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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로 가는 기차 안에서 누군가 노트에 글을 적고 있었는데, 그 소리를 듣고 한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오는 7~8일, 문화비축기지에서 진행하는 <2022 아르코 국제 심포지엄> 두 번째 세션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연사로 나선 미디어아티스트 권병준 작가는 이렇게 얘기했다.
 
인디밴드 삐삐롱스타킹의 메인 보컬로 활동하면서 지금은 창조적 예술활동을 고민하는 미디어아티스트로 활동 중인 권병준 작가
 인디밴드 삐삐롱스타킹의 메인 보컬로 활동하면서 지금은 창조적 예술활동을 고민하는 미디어아티스트로 활동 중인 권병준 작가
ⓒ 권병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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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심포지엄 주제이며, 자신이 꾸준하고 관심가져왔던 '마찰'에 관한 다양한 에피소드를 들려준 그는 한때 인디밴드 삐삐롱스타킹의 메인 보컬로 서른 살 초반까지는 인디레이블을 이끄는 대중음악에서 활동했다. 지금은 미디어아티스트로 활동하는 작가가 유학 시절의 경험담을 들려준 것이다.

33살이라는 다소 늦은 나이에 네덜란드 헤이그로 유학을 떠났던 그의 관심사는 '글씨 쓰는 소리'였다. 다시 말해, 펜과 종이가 마찰하면서 사각거리는 소리와 정보를 분석해 소리에서 글씨의 형태를 도출하는 방법을 고민한 것이다. 

"수직으로 긋는 선과 수평으로 긋는 선의 소리가 다릅니다. 이것을 컴퓨터가 학습해서 분별해내는 겁니다. 그때가 2006년이었는데, 당시는 지금처럼 인공지능(AI)이나 머신러닝이 일반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연구에 필요한 하드웨어나 소프트웨를 제가 직접 만들고 적용해야 했습니다."

초기에는 자신의 특성을 살려 공연 위주로 활동하면서 소리 기반의 작가들과 함께 전시에 참여했다. 열린 공간에서 다른 소리의 간섭을 피하기 쉽지 않았지만, 그때 처음으로 '위치인식 헤드폰'을 고안했다. 이것은 공간 안에서 정확한 좌표를 인지하는 헤드폰으로 장소 특정적 소리를 들려주는 장치이다.

전시장을 찾은 관객들은 헤드폰을 쓰고 특정 장소에 매핑된 소리를 공간과 조형물과 조응하면서 감상할 수 있다. 이후 그의 작업은 '오묘한 진리의 숲(Forest of Subtle Truth)' 연작의 시작이 됐고, 이후 이방인으로 살았던 유학 시절의 영향 덕분에 한국에 살고 있는 이방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2018년에 한국에서는 큰 스캔들이 있었습니다. 관광을 목적으로 무비자로 해외여행객을 받아들인 제주도에 많은 예멘 난민들이 입국한 것이죠. 이것은 순혈주의를 지향하는 한국에게 큰 논쟁거리였습니다. 그래서 난민의 목소리를 담고자 제주도로 가서 그들의 노래를 매핑했습니다."

위치와 거리를 인지할 수 있는 헤드폰은 다양한 작업으로 확장됐다. 어쩌면 그의 대표작으로 불리게 된 '자명리 공명마을' 작업이 그것이다. 헤드폰을 쓰고 상대방에게 다가가면 그 사람이 듣고 있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장치.
 
<자명리 공명마을>은 헤드폰을 쓰고 상대방에게 다가가면 그 사람이 듣고 있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자명리 공명마을>은 헤드폰을 쓰고 상대방에게 다가가면 그 사람이 듣고 있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 권병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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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듣는 소리와 상대의 소리가 섞이면서 이 헤드폰을 쓴 관람객은 다른 관람객에게 다가가 서로의 소리를 확인하면서 소통하는 것이다. 두 관람객이 서로의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면 서로의 소리를 교환할 수 있는 장치를 통해 그는 '우리에게 필요한 소통과 교류의 새로운 방식'을 던져줬다. 

종이와 펜이 스칠 때 출발한 공감각적 장치에서 출발해 헤드폰과 로봇으로 이어지는 권 작가의 작업에서 그동안 늘 빠지지 않았던 키워드는 '마찰'이었다. 어느 시대, 어느 곳에나 존재했던 마찰의 접점은 늘 뜨거웠다고 기억했다.

때로는 그 에너지가 갈등으로 번지기도 했으며, 지금은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마찰의 시대를 경험하고 있다며, 인간이 이제는 싸움의 기술을 게임으로 탐닉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꼬집었다. 

"기술발전에 소외된 유희를 책임지는 미디어는 가상현실이라는 무기로 우리를 더욱 현실에서 멀어지게 합니다. 이웃과 교감하고 세상과 공명할 수 있는 기술은 무엇일까요? 비용을 지불해야 광고를 볼 수 있는 온라인 미디어가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광고와 참혹한 전쟁 영상을 함께 보는 것은 전쟁만큼 비극적으로 현실입니다. 나와 이웃의 삶을 온전히 담아낼 창조적인 소통의 가능성을 계속해서 탐구할 겁니다."

