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5.27 11:06최종 업데이트 22.05.27 15:49
  • 본문듣기

뿔논병아리가 날개를 펴자 그 아래 아기새가 나타났다. ⓒ 최병성

 
엄마 새가 날개를 펼치자 갑자기 아기 새가 나타났다. 엄마 날개에 꼭꼭 숨어 있던 아기 새들이었다. 뿔논병아리는 품고 있던 알이 깨어나면 아기 새들을 자신의 등 날개 속에 업고 다닌다. 한 마리가 아니다. 어떻게 무려 다섯 마리나 되는 아기들을 등 날개 속에 다 품고 다닐 수 있는지 신비롭다.
  

뿔논병아리 엄마 등에 올라 탄 아기새와 힘차게 뒤따르는 아기새 ⓒ 최병성

 
뿔논병아리는 물속에 잠수해서 물고기를 잡아먹고 사는 잠수성 오리다. 아기들을 등에 품고 있으면 엄마 새는 잠수를 할 수 없다. 아기들 식사는 아빠 몫이다. 아빠 뿔논병아리는 연신 물고기를 잡아다 아기들 입에 넣어준다. 잠수할 때마다 물고기 사냥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빠 새는 물고기를 잡아오는 수고를 멈추지 않는다.
  

아빠 새는 열심히 물고기를 잡아와 새끼들을 먹이고 있다. 아기새 4마리는 엄마 등 깃에 숨어 있다. ⓒ 최병성

 
이런 독특한 습성 때문에 뿔논병아리는 사진작가들이 가장 좋아하는 새 중 하나다. 다른 새들에게서 만나기 어려운 특별한 장면을 찍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작가들이 뿔논병아리를 좋아하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뿔논병아리의 애교 넘치는 사랑 때문이다. 뿔논병아리는 상대방이 하는 행동을 따라하며 사랑을 확인한다. 때론 물속에 잠수했다가 고개를 내밀어 솟구치면서 서로의 몸을 부딪치며 뽀뽀를 한다. 뿔논병아리는 오리계 최고의 수중발레 선수라 할 수 있다.
  

수생식물인 마름을 끌어모아 신혼방을 마련 중이 뿔논병아리 한쌍 ⓒ 최병성

 
알이 부화되어 엄마 새와 함께 산책 중인 아기 새들도 있고, 지금도 알을 품고 있는 뿔논병아리도 있고, 이제 막 짝짓기를 하며 둥지를 만드는 뿔논병아리도 있다. 뿔논병아리의 재롱을 볼 수 있는 이곳은 천안에 있는 업성저수지다. 도심 안에 있는 작은 저수지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지자체에서 만나기 어려운 놀라운 생태계를 지니고 있다.

이미 지난 <천안 호수공원의 충격, 다음 피해자는 천안시민들?>(http://omn.kr/1y9e5) <'합성 아니냐'... 천안시에 기적 같은 일 일어났지만...>(http://omn.kr/1yfe3) 기사에서 밝힌 것처럼, 이곳엔 노랑부리저어새와 원앙 등의 희귀 철새와 천연기념물들도 함께 찾아와 머문다. 멸종위기종인 금개구리와 맹꽁이도 살아간다. 저수지 옆의 작은 웅덩이에 금개구리, 맹꽁이, 두꺼비 등 6종의 양서류가 살고 있는 점도 다른 곳과는 다르다.

이뿐 아니다. 천안 업성저수지에는 장다리물떼새도 찾아온다. 도심 저수지에서 장다리물떼새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철새들이 살기 좋은 환경임을 의미한다.
 

업성저수지를 찾아온 장다리물떼새. 바로 곁에 39층 고층아파트가 들어서면 그 때도 이곳에 찾아올 수 있을까? ⓒ 김상섭

  
파괴적 생태공원

지난 4월 30일 성성호수공원 조성사업 준공식이 열렸다. 천안시가 763억 원을 들여 '성성호수공원'으로 개명한 업성저수지에서 생태공원 사업 완공을 축하하는 오색 테이프를 하늘 높이 날렸다. '새로운 천안, 행복한 시민' '사람과 자연이 조화로운 건강한 녹색도시 천안'이라는 구호가 플래카드 좌우에 적혀 있다.
  

