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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낙태죄 폐지가 아닌 '14주 내 낙태 허용' 내용으로 형법·모자보건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이에 대한 여러 의견을 기다립니다.[편집자말]
예전에 작가를 성별로 나누어 여성적 혹은 남성적이라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비판글을 쓴 적이 있다. 작가를 그의 성별에 따라 다르게 평가하는 것은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 "이 작가는 여성작가들이 흔히 빠지기 쉬운 여러 문학적 함정들을 너끈히 뛰어넘고 있다.", "이 작가는 여성작가답지 않게 매우 대담하고 과감한 문체를 지녔다.", "이 작가는 여성작가답지 않게 작품 속 세계관이 매우 폭넓다."

이런 코멘트를 볼 때마다 참으로 답답해지곤 했다. 대체 여성작가다운 문체는 무엇이며 여성작가들이 흔히 빠지기 쉬운 문학적 함정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대담하고 과감한 문체는 과연 "여성답지 않은" 것인가. 남성이 폭 넓은 세계관을 그려내면 당연한 것이고 여성이 그러한 세계를 그려내면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도전적인 행위가 되는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개인적이고 일상적인 세계는 "폭 넓은" 가령 우주라든가, 대륙이라든가를 무대로 펼치는 세계관에 비해 열등한 것인가.

대략 이러한 요지였는데, 당시 내가 쓴 글을 읽고 누군가 다음과 같은 코멘트를 남겼다. 여성적인 것, 남성적인 것은 잘 모르겠지만 확실히 여성들은 자신의 "몸"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고. 한창 시를 많이 읽었을 때 여성 시인들은 남성과 다르게 자신의 "몸"을 소재로 하는 경우가 많아 굉장히 의아하게 생각했다고. 왜 자기의 몸에 그렇게 천착하는지 모르겠다고. 참고로 해당 댓글을 남긴 사람은 남자분이었는데, 당시 그 질문에 별다른 대답을 하지 못했었다. 이전까지 한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사안이었기 때문이다. 정말로 그런가? 왜 그런가? 싶었던 것.

그 뒤로 또 꽤나 시간이 흘렀는데, 얼마 전 아니 에르노의 <사건>을 읽다가 오래전 받았던 그 질문이 떠올랐다. 임신 및 낙태 경험을 바탕으로 쓴 자전적 이야기 <사건>에서 아니 에르노는 이야기한다.
 
오기노식 피임법에 따르면 위험한 시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내 배 속에 '그것이 생길 수 있다'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사랑과 쾌락을 누리며, 내 육체가 남자들의 육체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16쪽)

이 구절을 읽는 순간 살면서 무수히 지나친 어떤 장면들이 겹쳐졌다. 생리가 시작되지 않을 때 느꼈던 공포감. 피임을 확실히 했음에도 만에 하나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 그걸 바탕으로 뻗어나가는 무한한 (부정적인) 상상들과 감정들. 그러면서 깨닫게 되었다. 여성들이란 기본적으로 자신의 몸에 천착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여성들에게 있어 육체란 하나의 거대한 감옥이나 마찬가지란 사실을. 태어나서 가장 처음 만나는 감옥이자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세계.

이것은 가부장제 하에서 살아가는 여성으로서의 지위나 신분에 대한 비유가 아니다. 여성의 육체는 문자 그대로의 감옥이다. '임신'의 가능성이 존재하는 한 육체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 폭탄이나 다름 없다. 아이들은 귀엽지만, 그 아이들을 낳고 기르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이다. 임신을 하는 것은 여성이고, 그 임신의 흔적이 남는 것 또한 여성의 육체이다. 결국 인간으로서 지닐 수밖에 없는 자연스러운 욕망을 행사하려 할 때 여성들은 필연적으로 깨닫게 되는 것이다. 나는 저들과 같지 않다는 사실을. 내 몸은 저들의 몸과 다르다는 사실을. 욕망의 행사는 남성과 동등하게 한다 할지라도, 그 결과는 사뭇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을.

