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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이번에 좋은 책이 출간되었어요. 내 친구 임경석 교수가 쓴 책인데, <독립운동 열전>이라고 대단한 역작이오."
"임경석, 처음 듣는 분이어요."
"아하, 고교 동기생인데, 일제하 독립운동을 연구한 역사학자이자 탁월한 작가이지요. 늘그막에 쏟아낸 저술들이 장난이 아니네요. 모스크바에 직접 가서 독립운동에 관한 자료를 몽땅 복사해왔다지 않소? 러시아에 보관되어 있는 일제하 독립운동 자료가 자그만치 200만 쪽이 넘는다 하오. 1000쪽짜리 책 2000권 분량 말이오."
"둘이 만나면 심심하지 않겠네요."
"소설보다 더 재미있어요. 간결한 문체에 박진감있는 글이 눈을 사로잡을 거요. <김립 암살 사건>부터 읽어 보세요. 레닌이 조선에 준 자금 200만 루블의 전모가 나와요."


레닌이 건넨 금괴 2500억원어치

내가 200만 루블의 이야기를 처음 접한 것은 10여 년 전 방문한 블라디보스톡의 어느 허름한 한인 식당에서였다. 그날 우리에게 제공된 음식은 김치찌개였는데, 나는 요리가 나오기까지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그곳의 현지 신문을 뒤적였다.

한 귀퉁이에 <레닌과 이동휘의 만남>에 관한 일화가 소개되어 있었다. 눈이 번뜩였다. 그다지 품질이 좋지 않은 사진이었으나 내가 아는 레닌도 보였고, 이동휘도 보였다. 반가웠다. 이동휘에게 레닌은 200만 루블의 자금을 주겠다고 약속했다는 것이다.

레닌은 왜 이동휘에게 거액의 자금을 지원하기로 약조하였던가? 당시 러시아 경제는 절망적 상황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나라 경제가 엉망이 되었고, 혁명과 내전을 치르면서 러시아 민중은 혹심한 궁핍에 처했다. 자기들도 형편이 좋지 않은데, 거액의 자금을 우리에게 지원하다니 약소민족의 독립을 돕고자 한 레닌의 혁명적 진정성이 아니고선 납득하기 힘든 결정이었다.

알 수 없는 것이 루블이었다. 도대체 그 시절 1루블은 얼마의 가치를 가진 화폐였던가? 레닌이 약조한 200만 루블이 오늘날 얼마의 가치를 갖는 자금이었나? 어디를 뒤져도 신뢰할 만한 단서를 찾지 못하였다.
 
상해파의 사진. 맨 첫줄 오른쪽에 앉은 이가 김립이다(임경석 제공).
 상해파의 사진. 맨 첫줄 오른쪽에 앉은 이가 김립이다(임경석 제공).
 
마침내 나의 의문을 풀어준 이가 나타났다. 임경석이다. 작년 겨울 우리는 지리산 뱀사골에서 한밤을 지새우며 토론을 하였다. 나는 물었고, 친구는 답을 하였다. 임경석은 루블의 가치에 대해 거침없이 풀이하였다. 혁명정부 하에서 찍어낸 루블은 금과의 태환이 보장되지 않은 화폐였단다. 그래서 레닌은 금괴를 준 것이다. 1차분으로 지급한 40만 루블의 금괴는 무게로 따지면 327kg에 달하였다. 오늘날 화폐 구매력으로 환산하면 500억 원쯤 되는 자금이었고 레닌이 약조한 200만 루블은 2500억 원에 달하는 거금이었고...

문제는 자금의 행방이었다. "김립은 그 돈으로 북간도의 자기 식구를 위해 토지를 샀고, 자기는 상해에 비밀리 잠복하여 광동 여자를 첩으로 얻어 향락을 누렸다"고 김구는 <백범일지>에서 고발하였다.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지금도 의혹만 무성하다. <백범일지>가 정정되지 않는 한, 우리들은 영원히 김립을 파렴치범으로 기억할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조선공산당 책임비서를 지낸 김철수 선생의 구술록에서 진실의 일부를 들을 수 있었다.

"당시 상해임시정부 안에서는 재정을 둘러싸고 의견이 분분하였어. 외국에 차관을 빌리자는 의견이 제기되었는데, 안창호는 미국을 좋아했지. 이동휘는 소련을 좋아했어. '소련은 혁명국가이다. 우리를 진심으로 도와줄 것이다'고 말했지. 이렇게 의견이 분분하던 끝에 이동휘가 한형권을 모스크바에 보냈어. 한형권은 임시정부의 특사로 모스크바에 가서 레닌으로부터 일차 지급분 40만 원어치의 금괴를 받았고, 김립이 그 돈을 수령하였어.

