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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색이 어울리는 진짜 미인을 그려준 김작가의 보라추상화
▲ 너무너무 예쁜 제비꽃 정엽님 보라색이 어울리는 진짜 미인을 그려준 김작가의 보라추상화
ⓒ 박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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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랭이 마을에도 문화의 꽃이 피어나면 좋지. 문화마을 견학차 그 뭐여, 부산 감천 마을이랑 통영에 있는 동피랑 마을도 가봤는데 거긴 잘 만들어 놨더구먼. 우리 마을도 크기는 작아도 역사가 있는 마을이여. 군산에서 옛날맹키로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곳은 이곳뿐이 없어. 이제 자네들처럼 젊은 작가들이 많이 온께 곧 문화마을 될거여."

전북 군산 말랭이 마을 입주 작가로 마을에 첫 대면을 했을 때 들은 어른들의 환영인사다. 레지던스 형태로 거주하며 작가활동을 하도록 군산시와 계약을 하고 7월의 마지막을 맞이했다. 지난 3월에 책방을 연 이후 '봄날의 산책'이 말랭이마을을 찾는 사람들에게 이정표가 된 것은 감사할 일이다.

입주작가들은 작지만 독립적인 행사로 4~7월 사이 '말랭이 마을 골목잔치'를 하면서 마을주민들과 방문객들을 위해 노력했다. 군산문화도시센터(센터장 박성신, 군산대 교수)의 협조하에 진행하는 프로그램도 다양한데 그중 하나가 '동네문화추적단'이다.

시민이 직접 자신의 동네를 거점으로 고유의 경쟁력 있는 문화를 찾아 공유하는 활동으로 지난 4월에 시민공모를 통해 13개 팀이 선정됐다. 이는 시민의 힘으로 도시 가치를 재발견하고 재조명하여 지역의 역사·인물·공동체 활동·환경 등 다양한 주제로 지역의 문화를 꽃피워보자는 취지다.

박성신 센터장은 "동네문화를 추적하고 그 과정과 경험을 기록하는 활동은 법정문화도시 지정을 위한 예비문화도시사업의 중요한 콘텐츠가 될 것"이라며 "군산의 지속 가능한 문화생태계를 구축하는 소중한 시민 자산으로 활용할 것이다. 조사·활동 내용은 영상·보고서 등을 다양한 형태로 제작해 아카이브로 구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말랭이 사람들의 이야기
 
경자님의 인터뷰 후 쓴 글과 김규리 작가의 추상화
▲ ‘톡톡, 하늘 두드리는 목련꽃 경자님" 경자님의 인터뷰 후 쓴 글과 김규리 작가의 추상화
ⓒ 박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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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말랭이마을에 함께 입주한 미술작가 김규리씨와 한팀으로 추적단이 되어 마을사람들의 이야기를 인터뷰 형식으로 진행했다. 10명의 마을사람을 만나 그들의 옛날과 지금 이야기를 듣고 녹음하고 그림으로 스케치했다. 1사람당 평균 1시간의 인터뷰 자료를 정리하여 그들의 삶을 에세이로 썼다.

작품의 제목과 주제는 '말랭이마을에 피어난 꽃들에게 희망을- 월명산 달빛아래 가장 높은 곳, 말랭이사람 10인과의 즐거운 수다'다. 인터뷰 전에 김 작가와의 공통질문을 준비하고, 개인질문 중 '좋아하는 꽃과 색깔'을 필수항목으로 물었다. 작품의 제목에서 보다시피, 말랭이마을 어른들이 꾸민 동네를 아름다운 색이 있는 꽃동네로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머님들, 이렇게 한솥밥을 먹으니 저도 말랭이 마을 사람이 된 것 같아요. 꽃봄과 초여름이 함께 노니는 이 좋은 날, 우리도 야외로 나가서 맛난 밥 드시게요. 저희 작가들이 삼겹살 가져올께요, 대신 노인정에서 밥이랑 다른 반찬 준비해주시면 좋지요. 특히 제가 마을 어르신들과 인터뷰하면서 말랭이 마을 이야기 써야 하는데 얼굴도 익히고 인사드릴게요."

