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27일 선거 연령을 만 19세에서 만 18세로 낮추는 '공직선거법 일부개정법률안'이 통과되면서 약 53만 명의 만 18세 유권자가 21대 총선에서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되었다. 선거권 연령 하향은 민주시민의 일원인 10대의 의견을 확대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편으론 해결 과제도 남겼다. 현재 정당의 당원으로 등록할 수 있는 나이는 만 19세다. 국회의원 후보로 등록할 수 있는 피선거권은 만 25세 이상인 자에게 주어진다. 만 18세부터 혼인, 입대, 공무원 응시 등이 가능한 상황과 비교하면 모순점은 여전히 존재한다.

지난 16일 방송한 KBS <저널리즘 토크쇼 J> '꼰대 언론이 청년을 소비하는 법' 편은 21대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언론이 만 18세 유권자, 그리고 청년을 소비하는 태도를 짚어보았다. 진짜 청년을 위한 보도는 무엇일까?
 
 <저널리즘 토크쇼 J>의 한 장면

<저널리즘 토크쇼 J>의 한 장면 ⓒ KBS


보수 언론과 진보 언론은 만 18세 유권자를 두고서 호명이 달라진다. 한겨레신문 <청년정책 새롭게 쓸 18살 '젊은 표'가 온다>(2019.12.30.)는 만 18세를 새내기 주권자로 주목한다. 반면에 중앙일보 <교복 입은 유권자 찾아... 선관위 전국 2300개 고교에 간다>(2020.1.16.), MBN <'교복 입은 유권자' 만 18세 첫 선거...기대, 우려 교차>는 '교복'을 강조한다.

보수 언론의 10대를 미성숙한 존재로 몰아가는 보도는 선거법 통과 후 반복되는 중이다. 이들은 '교복'을 정치적 언어로 만들어 만 18세 유권자는 미성숙하다는 프레임을 씌운다. 그리고 학생의 의무를 강조하고 정치는 학생의 영역이 아니란 맥락을 부여한다.

보수 언론은 만 18세 유권자의 등장으로 인해 학교 안에서 갈등을 일어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중앙일보의 사설 <고3 교실이 정치 폭풍 지대 돼서는 안 된다>(2020.1.29.)는 선거권 연령 하향으로 인해 교실이 진영 대결의 장르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고 일부 교사의 정치 편향 교육으로 학교가 정치 중립성 논란에 휩싸일 수 있다는 우려로 가득했다.

조선일보 <교총, "만 18세 투표 땐 교실 정치판" 연일 비판>(2019.11.25.)도 교실의 정치화를 비판한다. 보수 언론은 입을 모아 정치적 미성숙을 근거로 들고 교실이 정치로 난장판이 될 것이라 말한다. <저널리즘 토크쇼J>는 언론들이 '선거'가 민주주의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교육이란 사실은 외면한 채 오로지 정치적 손익계산에만 몰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저널리즘 토크쇼 J>의 한 장면

<저널리즘 토크쇼 J>의 한 장면 ⓒ KBS


정말로 학생은 어른의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존재일까? 역사를 돌이켜보면 학생은 절대 미성숙하지 않았다. 1910년대 일제 강점기 무렵 독립을 외치며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이들은 다름 아닌 학생들이었다. 1960년 3.15 부정선거가 있기 직전인 2월 28일 대구에서 시작된 독재정권에 저항하여 민주주의 운동을 일으킨 중심에도 학생들이 있었다.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우리나라의 선거권 확대는 상당히 늦었다. 전 세계 232개국 가운데 216개국이 18세에게 선거권을 주고 있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가입국 가운데 투표권을 만 19세로 제한했던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했다.

보수 언론은 만 18세로 선거 연령을 낮추는 문제가 갑자기 나타난 양 왜곡한다. 동아일보 <"고등학교 교실 정치판 될 것"... "만 18세 투표권은 세계적 추세">(2019.1.26.)는 "여야가 공직선거법 개정안 내용을 두고 의석수 '밥그릇 싸움'에 몰두하는 사이 '18세 투표권'도 어물쩍 수정안에 포함되면서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만 18세 투표권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어물쩍' 끼워 넣은 사안이 아니다. 1948년 만 21세, 1960년 만 20세, 2005년 만 19세로 참정권 연령은 점차 낮아졌다. 만 18세 선거권은 1997년 대선 당시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후보가 처음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리고 2002년 '낮추자'란 이름의 18세 선거권 운동 단체가 16대 대선 모의 투표를 진행하면서 조금씩 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만 18세 투표권은 오랜 싸움 끝에 얻은 결과다.
 
 <저널리즘 토크쇼 J>의 한 장면

<저널리즘 토크쇼 J>의 한 장면 ⓒ KBS


'공직선거법 일부개정법률안'이 통과된 후, 서울시교육청은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모의 선거 교육을 준비했다. 그러자 보수 언론은 일제히 비판 기사를 쏟아냈다. 동아일보 <졸속, 편향 우려 낳는 '고3 교실 총선 교육'>(2020.1.2.)은 "상당수 교육감이 심각한 이념 편향을 보이고 있고 교육 현장에 교사의 정치 중립 전통이 뿌리내리지 못한 상태"란 주장을 담았다.