'왜'라는 질문, 얼마나 던지고 있습니까
 
'2022 아르코 국제 심포지엄' 포스터
 "2022 아르코 국제 심포지엄" 포스터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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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양극화와 기술발전에 따라 편리함만 쫓으며, 마찰이 없는 사회로 변해간다. 주거 공간, 쇼핑, 이동 등 인간과 관련된 모든 것이 기술 덕분에 편리해졌다. 고도의 시스템으로 자리잡힌 세상 속에서 인간의 판단은 알고리즘이 대체하게 됐다.

그런 편리함과 효율성 속에서 우리는 "왜?"라는 질문을 얼마나 던지고 있는가 되묻고 싶다. 자신에게 던지는 궁금증이 줄어드는 상황 속에서 마찰은 우리에게 긍정적인 면을 보여준다. 이것은 속도를 느리게 하며, 저항과 사유를 만들 수 있으며, 창조적인 비판을 생성하게 만든다. 

2년 넘게 지속됐던 코로나19가 이제는 끝이 보이기 시작한다. 포스트 팬데믹에 지속가능한 삶에 대한 예술의 관점에서 '창조적 마찰'과 '탈-인간중심주의'를 키워드로, 지속가능한 예술의 역할을 논의하는 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그동안 이끌어왔던 '아르코 국제예술공동기금' 파트너 국가와 네트워크를 강화하며, 향후 공동기금 사업을 원활히 추진하기 위해 지속가능한 국제교류의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2022 아르코 국제 심포지엄>을 개최한다.

이 사업은 그동안 국제예술공동기금사업으로 협력해왔던 영국, 독일, 덴마크, 싱가포르, 네덜란드의 예술가, 문화예술계 정책인사 등을 초빙해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요즘을 되돌아보고, 예술의 상상력으로 우리가 만들어가야하는 세상을 제시하며, 예술로 행동하고 사유하는 방안을 고찰하는 것이 목적이다. 

올해 심포지엄의 주제는 "다시, 생각하고, 상상하고, 행동하기"로 정했다. 이것은 지난 2년간 팬데믹을 겪은 전 세계가 '이동성'뿐 아니라 인간을 위기로 빠트린 유례없는 경험을 통해 우리가 걸어온 역사와 세상을 반추하기 위함이다. 이제 펜데믹이 종식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다시 바라보고, 예술의 상상력으로 앞으로 만들어가야 하는 세상을 제시함으로써 예술을 통해 행동할 것을 제안한다. 

이를 위해 1일차(7일)의 첫 번째 세션에서는 '창조적 마찰, 예술이 상상하는 미래를 위한 행동과 질문'을 주제로, 주일우(서울국제도서전 대표)의 모더레이터로, 케이티 미첼(영국, 연극 감독), 이상욱(한양대 철학과 교수), 야를 슐프(네덜란드, 파이버 축제 공동 설립자)이 참여하며,  김지선(작가)의 라이브 온라인 퍼포먼스가 펼쳐진다.

같은날 두 번째 세션에서는 '예술가들의 창조적인 행동-창조적 마찰'을 주제로, 최정봉(전 뉴욕대 영화이론과 교수)의 모더레이터로, 권병준(미디어아티스트), 노라 오 무르추(독일, 트랜스미디알레 예술감독), 스팽&레이(싱가포르, 플로리토피아 프로듀서), 톤 반 굴(네덜란드, STRP 축제감독)이 참여한다. 

2일차(8일)인 세 번째 세션에서는 '예술가들의 창조적인 행동-탈 인간중심주의'를 주제로 윤민화(큐레이터)의 모더레이터로, 배요섭(궁리소 묻다 궁리원), 로다 팅&미켈 달린 보예센(덴마크, 스튜디오 싱킹핸드 아티스트 듀오), 조이 스벤센(영국, 메티스 예술감독), 티나 타프가드(덴마크, 레코일 무용단 예술감독)이 참여한다.

같은날 네 번째 세션에서는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예술의 가치와 새로운 연결을 위한 구상'을 주제로, 서지혜(인컬쳐컨설팅 대표)이 모더레이터로, 임재연(한국문화예술위원회 국제교류부), 박윤조(영국, 주한영국문화원 아트디렉터), 이본 탐(싱가포르, 에스플러네이드 대표), 마르셀 페일(네덜란드, 더치컬처 국제문화정책조정부장), 멜라니에 보노(독일, 주한독일문화원)이 참여한다.

본 심포지엄은 전 세계 연사들이 실시간으로 참여하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유튜브를 통해서 한국어와 영어로 생중계된다. 

태그:#아르코 국제 심포지엄, #권병준, #마찰, #문화비축기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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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빼고 문화만 씁니다." 매주 금요일마다 한겨레신문에 예술가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는 '사람in예술' 코너에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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