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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오프(해고)
 레이오프(해고)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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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이맘때, 나는 다니던 캐나다 회사로부터 레이오프(Layoff)란 걸 당했다. 레이오프는 미국이나 캐나다에선 언제든지 닥칠 수 있는 익숙한 일상이지만 우리에겐 적잖이 낯선 단어이다. '일시해고' 또는 '임시해고'라고는 하지만, 해고 아니면 고용밖에 모르는 우리에겐 그 뜻을 이해하기 아주 애매하고 고약한 단어인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회사의 경영 환경이 예상조차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매니저는 나에게 레이오프를 통보했고, 금요일 오후, 느닷없이 짐을 챙겨 회사를 떠나면서 그렇게 해고인지 아닌지 모를 레이오프 생활을 시작했다.

하마터면 그대로 해고될 뻔했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거나 레이오프 상태가 되었지만 캐나다 정부에서 제공하는 코로나 관련 각종 지원책과 실업급여 덕분에 생활에 불편함은 없었다. 하지만 두 달 정도 예상했던 레이오프 생활이 코로나 사태의 장기화로 인해 끝을 알 수 없는 장기전이 되자 불안한 마음에 관련 내용을 찾아보았다.

정리하자면 레이오프는 특정 기간 내에 회사로 복귀할 것이라는 이해를 바탕으로 직원의 고용을 줄이거나 완전히 중단하는 것을 말한다. 복귀를 전제로 했다고는 하지만 법률에 정한 최대 기간을 초과하는 경우에는 법적 해고로 전환된다. 정해진 기간 내 회사가 불러주지 않으면 자동으로 해고된다는 얘기다.

온타리오주의 경우, 일반적으로 3개월 동안 레이오프가 가능하며, 이 기간이 넘으면 자동으로 영구 해고된다. 나는 14주 가까이 레이오프 상태로 있으면서 회사로부터 아무런 통보를 받지 못하고 있었으니 이미 영구적으로 계약 관계가 종료되었다고 봐야 한다는 의미였다.

연방정부에서는 코로나의 특수성을 고려해 레이오프의 기간을 6개월까지 연장했고, 덕분에 나는 6개월 만에 회사로 복귀할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6개월 동안 해고되어 있었고, 아무런 통보 없이 그대로 영구적인 해고 상태가 될 뻔했었다.

그러다 보니 레이오프라는 것이 노동자에게는 언제든지 길거리로 쫓겨날 수 있는 법적 장치일 뿐이라고 생각되었다. 자연스레 한국에서 직장 생활하는 동안 많이 듣던 '노동(시장) 유연성'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일반적으로 노동(시장)의 유연성이란 고용주가 노동의 투입량을 얼마나 쉽게 늘리거나 줄일 수 있느냐를 말한다. 여기에는 인원 감축을 포함하여 노동 시간이나 임금 등을 줄이는 것도 포함된다.

한 마디로 고용주에게 쉽게 고용하고 쉽게 해고할 수 있는 권한을 전적으로 넘겨주는 것인데, 그렇다면 미국과 캐나다의 노동자들은 왜 자신들에게 유리해 보이지 않는 이런 제도를 받아들이고 있는 것일까.

'미국식' 실업 사태의 양면

가장 큰 이유는 쉬운 해고가 또 다른 채용으로 이어지면서 불만이 상쇄되기 때문이다. 달리 표현하면 노동 이동률이 높다는 얘긴데, 쉬운 해고는 채용도 쉽게 할 수 있어 노동 이동률을 높이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고, 나아가 장기 실업률을 낮추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한 회사를 오래 다닐 수는 없지만 장기적인 실업은 피할 수 있는 구조라는 얘기다.

여기서 우리는 노동 시장이 유연해지기 위해서 필요한 두 가지의 전제 조건을 발견할 수 있다. 하나는 채용과 해고의 선순환적 균형이며, 다른 하나는 사회 안전망의 확충이다. 해고와 재취업 사이에 발생하는 간극을 메워 주는 역할이 고용보험 등과 같은 사회 안전망이기 때문이다.

유연한 노동 시장의 대표적인 나라로 꼽히는 미국에서는 노동 시장 역시 철저히 시장 원리에 따라 작동하면서 고용주는 경기 상황을 이유로 언제든지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다.

일례로 코로나 팬데믹이 선언되자 미국 기업이 선택한 대책은 감원이었다. 사실 이것은 대책이라기보다는 늘 해왔던 손쉬운 경영의 방편이었다. 미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면 항상 대규모 감원이나 실업 사태가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미국에서는 코로나가 발발하자마자 228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졌고, 두 달 만에 3650만 명이 직장을 잃었다. 실업률은 한때 14.7%까지 치솟았다. 그 결과, 미국 정부는 2조 8000억 달러(약 3400조 원)의 지원금을 푸는 등 천문학적인 돈을 투입해서 국민을 먹여 살릴 수밖에 없었다.

미국이 사상 최대의 재정 적자까지 감수하며 쏟아붓는 이런 긴급 예산의 배경은 엄밀히 말하면 유럽이나 캐나다의 복지시스템 역할을 대신하는 것의 다름 아니다.

이미 알려진 바대로 미국의 경우, 유럽이나 캐나다만큼 사회보장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았다. 특히나 공공의료 기반이 취약한 미국의 경제 위기는 의료 위기를 동반하게 되는데 당장 일자리가 없으면 건강보험 혜택조차 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미국인의 절반 정도가 직장에서 제공하는 건강보험에 가입하고. 6% 정도만이 사보험을 든다고 한다. 대부분의 미국 국민은 일자리를 잃으면 건강보험 혜택 없이 미국의 비싼 의료비를 감당해야 한다는 얘기다.

기업이 어려워도 수백만 명의 고용을 유지하면서 대규모 실업을 피할 수 있었던 유럽이나 한국과 달리 미국에서 두드러지게 대량실업이 발생하는 이유는 미국이 자랑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높은 노동 유연성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노동 유연성'이라는 이름의 저승사자

반면에 비슷한 노동시장 구조를 지녔지만 그동안 국민이 낸 세금이나 부담금으로 사회안전망에 대한 투자를 지속적으로 이루어 온 캐나다는 이번 팬데믹 상황에서도 노동 유연성과 함께 강력한 사회안전망을 바탕으로 미국과 같은 대혼란을 피할 수 있었다.

미국의 높은 노동 유연성이 기업의 이윤 추구 측면에서 효율적인 건 맞겠지만 이번 코로나 사태 같은 경제 위기에는 노동자, 특히 저소득 취약계층에게 훨씬 더 어려운 환경을 만든다는 것이 다시 한번 확인됐다. 더욱이 사회 보장 제도마저 제대로 갖춰지지 못한 상황이라면 노동 유연성은 그야말로 저승사자와 다름없는 것이다.

사실 한국도 해고 및 근로 시간 조정, 파견·용역·하도급 등의 간접 고용의 자유, 배치전환 및 연봉제·성과급제 등 임금 변화의 자유 등 노동 유연성과 관련한 많은 요소들이 이미 법적/사회적으로 보장받고 있다. 다만 종신 근무 문화에 따른 문화적, 정서적 간극이 존재하다 보니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 사회가 어디로 가고 있고, 미래에 어떤 모습일지 단정할 수는 없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여전히 레이오프와 같은 단어가 가슴에 와 닿기 힘든 단어이기를 바라는 마음을 이 글에 담아 본다.

태그:#노동유연성, #LAYO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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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온타리오주의 작은 마을의 가구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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