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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손을 거쳐 쑥버무리떡으로 변신할 쑥
▲ 소나무아래 자란 무공해 쑥 엄마의 손을 거쳐 쑥버무리떡으로 변신할 쑥
ⓒ 박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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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6시에 휴대폰이 울렸다. 쑥 캐러가자고, '네 엄마 쑥떡 좋아하신다니, 소나무밭 밑에서 깨끗한 쑥 뜯어다가 떡 해드리면 좋겠지?' 라며 지인이 새벽을 깨웠다. 두말할 것 없이 벌떡 일어났다. 천지에 구슬이 있어도 꿰지 않으면 보물이 될 수 없듯이, 봄천지에 깔려있는 쑥으로 떡도 하고 쑥 도다리탕도 끓여서 엄마를 드리자는 지인의 말에 눈물이 쏙 나왔다.

자원봉사를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그 중 코로나시작부터 만나서 무료급식봉사를 함께하고 있는 이모님들과의 만남은 언제나 좋다. 이 나이를 먹도록 아는 것이 무엇인지 모를만큼 그분들에게 배울 것은 넘치도록 많다. 어떤 소재의 이야기라도 그 속에서 늘 배움보따리를 준비한다. 무상으로 무한한 가르침을 받는 나는 시간만 내면 되니, 이런 행운이 어디 있는가.

지인이 운영하는 떡 공장 앞에는 소나무가 몇 그루 있었다. 차를 타고 드나들때에는 소나무마저 눈에 띄지 않더니, 쑥이며 오가피며 소나무와 공생하는 생명들이 천지를 둘러싸고 있었다. 쑥 뜯는 차림새치고는 허술하기 짝이 없이 맨손으로 딸랑거리고 갔는데, 주인장이 작은 칼과 장갑을 주며 많이 뜯어가라고, 쑥은 '정말 깨끗한 보약'이라고 말했다.

초보자의 눈에도 쑥대가 가냘퍼서 쑥 하나를 쏙 뽑아 어리디 어린잎들과 뿌리의 생김새를 자세히 보았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갑자기 엄마의 떨리는 손이 겹쳐지는게 아닌가. 요즘 들어 갑자기 눈물이 많아졌다. 엄마가 아니라 나야말로 병원에 가봐야하는게 아닌가 할 정도로 마음에 큰 우물하나가 생겼다. 좋은 글을 봐도 눈물이, 옛 음악을 들어도 눈물이, 오래 만나는 사람만 봐도 눈물이 나오니 이거야말로 큰일이다 싶을 정도다.

엄마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올해 들어, 엄마가 말씀하셨다.

"손이 자꾸 떨리는데, 이런 거는 어디가서 진찰받는거냐."
"엄마 손이? 왜 그렇지? 일단 알아볼께요. 큰일은 아닐거예요."


그렇게 말한지 석달이 지나도록 엄마를 병원에 한번 모시질 못했다. 참으로 무정하고 무심한 딸이라고, 남들 보기에 일 잘하고 확실하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막상 엄마의 말은 새겨듣지 않았던 것 같다. 차로 가면 십여분거리 살고 있는 엄마는 '딸래미라고 있는 게 하늘에 별따기처럼 만나기가 어렵다, 내가 죽어도 너는 모를 것이다'라고 말하셔도 그냥 웃고 말았다.

그나마 내가 엄마와 함께 할 수 있는 것, 수영장 물속에서 걷기와 목욕탕에 가는 일이다. 그곳에 갈 때마다 '딸이 있어 얼마나 좋냐'는 주위 어른들 말에 염치가 없어 나는 답을 안해도, 엄마는 늘 말하신다.

"야가 매일 시간내기 바쁜디, 그래도 이렇게 와주니 고맙지요."

2주 전 운전석에 앉은 엄마의 손을 보니 떨림의 세기가 심해졌다. 마치 나에게 보내는 모스 부호처럼 다가왔다. 지금 해독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이 생길 것만 같은 위급한 신호 같았다. "엄마, 무슨 일이 있어도 내일 병원 예약 할게요. 바로 치료될 거에요."

동생들에게 엄마의 상황을 알리고, 지금부터 엄마의 손 떨림에 걱정의 말보다는 격려의 말을 담으라고 문자를 띄웠다. 병원치료를 위해 수소문하니 지인들이 바로 알려주었다. 어느 병원, 어느 절차를 받는 것이 좋다고. 의사 지인은 말하길, 아마 나이도 있고 하니 파킨슨일 확률이 높으니 일단 검사부터 종합적으로 받게 하시라고, 초기증상을 놓치면 절대 안 된다고, 그러면서도 자식들이 걱정하면 당사자는 더 불안해하니 주의하라는 세심한 조언까지 했다.

