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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세대 중년 남성 4명이서 글쓰기 모임을 결성했다! 시민기자 그룹 '꽃중년의 글쓰기'는 이들의 '사는 이야기'를 다룹니다.[편집자말]
글쓰는 일상
 글쓰는 일상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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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 블로그에 가입하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대단한 마음으로 시작한 건 아니었다. 남의 글을 보다 보니 내 글을 써보면 어떨까 하는 호기심에서 시작됐다. 대학에서 전공했거나 따로 강연을 듣지 않은 글쓰기라 결심하기까지 큰 용기가 필요했다.

첫 글 발행을 결심하고 모니터 앞에 앉았을 때는 '내가 무얼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하얀 여백이 보이는 모니터 앞에 앉아서 무슨 글을 쓸까 하는 막연함에 키보드를 두드렸다. 백스페이스로 새겨진 글 자국을 다시 지우기만 수차례를 반복했다. 특별한 생각 없이 앉아서 쓰기란 만만치 않음을 깨닫기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문득 내 이야기가 쓰고 싶었다

처음 글 주제를 잡는 데 애를 먹으며 결심한 내 글쓰기는 자주 읽는 책들에 대한 서평이었다. 어차피 읽은 책 내용과 책 읽은 후 들었던 내 생각을 정리해서 쓰는 글이라 큰 부담도 없었다. 이렇게 서평을 여러 편 쓰면서 글의 맛을 조금씩 알게 되었고, 한두 달을 이렇게 글을 쓰다 보니 조금씩 고개를 쳐드는 내 얘기, 내 생각을 담은 글쓰기에 대한 용기와 욕심이 생겼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라고 난 의욕이 있을 때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에 그렇게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짧은 글부터 시간이 지나면서 장문의 글까지. 난 마흔 중반에 그렇게 글쓰기를 시작했고, 3년이 넘는 시간인 지금까지 글을 쓰고 있다.

난 전문 작가가 아니다. 이십 대 중반부터 이십 년이 넘는 시간을 꾸준히 직장을 다니는 현실 직장인이다. 게다가 글쓰기와는 아주 거리가 멀 것 같은 공대 출신 IT 관련 직군에 종사하는 남자다. 주변에서도 내가 글을 쓰는지 아는 사람은 작년까지만 해도 거의 없었다. 최근에는 많은 동료와 지인들이 내가 글을 쓰는 줄 알고는 있지만 내 글쓰기 소식을 처음 접하는 열에 아홉은 모두 한결같은 반응이었다.

 "네가 글을 쓴다고? 에이 설마."
 "선배님이 작가라고요? 정말요?"
 "에이 글은 무슨. 그냥 낙서나 메모 아닌가?"


잠깐의 취미로 치부하기에는 삼 년이나 글을 쓰고 있다는 얘기를 들으면 다시 한번 그들 입에서는 같은 얘기가 반복된다. '대단하네', '대단하세요', '부럽습니다' 등과 같이 칭찬과 부러움 일색이다. 부러움을 사기 위해 글을 쓰지는 않는다. 이런 칭찬과 부러움이 싫지는 않지만 내 궁극적인 글쓰기 목적은 믿거나 말거나 그냥 좋아서다. 그냥 글을 쓸 수 있는 내가 좋아서고, 내 글을 읽고 공감하고, 위로받는 많은 분들의 반응이 좋아서다. 

이 또한 '인정 심리'라고 할 수 있다. 혼자 쓰고, 혼자 읽기 위해서였다면 조용히 블로그에서 비밀글로만 내 글을 가득 채웠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난 브런치라는 글쓰기 전문 플랫폼에 내 글을 쓰고 있고, 앞으로도 꾸준히 글을 쓸 계획이다. 

오늘도 글을 쓰는 이유

처음 글을 쓸 때는 누가 내 글을 읽을까 걱정도 많았다. 아이러니한 이야기지만 내 글을 쓰는데 나를 아는 누군가가 '내 글을 알아보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들었다. 내 글은 그 어떤 글보다 솔직하려고 애썼고, 그 솔직한 글 때문에 누군가가 상처를 받거나, 나를 지탄할까 두려웠다.

