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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두 번째 '한시 여행'을 떠났다. 지난 8월 어느 날, 충남 서천에 있는 문헌서원을 찾은 것이 한시 여행의 첫 발걸음이었다(관련기사 : 배롱나무 찾아 군산에서 여기까지 갔습니다). 여행내내 서원을 둘러싼 풍경에 취하고 옛 학자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듣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였다. 그날의 감흥이 정말 좋아서 두 번째 한시여행은 언제, 어디로, 누구를 만나러 갈까 하며 날을 기다렸다.

책방 손님 중 박 선생님은 취미로 한시를 번역했는데 정년 후 주변 지인들에게 번역한 한시를 나누게 된 지 3년째라고 했다. 글을 쓰는 것은 반복되는 일상의 삿됨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일, 일종의 자기 수신(修身)이다. 특히 매일 글을 써서 나누는 것은 사람에 대한 지극한 정성과 사랑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운 좋게도 나 역시 인연이 되어 매일 한시를 선물 받는다.

지난 4월부터 아침마다 오는 '한시'는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었다. 단순히 한자가 궁금하여 지적 호기심이 발동한 것이 아니다. 한자에 매우 취약할 뿐만이 아니라 한시의 세계를 들여다본 적이 없었다. 시의 세계라 하면 학창 시절 열심히 암기한 근대시 몇 편이 전부였다. 그것도 머릿속에 완본이 아닌 상태로 남아 있어 누군가 시 제목을 이야기 하면 '아 그거 알죠' 정도였는데 한시도 마찬가지였다. 안다는 것은 표현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니, 사실 아는 게 없었다.

그동안 받은 한시가 300여 편이 넘었다. 매일 두 편 이상의 시를 받고 있는데 이 중 하나는 여류시인의 작품이 들어 있다. 우리나라의 황진이, 이매창, 신사임당, 허난설헌 정도의 이름은 알고 있었지만 중국의 설도, 어현기, 이청조 등의 이름은 들어본 적도 없었다. 보내주는 한시만으로 한계를 느껴서 정민 교수의 <한시미학산책> 등 몇 권의 책을 함께 읽으며 책방지기가 만들어가는 한시 마당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매일 한시를 받으면 시의 번역본을 읽어보고 시의 흐름과 시인의 감정을 느껴보려고 노력한다. 그 후 작가가 누구인지, 언제 사람인지, 다른 작품들은 또 어떤 것들이 있는지, 때론 다른 사람이 한 번역 한두 작품도 읽어본다.

한 3개월여 동안 무슨 논문이라도 쓰려는 탐구심과 집중력으로 한시를 대했더니, 아주 조금씩 한자와 그 뜻도 보이고, 번역한 작품을 더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우리나라 한시 작가들의 생애와 생가터가 궁금해져서 지난 9월 초 한시 여행으로까지 생각이 미쳤다.
 
신석정의 첫 번째 시 <기우는 해> 만 18살에 썼다고 한다
▲ 신석정의 시비 <기우는 해> 신석정의 첫 번째 시 <기우는 해> 만 18살에 썼다고 한다
ⓒ 박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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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로서 받은 여류시인 중 이매창의 작품이 몇 편 있다. 고향섬 식도를 가려면 반드시 부안군을 거쳐야 하는데, 부안에 있는 매창공원이 바로 이매창 묘비와 시비가 있는 곳이다. 몇 년 전에도 우연히 가본 적 있었지만 단 한 글자도 제대로 본 기억이 없다. 글자는 한자요, 이매창은 기녀인가 보다 정도로 지나쳐 왔는데, 이렇게 내 발로 직접 찾아갈 줄이야. 참으로 묘한 것이 인생이고 인연이다.

부안으로 가기 전 이매창과 연결되는 또 한 분의 명인 신석정 시인(1907.7.7. ~ 1974.7.6.)을 대변하는 신석정문학관도 여행 목록에 넣었다. 군산의 대표 문인으로 <탁류>의 채만식 작가가 있다면, 부안에는 <기우는 해> <임께서 부르시면>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를 쓴 시인 신석정이 있다. 문학관에 들어서니 왠지 프랑스의 유명배우 알랭드롱을 연상시키는 시인의 사진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기우는 해 – 신석정

해는 기울고요 ㅡ
울던 물새는 잠자코 있습니다.
탁탁 툭툭 흰 언덕에 가벼이
부딪치는
푸른 물결도 잔잔합니다.

