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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인 경제학자.
 정태인 경제학자.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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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거의 모든 경제학자가 재난기본소득 지급이 필요하다고 한다. 하다못해 (보수 경제학자인) 그레고리 맨큐도 그랬다. 돈이 필요한 사람들을 추려내기 어려우니 급한 대로 미국 국민 전원에게 1000달러씩 주라고 한다. 더구나 지금은 국가채무를 걱정할 때가 아니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 기재부와 청와대, 미래통합당만 반대하고 있다. '재난기본소득 반대 대연정'이다."

독립연구가로 활동 중인 경제학자 정태인의 지적이다. 정 연구가는 지난 17일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하면서 코로나19의 전 세계적 확산으로 실물경제에 타격을 입고 있는데도 재난기본소득 지급 등 과감한 정책 마련에 소극적인 청와대에 답답함을 토로했다.
 
그는 "청와대가 피해계층 지원 방법으로 안정적인 전달체계가 작동하는 곳에 정부 예산을 투입하겠다고 하는 것은 정상 경제시국에서 나온 전례가 있는 정책일 뿐"이라며 "문재인 대통령은 비상 경제시국에 맞는 전례 없는 정책을 고민하라고 했는데 안 하는 것 같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전례가 있는 정책만 고려하다 보니 결국 기존의 경제 활성화 대책을 재탕한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라며 "기재부가 반대하더라도 이런 비상 상황에서까지 재난극복을 위한 일회성 기본소득을 줄 논리를 만들지 못하는 건 게으른 것"이라고 비판했다.

"경제 마이너스 성장 가능성 높아져... 피해 심각한 계층에는 현금 지원도 해야"
 
정 연구가는 참여정부에서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을 지낸 바 있다. 지난 2018년 정의당에 입당한 그는 현재 정의당 총선공약개발단장을 맡고 있다.
 
그는 "지금 청와대에는 그 어느 때보다도 이른바 진보적 경제학자가 많이 들어가 있는데도 참여정부 청와대와 분위기가 다르다"라며 "우리는 개혁 정책을 만들고 어떻게 하면 기재부를 넘어설까를 고민했지만, 내가 직접 들은 이 정부 초기 청와대 분위기는 '사고치지 말자'였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정 연구가는 유럽과 미국의 본격적인 감염 확산으로 우리경제의 마이너스 성장 가능성이 높아졌다며 단기적으로는 "국회를 통과한 추가경정예산을 빨리 집행하고 피해가 심각한 계층에게는 현금 지원도 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정부가 실제로 정책 수혜 대상을 확정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참여정부 때 근로소득장려금(EITC)의 대상을 확정하는 데 1년 걸렸다"라며 "때문에 지금은 재난기본소득과 같은 발상이 필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연구가는 장기적인 대응 방안으로 '그린뉴딜'을 위한 대규모 인프라 투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린뉴딜은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재생 가능한 에너지를 기반으로 하는 경제로 전환하는 기후환경정책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미국과 유럽에서 주도하고 있다. 기후위기는 물론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일자리 문제를 해결한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는 "지금은 최소 몇 년 지속될 경제위기에 대비한 정책을 만들 때"라며 "중요한 것은 새로운 전환을 위한 정부 투자가 대폭 늘어야 한다는 점인데 생태전환 투자, 그린뉴딜을 위한 대규모 인프라 투자는 꼭 가야 할 길"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린뉴딜은 석탄·석유 같은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에너지 공급 체제를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로 바꾸는 과정에서 수많은 일자리를 만들어 낼 수 있다"라며 "정부가 에너지 전환을 위한 대규모 인프라 투자에 나서는 것은 마이너스 성장 가능성에 직면한 우리 경제를 떠받칠 수 있는 투자 정책"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정 연구가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경제정책, 방역체계 우수성의 반만이라도 따라가야"
  
