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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진주시의 비거 테마공원 조성사업을 둘러싸고 논란이다. 이에 강주인문학연구회가 문헌 등에 나타나 있는 ‘비거’와 관련한 글을 보내와 싣는다. <오마이뉴스>는 이와 관련한 찬반 논쟁글을 기다린다.[편집자말]
 
진주시가 만든 '진주재조명 역사 미니다큐- 비거'의 한 장면.
 진주시가 만든 "진주재조명 역사 미니다큐- 비거"의 한 장면.
ⓒ 진주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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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매일신보에 실린 '비거' 관련 기사

비거에 관한 이야기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한 탓인지, 신경준의 '거제책'과 이규경의 '비거변증설'이란 글 이외에는 그 후 몇 편의 시 속에서만 언급되어 있을 뿐, 20세기 이전까지 어떤 기록도 남아 있지 않다.

그러다가 1910년대부터 '비거'에 관한 기록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1910년대는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암울한 시대였다. 이런 시대이기에 강도 왜적을 물리쳐줄 살아 있는 영웅도 필요하였고, 민족의 마음을 어루만져줄 역사상의 영웅이나, 전설적인 영웅도 필요하였다. 이회영, 홍범도, 김좌진, 김구 같은 분들은 살아 있는 영웅으로서 왜적과 맞서 나라를 구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하였다. 역사적 인물에 관한 이야기로는 연개소문전, 강감찬전 등이 이 시대에 널리 읽혔다.

이와 함께 가공의 전설적인 영웅이 만들어졌다. 이 전설적인 인물은 김제의 전설에 등장하는 '재치와 해학, 그리고 사기꾼'으로 이름난 건달형 전설의 주인공인 '정평구'였다.

이 가상의 영웅 정평구와 '비거'에 관한 이야기가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1914년 8월 21일 자 매일신보(每日申報)에 시범 비행에 관한 기사였다. 이 기사는 8월 19일에 한강 백사장에서 있었던 시범 비행을 보도한 것인데, 기사의 네 단락 중 마지막 단락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반도비행半島飛行의 일대신기록一大新記錄

▲ 림진란리에
경남 진주셩이 함락되얏슬 때에 그 디방에 사는 뎡평구(鄭平九)라는 이가 긔계를 만들어 공즁을 날너 셩안으로 들어가 자긔의 친구를 구하야  놓엿다는 사젹이 력사에 분명히 잇스니 그 긔계도 한 지금것과  흘지 질졍[質定: 묻거나 따져서 바로잡음] 말 슈 업스니 엇지얏던지 공즁을 날으기 일반이라 일로 볼진 우리도 얼마나 됴흔 죠상을 뫼셧으며 후셰의 사은 얼마나 계을너 포긔한 것을 가히 알지로다 만일 우리가 능히 조샹의 을 이어 더욱 발달얏드면 셰샹에 비긔 구경군은 몬져 우리 죠션으로 모혓스리로다(天風)
 

신문 기사 속에 '사젹이 력사에 분명히 잇스니'라는 내용과 전후 문맥을 보면,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 있는 '비거'에 관한 기록을 보았거나 그것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음에 틀림이 없다(이 책은 당시에 최남선이 필사본을 가지고 있었음).

그런데도 이 기사에는 시대를 '진주성이 함락되었을 때'로, '영남의 고립된 성'이 '진주성'으로 바뀌어 있을 뿐만 아니라, 비거의 제작자로 느닷없이 김제 지방에 널리 알려진 '건달형 설화'의 주인공인 '정평구'를 '그 지방[진주]에 사는 정평구(鄭平九)'란 사람으로 사실처럼 만들어 넣었다.

우리민족의 우수성과 자긍심을 불어넣고, 전설적인 영웅을 부각시키기 위해 한 일이라고는 하지만 지나친 변조라 아니할 수 없다.

