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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26일, 방송계의 비인간적인 제작 환경에 문제를 제기하며 스스로 생을 달리한 고 이한빛 PD를 향한 엄마의 이야기입니다. 한빛에 대한 그리움과 한빛이 주고자 했던 메시지를 기억하며 글을 쓰고 있습니다. [편집자말]
[이전 기사] 너는 늘 내 가슴에 있으니 우리는 매일 만날 수 있네 http://omn.kr/1occt

한빛이 대학 신입생 때이던 2008년 '아프니까 청춘이다' '88만 원 세대'라는 말이 일상적으로 얘기되고 있었다. 어느새 한빛도 그 책들을 읽고 있었다. 책 제목을 보면서 나는 '왜 이렇게 부정적이지? 청춘이 얼마나 좋은 말인데 아프다고 먼저 결론지을까? 혹시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를 멋지게 풀어쓴 건가? 그럼 다행이고'라고 했다. 

그리고 '대학까지 나온 애들이 왜 겨우 88만 원? 그것 가지고 어떻게 살라고? 나도 그 이상 받고 있는데? 혹시 '88'이란 숫자가 무슨 상징적인 숫자인가?'하고 이해하려 했다.
 
책 읽는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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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스플래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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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솔직히 이런 책을 대학 신입생인 한빛이가 읽는 게 싫었다. 그렇다고 스무 살이 넘은 아이에게 책 간섭까지 할 수는 없었다. 단지 안타까웠다. 한때 나는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이 아닌 '대학'에서 배웠다고 확신했기에 미련이 있었던 것 같다.

내게 대학은 '새로운 문명'이었다

시골 고등학교를 나온 77학번에게 대학은 신세계였다. 내가 다닌 대학은 지방 국립대학이라 화려한 대학문화도 없었고 캠퍼스도 아름답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런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우선 조·종례 시간이 없고 실내화를 안 가지고 다니는 게 놀라웠다. 강의실에서도 맨 앞자리에 마음대로 앉을 수 있었다. 2학년이 되니 내가 좋아하는 전공인 국어만 오로지 공부해도 되고 전공이라는 것이 스스로 파면 팔수록 공부할 게 많아 가슴이 떨릴 정도였다. 도서관에 개가식 서고가 있고 무진장 많은 책에 감동했다. 공강 시간에 잔디밭에 앉아 친구랑 얘기해도 되는 게 설렜다.

게다가 국립사범대라 졸업하면 곧바로 발령이 나기 때문에 취업 걱정이 없었다. 교사가 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떤 준비를 해야 하나만 고민하면 됐다. 나는 대학에서 처음 경험해보는 온갖 강연, M.T, 밤기차여행 등을 지금 생각하면 과로라 할 정도로 열심히 쫓아다녔다. 이 모든 것은 훗날 교직 생활이나 내 삶에 큰 도움이 되었기에 나에게 대학은 단순한 학교가 아니었다. 새로운 문명이었다.

그러나 나는 교과서에 나왔던 작가의 특강을 들으면서도 그가 역사 속에서 튀어나온 줄로 알만큼 어리바리했고 4학년 때 5.18이 있었지만 TV나 신문만이 진실을 말한다고 믿던 순진하고 부끄러운 대학생이었다.

그래서 한빛에게 한 가지만은 기대하고 싶었다. 한빛도 대부분의 수험생처럼 대학만 들어가면 판타지가 펼쳐지리라 기대했을 것이다. 그것 때문에 힘든 시간을 견뎌냈을 것이다. 그렇게 온 곳이기에 금방 허상이 깨지더라도 우선은 한빛이 대학 캠퍼스의 아름다움만 느끼고 대학의 유리하고 좋은 면만 봤으면 했다.

한빛을 보면서 말은 안 했지만 솔직히 불안했다. "그 책을 읽으니까 어떠니?" "너는 어떻게 생각해?" "네 마음은 어떠니?" 하고 물어봤어야 했다. 그리고 "엄마는 이렇게 생각해" 하고 내 마음을 말했어야 했다. 그러나 나는 눈치만 살폈고 말을 꺼내기가 겁났다. 원하지 않는 대답을 들을 것 같아서였고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자신이 없었다. 상담 방법을 백날 배우면 뭐 하나? 마음을 읽고 마음을 포개주지도 못했다.

그때 기껏 생각한 게 대학 상담센터였다. 한빛에게 슬쩍 말했다. "그동안 공부하느라고 각박했잖아. 이제는 자신을 돌아보며 살았으면 해. 대학 내 상담센터도 찾아가고. 상담은 마음이 아픈 사람만 하는 것이 아니잖아. 세상을 더 넓게 바라보게 하지 않을까?"하고 말했던 것 같다.

나보다 유학까지 가서 공부한 그들이 더 잘 해결해 줄 것이라는 열등감이 있었다. 학원비 내는 것만으로 아이들의 뒷바라지를 다 했다고 만족해하는 어리석음과 똑같았다. 이 모든 것은 돈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전문가에게 맡긴다고 되는 것이 아니었다. 대화로 풀어갔어야 했다.

나중에 들어보니 친구와 한 번 갔었다고 했다. "왜 계속 가지"하니 "엄마를 패륜으로 만들어야 하더라고요"하고 단정적으로 말했다. "어린 시절 엄마한테 받은 상처를 끌어내라는데 왜 꼭 상처가 있어야 하지요?" 했다. 어린 자아(내 안의 작은 아이)를 찾는 과정이었나 보다.

나도 그랬다. 한빛이 떠난 후 내 발로 찾아간 상담소에서는 모두 어린 시절 이야기를 풀어내게 했다. 그것도 부모님한테서 받은 상처에 집중했다. 한빛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가 없어 고통스러운 나에게 어린 시절의 나를 찾으라니? 내 안의 작은 아이가 중요한지 왜 모르랴? 그러나 온몸과 마음이 하얗게 비어있는 나에게 그건 너무 한가한 작업이었다.

오히려 나 때문에 엄마가 상처를 많이 받았다고 솔직히 말했다. 나에게 엄마는 항상 만만했다. 한빛을 잃고도 '엄마한테 잘못한 게 많지만 나를 벌주지 왜 한빛을 데려가?'하고 엄마 산소에 가서 억지를 부렸다. 이렇게 못난 딸을 둔 착한 엄마한테 무슨 상처를 끌어낸단 말인가?

문득 그때 한빛이가 기억 저 밑바닥에 있는, 나한테 받은 상처를 다 까발리고 나한테 까탈을 부렸다면 혹시 삶이 가볍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이렇게 빨리 가지 않았을까? 나는 나의 엄마처럼 한빛에게 좋은 엄마가 아니었다는 걸 알기에 가슴이 미어졌다.

그럼에도 한빛은 엄마가 죄책감에 미쳐버릴까 봐 철저하게 좋은 기억만 남기고 갔다. 오늘도 나는 엄마를 인정해 준 게 고마워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다. 이런 엄마의 간사함을 한빛은 여전히 끌어안아 줄까?
 
김혜영 사진
 김혜영 사진
ⓒ 김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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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새 이름을 갖고 싶어'는 가수 '시와'의 4집 노래 제목입니다.


태그:#아프니까 청춘이다, #88만원의 세대, #상담, #어린 자아, #한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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