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는 보다 신속하고 적극적으로 재난 보도를 하고 국민 행동 요령을 안내해 달라."

26일 정세균 국무총리가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한 당부다. 정 총리는 이날 지난 23일부터 이어진 부산의 집중호우 피해를 거론하며 "피해 우려 지역 통행금지 등 안전조치를 선제적으로 취해달라"며 위와 같이 언급했다.

코로나 19 시대란 '뉴노멀' 상황임을 감안하더라도, 공영방송 재난방송을 향한 국무총리의 이같은 질책성 당부는 상당히 이례적이다. 23일 이후 재난주관방송사인 KBS는 부산의 집중 호우 상황을 전하는 데 소홀했던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는데, 정 총리가 이를 수긍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재난전문방송사라던 KBS. 지금 부산 비 와서 거의 모든 도로 침수되고 건물로 비가 다 들어차는데 뉴스에서 한두 꼭지 하다가 마네요. 수신료의 가치 전혀 못 하는데 왜 강제 징수하나요."

지난 23일 KBS 시청자 청원 게시판에는 '부산에서는 수신료 받아가지 마세요'란 제목의 청원 글이 게재됐다. 실시간으로 올라온 청원이자, 단 세 문장으로 이뤄진 이 청원은 많은 화제를 모았다.

지역 언론도 가세했다. 24일 <국제신문>은 "서울만 도시입니까… 부산 '물난리'에 정규방송 내보낸 KBS 논란"이라는 제목의 비판 기사를 내보냈으며 <부산일보>도 같은 논조의 보도를 쏟아냈다. <연합뉴스>를 비롯한 중앙 일간지 역시 KBS 비판에 합류했다. 그러자 KBS가 24일 밤 역시나 이례적인 장문의 '부산 지역 집중호우 재난 방송 관련 입장문'을 내놓았다. 그런데 이 구구절절한 변명이 비판에 기름을 붓는 형국이다.

부산경남 시청자들의 원성, 이유 있다
 
 KBS 뉴스특보의 한 장면

KBS 뉴스특보의 한 장면 ⓒ KBS

 
"먼저 1TV 정규 뉴스 방송 상황을 보면, 2시, 5시, 7시, 9시, 뉴스라인 등 주요 메인뉴스에서 집중호우를 다뤘고, 9시 뉴스에서는 경남 상황을 톱으로 방송했습니다. 특히 7시, 9시 뉴스에서는 부산지역의 위험성을 강조했습니다. 이 당시만 해도 기상청 통보문에는 부산이 위험 지역으로 특정돼 있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KBS 재난방송센터는 기상전문기자들의 정밀 분석에 따라 부산을 위험지역으로 지목하고 부산 온천천 CCTV 화면과 일기도, 누적 강우량을 보여주며 경고했습니다.

특히 기상전문기자가 '부산은 오늘 밤이 이번 장맛비의 고비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라는 멘트를 강조하며 부산에 대한 예방적 방송을 해왔습니다. 그리고 11시 40분 뉴스라인에서는 20분 넘게 부산을 포함한 전국 기상 상황을 시청자 제보영상과 함께 자세히 전달했습니다."


그러면서 KBS는 23일과 24일 양일간 '재난방송 현황'을 도표로 구분해 공개하기도 했다. KBS의 해명대로, 지상파 3사 및 JTBC 메인 뉴스 중 경남 지역 호우 특보를 톱 뉴스(2꼭지)로 다룬 것은 맞다. 또 24일 오전 본사(1시)와 부산총국(12시 13분), 창원총국(12시 20분) 등이 각각 25분과 10분씩 특보를 편성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애초 부산경남 지역 시청자들의 원성과 KBS의 이러한 해명은 그 방향이 꽤나 어긋나 보인다. 초점은 호우가 집중되던 때에 KBS가 정규 방송을 중단하고 특보 체제로 신속히 전환했느냐에 맞춰져 있다. 24일 자정 이후 KBS 1TV에서 정규 편성 프로그램(<올댓뮤직>)이 그대로 방송된 것에 대한 지적이 이어진 까닭이다.

KBS 청원 게시판에 또 다른 청원자들이 "이렇게 큰 물 난리에 사망자도 나왔는데 정규편성 시간 기다려서 (뉴스를) 보거나 유튜브에서 찾아서 다시보기 해야합니까?", "공영방송 KBS는 전 국민에게 TV 수신료 받으면서, 부산 물난리 때문에 난리 났는데 뉴스속보, 특보 없이 천하태평하네요", "저녁부터 난리인데 부산 시민들이 커뮤니티에 사진 올리고 나서 한참 뒤에야 기사 내는 척 하고 있는 거 보니 속 터지네요" 등 원성을 남긴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반면 KBS의 상황 인식은 확연히 달랐다. 같은 입장문에서 KBS는 "이번 부산 지역의 강우량은 기상청의 예측을 초과한 돌발적이고 기록적인 폭우였습니다"라고 돌발 상황임을 강조하며 이렇게 부연했다.

"전국 단위의 정규 뉴스 이외의 지역과 전국 단위의 뉴스특보를 편성해 대응했습니다. 먼저 부산방송총국에서는 23일 16시 45분부터 12분 동안 로컬자체특보를 편성해 부산지역의 호우 피해 위험성을 알렸습니다.

그리고 24일 새벽 0시 13분부터 10분동안 로컬자체특보를 다시 한번 방송했고, 전국단위의 뉴스특보를 24일 새벽 1시부터 25분간 부산 지역의 상황을 집중 방송했습니다. 아울러, 23일과 24일 사이에 자막 속보 8회, 스크롤 속보 30회를 방송했습니다."


끝나지 않는 KBS 수신료 논란
 
 KBS 로고

ⓒ KBS

 
멀리 2016년 경주 강진 보도까진 갈 필요도 없어 보인다. 지난해 강원도 고성 산불 당시 쏟아지는 비난에 KBS는 재난방송주관사로서의 역량 강화를 강조했다. 또 지난 3월엔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재난방송 특별편성 '코로나19 통합뉴스룸' 돌입을 선언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지역 시청자들의 원성이 쏟아지고 정 총리까지 질타에 나선 이유는 곱씹어볼 대목이다. 재난방송주관사이자 공영방송이 '우리는 할 만큼 했다'는 자세를 보이는 것이 과연 온당한가. 특히나 시청자들의 눈높이에 한참 못 미치는 특보나 속보 대응을 내놓은 후 질타가 이어지자 이에 변명하듯 입장문을 내놓은 것은 더욱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

KBS는 향후 9월부터 유튜브 등 디지털 전송망을 통한 'OTT KBS뉴스 24 LIVE'(가칭)을 운영할 예정이라고 한다. 현재 유튜브 'KBS NEWS' 채널도 'KBS 코로나19 통합뉴스룸 LIVE' 형식으로 운영 중이다. 과연 이런 시도가 재난 상황에서도 '선택과 집중'에 매번 실패하는 KBS과의 고질병을 개선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무엇보다 이런 사안이 벌어질 때마다 KBS 수신료 인상 논란이 세트처럼 따라온다. KBS는 이번 특보로 인해 쏟아진 "부산에선 수신료 받지 마"란 부산경남 시청자들의 질타에 뭐라고 답할 것인가. 행여 KBS가 24일 내놓은 입장문으로 갈음이 될 것이라 판단하고 안도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문이다.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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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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