비거에 관해 변조된 기록
 
연도 기록자 문헌 이름 사용연대 사용 장소 제작자 참조
1754 신경준 여암유고 홍무연간 영남의 읍 이름 모르는
사람
 
19세기초 이규경 오주연문
장전산고
임진년 영남의 성 성주 친구  
1914년 기자 매일신보 계사년 진주성 진주인
정평구
 

6. 권덕규와 최남선의 '비거'에 관한 글

일제강점시대에 '비거'에 관해 관심을 가지고 글을 쓴 학자로는 권덕규와 최남선을 들 수 있다. 권덕규가 쓴 한글과 우리말 교재인 <조선어문경위>라는 책 속에 '비거'에 관한 글이 들어 있고, 최남선이 쓴 역사책 <고사통>이라는 책 속에 '비거'에 관한 글이 들어 있다.

권덕규(1890[고종 27]~1950)는 1932년에 <한글맞춤법통일안> 원안을 작상하고, 1936년에는 한글학회의 <큰사전> 편찬위원으로 활약한 국어학자였으며 민족운동가였다. <조선어문경위> 속에 '정평구'에 관한 글을 써 넣은 것은 민족운동가로서 민족의 긍지를 살리기 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조선어문경위朝鮮語文經緯(1923)
제삼십팔과
… 다시 여기 연상되는 이야기 하나는 정평구(鄭平九)는 조선의 비거(이제 비행기) 발명가로 임진왜란에 진주 고립된 성이 바야흐로 위태할 제 비거로 우인을 구출하야 삼십리 밖에 내렸다 하는 이인데 …

第三十八課
… 다시 여긔 聯想되는 이야기 하나는 鄭平九는 朝鮮의 飛車(이제 飛行機) 發明家로 壬辰의 亂에 晉州 孤城이 바야으로 危殆할제 飛車로 友人을 救出하야 三十里 밖에 나렸다하는 이인데
[權悳奎, 朝鮮語文經緯, 廣文社, 1924 ; 영인본, 보고사, 1993 : 110~113]
 

권덕규는 학자답지 않게 출처를 밝히지 않은 채, 최남선이 소장하고 있는 '오주연문장전산고' 필사본의 내용과 '매일신보' 기사를 참작하여 '비거'에 관한 이야기를 자기 나름대로 변조한 것으로 보인다. 변조된 내용을 표로 보이면 다음과 같다.
 
연도 기록자 사용연대 사용 장소 제작자
19세기초 이규경 임진년 영남의 성 성주 친구
1914년 기자 계사년 진주성 진주인 정평구
1923년 권덕규 임진왜란 진주성 정평구
1930년 최남선 임란 중 영남의 성 김제인 정평구
 
고사통古事通(1943) - 최남선

185 비거 - 신경준의 <거제대책>에 가로되, "임란 중에 영남의 고립된 성이 바야흐로 겹으로 둘러싸여 곧 함락이 될 참인데, 어느 사람이 성주와 더불어 친하고 본디 기묘한 재주를 가진 이라, 이제 비거를 만들어 타고 성중으로 들어가서 그 친구를 태워 가지고 다시 날아 나와 삼십 리쯤에서 지상으로 내려왔다."고 한 것이 있다. 전라도 지방에서 그를 김제인 정평구라고 전하여 온다.

185 飛車 - 申景濬의 <車制對策>에 가로대, 壬亂中에 嶺南의 孤城이 바야흐로 重圍에 져 곳 陷落이 될 참인데, 어느 사람이 城主로 더불어 親하고 본디 奇技를 가진지라, 이제 飛車를 만드러 타고 城中으로 드러가서 그 友人을 태워 가지고 다시 飛出하야 三十里許에서 地上으로 나려오니라 한 것이 잇다. 全羅道 地方에서 그를 金堤人 鄭平九라고 전하야 온다.
[최남선, 고사통, 1943, 육당최남선전집 Ⅱ, 현암사 p 178, 제62장 신무기 - 185 飛車]
 

최남선은 신경준의 글을 인용한다면서, 실제로는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의 내용을 인용하면서(인용하는 실수를 하였다), 그리고 위의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아무 근거도 없이 '비거'의 제작자를 '정평구'라고 하고 있다.

'전라도 지방에서 그를 금제인 정평구라고 전하야 온다.'라고 하는 걸 보면 전라도의 전설에 정평구란 인물이 있는 것을 알고 '정평구'를 영웅으로 올려 세운 것 같다.
 

태그:#비거, #진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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