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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초겨울 산과 들을 배회하다 우연히 묘하게 살얼음이 언 개울가를 발견했다. 이후 겨울이면 그곳에 가서 사진을 찍으며 놀았다.

내가 사는 경북 청도와 인근 지역을 둘러본 결과, 이 개울은 다른 곳과 사뭇 다르게 얼음이 얼었다. 다른 지역들은 단단하고 두텁게 얼음이 어는데 이곳은 이상하게 빛살 무늬 형상의 연약한 살얼음이 얼었다.

오랫동안 관찰해보니, 이곳의 지형, 평년 기온, 물의 양, 일조량 그리고 대기가 어우러져 현미한 미기후(微氣候, micro climate)가 만들어낸 현상으로 추측된다.

기상(氣象)은 에너지의 모양이 전환된 형상인데 형상이 없던 물이 얼음으로 변화하는 것은 물이 열을 잃어버림에서 연유한 것이라 들었다. 더함이 아닌 잃음으로써 형상을 가지는 건, 마치 창작자가 자신의 내부에 있는 열정을 오롯이 작품에 쏟아냄과 닮았다.

물속의 열기가 물을 떠나며 드러난 빛살 무늬 살얼음은 형상 없는 대기의 손이 남긴 빛의 지문 같고 빛을 형상화한 이슬람 사원의 건축 문양과도 닮았다.  
 
빛살 무늬 살얼음(2014년) 빛이 번지듯 얼며 개울을 채워 나갔다.
▲ 빛살 무늬 살얼음(2014년) 빛이 번지듯 얼며 개울을 채워 나갔다.
ⓒ 손승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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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얼음은 주로 아침 찬 기운으로 소리없이 얼었다. 개울가의 땅과 돌이 먼저 언 뒤 물이 빛살처럼 번지며 얼었다. 선에서 결로 결에서 면으로 얼었고 계단식 논처럼 변했다. 물이 그 위를 범람해 2중 3중으로 얼며 빈 곳을 형성하였다. 그러다 따뜻한 날이면 한낮의 열기에 와르르 무너지는 소리를 내며 녹았다. 자연은 그렇게 저절로 지은 것을 스스로 흔적없이 지웠다.

차가운 한철 시공간이 어우러져 만든 자연의 유희는 차갑고 아름답고 허망했다. 조각가인 나는 사진으로 그 시간의 무늬를 기록하는 것이 영 심심해 석고로 라이브 캐스팅(live casting, 살아있는 인체 등을 주조하는 방식)을 시도해 보았다.

석고 가루는 물과 합해져 반죽되면 일정 시간이 지나 열을 내고 수분을 잃어 고체화된다. 캐스팅 전 살얼음이 살아있는 생의 모습이라면 그것을 찍어낸 고체화된 석고 덩어리는 마치 죽은 이의 얼굴을 찍은 데스마스크(death mask)처럼 느껴졌다. 
 
살얼음을 석고로 찍어냄 캐스팅 도중 얼음이 갈라져 중간 부분이 금이갔다.
▲ 살얼음을 석고로 찍어냄 캐스팅 도중 얼음이 갈라져 중간 부분이 금이갔다.
ⓒ 손승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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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훈은 산문집 <바다의 기별>에 "나는 어두운 갯벌의 가장자리에 주저앉아 있다. 시를 쓰지 못하는 나는 이 자리가 시가 쓰여지는 자리라고 생각한다"고 썼다. 내게는 이 작은 개울이 그랬다.

얼음이 사라졌다

그런데 최근 3년간 이곳에서 아무런 작업을 할 수 없었다. 가뭄으로 물이 점점 줄더니 어느 해는 완전히 말라 버렸고 기온은 상승해 겨울에 얼음을 볼 수 없는 개울이 됐다. 올 겨울 사상 초유의 따뜻한 날씨로 청도의 모든 강과 시내는 영감을 잃은 시인처럼 아무런 무늬도 만들지 않았다. 

가까이에서 딸기 농사를 짓고 있는 지인은 착잡한 마음을 토로하셨다.

"옛날에는 여가 얼음이 꽝꽝 얼었제, 겨울이면 동네 아들 다 모이가 썰매타고 놀던 놀이터였는데 날씨가 와이레 변했뿐노..."

이 작은 개울의 급변한 상황은 전 세계에 걸쳐 일어나고 있는 기후 변화의 한 단면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뉴스에서 너무 많이 접하다 보니 이제 기상이변은 더 이상 '이변'이 아닌 일이 됐지만.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처럼 변하는 것은 자연의 이치다. 다만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는 것이 문제다. 10년 전 하천 정비를 한답시고 그 좋던 바위들을 깨부수고 나무들을 뽑아내는 것을 보았다. 개발이라는 맹목하에 진행된 인간의 어리석음이 산과 강을 우리들의 터전을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빛살 무늬 살얼음(2015년) 살얼음은 2중 3중으로 얼며 공간을 형성 하였고 점점 하얗게 변했다.
▲ 빛살 무늬 살얼음(2015년) 살얼음은 2중 3중으로 얼며 공간을 형성 하였고 점점 하얗게 변했다.
ⓒ 손승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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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렇게 된 것일까? 학자들은 산업혁명 이후 농업과 의학의 발전으로 평균수명이 늘어난 데서 연유를 찾는다. 백 년 전 10억 명에 불과했던 전세계 인구는 현재 77억 명을 넘었다. 문제는 인구와 함께 에너지 소비도 함께 늘었다는 것이다. 한국의 1인당 전력 소비량은 1981년 연간 815kWh였다가 2015년 9555kWh로 30여 년 사이에 10배 이상 급격히 늘어났다.