13일 서울 을지로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한 외환딜러가 증시 현황판 앞을 지나고 있다. 이날 국내 증시의 주가가 폭락하면서 코스닥시장에 이어 유가증권시장에서도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됐다.
 13일 서울 을지로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한 외환딜러가 증시 현황판 앞을 지나고 있다. 이날 국내 증시의 주가가 폭락하면서 코스닥시장에 이어 유가증권시장에서도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됐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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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19가 대유행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경기 하강이 시작되고 있다.
"어떤 경제적 충격이 발생할지 쉽게 예측하기는 어렵다. 글로벌 팬데믹이 가장 직접 영향을 미치는 것은 글로벌 생산사슬이다. 다만 중국과 한국은 3개월 내에 생산을 회복할 수 있어 동아시아 생산네트워크 마비로 인한 공급쇼크는 상당 부분 해소될 것이다. 하지만 이제 코로나19 사태가 본격화한 유럽과 미국의 공급쇼크가 문제다. 생산이 중단되면 수입이 없어지고 수요쇼크로 이어지게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무역 타격을 받을 수 있어 마이너스 성장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 각국의 증시도 폭락을 이어가고 있는데 금융 부문으로 위기가 옮아갈 가능성은?
"과거 금융위기는 금융에서 시작된 위기가 실물 부문에 영향을 줬다면, 지금은 실물 위기가 금융으로 전이될 수도 있는 게 문제다. 오랫동안 거품이 커진 미국 금융시장이 타격을 받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존재도 변수다. 트럼프는 재선이 어렵다고 판단되면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해 중국을 상대로 환율 전쟁 등 제2차 경제전쟁도 일으킬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전 세계적인 경제위기가 올 가능성이 더 커진다."

- 단기적으로는 어떤 대응 방법이 필요한가?
"국회를 통과한 추가경정예산을 빨리 집행해야 한다. 피해가 심각한 계층에게는 현금 지원도 해야 한다. 사람들의 경제활동과 이동을 줄여 코로나19 전파를 차단할 목적의 '재난기본소득'의 지급은 이미 늦었다. 이젠 가장 심각한 피해자들에게 가장 효율적으로 현금을 지급하는 방식을 찾아야 한다. 전주시의 모델을 참고로 할 만 하다. 전주시가 택한 방식은 그 지역에서 가장 손해를 본 사람들이라고 지자체장이 파악하여 적절한 수당을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기초지자체가 자기 지역의 지원 대상을 선정하고 자기 예산으로 먼저 지급하면 광역과 중앙이 이에 비례해서 추가 보전해 주는 방안을 검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 정부도 마찬가지고 보수 진영에서는 재정건전성을 우려한다.
"정부가 50조원을 더 쓰면 국가채무비율이 2.5%포인트 정도 올라 43~44%가 될 수 있다. 위험한 수준이 아니다. 정부가 재정건전성을 지켜온 이유는 지금과 같은 비상 상황에서 돈을 쓰기 위해서다. 특히 정부가 재정을 투입하지 않으면 결국 가계 부채가 늘 것이다. 가계 부채 증가가 더 위험할 수 있다. 더구나 지금은 저금리 시대다. 정부가 재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낮은 금리로 돈을 빌려서라도 적재적소에 투입할 수 있어야 한다. 세계에 알려진 방역체계 우수성의 반만이라도 코로나19에 대응하는 경제정책이 따라갔으면 좋겠다."
 
"정부 대책, 기존의 경제 활성화 정책 재탕 수준"
 
문재인 대통령이 1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1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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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는 국민들에게 직접 현금 지원은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세계의 거의 모든 경제학자가 재난기본소득 지급이 필요하다고 한다. 하다못해 (보수 경제학자인) 그레고리 맨큐도 그랬다. 돈이 필요한 사람들을 추려내기 어려우니 급한 대로 미국 국민 전원에게 1000달러씩 주라고 한다. 더구나 지금은 국가채무를 걱정할 때가 아니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 기재부와 청와대, 정치권에서는 미래통합당만 반대하고 있다. 재난기본소득 반대 대연정이라고 할 수 있다.
 