천안 성성호수공원 준공식 ⓒ 최병성

 
그런데 성성호수공원이 정말 '사람과 자연이 조화로운 건강한 녹색도시' 구현이었을까.

성성호수공원이 준공되자, 많은 시민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문제는 산책로가 물 위에 만들어져 그늘 한 점 없다는 사실이었다. 산책로 전체가 뜨거운 뙤약볕이다.
  

철새들이 살아가는 물 위에 만들어진 산책로. 좌측 나무 뒤로 만들었다면 시민들이 시원한 그늘에 걸을 수 있고, 철새들도 안전했을 것이다. ⓒ 최병성

 
시민들만 고통스러운 게 아니었다. 수상 데크가 설치된 곳은 원래 새들의 보금자리였다. 수변을 좋아하던 철새들의 보금자리가 수상 데크 설치로 파괴되었다.

천안시의 <업성저수지 자연환경보전·이용시설(수변 생태공원) 조성사업 기본 및 실시설계 용역 최종 보고회> 자료를 입수해서 살펴보았다. 사업의 목적이 '1) 훼손된 자연환경의 복원, 2) 시민들의 생태 여가 휴식공간 제공'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사업 목적과는 정반대였다. '훼손된 자연환경복원'이 아니라 오히려 그 많던 철새들을 떠나게 했다. 철새들이 머무는 공간에 수상 데크를 설치한 결과였다.
 

천안시 업성저수지 개발 보고서. 조류 관찰원을 기록하고 있는데, 사람 위주의 관점만 있을 뿐 철새들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다. ⓒ 천안시

 
또, 조류관찰원(기존 식생 보전)이라며 '야외에서 바라보는 철새들의 생태와 비상과 군무를 통해 일상의 고단함을 씻을 수 있는 가족과의 탐조공간'이라고 기록한 부분도 나온다.

천안시가 조성한 조류관찰원을 살펴보자. 수상 데크가 철새들의 서식 공간 중앙을 가로지른다. 업성저수지에서 유일하게 원형 보전된 습지다.
 

철새들의 서식 공간 중앙을 가로지르며 조류관찰원이라고 만들었다. 시민들이 이곳에 설치된 망원경으로 철새들을 살펴보고 있다. ⓒ 최병성

 
많은 사람들이 이곳 산책로를 오간다. 그늘이 없으니 양산을 쓰고 걷는 이들이 많다. 성성호수공원의 수상 데크는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소음이 많이 난다. 데크가 철제 기둥에 밀착 고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산책하는 시민들뿐만 아니라 조깅하는 시민들도 많다. 이곳이 철새들의 보금자리라는 사실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뜨거운 햇살을 피해 양산을 쓴 시민들. 남성도 우산을 쓰고 있다. 조깅하는 사람들도 많다. ⓒ 최병성

 
다른 지자체들도 이런 식으로 생태공원을 조성할까? 낙동강 하류에 만들어진 철새 관찰로다. 철새들이 놀라지 않도록 네모난 작은 구멍들을 만들었다. 사람들은 이곳에 숨어 철새들을 살펴본다. 심지어 장소 이동시에도 위장막 통로를 만들어 철새들이 사람들의 오고감에 놀라지 않도록 배려했다.
  

낙동강 하류의 철새 탐방로는 철새 보호를 위해 사람들의 노출을 줄이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 최병성

 
특히 낙동강 철새관찰원 앞에는 '① 대화는 소근소근, 걸음걸이는 살금살금 ③ 가까이 가지 마세요 ⑥ 우르르 몰려다니면 무서워요' 등의 새 관찰 수칙 10가지가 적혀 있다. 철새 서식지 한가운데 산책로를 만들고, 그 위를 시민들이 몰려다니고 조깅까지 하는 천안시와 대비된다.

