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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를 이끌어가고 있는 예술가, 기획자, 지역 리더, 문화 시민을 발굴하고 기록하고 있습니다.[기자말]
"어서 오세요. (주문하실 음료가) 바닐라라떼 맞으시죠? 곧 가져다 드릴게요."

단골이었나보다. 손님을 보자마자 '좋아서하는카페' 정인한 대표는 바쁘게 움직였다. 바리스타의 공간 안에서 그의 몸보다 부산하게 움직이는 건 정 대표의 손이었다. 그의 손은 커피 기계에서 에스프레소를 추출하기 위해 빠르게 반원을 그렸다. 때로 정 대표의 손은 그가 출판한 책을 들고 사인을 요청하는 독자를 위해 펜을 집어 들었다. 머릿속에 상념이 쌓인 날이면 그의 손은 머릿속 생각을 골라 문장 만들었다. 
  
좋아서하는카페 정인한 대표가 밝게 웃고 있다.
 좋아서하는카페 정인한 대표가 밝게 웃고 있다.
ⓒ 김예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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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서하는카페 대표, <너를 만나 알게 된 것들> 출간 작가, 글쓰기 강사. 지난달 그가 운영하는 카페에서 정 대표를 만났다. 그는 24시간을 쪼개 세 가지 역할을 묵묵히 수행한다. 한때 24시간 중 12시간 동안 책상 앞에 앉아 온종일 책만 바라보던 시간이 있었다. 교사를 꿈꿨던 4년이었다.

"어릴 적에는 타인으로부터 존경을 받고자 하는 욕구가 강했어요. '교사'는 존경받으면서 하는 일이더라고요. 사범대학에서 지리교육학과 졸업 후 곧바로 임용고시를 준비했죠. 독서실이든 도서관이든 제일 먼저 가서 자리 잡고 앉아 공부했습니다. 언젠가는 임용고시에 합격하겠다는 믿음이 있었어요. 진짜 마지막으로 도전해보자 생각했던 해에는 경제활동을 하지 않고 임용고시에만 매달렸는데, 오히려 가장 성적이 좋지 않았죠."

그런 그가 종이 접듯 교사를 꿈꾸던 마음을 접었다. 교사라는 꿈을 위해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후회는 없었다. 정 대표가 꿈을 포기한 건, 사랑하는 사람과 가정을 일구고, '아빠'를 외치는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책임감이 무거워졌기 때문이었다. 그는 책임감에 대해 <너를 만나 알게 된 것들>(2021, 출판사 사우)에 이렇게 표현했다.
  
지난해 출간 된 정 대표의 책. 아이를 키우고, 카페를 운영하는 정 대표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지난해 출간 된 정 대표의 책. 아이를 키우고, 카페를 운영하는 정 대표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 김예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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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울리는 알람에 맞춰 일어나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 그럴 때마다 옆에 누워 있는 두 딸과 아내를 바라본다. 아침마다 찬물에 머리를 감으면서 드는 생각은 아내가 나에게 가지는 믿음이 나의 튼튼한 동아줄이고, 두 딸은 나의 등에 매달린 사랑스러운 하중이라는 것이다. - p6.
 
정 대표는 2012년 좋아서하는카페를 문을 열었다. 카페가 문을 열었던 초기에는 손님이 많았다. 하지만 인근에 카페들이 하나둘 생기면서 점차 손님들의 발길이 뜸해졌다. 직원들에게 인건비를 주고 나면 통장 잔고는 마이너스를 향해 있었다.

정 대표가 고민한다고 해결되는 일도 아니었다. 그가 해결책으로 선택한 건 아침 일찍 손님을 맞이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초기에는 점심시간이 되도록 한두 테이블만 찼다. 정 대표는 그가 가진 책임감, 성실함으로 매일 오전 7시 카페 문을 열었다. 손님은 점차 늘었고 혼자서도 일하기 바쁜 날들이 늘어갔다.