왜 식구(食口)라는 말을 썼겠는가. 함께 밥을 먹어야만 식구가 되는 듯, 서로 밥 먹으라고 챙겨주기 바빴다. 어른들은 밥을 공기에 가득 담고, 접시에 잘 익은 고기만을 골라 자식에게 주듯 작가들을 먼저 챙겼다. 잔치를 펼친 모정의 세상은 바로 천상의 놀이터 같았다. 덩달아 말랭이 마을의 나무와 꽃, 새들도 모두 웃음 박이 터졌다. 드디어 나도 말랭이식구가 되었다.

어른들의 이야기를 글로 옮기면서 초점을 맞추고 싶었던 건 어떻게 하면 그들에게 어울리는 시를 들려줄까였다. 이왕이면 그들이 좋아하는 꽃이나 나무에 비유한 좋은 시를 들려주고 싶었다.

말랭이마을 노인정 총무를 맡은 박경자어머님. 아직도 20살에 보았던 영화 <스잔나>의 여주인공이 불렀던 '만추의 노래'를 흥얼거리는 멋쟁이. '톡톡, 하늘 두드리는 목련꽃 경자님'이라는 애칭을 붙여드리며 봄에 피는 목련을 좋아하셔서 다음 시를 들려드렸다.

목련 그늘 아래서는 – 조정인

목련 아래를 지날 때는
가만가만
발소리를 죽인다

마른 가지 어디 물새알 같은
꽃봉오리를 품었었나 (중략)


회색빛 몸빼바지를 보라색으로 바꿔 달라는 김정엽 어머님. 당신은 충실한 교회신자인데, 사람들이 그 바지를 보면 무슨 절의 보살 같다고 말한다면서 '말랭이 염색작가님들이 이 옷에 보라색 물도 들여주소'라고 말했다. '너무너무 예쁜 제비꽃 정엽님'이란 애칭으로 큰 눈에 가득히 비쳤던 젊은 날 회색추억을 보랏빛 신비로움으로 채워주고 싶었다. 정연복 시인의 <제비꽃>도 들려드렸다.

제비꽃 - 정연복

흰색이나 노란색 옷도
가끔은 입지만 대개는
보라색 옷을 즐겨 입는 너
몸은 작지만
키도 무척 작지만
봄의 들판에서
활짝 웃는 네 모습에
반하지 않을 사람
세상에 하나도 없을 거야.(중략)


상반기 '동네문화추적단' 활동과 발표가 끝났다. 가을부터 두 번째 활동으로 이어지는데, 또 다른 10여 명의 마을인들 이야기를 담을 예정이다. 이 자료집을 책으로 엮어 그들의 이야기가 세상 밖으로 나오길 바란다. 마을에 자긍심을 갖고 사는 그들의 삶에서 말랭이마을 문화사업이 꽃 피우도록 도움이 되고 싶다. '나도 책 속 주인공이여. 여기 내 이야기가 있당께'라고 말하는 어른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

끝으로 어른들께 이기철 시인의 시 <밥상>에 나오는 구절을 들려드렸다.

산 자들이여, 이 세상 소리 가운데
밥상 위에 놓이는 수저소리보다 아름다운 것이 또 있겠는가
(중략)
산 자들이여, 이 세상 소리 가운데
밥솥에 물 끊는 소리보다 아름다운 것 또 있겠는가

 
시민들이 직접 동네의 문화를 추적, 문화도시군산을 향한 발판이 되도록 노력한다
▲ 2022 하반기 동네문화추적단 공고 시민들이 직접 동네의 문화를 추적, 문화도시군산을 향한 발판이 되도록 노력한다
ⓒ 박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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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문화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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