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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꽃담여행은 내포 땅이다. 내포(內浦)는 바닷물이 내륙까지 깊숙이 들어온 지형이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예전에는 가야산 둘레 열 개 고을, 태안, 해미, 결성, 서산, 면천, 당진, 홍주, 덕산, 예산, 신창을 내포라 하였다. 현재 군(郡)으로 당진, 서산, 예산, 태안, 홍성과 보령, 아산의 일부를 포함한다.

내포사람들의 기질

내포사람들은 행정구역과 무관하게 자연과 역사, 기질과 습성에 있어 문화적 동질감을 갖고 있다. 백제 때는 불교, 고려 말에 유교, 근세에 이르러 천주교까지 중국으로부터 선진문물을 받아들이는 최전방지역으로 선진문화지역이었다.
  
개심사 가는 길에 마주한 상왕산 풍경이다. 상왕산은 가야산 줄기의 산으로 둘레에 개심사와 서산마애삼존불, 보원사터가 있다. 상왕산이 있는 서산 운산은 백제 때 중국과 백제를 오가는 주요 통로였다.
▲ 상왕산 정경 개심사 가는 길에 마주한 상왕산 풍경이다. 상왕산은 가야산 줄기의 산으로 둘레에 개심사와 서산마애삼존불, 보원사터가 있다. 상왕산이 있는 서산 운산은 백제 때 중국과 백제를 오가는 주요 통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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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안을 앞마당으로 여기는 진취성과 선진문물을 받아들이는 개방성, 시대에 따라 다른 문물을 습득하는 다양성이 공존한다. 비산비야(非山非野), 지세는 평활하고 기묘한 기암괴석과 화려한 풍광도 없으니 평온하고 여유 있고 친근하기까지 한 땅이다. 기질은 온순하고 다정다감할 것 같으나 속살은 다르다.

유홍준교수는 내포가 배출한 인물은 기골이 강해서 시쳇말로 깡이 세다고 했고 <관촌수필>의 저자, 보령출신의 이문구는 내포지방에는 '반골 벨트가 있다'고 하면서 '당진-예산-홍성-보령-청양으로 이어지는 고을사람들은 울뚝밸정신을 갖고 있다' 했다.

김대건 신부는 당진 솔뫼 출신이고 추사 김정희와 윤봉길 의사는 예산사람이다. 성삼문, 김좌진장군, 만해 한용운은 홍성에서 태어났다. 이름만으로도 얼추 그 기질을 짐작할 수 있다.

내가 경험한 바에 따르면 내포사람들은 '냅둬유' 기질을 갖고 있지 않나 생각된다. '냅둬유'기질은 깡이 세다든가 반골이나 울뚝밸정신을 포함하면서도 좀 다르다. 장사하는 사람한테 물건 값을 깎아달라고 하면 깎아주기는커녕 "냅둬유, 안 팔아유. 깎아 줄라믄 우리 집 개나 줄랑께"하는 기질이 밑바닥에 깔려있다.

속내를 좀처럼 드러내지 않아 겉으로는 부드럽고 참을성 있고 여유 있는듯하나 결정적인 순간에는 자기의 주장이 확실하여 내가 갈 길은 내가 알아서 간다는 그런 기질이다. 광야를 헤치며 달리는 사나이, 남아 인생 가는 길은 미련이 없다는 독립군과 같은 기질이다.

내포꽃담여행은 가야산 아래 불교유적이 단단히 박혀있는 서산 운산의 개심사와 울뚝밸정신이 짙게 밴 예산의 수당고택, 양식을 내어 백성을 구제하고 의병에게 군량미를 제공한 홍성 사운고택, 낙향사족(落鄕士族)이 많은 보령 청라의 신경섭가옥을 거쳐 가는 여행이다.

개심사는 '냅둬유' 기질이 발현된 파격미와 이와 대조적으로 절제된 꽃담이 있고 수당고택은 3대가 독립운동을 한 집안을 대접하여 베풀 듯 새겨놓은 예쁜 합각꽃담이 있다. 사운고택은 뜻이 장대한 '천하태평' 꽃담으로 유명하며 신경섭가옥은 가을날 노란 은행단풍에 어울리는 꽃봉오리꽃담을 감상하기 좋다.

마음이 열리는 절, 개심사

태안과 서산, 예산은 중국과 백제로 오가는 불교의 통로였다. 태안에서 공주나 부여를 가려면 태안-서산-운산을 거쳐 예산의 덕산-대흥으로 나가야 되는데 운산은 중심에 있었다. 서산 마애삼존불과 보원사(터), 개심사는 모두 상왕산 이쪽저쪽에 있는 운산의 불교유적들이다.

개심사의 소속은 상왕산, 이름은 상왕산개심사다. 가야산 한줄기가 뻗어 내린 상왕산 남쪽자락 산골짜기에 자리 잡은 그윽한 절이다. 가야산, 상왕산 모두 불교와 관련 있는 이름들이다. 당시 이 지역에 불교문화가 얼마나 깊게 뿌리를 내렸는지 넌지시 알려주고 있다.