천안 시민들에게 물었다

성성호수공원을 찾은 천안시민들에게 어떤 길을 걷고 싶은지 물어 보았다. 아파트로 가득하고 그늘 한 점 없는 천안 성성호수공원과 다른 지자체의 시원한 나무 그늘 산책로 중 걷고 싶은 길에 스티커를 붙이는 간단한 질문이었다. 너무 당연한 결과가 나왔다. 대부분의 시민들이 천안시가 만든 땡볕 수상 데크가 아니라, 시원한 나무 그늘을 더 원했다.
 

어떤 길을 걷고 싶냐는 질문에 천안시민들은 나무 그늘을 원했다. ⓒ 최병성

 
지난 5월 3일부터 5일까지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를 통해 천안시민들에게 업성저수지 개발에 대해 물어보았다.(천안 거주 18세 이상 성인 남녀 715명.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 3.7%p)

천안시의 호수공원 산책로 조성이 잘못이라는 응답이 50.2%였다.(괜찮다. 30.8%, 잘 모르겠다 19%) 특히 응답자 중 66.7%가 성성호수공원 물가의 39층 고층 아파트 건설 계획이 잘못됐다고 답했다.
 

천안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 조사 결과. 업성저수지 산책로 조성 잘못이다 50.2%, 고층아파트 건설 계획 잘못이다 66.7%. ⓒ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심지어 설문에 응답한 천안 시민 80%가 아파트가 수변 뒤로 물러서야 한다고 답했으며, 72.4%가 고층 아파트 건설 계획이 꼭 수정해야 한다고 답했다.
 

업성저수지 수변에 건설되는 고층 아파트가 뒤로 물러서야 하며(80%), 반드시 수정되어야 한다(72.4%)는 천안시민의 응답. ⓒ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업성저수지는 천연기념물 원앙의 보금자리였다. 천안시가 환경부로부터 예산을 지원 받아 원앙 서식지 복원 사업도 진행했다. 그러나 250마리가 넘던 원앙이 성성호수공원 조성 사업 후 사라지고 있다.

업성저수지에서는 다이빙하여 물고기를 잡아먹는 물총새의 재롱을 쉽게 볼 수 있다. 물총새는 수면 위를 낮게 날아다니기도 하고, 나뭇가지에 앉아 있다 물속으로 다이빙하며 물고기 사냥을 한다.
  

업성저수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물총새 ⓒ 최병성

 
보통 일반적으로 새들은 나뭇가지 위에 둥지를 만든다. 그러나 물총새는 저수지 둑 흙속에 1m 정도의 터널을 뚫고 들어가 어두운 곳에 알을 낳는다.

만약 지금처럼 39층 고층아파트가 수변 가까이 건설되면, 물총새가 둥지 틀 곳이 없어진다.

대안 있다

업성저수지 주변은 지금 현재 카페와 고층아파트 건설로 몸살 중이다. 다행히 북서쪽 수변에 훼손되지 않고 유일하게 남아 있는 습지에 노랑부리저어새와 원앙, 장다리물떼새, 뿔논병아리 등이 찾아온다. 앞으로 업성저수지의 생태는 이 습지 보전 여부에 달려 있다.

그런데 이 습지 양변에 39층 고층 아파트가 건설이 추진되고 있어 문제가 되는 것이다. 해결 방법은 없는 것일까?
  

천안시의 업성저수지 개발 조감도. 북서쪽 수변을 빼고 이미 아파트와 카페로 개발되었다. 이제 남은 공간인 북쪽 업성지구와 업성2지구 방향의 올바른 개발이 업성저수지의 생태 환경 보전을 결정 지을 것이다. ⓒ 천안시

 
천안시가 생태공원 사업 초기에 조금만 생각을 했다면 천안시민도 행복한 쉼터를 얻고 철새들도 안전했을 수 있다. 천안시는 업성지구 좌측에 공원을 조성했다. 그런데 이 공원 자리를 업성지구 아파트 건설 사업자에게 내어주고, 공원을 수변 쪽으로 토지 교환하여 조성했다면 지금처럼 철새 서식지 파괴 논란은 없었을 것이다.