온실 지구(Hothouse Earth)가 되는 것은 현재보다 기온이 2도 상승하는 지점인데, 곧 이 임계점을 넘어 바다를 끓게 만들 것이라고 과학자들은 진단한다. 국제 기후 연구진은 앞으로 수십 년 내에 예상되는 온난화로 인해 현재 지구의 원동력이 되어주고 있는 자원들 일부가 지구를 해치는 '적'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러면서 극단적인 기후 변화를 피하기 위해서는 화석 연료의 연소를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 모두 지구의 관리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참고: BBC '기후 변화: 우리의 친구 숲과 바다가 적이 되어 우리를 삼켜버릴 때')

봉준호 감독의 영화 <설국열차>는 앞을 향해서만 내달리는 기차를 멈추기 위해선 '옆'을 봐야 한다는 화두를 던진다. 극중 인물들은 통념으로 믿어왔던 벽을 과감히 부순다. 극중 남궁민수(배우 송강호)는 이렇게 말한다.

"저게 하도 오래 닫혀 있으니까 이젠 벽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저것도 실은 문이라 말이다."

봉 감독과 절친했던 고 노회찬 대표는 <설국열차>를 본 뒤 이런 소감을 남겼다.

"열차 안에 모순과 갈등이 있지만 궤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특징이 있다. 궤도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 달라져도 크게 달라지는 게 아니다. 근본적인 변화는 남궁민수의 발상과 지향에서 시작된다. 즉 궤도를 벗어나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것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신뢰받지 못하기 때문에 어렵긴 하지만, 그길이 맞지 않나 싶다." 

집 짓는 즐거움을 영원히 목수에게 양보해야 하는가
 
빛살 무늬 살얼음(2017년) 마지막으로 찍은 살얼음, 이후 3년간 가뭄으로 물이 마르고 기온이 상승하여 더이상 개울가에서 살얼음을 볼 수 없었다.
▲ 빛살 무늬 살얼음(2017년) 마지막으로 찍은 살얼음, 이후 3년간 가뭄으로 물이 마르고 기온이 상승하여 더이상 개울가에서 살얼음을 볼 수 없었다.
ⓒ 손승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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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혁명 이전처럼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삶은 가능할까? 그즈음 태어나 그 가치를 몸소 실천한 미국인 사상가 소로(H, D Thoreau, 1817~1862)의 글 속에 공감되는 방편들이 있다.

그의 역작 <월든>은 자연 찬미 일색일 것이라 예상되지만 당황스럽게도 '경제'로 시작된다.

소로는 "우리는 집 짓는 즐거움을 영원히 목수에게 양보해야 하는가?"라고 질문한다. 그는 스스로 오두막을 지으며 지출한 자재비(대부분 재활용) 및 경비를 꼼꼼하게 기록해 놓았다. 다가올 미래를 예측한 듯 로컬 에코 라이프를 실천한 그는 인간이 만들어 내는 수많은 '현대적 개선'이라는 환상을 지적한다.
 
"우리가 만들어낸 발명품들은 진지한 것들에서 우리의 관심을 빼앗아가는 예쁘장한 장난감이기 일쑤여서 개선되지 않은 목표에 이르기 위한 개선된 수단에 불과하다."

"우리가 진정으로 인디언적인 방법, 식물적인 방법, 자연적인 방법으로 인류를 구원하려 한다면 먼저 자연만큼이나 단순하고 간결해져야 한다."

월든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무조건 다음 날 새벽이 찾아오지는 않는다. 우리 눈을 멀게 하는 빛은 우리에게 어둠과 다를 바 없다. 우리가 깨어 있어야 비로서 새벽이 찾아온다."

작가 루쉰은 "희망은 본래 있다고 할 수도 없다고 할 수도 없다. 그것은 지상의 길과 같다. 원래 지상에는 길이 없었는데 걸어 다니는 사람이 많아지자 길이 된 것이다"라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가는 길이 아닌, 다른 길을 모색하는 사람들이 있다. 유행과 소비를 주도하는 패션업계에서 '옆'을 보고 걸어가는 기업들이 생겨난 것.

이들은 태양에너지로 구동하는 공장에서 제품을 만들고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며 지속 가능한 옷을 만든다. '우리 제품을 사지 마세요'라고 광고하는 브랜드도 있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가 자연에서 얻는 것보다 자연에 되돌려 주는 것이 적다"는 이유다.

이런 옆길로 더 많은 사람들이 걷게 돼 언젠가 내 놀이터가 돌아오기를, 그곳이 다시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기를, 작은 희망을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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