바쁜 와중에도 정 대표는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에게 글을 쓴다는 건 반복되는 권태로운 날에서 잠시 잠깐 벗어날 수 있는 시간 여행이었다.

정 대표는 "초등학교 2학년 때 글짓기로 교육장 상을 탔어요. '어, 나 좀 재능 있나?' 하고 생각했는데 클수록 상을 아무도 안 주더라고요. 그러다 본격적으로 글을 쓴 게 군대 시절이었어요. 당시에 미래에 태어날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는데요. 미래에 대한 다짐을 편지를 쓰며 했던 거죠.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요. 제게 글을 쓴다는 건 권태로움에서 벗어나는 짧은 탈출 같아요. 글을 쓰며 시간 여행하고, 그 덕분에 현재 삶을 살아가게 해주는 힘을 얻죠. 시간을 돌아보며 더 따뜻한 길로 갈 수 있는, 저에게는 훌륭한 도구에요"라고 말했다.
  
정 대표가 출간한 '너를 만나 알게 된 것들' 책에 사인을 하고 있다.
 정 대표가 출간한 "너를 만나 알게 된 것들" 책에 사인을 하고 있다.
ⓒ 김예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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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대표는 지난 11월 김해문화도시센터 김해잇다페스티벌 '취향클럽'에 참여해 '에세이 리라이팅' 수업을 운영했다. 이달부터 내년 5월까지 <도시미래학교 티키-타카> '해볼까 학교'에서 '읽고 쓰다' 에세이 쓰기 강좌를 진행한다. 그는 계속 글쓰기 위해서는 홀로 글 쓰는 작업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철학자 '자크 라깡'의 말처럼 글쓰기는 자기 욕망을 바로 보는 방법이에요. 또 글 쓰며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거나, 불확신한 걸 확실하게 내어놓을 수 있죠. 하지만 홀로 글을 쓰다 보면 고독해져요. 이렇게 쓰는 게 맞나 하고 확신이 안 들기도 합니다. 혼자 글 쓰다가 지역 사람들과 글 쓰는 일로 범위를 넓혀가는 일은 제게 글을 함께 쓰는 도반을 찾는 일이에요. 함께 글 쓴다면 더 즐겁게 시간 여행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라고 말했다.

정 대표는 매일 에스프레소를 내리는 바쁜 일상 속에서도 세상에 내놓은 두 번째 자신의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다. 현재 '세상에 모든 문화'라는 플랫폼에서 연재하는 '카페 인사이드'다. 카페 인 사이드는 카페를 운영하는 자영업자의 마음, 그곳에서 일하는 청춘들의 모습, 커피 이야기 등을 담은 글이다.

"커피를 내리고, 글 쓰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으스대지 않고 꾸준한 사람. 변하지 않는 사람'으로 나이 먹고 싶어요. 다가오는 내일은 어떤 성장도 바라지 않고, 지금이 잘 반복됐으면 좋겠어요. 손님들에게 편안하게 커피 한 잔 더 내어주고, 직원들 월급 꼬박꼬박 챙겨주고, 가족들이 물질적, 정신적으로 평온함과 만족감을 유지할 수 있는 그런 날들이요. 지역에서도 제가 활동 범위가 확장되기보단 글쓰기가 더 깊어지고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 본 내용은 문화체육관광부와 경상남도, 김해시의 후원으로 제작되었습니다. 김해문화도시센터 블로그에 중복 게재 됩니다. https://blog.naver.com/ghcc_2042


태그:#카페, #작가, #김해, #김해문화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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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시골기자이자 두 아이 엄마. 막연히 글 쓰는 일을 하고 싶었다.시간이 쌓여 글짓는 사람이 됐다. '엄마'가 아닌 '김예린' 이름 석자로 숨쉬기 위해, 아이들이 잠들 때 짬짬이 글을 짓고, 쌓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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