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처음 유학한 게 1986년입니다. 도쿄에 도착해서 보니 처음에 정신이 없었는데요. 가만 보니까 도로에 주차된 차가 없는 거예요. 93년도에 국내에 들어와서 (일본의 차고 증명제 등)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했는데, 그건 일본 얘기고 우리는 아니다. 나중에 하자라는 두 가지 얘기를 참 많이 들었습니다."
"'나중에'가 오지 않았죠?"
"맞습니다."


명지대 교통공학과 금기정 교수의 이야기다. 금 교수는 '주차난(駐車難)'이 "서서히 물에 잠기듯이" 불어났고, '만성병'에 이르렀다고 표현했다.

영원히, 영원히 차를 밀고 있다
 
 주차장에서 차를 미는 주민의 모습이 바위를 들어올리는 시시포스 같다.

주차장에서 차를 미는 주민의 모습이 바위를 들어올리는 시시포스 같다. ⓒ KBS1

 
15일 방송된 <시사기획 창> '만차사회 안녕하신가요?' 편에서 한국 주차 문제는 시시포스의 형벌에 빗대어 이야기된다. 시시포스가 커다란 바위를 경사진 산 꼭 대기로 영원히 영원히 밀어 올리는 모습, 마치 중립 주차 차량을 밀어서 내 차가 나올 길목을 만드는 모습과 똑 닮아있다.

2022년 1분기 기준, 자동차 등록 대수가 2507만 대를 기록했다. 2인 이상 가구당 1.75대, 이미 1가구 2차량 시대에 진입했다. 주차 공간이 유한하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힌 듯, 자동차는 무한히 늘어나고 있다.

주차장에서 생기는 이웃 간 갈등 이야기가 자동차 동호회와 지역 커뮤니티에 넘쳐난다. '주차 전쟁'에 패배한 차들이 도로를 불법으로 점유하고 있다. 2010년 8450건이었던 불법주정차 민원 건수는 2021년 340만 건으로 늘었다. 무려 400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불법주정차가 유발하는 보행자 사고, 소방차 진입 방해 등 문제도 심각하다.
 
 2017년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진압 당시 불법 주차된 차량 때문에 소방차 진입이 늦어졌다.

2017년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진압 당시 불법 주차된 차량 때문에 소방차 진입이 늦어졌다. ⓒ KBS1

 
부천소방서 고기성 소방위는 "불이 나면 내 집은 안전할 거란 생각을 미리 가지고 계시는데, 그렇지 않다"며 불법주정차로 인한 어려움을 호소했다.

사망자 29명이 발생한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당시에도 길목에 자동차들이 주차되어 있어 사다리차가 진입하지 못했다. 이에 차량을 먼저 정리하면서 화재 진압이 지체되었고, 더 큰 피해를 낳았다고 분석된다.

"내 차에 대한 책임은 내가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집을 재건축하며 개인 주차공간을 마련한 제주특별자치도 주민 인터뷰

집을 재건축하며 개인 주차공간을 마련한 제주특별자치도 주민 인터뷰 ⓒ KBS1

 
공공에서 주차 공간을 공급하는 일은 이미 한계에 도달했다. 주차할 곳은 없는데 개인이 계속해서 차를 구매한다면? 전문가들은 소비자의 자동차 구매 욕구를 떨어뜨리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대표적으로 제주특별자치도의 '차고지 증명제'가 있다. 자동차를 신규 등록하거나 변경, 이전 등록하는 경우에 차량 소유자가 차고지를 먼저 확보할 수 있게 하는 제도이다. 일본은 1962년 이러한 차고지 증명제를 도입해 정착시킨 대표적인 나라다.

주차요금을 유독 아까워하는 인식도 문제로 지적된다. 무인주차장을 운영하는 김영덕씨는 억대 차량을 운전하는 사람들도 주차요금 천 원이 아까워서 고객센터에 화를 낸다고 이야기한다.

"주차비는 세상에서 제일 아까운 돈이라고 생각한다. 굳이 내가 주차비를 내고 주차장을 들어가야 할까? 그냥 길에 댔다가 단속되지 않는다면 4만 원을 아끼는 건데. 이렇게 생각한다."

현재 서울의 주차요금과 주정차 위반 과태료는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 그래서 많은 차주들이 '단속에 걸리지 않을 확률'에 걸고 불법을 저지르기 쉽다. 황경수 제주대 행정학과 교수는 "그냥 재수 나쁘니까 걸린 것이란 인식이 있게 되면 주차 문제에 대해서 사회의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시사기획 창>은 현실에 맞는 주차장법 개정, 보행자 중심의 도시계획 수립 등 공공 측면에서의 해결과 함께 시민들의 자정적 노력이 동반되어야 해결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대한민국 주차난은 '망한 팀 프로젝트' 같다는 생각이 든다. 불가피한 책임을 누구도 나누려 하지 않고, 편하게 '무임주차(無賃駐車)'하는 욕심만 남아 사회문제가 됐다. 그렇다면 비용을 책임지고 분담할 것인가, 아니면 계속해서 거대한 자동차를 무한히 밀어내며 살 것인가? 시민, 국회, 행정부, 건설사와 자동차 산업, 모두가 함께 노력할 문제다.
시사기획창 주차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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