운산에 있는 절답게 개심사의 역사는 백제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재 백제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지만 백제 의자왕 14년(645년)에 혜감국사가 개원사로 창건했다. 1350년 처능이 중건하면서 개심사라 했다. 1475년 충청도절도사 김서형이 사냥을 왔다가 산불을 내는 바람에 불에 탄 뒤, 1484년에야 비로소 중창이 이루어졌다. 대웅보전은 이 무렵에 지어진 것이다.
  
개심사 입구에 서있는 세심동, 개심사 돌비석. 두 개의 돌비석은 속세와 불계를 구분하는 마음의 문이다. 마음을 열고 사사로운 감정을 내려놔라 한다.
▲ 세심동 개심사 돌비석 개심사 입구에 서있는 세심동, 개심사 돌비석. 두 개의 돌비석은 속세와 불계를 구분하는 마음의 문이다. 마음을 열고 사사로운 감정을 내려놔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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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심사는 홍송(紅松) 숲 사이로 나있는 돌계단에서 시작한다. 돌계단 앞에 서있는 두 개의 돌비석, '세심동(洗心洞), 개심사(開心寺)'가 문기둥 역할을 한다. 돌계단은 근처에 있는 산돌을 모아 비탈진 땅 모양대로 쌓은 듯 비뚤비뚤하다. 쌓은 사람들의 정성에 몸이 땅으로 숙어진다. 계단길이 솔숲을 피했는지 솔숲이 계단길을 마다했는지 돌계단 길은 두어 번 꺾여 산중턱까지 이어진다.

마음을 씻고 마음이 열렸다고 생각될 즈음 네모난 긴 연못을 만난다. 못 이름은 경지(鏡池), 거울연못이라는 뜻이다. 홍송 길을 걸으며 '세심과 개심한'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보란 말인가? 연못을 가로지르는 외나무다리는 긴장감과 함께 다시 한 번 번잡한 마음을 내려놓으라 한다.
  
소나무숲과 계단길을 거쳐 온 뒤, 마음을 씻고 마음을 연 나를 비춰보라는 연못인가, 이름마저 경지, 거울 못이다.
▲ 개심사 연못 소나무숲과 계단길을 거쳐 온 뒤, 마음을 씻고 마음을 연 나를 비춰보라는 연못인가, 이름마저 경지, 거울 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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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루 동쪽 벽과 해탈문 사이에 서툴게 쌓은 흙돌담과 뱃살이 흘러내린 듯 아래로 불룩한 두 기둥은 인상적이다.
▲ 개심사 해탈문 안양루 동쪽 벽과 해탈문 사이에 서툴게 쌓은 흙돌담과 뱃살이 흘러내린 듯 아래로 불룩한 두 기둥은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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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나무다리 길은 곧바로 해탈문으로 이어진다. 해탈문에 걸려있는 돌계단에 이르면 앞으로 전개될 영역에 대한 동경과 설렘이 최고조에 달한다. 해탈문은 절집의 문이 아니라 고택의 쪽문처럼 다정하다. 해탈문으로 들어서면 바로 대웅보전 앞마당이다. 홍송 계단길과 외나무다리를 건너왔으니 속세는 이미 저만치에 있다.
  
대웅보전 안마당은 고택의 안채마당처럼 안온하다. 아담한 대웅보전, 친숙한 심검당, 태생적으로 작은 산사의 편안함 때문이다.
▲ 대웅보전 마당 대웅보전 안마당은 고택의 안채마당처럼 안온하다. 아담한 대웅보전, 친숙한 심검당, 태생적으로 작은 산사의 편안함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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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심사의 파격미

개심사의 건축은 파격의 연속이다. 개심사는 못나고 굽은 나무를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아무 거리낌 없이 손에 잡히는 대로 잡아다 천연덕스럽게 지어 놓은 절집이다. 여기에서 거리낌이 없는 상태는 욕심과 집착의 그물에서 벗어난 경지다. 범종각, 요사채, 해탈문, 심검당 모두 파격적으로 보여도 거리낌이 없는 상태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자연을 옮겨온 듯 휘어지고 비뚤어진 나무를 거리낌 없이 사용하여 지은 심검당의 부엌채는 이렇게 지어도 되나 할 정도로 상식을 깨는 파격적인 건축물이다.
▲ 심검당부엌채 자연을 옮겨온 듯 휘어지고 비뚤어진 나무를 거리낌 없이 사용하여 지은 심검당의 부엌채는 이렇게 지어도 되나 할 정도로 상식을 깨는 파격적인 건축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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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을 수호하는 사천왕처럼 힘차고 험상궂다. ‘ㄱ’자로 꺾인 부분에 세워 극적 효과까지 노렸다.
▲ 무량수각 뒤편 요사채 기둥  불법을 수호하는 사천왕처럼 힘차고 험상궂다. ‘ㄱ’자로 꺾인 부분에 세워 극적 효과까지 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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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칼을 찾는 집, 심검당(尋劒堂)은 파격의 절정. 심검당은 1477년에 지은 승방과 나중에 증축한 부엌채로 이루어졌는데 부엌채는 반듯한 승방보고 '나는 더 비뚤어질래!' 하기라도 한 듯 기둥과 보 모두 크게 비틀리고 굽었다. 굽은 것을 쓰든 말든 내가 좋아 휜 것을 택하였으니 그대로 봐달라는 심산이다. 그야말로 내포 땅의 '냅둬유' 기질 아니겠는가.