김립은 임시정부에서 국무총리 이동휘를 보좌하던 국무원 비서실장이었지. 자금을 수령한 김립은 임시정부 개조운동을 벌였어. 당시 임시정부는 정부의 내각 모양을 취하고 있었는데, 김립은 내각을 없애고 임시정부를 혁명운동의 지휘부로 개조하자는 것이었지. 그런데 안창호, 이시영 등 임정의 원로들이 김립의 개혁안을 반대한 거야.

그때 김립의 수중에 18만 원(오늘의 220억여 원)이 남았어. 이 돈을 안 쓴 사람이 없었지. 임시정부 식사비가 이 돈에서 나갔고, 김규식의 여비도 여기에서 지출되었고, 신채호의 역사편찬비도 여기에서 지급되었지. 의열단의 김원봉에게도 무기구입비가 지급되었고 말이야. 나는 자금의 청산보고서를 작성하였기 때문에 자금의 용처를 알지.

그때 김구가 경무국장이었어. 모스크바에서 돈이 왔으면 정부에 내놓아야 한다는 게 김구의 주장이었는데, 김립이 돈을 내놓을 리가 있나? 그 돈은 임시정부에게 준 돈이 아니여. '한인사회당'에게 준 돈이여. 김구 일파가 백주대로에서 김립을 사살했지. 나는 김립의 사체 처분을 동료들에게 맡기고, 바로 은행에 가서 남은 돈을 이체하였어." - <지운 김철수> 중에서


횡령범으로 죽은 김립의 잃어버린 명예

누구의 주장이 옳은가? 김철수의 회고만으로는 나는 사태의 전모를 판단할 수 없었다. 한형권이 임시정부의 특사로 가서 받아온 자금이라면 레닌이 준 자금 40만 루블은 임시정부에게 지원한 독립운동 자금이 아니었을까? 만일 그렇다면 김구의 주장은 옳았다. 김립은 임시정부에게 전달해야 할 독립운동 자금을 자의적으로 써버린 공금 유용죄를 범한 것이다.

그런데 만일 레닌이 준 자금이 김철수의 주장대로 한인사회당에게 지급한 혁명운동 자금이었다면, 이후 임시정부를 혁명운동의 지휘부로 개조하는 데 자금을 썼던 김립의 행위는 정당하였다.

레닌은 누구에게 돈을 준 것일까? 나는 이 문제를 풀지 못하여 애매한 생각을 되풀이하였다. "김립이 자금의 절반을 임시정부에게 주고, 나머지 절반을 한인사회당에게 주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역시 판결은 임경석에게서 나왔다. "도대체 김립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금화 40만 루블의 관할권은 누구에게 있는 것인가?"는 물음을 풀기 위해 임경석은 직접 모스크바에 가서 문서보관소를 뒤졌다. 다섯 종류의 보고서를 찾아냈다. 보고서에 의하면 1920년 9월에 이뤄진 40만 루블의 수령자는 놀랍게도 '박진순'이었다. 박진순은 이동휘, 김립과 함께 한인사회당을 대표하는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자금의 관할권은 한인사회당에게 있었고, 김립은 정당하였다. 의문은 명확히 풀렸다.

임경석은 김립의 암살을 일종의 국가폭력으로 규정하였다. 대한민국이 상해임시정부의 법통을 잇는 국가라면, 임경석의 문제제기를 우리는 진지하게 수용해야 할 것이다. "김립은 이동휘 국무총리와 결탁하여 국가의 공금을 횡령하였다"면서 김립에게 극형의 죄를 선포한 임시정부 포고 제1호는 사실관계를 엄밀히 규명하지 않은 채 발동한 섣부른 결정이었다.

김립이 암살된 것은 포고문이 발령된 지 13일 만이었다. 총성과 함께 김립은 목숨을 잃었고, 독립을 위해 헌신한 김립의 삶은 부정당했다. 목숨을 잃었을 뿐 아니라 명예마저 치욕스럽게 되었다. 과연 그는 죽을죄를 지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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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황광우는 베스트셀러 <철학콘서트>의 저자이다. 1980년대에는 <소외된 삶의 뿌리를 찾아서>와 <들어라 역사의 외침을>을 집필하여 민주화운동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고교 시절 첫 옥고를 치른 이래 20대에는 학생운동에, 30대에는 노동운동에, 40대에는 진보정당운동에 땀을 흘렸다. 지금은 인문연구원 동고송과 장재성기념사업회를 이끌면서 역사정신과 인문정신을 탐색하고 있다.
 
작가 황광우
 작가 황광우

태그:#김립, #임시정부, #김구, #레닌, #임경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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