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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은 화물연대의 파업을 '북핵' 위협에 빗댔다. 정부는 화물노동자의 안전과 생계의 불안을 먹잇감 삼아 노조혐오 여론전과 공안 몰이에 나섰다. 국민과 노동자의 안전을 수호해야 하는 국가 책임은 실종됐다. 안전운임제도를 지키고 확장하기 위한 화물연대 파업에 대해 정부는 불법 딱지를 붙였지만, 역설적이게도 검사 출신 대통령은 반헌법적 업무개시명령, 공정위원회를 동원한 신종 노동탄압, 파업권을 무력화하는 손배소 추진으로 법을 훼손하고 있다. 안전한 사회와 화물노동자들의 노동이 존중받는 일터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연속기고를 통해 소개한다.[기자말]
‘반헌법적 업무개시명령 거부한다! 화물연대 시멘트화물노동자 기자회견’이 11월 30일 오전 인천광역시 중구 인천한라시멘트앞에서 열렸다.
 ‘반헌법적 업무개시명령 거부한다! 화물연대 시멘트화물노동자 기자회견’이 11월 30일 오전 인천광역시 중구 인천한라시멘트앞에서 열렸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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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주의 혹은 입헌주의의 요체는 법으로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함에 있다. 인권보장이 없으면 헌법이 아니라고 한 프랑스인권선언이 이를 확인했고, '법에 의한 통치'의 목표는 인권보장에 있음을 규정한 세계인권선언이 이를 단언한다. 이에 우리 헌법은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하는 것을 대한민국의 존재 이유라 규정한다. 그리고 우리는 스스로를 헌법주의자라 명명하며 틈날 때마다 자유와 법치를 앞세우는 대통령의 정부를 가지고 있다.

화물연대의 파업은 저 선언들의 한복판에 자리한다. 일하는 모든 사람이 자신의 노동조건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조를 결성하고 사용자와 교섭하며 경우에 따라 파업과 같은 집단행동으로 나아갈 권리는 우리 헌법 제33조가 보장하는 국민의 기본권이며, 국제법상의 보편 규범이다.

특히 국제노동기구(ILO)는 명확한 어조로 화물연대의 권리 주장을 확인한 바 있다. 화물노동자와 같은 '자영'노동자는 노동조건 개선에 관한 한 그 업무수행에 관하여 다른 사람의 지배를 받는 특수고용 노동자이며, 따라서 다른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자유롭게 노조를 결성하고 단체교섭을 요구할 수 있다고 선언한 것이다.

혐오의 정치

대한민국의 법치는 이런 권리를 법으로 보호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법을 내세우며 국민을 지배하라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기 위하여 법으로 국가 권력을 통제하고 순치하라는 헌법 명령이다. 그래서 최근 보수 정파의 간판 이념으로 걸려 있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조차 국민의 자유·평등의 기본원칙에 의한 법치주의적 통치 질서를 최우선적으로 요구한다. 국민이 가지는 기본적 인권을 존중하며 그를 위해 권력 분립의 형태로 국가권력을 제어하고자 하는 것이다.

헌법주의자 대통령의 정부가 따라야 하는 헌법은 바로 이런 헌법이다. 한나 아렌트의 말처럼 권력은 총구로부터는 결코 나오지 않는다. 그 권력은 우리 국민들이 함께 보유하는 한에서만 존속할 수 있으며, 그것을 정당화하는 것이 바로 헌법이다.

대통령의 권력은 스스로 해석과 집행의 주체가 되어 맘대로 재단하고 선별하는 헌법이 아니라 우리 국민들에 의하여 해석되고 우리 국민들에 의하여 선택된 헌법으로부터 나올 뿐이다. 그리고 그런 권력에 충실할 때 대통령은 비로소 헌법주의자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번 화물연대의 파업 앞에서 정부가 취한 조치들은 반헌법주의의 전형을 이룬다. 노동조건의 개선을 요구하는 화물노동자들의 노동3권을 부정하고, 위헌적인 업무개시명령을 남발하며 강제노동과 노예의 굴종을 강요한다.

화물자동차의 안전 운행을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인 안전운임제의 약속을 번복하며 '우리들과 우리들 자손의 안전'을 영구히 보장하여야 할 국가 책무를 저버린다. 심지어 "귀족노조" 운운으로 화물노동자인 국민과 또 다른 노동자일 수밖에 없는 많은 국민을 이간하면서 혐오의 정치를 선동한다.

