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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낸 90년대생들은 참 바빴습니다. 학교에선 PMP에 담아놓은 '인소(인터넷소설)'와 팬픽을 몰래 읽으며 운명적 사랑을 꿈꿨고, 칙칙한 체리 몰딩에 둘러싸인 현실의 방 대신 싸이월드 미니홈피 꾸미기에 열중했습니다. 그 시절, '좋아요 반사'와 '일촌 파도타기'는 하루의 중요한 일과였지요. 엄마는 질색했지만, '얼짱'을 따라 샤기컷을 하고 열심히 돈을 모아 브랜드 옷을 사보기도 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웃음이 나기도 하지만, 소중하고 낭만적이었던 그 시절을 '추억 팔이' 해봅니다.[편집자말]
"이강순, 내가 네 별이다!"

이 한 마디가 익숙하다면, 아마 당신은 어릴 적 인터넷으로 소설 좀 읽어본 90년대생일 것이다. 90년대생, 일명 '밀레니엄 세대'라 불리며 2000년대에 학교를 다닌 우린 어느새 직장인, 취준생, 대학생의 무리에 껴 세상을 살아간다.

그런 우리도 신발주머니 하나 달랑달랑 손에 들고 하굣길 컵떡볶이에 미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의 주5일제는 상상도 못 하고 2주에 한 번씩 학교에 가지 않는 토요일을 '놀토(노는 토요일)'라 부르며 즐거워했던 그때 그 시절 말이다.

'이강순, 내가 네 별이다'는 2000년대를 풍미했던 인터넷 소설(아래 '인소') 작가 '귀여니'의 소설 <내 남자친구에게>에 등장하는 대사다. 소설 속 남자주인공이 여자주인공에게 우렁차게 외치며 하는 고백의 일종이다.

내가 너의 별이라는 별 타령이 얼마나 많은 초중고딩을 설레게 했는지, 당시 유행하던 싸이월드 대문 페이지에서 자주 보이던 감성 글귀이기도 했다. 10년이 훨씬 넘은 지금까지도 회자하는 이 대사는 당시 우리에겐 강신재 소설의 유명 구절 '그에게서는 언제나 비누 냄새가 났다'에 버금가는 명대사였다.

지금의 나를 만든 건 5할이 '인소'였다   
 
귀여니의 동명 인터넷 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 <늑대의 유혹>. 정태성 역을 맡은 강동원이 비오는 날 우산을 들고 찍은 신은 명장면으로 남았다.
 귀여니의 동명 인터넷 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 <늑대의 유혹>. 정태성 역을 맡은 강동원이 비오는 날 우산을 들고 찍은 신은 명장면으로 남았다.
ⓒ 늑대의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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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자친구에게> 외에 <늑대의 유혹>, <그놈은 멋있었다>, <도레미파솔라시도> 등 아마 귀여니 소설을 읽어보지 않은 90년대생은 있어도, 귀여니라는 세 글자를 들어보지 못한 90년대생은 없을 것이다.

유치하다고 입 모아 말하면서도 그 시절 청소년이라면 숨어서 읽어봤을 여러 소설을 그가 썼으니 말이다. 10대들 사이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도 문학계의 비판 대상이었던 작가의 소설은 이후에 영화와 드라마로도 만들어지며 이례적인 상업적 성공을 거뒀다.

귀여니는 2000년대 사춘기 학생들에겐 누구보다 중요한 대작가였다. 사실 귀여니뿐 아니라 '백묘', '청몽채화' 등 독특한 필명의 작가들이 그랬다. 1세대 '인소' 작가인 귀여니의 성공을 본보기 삼아 다양한 작가들이 본격적으로 인터넷에 자기의 소설을 연재했다. 소설의 패러다임을 바꾼 것이다.

그러나 단행본 한 권이 출간되기까지 거치는 여러 과정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니, 소설의 문학적 완성도는 둘째 치고, 기본적인 맞춤법도 못 봐줄 소설이 차고 넘쳤다. 그럼에도 그 중 독특한 소재와 탁월한 글발로 무수한 팬을 거느린 작가들이 꽤 있었다. 귀여니를 따라 쓰는 작가들도 많았지만, 그를 능가하는 작가들도 분명 많았다.