- 청와대는 재정의 전달경로를 신경 쓰는 것 같다. '이미 안정적인 전달체계가 구축돼 있는 곳'에 지원을 집중해야 효과가 빠르게 나타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안정적인 전달체계 안에 있는 사람들은 지역의 기초생활수급자 등 이미 복지 시스템 안에 있는 사람들이다. 지금의 재난상황에서는 그 시스템 밖에 있는 사람들이다. 최근 플랫폼 노동자 등 시스템 밖에 있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다. 이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실제로 정책 수혜 대상을 확정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참여정부 때 근로소득장려금(EITC)의 대상을 확정하는 데 1년 걸렸다. 때문에 지금은 재난기본소득과 같은 발상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도 청와대가 피해계층 지원 방법으로 안정적 전달체계가 작동하는 곳에 추경을 투입하겠다고 하는 것은 '정상 경제시국'에서 나온 '전례가 있는 정책'일 뿐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비상 경제시국에 맞는 전례 없는 정책을 고민하라고 했는데 안하는 것 같다."
 
- 청와대가 소극적인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전례 있는 정책만 고려하다 보니 결국 기존의 '경제 활성화 대책'을 재탕한 수준밖에 안된다. 지금 청와대에는 그 어느 때보다도 이른바 진보적 경제학자가 많이 들어가 있다. 그런데도 참여정부 청와대와 분위기가 다르다. 우리는 개혁 정책을 만들고 어떻게 하면 기재부를 넘어설까를 고민했지만, 내가 직접 들은 이 정부 초기 청와대 분위기는 '사고치지 말자'였다. 특히 기재부가 반대하더라도 이런 비상 상황에서까지 재난극복을 위한 '일회성 기본소득'을 줄 논리를 못 만드는 것은 게으른 것이다. 정책 권고해 달라고 해서 메시지라도 보내면 '고맙다, 계속 해달라'고 할 뿐 반응이 없다."
 
- 미국과 유럽의 코로나19 확산 속도를 보면 2차 추경도 필요할 것 같다.
"필요하다면 2차 추경도 준비해야 한다. 다만 1차 추경과 같은 방식은 안된다. 비상 상황에 맞는 정책을 고민해야 한다."
  
"대규모 그린뉴딜 인프라 투자, 꼭 가야 할 길"
 
'코로나19' 세계적 대유행(팬데믹) 사태의 영향으로 17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면세점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코로나19" 세계적 대유행(팬데믹) 사태의 영향으로 17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면세점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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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기적인 대응도 중요하지만 코로나19가 잠잠해져도 경기의 'V자 반등'은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불황에 대비한 장기적인 고민도 필요할 것 같다.
"최소 몇 년 지속될 경제위기에 대비한 정책을 만들 때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전환을 위한 정부 투자가 대폭 늘어야 한다는 점이다. 생태전환 투자, 그린뉴딜을 위한 대규모 인프라 투자는 꼭 가야 할 길이다. 팬데믹의 발생, 환자의 치사율 등은 모두 생태위기와 떼놓고 생각할 수 없다. 근본적으로 생태전환 없이 코로나19와 같은 신종 바이러스 재발을 막을 수 없다."

- 그린뉴딜 투자의 구체적인 효과는 뭔가.
"그린뉴딜은 석탄·석유 같은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에너지 공급 체제를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로 바꾸는 과정에서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에너지 효율이 낮은 집들을 고효율로 전환하는 과정에서만 수많은 일자리가 생긴다. 또 수많은 연구개발 일자리도 생긴다. 정부가 에너지 전환을 위한 대규모 인프라 투자에 나서는 것은 마이너스 성장 가능성에 직면한 우리 경제를 떠받칠 수 있는 투자 정책이다."

- 정부나 여당의 의지도 중요할 것 같은데 총선에서 치열한 정책적 논쟁이 없는 게 아쉽다.
"민주당도 총선 공약으로 만들긴 했다. 그런데 민주당의 그린뉴딜 안은 온통 '추후 검토'로 채워져 있다. 이건 공무원 용어로 '하지 않겠다', '할 생각 없다'는 뜻이다. 2050년까지 기본법을 만들겠다는 수준인데, 너무 늦다. 30년 후의 의미 없는 계획을 들고 나올 게 아니라 서둘러야 한다. 최소한 정의당의 공약처럼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전력 생산 비중을 40%로 상향 조정하고 온실가스 배출 제로 목표도 2050년 이전으로 앞당길 필요가 있다. 기후위기는 코로나19 사태의 수만 배의 피해를 가져올 수 있다. 그린뉴딜로 기후위기를 막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린뉴딜 없이는 확실하게 위기에 빠진다."

태그:#코로나19, #정태인, #재난기본소득, #그린뉴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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