아파트 건설 사업자도 수변을 바라보는 전망 좋은 자리가 많아지니 손해 볼 것이 없다. 시민들은 수변 가까운 녹지 공간에서 쉼을 얻고, 철새들의 이동 경로에도 문제될 게 없었던 것이다.


천안시는 업성지구와 업성2지구 사이의 습지를 원형 보전한다고 한다. 그러나 습지만 보전한다고 업성저수지의 생태가 보전되는 게 아니다. 철새들의 이동 경로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 습지 좌측 업성지구 쪽은 이미 고층 아파트로 가득한 천안 시내 방향이다. 아파트가 습지에서 뒤로 조금 더 물러서고, 녹지공간을 내어주면 된다.

문제는 철새들이 업성저수지로 날아오는 방향에 있는 업성2지구다. 철새들이 습지로 날아오는 방향에 39층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다. 고층아파트가 철새들의 이동 경로를 막아서는 것이다. 만약 지금과 같이 습지 바로 곁에 고층 아파트가 건설된다면, 습지가 그대로 존치된다 할지라도 철새들이 더 이상 이곳을 찾을 수 없게 된다.

해결 방법이 없지는 않다. 업성저수지 북서쪽 수변에 총 4200세대 이상의 아파트가 들어 설 예정인데, '도시·군 계획시설의 결정·구조 및 설치기준에 관한 규칙' 제89조(학교의 결정기준)에 따라 사업자들은 사업부지 인근에 반드시 초등학교를 지어야 한다. 현재 업성지구 뒤편에 초등학교와 유치원이 예정되어 있다.
  

4000세대 이상일 경우 사업자는 초등학교를 의무적으로 지어야 한다. ⓒ 국토교통부

 
아파트 건설 사업자들이 의무적으로 지어야 하는 초등학교와 유치원을 철새가 날아오는 방향인 업성2지구 수변 쪽으로 옮기면 된다. 초등학교와 유치원은 3~4층의 저층 건축물이고, 운동장과 녹지 공간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철새들의 이동 경로에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천안시민을의 행복한 쉼을 위해, 이곳을 찾는 철새들의 안전을 위해 철새들이 날아오는 방향의 업성2지구에 초등학교와 공원을 조성하고, 공간 조성을 새롭게 정리하면 문제가 해결된다. ⓒ 최병성

 
지금 현재 업성저수지 남쪽 수변엔 3~4개의 사업자들이 아파트 건설을 추진 중이다. 아파트 건설 사업자들이 천안시에 기부 채납하는 녹지공간을 초등학교와 유치원이 들어서는 업성2지구 수변 쪽에 모아 제대로 된 공원을 조성하는 것이다.

천안시에는 시민을 위한 제대로 된 공원이 없다. 사람들은 물이 있는 공간을 좋아한다. 지자체마다 호수공원을 만드는 이유다. 천안시는 이미 도심에 업성저수지라는 놀라운 공간을 가지고 있다. 이곳을 지금 같은 난개발로 잃어버린다면 두고두고 후회하게 될 것이다.
  

저수지 수변에 고층 아파트들이 들어서고 있다. 만약 바로 앞의 녹색 공간에도 39층 고층 아파트가 들어선다면, 이곳을 찾는 시민들에게도 고통이 되고, 철새들의 서식지는 완전히 파괴될 것이다. 업성2지구 수변 쪽 공간에 초등학교와 유치원과 공원을 조성하면 모두가 행복한 천안시가 된다. ⓒ 최병성

 
업성2지구 수변 쪽에 고층 아파트 대신 초등학교와 공원이 들어선다면, 성성호수공원은 천안시민들의 행복한 공간이요, 천안시의 가장 자랑스러운 랜드마크가 될 것이다. 모두에게 이로운 해결책을 찾아나가길 기대한다.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3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