'인소'를 좋아하는 친구들은 각자 한 명쯤 좋아하는 작가가 있었다. 작가가 쓴 소설을 전부 늘어놓고 하나씩 탐독하며 몇 번이고 다시 읽는 친구도 있었다. 학교 쉬는 시간마다 뭐가 재밌네, 누가 잘 쓰네 평가하며 서로의 독서 리스트를 주고받기도 했다. 이 리스트엔 청소년 추천 도서가 아니라 각종 '인소'와 로맨스 소설만 담겨 있었지만 말이다. 지금 다시 읽기엔 제목부터 민망해 꺼려지지만, 그 시절 나에겐 귀여니와 같은 '인소' 작가들이 셰익스피어고 헤밍웨이였다.  
 
귀여니의 <그놈은 멋있었다> 중 일부. 인터넷에서 이렇게 연재된 것은 물론, 책도 그대로 출판됐다. 외계어, 한글 파괴 등 다양한 사회적 비판이 있었지만, 당시 유행어와 10대의 말투를 그대로 담았음은 분명하다.
 귀여니의 <그놈은 멋있었다> 중 일부. 인터넷에서 이렇게 연재된 것은 물론, 책도 그대로 출판됐다. 외계어, 한글 파괴 등 다양한 사회적 비판이 있었지만, 당시 유행어와 10대의 말투를 그대로 담았음은 분명하다.
ⓒ 인터넷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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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난 정말 소설에 미쳐 있었다. 대부분 여자 주인공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인소'는 당시 10대 소녀의 생각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 그런 유치하고 현실성 없는 로맨스마저 영원한 사랑처럼 느껴지곤 했다. 현실보다 공상과 상상의 세계에 빠져 살던 시기였다.

밤마다 가족들의 컴퓨터 사용이 끝나면 거실 한쪽에 놓인 컴퓨터로 달려가 인터넷에 접속했다. 유명한 '인소'들을 다 모아 놓은 인터넷 카페를 전전하며 재밌다는 소설들은 거의 다 섭렵했다. 어느 정도 이름난 인터넷 소설은 책으로도 출판돼, 컴퓨터에서 읽다 지치면 집 앞 도서대여점에서 책을 빌려 읽기도 했다. 지금은 기억 속으로 사라진 그 '도서대여점' 말이다.

그리고 드디어 나의 휴대전화가 생긴 중학생 시절엔 소설을 읽는 방식도 완전히 진화됐다. 소설의 텍스트 파일을 내려받아 휴대전화에 넣으면 침대에서 자는 척을 하면서도 소설을 읽을 수 있었다.

이렇게 열심히 읽었던 '인소'의 가치를 이제 와 폄하하기엔, 그건 나로 대표되는 그 시절 우리 동년배들에 대한 배신과 마찬가지다. 소설 하나가 전국의 10대들을 사로잡아 유행을 선도했으니 한 시대를 풍미한 셈이다. 사실적인 현실 묘사와 흥미진진한 이야기 전개, 희로애락이 담긴 인물 구상, 다양한 소재와 서사는 지금 봐도 대중 문학의 요소는 다 갖췄다고 생각한다.

다만 로맨스와 학생 일상물에서 벗어나지 않아 늘 비슷하게 느껴지는 장르적 한계나 유치한 문체, 인물의 말끝마다 붙는 각종 이모티콘 같은 것들이 성인이 된 우리가 '인소'를 다시 읽지 못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곤 하지만 말이다.

나의 '급식이' 시절, 그 어떤 드라마나 영화보다 내 감성을 강하게 지배했던 건 '인소'였다. 지금 내 감성과 문학성의 5할 정도는 사춘기 때 밤새워 읽었던 '인소'가 만든 것이 아닐까 하는 그럴듯한 의심도 해본다.

지금에 와서야 그때 인터넷을 떠도는 소설이 아니라 이름난 고전 문학을 밤새 읽었다면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됐을까 하고 과거를 돌이켜 보기도 한다. 하지만 열네 살 인생이 전부였던 그때 나에겐 소설 속 이야기가 삶의 진리와도 같았다.

웹소설의 시대
 
‘네이버 웹소설’과 ‘조아라’ 사이트가 대형 웹소설 플랫폼으로 떠올랐다.
 ‘네이버 웹소설’과 ‘조아라’ 사이트가 대형 웹소설 플랫폼으로 떠올랐다.
ⓒ 네이버 웹소설/ 조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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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스마트폰 시대다. 어린아이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스마트폰 없는 사람을 찾기가 더 어려울 지경이다. 2000년대 감성을 공유하는 우리 역시 어느새 컴퓨터보다 스마트폰이 더 익숙해졌다. '인소'의 세계도 변했다.

