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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스한 몸 햇살이 내리쬐는 소나무에 크리스마스트리라니. 아이들이 벌인 장난이 결과적으로는 선생님들을 즐겁게 했으니 아이들의 만우절은 성공이었다.
▲ 만우절에 만든 크리스마스트리 따스한 몸 햇살이 내리쬐는 소나무에 크리스마스트리라니. 아이들이 벌인 장난이 결과적으로는 선생님들을 즐겁게 했으니 아이들의 만우절은 성공이었다.
ⓒ 장순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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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정문 입구에 아이들이 모여 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가까이 가 보니 나무에 트리 장식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뭐하는 것이냐고 물으니 아이들은 "그냥이요"라고 답하며 웃기만 했다. 그때까지도 몰랐다.

먼저 나온 선생님도 같은 모습을 본 것 같았다. 만우절이라고 했다. 아이들이 뭔가는 하는 모양이라며. 아하! 미소가 지어졌다. 만우절이라고 철을 건너뛴 장난을 하다니. 그게 하필 4월의 크리스마스라니. 

몇 년 전만 해도 만우절은 미리 생각하고 출근했던 것 같다. 선생님을 놀리려고 교실을 바꾸고 교탁에 등을 돌리고 앉아 있는 아이들을 향해 모른 척 수업하고 속아주고, 뒷문으로 들어가서 수업하고 뒷문으로 나오며 한바탕 함께 웃곤 했다. 이미 돌려 앉았으니 다시 되돌릴 필요가 없었다. 그 한 시간 아이들은 충분히 즐거우니까 괜찮았다. 비록 진도가 느려도, 수업을 제대로 못해도 한 명도 잠에 빠지지 않고 웃을 수 있으니까.  

그런 방식은 이미 올드한 것이었을까? 3교시가 수업이 끝나고 교무실로 향하니 낯선 팻말이 눈에 들어왔다. 다시 팻말을 보고 늘 들어갔던 교무실을 위치를 확인하니 화장실 팻말이 붙은 곳은 분명 교무실이었다. 교무실 입구에서 항상 팻말을 다시 확인하는 나의 행동을 들킨 것인가 싶어 잠시 당황스러웠다. 그러고 보니 1-9 교실은 행정실로, 1-10 교실은 교무센터로, 정작 아이들 교실 팻말은 화장실 앞에 붙어 있는 것이었다.

5교시 교실에 들어가니 웬일인지 아이들이 한 명도 엎드리지 않고 있었다. 신기했고 반가웠다. 아낌없이 칭찬하고 수업을 시작하자마자 바로 한 명이 픽 쓰러졌다. 다시 5분이 지나니 2번째 3번째 학생이 옆으로 슬그머니 엎드렸다. 에효... 이쯤 되면 잔소리가 필요한 시간이었지만, 다르게 말하고 싶었다.

오늘 가르치는 단원은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본문에서는 철거 계고장을 받고 무력한 어머니와 영수의 모습이 나왔다. 조금의 반항 조차도 무의미한 무력감, 사회의 구조적 모순이나 가진 자를 위한 법 앞에서의 무력감, 그것만 아니라면 수업시간 잠시 엎드린다고 해도 사실 상관없다고 말했다. 

점심시간, 온몸을 뜨겁게 만들 정도로 농구나 축구를 하고 왔다면, 점심 먹고 쉬는 시간에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면, 마음껏 소리 내어 웃었다면, 학교가 단 한순간만이라도 즐거웠다면 수업 시간 잠시 조는 것 정도야 어떻냐며 선생님은 그걸로 족하다고 했다. 

