띄는 감각적인 디자인, 그리고 다락방 공간을 활용한 미니 영화관을 통해 이 집의 남편 김준선씨의 취향을 알 수 있다. 그에게 집은 밖에 나갔다가도 빨리 들어오고 싶은, 가장으로서 가족을 건사하는 공간이 아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오롯이 풀어놓은 공간인 것이다. 

더 나아가 공간은 '행복'이 될 수도 있다. 여행, 캠핑 마니아였던 김득영씨는 집 근처에 트리 하우스를 지었다. 김씨는 200~300만 원 정도를 들여 지은 집으로 인해 삶이 즐거워졌단다. 

IMF 때 학창 시절을 보내느라 취미를 사치로 여기며 자랐던 80년대 동갑내기 이태연, 김기현, 양환용씨는 비어있는 상가를 자신들의 아지트로 꾸몄다. 각자 한 달에 10만 원도 안 되는 돈을 내며 유지하는 공간에는 게임에서부터 만화까지 그들이 좋아하는 것으로 가득 차 있다. 그들은 이곳에 모여서 얘기도 나누고 요리도 하며 '네버랜드'같은 '비밀기지'를 만들었다.  

방송은 다시 김정민 박사에게도 카메라를 돌렸다. 그는 여수로 와서 말투부터 달라졌단다. 대기업에 강연을 다니던 시절엔 말을 속사포처럼 쏘아댔는데, 공간이 변하면서 그것 또한 달라졌다고 한다. 이렇듯 방송은 '나만의 공간'을 찾으라 권유한다. 

나만의 공간은 바로 나만의 플레이리스트다. '소유'가 아니다. 유현준 교수는 집안의 작은 구석, 나무 아래, 도서관, 버스 뒷좌석, 회사 옥상 등 지금까지 지나쳤던 곳에 자신만의 의미를 부여하며 공간이 들려주는 소리에 귀기울이라 권유한다. 바로 그렇게 자신이 사유한 공간을 통해 달라질 수 있단다. 공간을 '소유'라고 생각했던 우리 사회에 대한 도발적 담론이다. 

지금 내 방에는 슈페르트의 아르페이오 소나타가 흐른다. 비록 콘서트홀은 아니지만 로스트로포비치의 짙은 첼로 선율은 큐브의 공간을 넘어 나의 사유를 자유롭게 확장한다. 공간은 곧 부동산이요, 재테크라고만 생각했던 우리 사회의 선입관을 넘어, 내가 좋아하는 곳을 통해 내가 행복해 질 수 있다는 목소리는 2020년을 맞이하며 우리가 진지하게 고민해 볼 화두다. 
 
 지난 27일 방송된 tvN 시사교양 프로그램 < SHIFT > '김정운의 마이스페이스'편

지난 27일 방송된 tvN 시사교양 프로그램 < SHIFT > '김정운의 마이스페이스'편 ⓒ tvN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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