텍스트 파일을 내려받고 컴퓨터에 휴대전화를 연결해 직접 파일을 넣던 시절은 오래전에 지나가 버렸다. 웹툰처럼 각 작가의 소설을 정기적으로 연재하는 상업 플랫폼이 등장했고, 작가들은 그곳에서 자기의 창작물을 공개한다. 마음대로 소설을 올리고 독자들의 반응을 얻던 '인소' 카페가 웹소설 플랫폼으로 옮겨간 셈이다. 독자들도 언제, 어디서나 자기가 원할 때, 스마트폰으로 웹소설을 읽는다.

이렇게 지금 웹소설은 하류 문화로 여겨지던 '인소'의 시대를 넘어, 사람들의 자투리 시간을 사로잡는 완벽한 '스낵컬처'로 자리를 잡았다. 웹소설 플랫폼은 시대에 발맞춰 세련된 모습으로 단장했고, 소설을 읽기도 훨씬 편리하다. 마치 메신저 프로필 사진처럼, 인물의 대사마다 어떤 인물이 말한 것인지 알려주는 작은 그림은 새삼 시간의 흐름과 변화를 느끼게 한다.

이렇게 '인소'의 세계가 발전했지만, 과거 '인소 덕후'였던 지금의 나는 어쩐지 웹소설이 어색하다. 휴대전화로 줄기차게 글을 읽어대던 올챙이 시절을 잊은 듯 지금은 '종이책 영원하라'를 외치는 구세대가 되어 버렸다. 예전과는 비할 수 없이 탁월하게 올라간 웹소설의 작품성이나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내 안에 뿌리 박힌 아날로그 감성을 어찌할 수 없는 탓이다.

클릭 몇 번이면 소설이 내 손 안에 들어오고, 숨어서 읽던 '인소'를 드러내 읽을 수 있는 시대가 왔는데도, 그때 그 문화를 향유하며 키웠던 감성을 다시 되가져올 순 없는 탓일 테다.

2000년대 '인소' 문화가 다시 돌아올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시대가 바뀌었고, 아무도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 인터넷 카페에 글을 올리진 않을 테니 말이다. 인터넷의 발전에 맞춰 개인이 만드는 콘텐츠가 사람들에게 보이고, 읽히는 방식이 변화하는 건 자연스럽다.

개인의 콘텐츠가 하나의 저작물로서 판매되며 시장이 생기고, 창작물을 만드는 크리에이터가 직업이 돼 세상의 모습은 더 다양해졌다. 이런 흐름을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지나간 시간에 대한 향수이자 이른바 '추억 여행'이다.

과거를 노래하며 추억하는 사람들이 많은 요즘이다. 유튜브에서 90년대, 00년대 한국 대중가요가 '탑골 가요'란 이름으로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수백만 번이나 재생되는 모습을 보면 괜한 동질감에 싱거운 웃음이 나온다. 지나가 아쉽고 떠올리면 그리운 그 시절, 우린 소설 속 유치한 별 타령에 울고 웃었다. 너를 사랑하는 내 마음을 '별'로 은유하는 말에 감동한 많은 독자들을 생각하면 그 대사를 유치한 별 타령이라 단순히 깎아내릴 순 없을 것이다.

다양한 은유와 비유, 감성적인 말과 글로 자기를 표현하고 상대방을 감동하게 하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던 시절이었다. 짧은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한 통으로 내 마음을 전하고자 한 글자 한 글자에 온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았다. 스마트폰 메신저에서 초를 다투며 대화를 나누는 지금은 모르는 그때의 이야기다.

각 세대는 그 세대의 낭만이 있다. 우리의 낭만은 폭발하는 감정과 사춘기적 고뇌를 눌러 담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에 있었다. 그래서 더욱이나 지금도 우리의 감성을 자극하는 과거의 것들을 떠올리며 각자 나누는 소회가 일상의 즐거움이 됐다.

손 안의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검색을 하고 원하는 것을 불러와 보며, 해외에 있는 이와도 언제든 얼굴을 마주할 수 있는 이때에도, 우리가 과거를 추억하며 별을 찾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태그:#귀여니, #인터넷소설, #웹소설, #90년대, #200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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