목숨 걸고 낙태하는 여성들
 
 낙태죄 완전 폐지 촉구 기자회견이 28일 오전 서울 세종문화회관앞에서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주최로 열렸다.
 낙태죄 완전 폐지 촉구 기자회견이 28일 오전 서울 세종문화회관앞에서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주최로 열렸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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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나니 그제서야 보였다. 여성의 '몸'에 천착한 것은 비단 여성 시인들 뿐만이 아니었다. 여성 소설가들의 작품 속에 역시 임신과 낙태에 대한 이야기가 끝도 없이 등장했다. 성공과 열망이 좌절되는 과정, 끔찍한 폭력, 비극적 트라우마, 내면 세계가 무너지는 모든 자리에 원치 않는 임신과 그것을 중단하기 위해 행해지는 위험한 낙태가 자리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작품 속에서 낙태는 불법이지만, 그들은 멕시코로 원정을 떠나면서까지, 뜨개바늘로 자신의 자궁을 찔러대면서까지, 온몸이 부서질 각오를 하고 계단에서 구르면서까지, 시술 중 많은 환자를 죽였다는 무면허 의사에게 거액을 건네면서까지 낙태를 시도한다. 그야말로 생명이 위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목숨을 걸고 시술을 받는 것이다. 왜냐고? 그럴 수밖에 없으니까. 목숨을 걸 수밖에 없을 정도로 절박하니까. 낳을 수 없는 아이를 억지로 낳는 것이나, 불법 시술을 받아 죽는 것이나, 그들에게 있어서는 큰 차이가 없으니까.

엊그제 임신 주수 14주까지만 낙태를 허용한다는 법안이 발표되었고, 이에 대해 여성계에서 반발하는 것을 두고 어떤 사람들은 14주가 어디냐고, 낙태의 전면 합법화가 이루어지면 '무분별한 낙태'가 이루어지거나 낙태가 '남용'되는 일이 벌어질 것이라며 그 이상을 바라는 것은 욕심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낙태를 '남용'할지 모른다니. 그런 사람들은 낙태 수술을 머리카락을 한 가닥 뽑는 것과 같은 간단한 처치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낙태는 그런 것이 아니다. 말 그대로 '수술'이며, 그런고로 육체에 후유증과 흔적을 남길 수밖에 없다. 몸에 이상증세가 나타나더라도 무서워서 병원에 가보지도 못하는 사람이 태반이다. 혹시라도 수술을 받아야 할지도 모르니까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다. 낙태라고 다르지 않다. '낙태' 수술이 아니라, 낙태 '수술'인 것이다.

낙태는 합법이라서 마음껏 받는 것도, 불법이라고 안 받는 것도 아니다. 그냥 그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받는 것이다. 또한 수술을 받기로 결정한 사람들이라고 그 결정이 쉬웠을 리가 없다. 육체에는 후유증이 남고, 정신적인 충격과 부담감과 죄책감도 남는다. 그럼에도 어쨌든 달리 방법이 없기 때문에 받는 것이다.
 
 낙태죄 완전 폐지 촉구 기자회견이 28일 오전 서울 세종문화회관앞에서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주최로 열렸다.
 낙태죄 완전 폐지 촉구 기자회견이 28일 오전 서울 세종문화회관앞에서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주최로 열렸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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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의 전면 합법화는, 낙태 수술을 마음껏 받자는 것이 아니라 남은 인생 동안 육체적인 부담을 져야 하는 것도, 정신적인 죄책감을 안고 가는 것도 여성이기에 거기에 '법'적으로 '죄'까지 더하지 말자는 것이다. 전면 합법화 하더라도 낳아야겠다는 결심을 한 사람들은 낳을 것이며, 전면 불법화 하더라도 낳을 수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낳지 않을 것이다.

1965년, 루마니아에서는 낙태를 전면 금지하면서 여성들의 임신과 출산을 통제했다. 이후 불법시술을 받은 많은 여성이 합병증을 앓다가 사망하였고, 원치 않은 임신으로 태어난 아이들 중 적지 않은 수가 방치되어 죽거나 불행한 생을 보냈다. 잠시 증가하는 것처럼 보였던 출산율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14주는 전면 금지와는 다르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겠으나, 보통 여성이 자신의 몸에 변화가 생겼다는 사실을 눈치채는 시기가 임신 5~8주 사이이다. 다소 둔감한 이들은 12주 넘어서까지 모르는 경우도 있다. 건강이 좋지 않은 여성이라면 생리가 불규칙할 것이고, 그럴 경우 정말로 한참 이후까지도 모를 수 있다. 이후 임신을 지속할지 여부를 결정하기에 14주는 너무나도 짧은 기간이다.

늘 생각하지만 출산율을 올리는 것은 "이러한 세상에서 과연 아이를 키우고 싶은가"와 관련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아마도 여성들이 아이를 키우고 싶은 세상은 나라에서 여성의 몸에 대해 강제적인 권리를 시행하는 세상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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