대장부였던 엄마... 쑥을 뜯으면서 괜시리 눈물이 났다

엄마는 소위 '대장부'였다. 혼자 되기 전까지 평생을 독립적으로 경제생활을 했다. 자식에게 용돈 받는 것은 거의 손자들에게 돌아가고, 아직도 나를 어린애 보듯이 생각하고 모든 음식을 주신다. 어릴 때부터 책만 들고 있어도 대견해 해서 때론 설거지하기 싫어 엄마의 마음을 이용하기도 했다. 엄마의 손은 삼십년동안 고기잡이 선원들의 먹거리를 챙기는 데에 헌신했다.

비록 섬에서 태어났고 배운 것이 많지는 않아도, 당신 집안에 대한 자존감이 높아서 사람이 살아가는 데 예의범절이 가장 상수라고 말하셨다. 심지어 엄마한테 반말을 해 본 기억이 거의 없을 정도로 예의를 중시하셨다. 학력과 무관하게 엄마의 말 표현은 세련되고 기승전결이 세세해서, 박사는 저리가라 할 만큼 대화에 유쾌함과 지성의 씨앗이 가득하다.

이런 엄마가 당신 손의 떨림으로 한쪽 손을 숨기느라 애가 타는 줄도 모르고 시간을 허비했으니 이 얼마나 불효인가. 1차로 병원을 다녀오신 후 자식들이 당신을 보고 있구나 하는 안도감이 보였다. 나도 역시 파킨슨과 치매에 대해 알아보고 머릿속에 자료를 저장한다. 최소한 이 정도는 알고 있어야 엄마의 변화를 눈치챌 수 있을 것 같아서이다.

"오늘도 바쁘지야. 목욕탕 갈 시간이 있겄냐?"
"할머니, 오늘은 저랑 같이가요. 할머니 생신이 내일이니까 제가 옷 사드리고 싶어요."


이제 스물두살 먹은 딸이 나를 대신해서 엄마와 주말 데이트를 할거란다. 그 시간에 나는 쑥을 뜯으면서 괜시리 눈물만 훔쳤다. 풀인지 쑥인지 구별한다고 땅바닥에서 눈을 떼지 않고 쑥을 고르는데 미국에 사는 이모가 전화했다.

"향숙아, 너 쑥 뜯으러 갔다고? 나도 먹고싶다. 우리 고향 식도에는 이때쯤 천지가 쑥이 있었다. 네 엄마가 쑥 절편해서 나눠 먹었는데. 많이 뜯어서 엄마드려라."
"이모, 쑥 소식이 벌써 그곳까지 갔어요? 세상 참 가까워요. 쑥은 못 드리지만 제 이름 바꾸면 쑥향이잖아요. 조카의 쑥 향기를 보내드릴께요."


엄마의 손 얘기를 차마 전할 수가 없어서, 엄마가 멀리있는 형제들을 한번이라도 더 볼 수 있도록 시간을 내보겠다고 전했다. 책방으로 돌아와서 섞여 들어온 솔가지들을 정리하고 나 혼자서 쑥향을 맡는다. 깊이 들어 마시려 숨을 모으는데, 엄마의 향기가 먼저 온다. 다시 또 눈물샘이 터져서 안경을 닦았다.

더 늦기 전에 나의 일정표에 엄마를 채워 넣었다. 때마침 엄마가 그려보면 어떨까 해서 주문했던 그림책이 왔다. '꽃그림을 그릴 수 있는 시니어컬러링북'이다.

꽃의 황제라는 붉은 목단을 좋아하는 엄마의 계절이 왔다. 나도 부지런한 벌이 되어 엄마를 여왕처럼 모시고 다녀야겠다. "엄마 걱정마세요. 당신이 정성을 다해 키운 딸이 여기 있잖아요. 사랑해요." 
 
치매라는 말에 맘상하지 않도록 다른 어르신들도 함께 도전하는 동네카페프로그램이라고 했다.
▲ 꽃그림책이 엄마의 손길로 피어날것이다 치매라는 말에 맘상하지 않도록 다른 어르신들도 함께 도전하는 동네카페프로그램이라고 했다.
ⓒ 박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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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과 희망은 어디에서 올까요. 무지개 너머에서 올까요. 오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임을 알아요. 그것도 바로 내 안에. 내 몸과 오감이 부딪히는 곳곳에 있어요. 비록 여리더라도 한줄기 햇빛이 있는 곳. 작지만 정의의 씨앗이 움트기 하는 곳. 언제라도 부당함을 소리칠 수 있는 곳. 그곳에서 일상이 주는 행복과 희망 얘기를 공유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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