아이를 키워보니 학창 시절 공부를 잘하는 것에만 집중하고 모든 행동을 통제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 한순간이라도 아이들이 학교에서 땀 흘리고 행복하고 크게 웃으며 학생다운 열기를 발산할 수 있으면 그걸로 충분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 아이들이기를, 그런 학생이기를 기대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만우절도 그러한 학생다움의 연장선상은 아닐까 싶었다. 선생님을 대놓고 놀리는 것이든, 다소 짓궂은 장난이든, 공식적으로 가벼운 거짓말로 남을 속이는 장난을 하면서 즐기는 것을 인정받은 날. 그날의 의미를 생각하고 가볍게 몸과 마음을 환기할 수 있다면, 기꺼이 속아주고 웃어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심을 먹고 운동장 한 바퀴 도는 길, 아이들이 아침에 만들고 있던 트리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따스한 봄햇살이 내리쬐는 소나무에 크리스마스트리라니. 선생님들 모두 그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아이들이 벌인 장난이 결과적으로는 선생님들을 즐겁게 했으니 아이들의 만우절은 성공이었다. 어쩌면 학교의 모두가 웃는 만우절이 된 것은 아닐까 싶었다. 

6교시 수업시간, 출석체크를 하는데 한 친구가 없었다. 5교시까지 있었다고 했다. 체육관에서 봤으니 그쪽에 한번 다녀오겠다며 다른 학생이 말했다. 그렇게 해 줄 수 있냐고 하며 얼른 다녀오라고 했고, 이내 두 학생이 함께 교실로 들어왔다. 

늦은 학생은 화장실에 있었다고 했다. 더 묻지 않았다. 다양한 이유로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화장실에 가는 일이 많았으므로. 교실에 온 것을 확인했고 아무 일 없었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이었다. 

수업이 끝나고 친구를 부르러 갔단 학생을 조용히 불렀다.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었다. 화장실에 앉아 있길래 수업 시작했다고 하며 같이 가자고 했단다. 아직 학생 파악이 안 돼서 혹시라도 돌봄이 필요한 친구인가 물었다. 그건 아니라고 했다. 1학년 학기말에 성적표를 받아 들고는 충격을 받아 새 학기 시작되고부터 무력감에 빠져 있다고 했다. 

다들 속이고 웃는 만우절인데. 다들 즐거운데 무력감이라니, 그것도 성적 때문에. 안타까웠다. 성적이 잠깐 좋게 나오지 않았어도 세상엔 얼마나 즐거운 일이 많은데. 그러고 보니 다른 아이들은 모두 웃을 때에도 그 학생은 웃지 않았던 것 같았다. 

마틴 셀리그먼(Martin E. Seligman)은 무기력을 외부의 부정적 자극에 순응해 스스로 상황을 헤쳐나갈 의욕을 잃은 상태라고 했다. 학습된 무기력은 새로운 상황에 대한 학습 능력을 저해하며, 결과적으로는 정서 장애를 유발한다고 했다. 무력감에 빠진 학생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학업 성적으로 인한 충격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지난 학기말 이후로 그 아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마틴 셀리그먼(Martin E. Seligman)이 말한 지시적 치료는 강화를 유발하는 상황에 다시 한번 노출시키되, 스스로 상황을 변동시킬 수 있음을 깨닫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 자신이 바라는 결과물에 영향을 끼칠 수 있을 때, 예전 경험들이 쌓여가면서 통제할 수 없다는 인식에 맞서야 무기력에 잡히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한다. 다시 평가와 성취의 경험을 통해 스스로 상황을 바꿀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인가?  

그 학생은 수업도 과제도 하지 않았다. 가까이 다가가 얘기하면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에 준비해야 한다고 말하면 알았다고 했지만, 변화는 없었다. 마틴 셀리그먼의 이론대로 부정적인 그 경험이 그 학생에게 '영원한 것("안 바뀔 거야"), 개인적인 것("내 잘못이야"), 만연한 것("난 뭐든 똑바로 못해")'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됐다. 

만우절과 함께 지필평가 시험 문제를 출제하는 시즌이 됐다. 쉬운 문항과 어려운 문항을 적절히 섞어 시험 문제를 출제한다. 시험은 소수에게 자부심이고 성취를 주고 다수에게는 좌절과 절망을 준다. 그 절망을 정신적으로 감당할 수 없을 때 무력감이 찾아오는 것은 아닐까. 문제를 출제하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현직 학교 교사입니다.


태그:#만우절, #학교의 아이들, #무기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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