포털사이트에 공개되거나, 브런치 메인에 올라가 글 조회수가 오를 때는 기쁨과 두려움이 공존하며 꾸준히 날 괴롭힌 적이 많았다. 많은 글을 쓰다 보니 악플이 달리는 일도 자주 생겼다. 연예인들이나 유명인들만 달리는 악플일 줄 알았는데 정작 내 글에 악플이 달리니 당황스럽고, 화도 났다. 이럴 때마다 나는 악플에 변명하는 댓글을 달기보다는 '댓글 쓰기' 기능을 막아버리며 아예 내 눈과 귀를 막아버렸다.

하지만 글쓰기 내공도 3년 차 정도 되니 산전수전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런 일에 제법 굳은살이 생겼다. 이런 악플에도 관심이 생겼고, 무심히 넘기거나, 내가 쓴 글에 대한 생각을 나누는 대댓글로 응수를 하기도 했다. 지금은 내 글을 알리기 위해 많이 애쓰는 편이다. 갇혀있는 글보다는 조금은 과감하게 나를 드러내고 있고, 올해부터 내 실명으로 '오마이뉴스'에 기사도 쓰기 시작했다. 

사십 대 후반 직장인은 회사에서는 관리자 혹은 그 이상의 위치에 있는 베테랑이다. 더 위를 볼 수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 지금 자리를 지키거나 자기도 모르게 지금 위치에서  조금씩 밀려나거나 할 것이다. 새롭게 도전하기보다는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충실하고, 맺어온 관계를 지키는 게 전부다. 버틴다는 표현이 우울하지만 가장 와닿는 말이다.

중년 남성의 글쓰기에는 '희소성'이 있다

많은 40대 남자들은 10~20년을 회사일에 매달리고, 가정을 지킨다. 치열하게 직장 생활하고 자녀들 키우느라 어느덧 시간은 훌쩍 지나 버렸다. 어느 날 거울 앞에 섰을 때 우리 모습은 배도 조금 나오고, 얼굴에는 주름도 꽤나 늘어있을 것이다. 바쁘게 살면서 잠깐 숨 돌리며 쉴 수 있을 것 같은 나이가 되었는데 현실을 마주하다 보면 이미 활발하게 몸을 쓸 수 있는 30대도 지났다. 이젠 감성까지 풍부해진 사십 대에 접어든 지 한참이다. 

전문작가가 아님에도 꾸준히 글을 쓰는 사람은 많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년의 남자가 글을 쓰는 사람은 흔하지가 않다. 아마도 높은 연령대에 가면 갈수록 글 쓰는 남자의 비율은 더 낮을 것이다. 보통은 이런 현실을 받아들이거나 부정하는 경우로 나뉜다. 심하게 부정하며 무리하게 운동하거나 아니면 이삼십 대 시절처럼 일하다 보면 정작 돌봐야 할 시기를 정말 놓치기 마련이다.

그래서 난 이런 현실을 받아들였다. 이런 현실 속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았고, 그렇게 찾게 된 일이 바로 지금의 글쓰기다. 난 흔치 않은 희소성 있는 일을 가끔은 꿈꿔왔다. 보편성 있는 일로는 돈을 벌고 있지만, 희소성 있는 일로는 난 꿈을 좇는다. 

사십 대 중년 남자의 글쓰기는 바로 그런 '블루 오션'과 같은 희소성 있고, 가치 있는 일이다. 그래서 난 오늘도 그 꿈을 좇으며 하얀 여백의 모니터를 작은 텍스트로 채워간다. 아마 내 나이 오십에도 이 일은 계속될 것이다. 글쓰기는 나이가 들면서 희소성의 가치를 더욱 빛낼 것이다.

언젠가는 내 이름 석 자로 된 글이 책으로 출간되어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도 있는 조금 더 큰 꿈을 꿔 볼 수 있는 그런 날을 기대하고 있다. 위로받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그걸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지 않을까. 그래서 난 오늘도 그런 내 글을 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발행 후 제 개인 브런치에도 발행됩니다.


시민기자 그룹 '꽃중년의 글쓰기'는 70년대생 중년 남성들의 사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태그:#사십대, #중년남자, #글쓰기,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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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일상과 행복한 생각을 글에 담고 있어요. 제 글이 누군가에겐 용기와 위로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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