해는 기울고요 ㅡ
끝없는 바닷가에
해는 기울어집니다.
오! 내가 美術家였드면
기우는 저 해를 어여쁘게 그릴 것을. (중략)


그는 전북 부안 태생으로, 1931년 김영랑‧박용철‧정지용 등과 함께 시문학 동인으로 활동하며 제3호에 시 <선물>을 발표함으로써 등단하였다. 1939년 첫 번째 시집 <촛불>을 통해 전원시인, 목가시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두 번째 시집인 <슬픈 목가>(1947년)에서는 현실 참여시인으로, 마지막 시집인 <대바람 소리>(1970)에서는 다시 서정시의 세계로 복귀했다는 글을 읽었다.

문학관의 벽면에 써 있는 그의 좌우명 '지재고산유수(志在高山流水)-높고 의연한 산과 유유히 흘러가는 강에 뜻이 있다'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노장사상철학과 도연명의 <귀거래사>의 영향을 받았고, 미국의 자연주의 시인 소로우(Thoreau)를 좋아했다 한다. 반속적(反俗的)이며 전원과 자연에 바탕으로 한 동양적 낭만주의에 입각한 시를 썼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신석정은 조선시대 시인 이매창(1573-1610)의 한시를 그의 현대적 감각과 음률로서 '매창시집'을 발간했는데 이는 내가 이매창의 한시를 대하는 데 연결고리가 되었다. 300여 년의 시공간을 사이에 두고 걸었을 두 시인의 발걸음을 따라 걷는 내 한 걸음 한 걸음에 거룩함마저 느껴질 정도였으니 얼마나 소중한 여행인가. 이 감동을 나 혼자만 느끼고 싶다면 과한 욕심이던가.

이화우(梨花雨) 흩뿌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임
추풍낙엽(秋風落葉)에 저도 날 생각는가
천 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라 (이매창의 시, 이화우 흩뿌릴제)


이매창은 조선 선조 6년, 전북 부안현에서 태어나 노래와 거문고에 능했고, 특히 시조와 한시를 잘 지었다고 한다. 위 시는 그녀 나이 20살 무렵, 촌은 유희경(村隱 劉希慶1545~1636)을 만나 평생의 연인이 되고 시로서 대화를 나눈 사랑의 흔적이다.
 
시인 이매창의 이른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허균의 시
▲ 이매창의 시비와 허균의 시비 시인 이매창의 이른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허균의 시
ⓒ 박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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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창공원에는 이매창의 시가 담긴 시비가 많은데 멀리 한양에서 매창을 그리는 유희경의 시도 있어 그들이 시로써 나눈 사랑의 말을 들어볼 수 있었다. 함께 간 지인은 일일이 매창시비에 써 있는 한자의 음을 읽어주니 마치 매창이 직접 한시 낭송을 하는 것 같아서 더욱더 즐거웠다.

연인과 함께 한 시간은 짧고 너무 빨리 세상을 등진 그녀의 삶(38세 나이)은 슬픈 일이지만 그녀 사후 그녀의 시가 소멸되는 것을 안타까워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1668년 그들은 매창 시 58수와 시조를 구해 매창집을 간행했고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또 부안군이 그녀를 기리며 매창공원의 이름으로 그녀의 묘와 시비를 보존하고 있는데 옛 시대의 문인들을 대하는 군 행정의 따뜻한 마음이 엿보여서 절로 칭찬이 나왔다.

부안이라는 천혜의 자연 속에서 평생을 살면서 후대에 남긴 그들의 시는 그냥 옛사람의 기록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후대가 선조들의 삶과 지혜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들이 남긴 글을 통해서이다.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가 무엇인가. 단순히 글로 된 정보량을 담아 자기 지식으로 자랑하고 싶어서는 아닐 것이다. 현재는 과거라는 주춧돌이 있어야만 존재할 수 있다.

현대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부단히 근대, 고대의 주춧돌이 깨어지지 않도록 살펴보아야 한다. 그들의 책을 읽고 사유하고 현실에 적용하는 것이야말로 오래갈 수 있는 미래를 준비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매일 아침 책방에서 보내는 '시가 있는 아침편지'에 종종 한시를 넣는다. 옛사람들의 사랑법, 위트, 고뇌, 독서법, 삶의 지혜 등, 수많은 얘기를 나와 이웃이 함께 받을 수 있는 가장 재밌는 방법을 찾은 것이다.

태그:#부안신석정문학관, #부안이매창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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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과 희망은 어디에서 올까요. 무지개 너머에서 올까요. 오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임을 알아요. 그것도 바로 내 안에. 내 몸과 오감이 부딪히는 곳곳에 있어요. 비록 여리더라도 한줄기 햇빛이 있는 곳. 작지만 정의의 씨앗이 움트기 하는 곳. 언제라도 부당함을 소리칠 수 있는 곳. 그곳에서 일상이 주는 행복과 희망 얘기를 공유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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