'노사 법치주의'라는 이상한 용어
 
윤석열 대통령이 11월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화물연대 집단운송거부 사태 관련해 사상 첫 업무개시명령에 나섰다.
 윤석열 대통령이 11월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화물연대 집단운송거부 사태 관련해 사상 첫 업무개시명령에 나섰다.
ⓒ 대통령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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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업무개시명령만 해도 그렇다. 그것은 전시동원령의 수준을 넘어서는 폭력이다. 전시동원의 경우 전쟁이라는 객관적인 상황 속에서 이루어진다. 하지만 업무개시명령은 "국가경제"("국민경제"가 아니다!)라고 하는 낯선 용어와 함께 정부가 귀걸이 코걸이 식으로 발동할 수 있는 자의적이고 독단적인 규정으로 이루어진다.

대통령은 "노사 법치주의"라는 이상한 용어로 화물연대의 파업에 대처하고자 했지만, 그 법치주의의 핵심 요소인 법률 명확성의 원칙 그 자체를 위반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업무개시명령 제도인 것이다.

정부의 퇴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노동조건의 개선을 말하는 화물노동자들에게 돌연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며 화물연대 조합원 명부 등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화물노동자는 "사업자"이며 사업자들이 계약 조건에 대해 서로 입을 맞추는 것은 위법한 담합 행위라는 것이다.

노동자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국제적 기준은 계약의 형식이 아니라 실제 노무를 제공하는가의 여부다. 화물노동자들이 화주나 운송업자와 1:1의 계약을 체결한다는 외관이 아니라, 그 계약에 따라 운송이라는 노동을 제공하는 것 자체로 그들은 헌법의 보호를 받는 노동자가 된다. 그럼에도 정부는 이런 법의 세계를 무도하게 이탈해 버린다. 대기업의 횡포를 막기 위해 만든 공정거래법을 시장권력의 최하층에 자리한 화물노동자들에 휘두르며 그들의 노동3권을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안전운임제의 본질, '우리들과 우리들 자손의 안전'

다시 말하지만 우리 헌법상의 노동자는 모든 일하는 사람이다. 1948년 제헌헌법안을 심의하던 국회 본회의에서 신광균 의원은 근로자라는 말에 "농민까지도 포함이 됩니까?"라고 물었다. 이에 헌법안을 만들었던 유진오 박사는 명쾌하게 답한다. "농민이라고 하드라도 농민조합을 만든다든지 하는 권리는 역시 18조에 의해서 보장된다고 말씀하겠읍니다."(국회속기록 제18호)

주지하듯 제헌헌법 제18조는 노동3권을 보장하는 규정이다. 노동3권은 노동자와 사용자간의 경제적 이득을 다투는 권리가 아니다. 그것은 일하는 모든 사람들이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유지할 수 있는 노동의 조건을 정하는 권리다.

화물연대의 파업은 정확히 이 지점에서 이루어졌다. 이들이 주장했던 안전운임제의 본질은 '우리들과 우리들 자손의 안전'에 있다. 화물운수에 생명과 신체까지 담보로 내걸어야 하는 참담한 현실을 털어버리고 모두가 안전하고 행복할 수 있는 노동조건을 마련하고자 하는 것이 그 중심을 차지한다. 그래서 화물연대의 파업은 위험 사회에 처한 우리들 모두의 파업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헌법주의자 대통령이라면 이와 같은 헌법 명령을 저버릴 수가 없다. 그가 말하는 자유와 법치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핵심에 이런 당위가 터 잡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경제도 중요하고 질서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따위 자본주의는 벌써 끝났다. 아니, 그런 거대 담론이 아니더라도 사리는 명백하다. 헌법은 어느 한 헌법주의자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것은 화물연대를 비롯해 일하여 먹고 사는 우리 국민 모두의 것이다.
 
‘반헌법적 업무개시명령 거부한다! 화물연대 시멘트화물노동자 기자회견’이 11월 30일 오전 인천광역시 중구 인천한라시멘트앞에서 열렸다.
 ‘반헌법적 업무개시명령 거부한다! 화물연대 시멘트화물노동자 기자회견’이 11월 30일 오전 인천광역시 중구 인천한라시멘트앞에서 열렸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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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참여연대 공동대표입니다. 이 글은 <미디어오늘>에도 게재됩니다.


태그:#화물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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