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8 16:09최종 업데이트 20.07.08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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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의 공공아파트 단지 풍경. 땅이 좁고 사람이 많은 싱가포르는 공공주택이 많습니다. ⓒ 이봉렬

 
이해찬 대표는 6일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서 "싱가포르의 경우 2주택자부터 12% 이상의 취득세를 부과한다"라며 "투기 수요를 줄이기 위해 싱가포르 등의 해외 사례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 경향신문 7월 6일 보도

한국의 부동산 대책에 싱가포르 모델이 소환되었습니다. 다주택자에 대한 취득세 중과를 이야기한 것 같은데, 그것 말고도 싱가포르의 주택 관련 세금에서는 배울 게 많습니다.

저는 지난해 6월 싱가포르에 산 지 14년 만에 집을 샀습니다. 집을 사는 과정에서 어떤 세금을 냈는지 실제 사례를 소개함으로써 싱가포르의 세금 제도가 어떻게 투기를 막고 실수요자에게 혜택을 주는지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산 집은 싱가포르의 공공아파트 HDB이고 95㎡ 크기에 방이 3개 있습니다. 가격은 계산의 편의를 위해 S$500,000(4억 3천만원)이라고 하겠습니다(실가격은 S$440,000). 이 집을 사기 위해 필요한 세금은 두 가지입니다. 취득세(BSD : Buyer's Stamp Duty)와 추가 취득세(ABSD : Additional Buyer's Stamp Duty)입니다.

우선 취득세는 총 부동산 매입가격의 3%인데, 처음 S$180,000까지는 1%, 다음 S$180,000까지는 2%, 그 다음 S$640,000까지는 3%, 그 이후부터는 4% 입니다. 한국 언론에서 1~4%라고 표현하는 게 이겁니다. 저의 경우 취득세가 S$9,600(830만 원)이네요.
 

ⓒ 이봉렬

 
추가 취득세는 부동산을 구매하는 이의 국적 및 보유 부동산 수에 따라 추가로 세금을 물리는 제도입니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꺾였던 부동산 가격이 2010년 이후 급격한 상승세를 보이자 싱가포르 정부가 부동산 경기를 가라앉히고 외국인의 싱가포르 내 부동산 투자를 막기 위해 2011년에 도입한 세금입니다.
  
처음으로 집을 사는 시민권자는 내지 않아도 되는데, 저는 영주권자라 5%를 추가로 내야 했습니다. 이게 S$25,000(2200만 원)이나 됩니다. 그래도 외국인(20%), 법인(25%)보다는 낮은 걸로 위안을 삼습니다. 땅이 좁으니 외국인이나 법인에 고율의 추가 취득세를 매겨서 자국민에게 우선 집을 공급하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해 보입니다.
 

국적과 보유 부동산의 수에 따라 취득세가 다르게 매겨집니다. 최소 1%에서 최대 29%까지 차이가 납니다. ⓒ 이봉렬


시민권자라고 하더라도 두 번째 집부터는 추가 취득세를 냅니다. 기본 취득세 1~4%에 더해서 두 번째 집일 경우 12%, 세 번째 집일 경우는 15%를 추가로 냅니다. 이해찬 대표가 말한 "싱가포르의 경우 2주택자부터 12% 이상의 취득세를 부과한다"는 게 바로 이 추가 취득세를 이야기 하는 겁니다. 저 같은 영주권자는 첫 번째 집에 5%, 두 번째 집부터 15%를 추가로 내야 합니다.

세금의 목적 명확

집을 가지고 있는 동안은 재산세(Property Tax)를 내야 합니다. 재산세는 집을 임대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수익을 반영한 연간 가치(AV : Annual Value)를 기준으로 책정하는데, 직접 거주할 때와 임대를 줬을 때 재산세 세율이 다릅니다. 물론 직접 거주하는 경우가 세율이 낮습니다.

저희 집은 AV가 S$12,000으로 책정되어 있습니다. 처음 S$8,000까지는 세금이 없고, 그 다음부터는 4%를 내기 때문에 제가 내야 할 1년 재산세는 S$160(14만 원)입니다. 제가 직접 살지 않고 임대를 줬다면 AV의 10%인 S$1,200 (103만 원)을 내야 했을 겁니다.
 

같은 집에 대한 재산세도 직접 거주 목적이냐 임대 목적이냐에 따라 차이가 많이 납니다. 오른쪽이 임대 목적에 대한 세율입니다. 직접 거주 목적에 비해 세율이 높습니다. ⓒ 이봉렬

 
집값을 잡기 위해 싱가포르의 세금 제도를 참조하라고 해도 다들 다주택자에 대한 취득세만 생각하지, 직접 사느냐 임대를 주느냐에 따라 크게 다른 재산세의 차이는 그냥 지나치는 것 같습니다. AV가 높으면 높을수록 세율도 함께 높아져서 최대 20%까지 올라 갑니다. 그 말은 임대 수익이 높을수록 더 높은 세율로 세금을 내야 한다는 겁니다.

자기가 살기 위해 구매한 집은 재산세를 낮게 매기고, 여러 채를 사서 임대를 하게 되면 재산세를 아주 높게 매겨서 수익을 환수하는 이런 제도, 한국에도 참조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집을 팔 땐 양도세(SSD : Seller's Stamp Duty)도 내야 합니다. 1년 안에 팔면 매각금액의 12%, 2년 안에 팔면 8%, 3년 안에 팔게 되면 4%가 부과 되는데 그 이후로는 양도세가 없습니다. 단기적인 수익을 좇는 투기를 막기 위한 세금입니다. 이건 국적하고는 상관없이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저는 취득세, 추가 취득세, 재산세까지 다 냈지만 이 집에서 앞으로 2년 더 산다면 양도세는 안 내도 되겠네요.

집을 살 때는 다주택자에게 무거운 취득세를 물리고, 보유하고 있을 때는 임대 수익을 올리는 이에게 재산세를 더 많이 물리고, 팔 때는 보유하고 있는 기간을 따져 세금을 물림으로써 집을 투기의 목적으로 삼기 어렵게 만든 게 싱가포르의 주택 관련 세금입니다. 세금에 대한 설계 자체가 주거 안정과 투기 방지에 맞춰져 있습니다.

이왕 한국에서 싱가포르의 세금 제도를 참조하기로 했다면 이런 취지를 잘 살펴서 제대로 배워 갔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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