중앙일보는 사설 <선거 교육, 편향적 사실 주입해선 안 된다>(2020.1.11.)를 통해 "제아무리 선거 교육 자료집을 잘 만들어도 교사가 선입관을 가지면 교실은 정치적 편향으로 오염된다"고 언급했다. 논란이 잇따르자 선관위는 2월 6일 공직선거법에 위반된다는 이유로 모의 선거 교육을 금지하는 결정을 내렸다.

현재 미국, 캐나다, 영국, 독일, 스웨덴, 덴마크, 핀란드, 일본 등 많은 나라가 건강한 유권자 양성이란 목표 아래 학생 모의 선거를 실시하고 있다. 학생들은 모의 선거 과정을 통해 부정선거, 무효투표를 학습한다. 또한, 공약을 분석하며 자신이 지지할 후보를 찾는다. 모의 선거는 민주주의 시민을 기르는 데 안성맞춤인 교육이다.

우리나라 교육기본법 제2조를 살펴보면 공교육의 목적이 민주시민을 길러내는 것이라 밝히고 있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민주시민을 길러내기 위해선 선거 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도 보수 언론은 선거 교육의 필요성은 무시하고 학부모들이 두려워할 만한 소재들만 기사화하여 공포 효과에 몰두한다. 단순히 위법 사례만 나열하여 학생이 사회에 진출하기도 전에 범법자가 될 수 있다는 식으로 부모의 불안 심리를 증폭시킨다. 마치 정치적으로 미성숙하길 바라는 모습이다.
 
 <저널리즘 토크쇼 J>의 한 장면

<저널리즘 토크쇼 J>의 한 장면 ⓒ KBS


21대 총선을 앞두고 만 18세 유권자를 포함한 청년 세대가 캐스팅보트로 떠오르자 각 정당은 표심을 공략하기 위해 앞다퉈 각종 정책을 내놓았다. 정의당은 만 20세 청년에게 3000만 원을 지급한다는 파격적인 공약을 내걸었다. 더불어민주당은 청년층을 겨냥하여 무료 와이파이 확대를 1호 공약으로 선보였다. 다른 당에서도 경쟁적으로 청년 공약을 쏟아내는 상황이다.

그러나 대부분 언론은 내용을 분석하여 필요성 여부를 검증하기보단 공약 자체를 중계 보도할 따름이다. 한겨레신문 <정의당 총선 1호 공약 '만 20살에게 3천만 원 지급>(2020.1.9.), 동아일보 <민주당 총선 1호 공약은... '무료 공공 와이파이 확대'>(2020.1.15.)를 보면 보도 자료를 그대로 받아쓴 수준에 불과하다. 언론들이 주목해야 할 것은 청년들이 정치권을 향해서 내는 목소리다. 청년들이 느끼는 문제점은 무엇인지, 정당들에 어떤 정책을 요구하는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프레시안과 뉴스타파가 공동으로 기획하여 4차례에 걸쳐 연재한 '배달 죽음'은 배달 플랫폼 노동자의 산업 재해 문제를 짚은 좋은 기사다. 기사에 따르면 최근 3년간 18세에서 24세까지 산재 사망 44%가 오토바이 배달 중 사망으로 확인됐다. 플랫폼이 거액에 팔렸다는 기사는 많을지언정 이렇게 구조 속 노동자를 조명하는 언론은 드물다.
 
 <저널리즘 토크쇼 J>의 한 장면

<저널리즘 토크쇼 J>의 한 장면 ⓒ KBS


10명 중 3명은 대학에 가지 않지만, 정부나 지자체의 청년 지원 정책은 다양한 '청년'의 상황을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 대학생과 대학원생은 생활비 대출이 쉬우나 비진학 청년을 위한 정부 지원책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주거 지원책 역시 마찬가지다. 대학생이 아니면 청년으로 취급을 받질 못하는 것이다.

한겨레신문 <대학생만 청년이란 듯, 만나는 사람마다 "어느 학교 다녀요?">(2019.12.6), 경향신문 <청소년 노동자, "우린 감정도 없나요?">(2019.12.26.)는 다양한 청년의 목소리를 들려주어 사회 정책으로 반영되길 촉구한다. 이처럼 발언권을 가진 언론은 목소리를 내기 힘든, 사회안전망 없이 방치된 다양한 청년들의 문제를 끊임없이 전달해야 한다. <저널리즘 토크쇼 J>는 강조한다.

"지금의 언론은 정치가 청년들의 삶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지도 않고, 정치 참여만을 외치고 있습니다. 그들이 왜 참여해야 하는지 먼저 설명해주는 게 진정한 언론의 역할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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