인위적인 것과 작위적인 것을 철저히 배격하고 오직 자연스러운 형식을 취하고 있다. 어린애가 천진난만하게 쓴 글씨 같고 순진하게 그린 그림 같다. 곧은 것에서 좀처럼 느껴지지 않은 은은한 여운 같은 게 있다. 미적인 것만 본다면 어쩌면 심검당 승방과 부엌채는 주객이 전도된 것 같다. 가장 못나고 가장 약한 것이 가장 잘나고 가장 강한 것이 된 것이다.

개심사 꽃담

파격미는 절제되지 않으면 아름답지 않다. 심검당 벽체는 휘어진 부재에 나무를 덧대 반듯하게 잡고 가장 단순하고 간결하게 디자인하여 뽀얀 꽃담으로 쌓았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순종하는 데서 출발한 파격은 최소한의 인공적인 요소, 꽃담으로 절제되었다. 밑단은 어디서 구했는지 동글동글한 자연석으로 6줄 쌓은 뒤, 그 위는 크기가 다른 와편조각으로 6줄 점선 줄무늬를 내어 면회하였다.
  
파격을 잠재운 절제된 꽃담이다. 비틀리고 까무잡잡한 나무와 반듯하고 뽀얀 꽃담이 잘 어울린다.
▲ 심검당 꽃담 파격을 잠재운 절제된 꽃담이다. 비틀리고 까무잡잡한 나무와 반듯하고 뽀얀 꽃담이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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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수각 뒤편 요사채의 합각은 유난히 넓다. 합각면은 가로줄무늬로 가득 채워 간결한 꽃담으로 처리했다. 가로줄문양은 장수와 해로, 길상을 상징한다.
▲ 요사채 합각꽃담 무량수각 뒤편 요사채의 합각은 유난히 넓다. 합각면은 가로줄무늬로 가득 채워 간결한 꽃담으로 처리했다. 가로줄문양은 장수와 해로, 길상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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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검당 맞은편 승방은 무량수각이다. 천연미는 심검당으로 족했는지 무량수각 마당 쪽은 단정하게 꾸며놓았다. 이것으로 그쳤으면 개심사의 매력은 여기에서 그친다. 무량수각 뒤편 요사채에 더 힘차고 험상궂은 기둥을 거리낌 없이 세워놓았다. 파격이다. 파격을 잠재운 것은 요사채와 무량수각의 합각꽃담이다.

무량수각 합각꽃담은 일정한 간격으로 수평선을 내고 세 개의 동그라미를 정삼각형으로 배열하여 균형을 잡은 것이다. 요사채 꽃담은 아무런 장식 없이 가로줄무늬만으로 가득 채운 간결한 꽃담이다. 가로줄을 반복적으로 사용하여 장수와 해로, 길상을 희구한 것이다.

선가 건축의 특징은 비움이라 했던가. 비움은 장식과 기교까지 포함한다. 개심사 굴뚝꽃담이 그렇다. 온갖 가지 장식으로 치장할 욕망을 억누르고 절제한 끝에 만든 꽃담이 무량수각 굴뚝꽃담이다.
  
별다른 장식과 기교 없이 수키와를 연속적으로 엎어놓아 물결무늬를 낸 수수한 꽃담이다.
▲ 무량수각 굴뚝꽃담  별다른 장식과 기교 없이 수키와를 연속적으로 엎어놓아 물결무늬를 낸 수수한 꽃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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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체는 암키와와 수키와를 번갈아 쌓아 직선과 곡선, 암수의 조화를 꾀했다. 그리고 층마다 반원모양의 수키와를 연속적으로 나열하여 물결이 파동을 일으키는 수파문(水波紋)을 내었다. 반원의 물결은 불면과 불로장생을 꿈꾸며 남쪽 면에서 시작하여 동쪽 면으로 이어지고 요사채 벽체로 향하여 나아간다.

태그:#개심사, #내포, #개심사꽃담, #심검당, #심검당꽃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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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不自美 因人而彰(미불자미 인인이창), 아름다움은 절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인하여 드러난다. 무정한 산수, 사람을 만나 정을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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