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인물들의 심리를 탐구해봅니다. 그 때 그 장면 궁금했던 인물들의 심리를 펼쳐보면, 어느 새 우리 자신의 마음도 더 잘 보이게 될 것입니다.[편집자말]
tvN <무인도의 디바>가 막을 내렸다. <무인도의 디바>는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달아나다 바다에 빠진 목하(박은빈)가 무인도에서 15년을 버티다 돌아와 자신의 꿈을 이뤄가는 이야기 속에 삶에 대한 여러 성찰들을 담아낸 따뜻한 드라마였다.
 
그 중에서도 드라마는 목하가 무인도에서 터득한 지혜, 그러니까 걱정하기보다는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하면서 지내면 원하는 것들이 '언젠간 뜻하지 않은 방법으로 이뤄진다'는 메시지를 매우 진하게 전한다. 마음에 와 닿은 메시지였다. 하지만, 내가 이 드라마를 보면서 가장 많이 관찰한 건 따로 있었다. 바로 드라마 속 인물들이 서로를 대하는 태도였다.
 
기호 아버지 봉완(이승준), 란주(김효진)와 매니저들, 그리고 목하와 기호(채종협)가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는 현실 속 우리가 관계 맺는 여러 모습들을 반영하고 있었다. <무인도의 디바>가 보여준 관계에 대해 살펴본다.
 
소유와 집착 – 기호 아버지 정봉완
 

먼저 <무인도의 디바>에는 타인을 '소유'하려는 인물이 등장한다. 바로 폭력적인 아버지 봉완이다. 봉완은 경찰이면서도 자신의 마음에 조금만 들지 않으면 아내 재경(서정연)과 아들 채호(차학연), 기호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른다. 법으로는 자신들을 보호할 수 없었던 이들은 폭력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상두(이중옥)의 도움을 받아 새로운 신분으로 살아간다. 하지만, 봉완은 집요하게 이들을 찾아내 또다시 폭행한다. 마침내 체포되어 조사를 받게 되었을 때 그는 이런 말들을 쏟아낸다.
 
"내 마누라하고 내 새끼야. 그 새끼가 아니라 내꺼라고 내꺼. 내가 내 가족 만나겠다는데 그게 왜 불법이야!" (10회)
 
"한 가족의 가장으로서 가족을 도둑당했습니다. 물건이면 잊으면 되는데 가족이잖아요. 잊을 수가 없어요." (11회)
 

이는 그가 가족을 '소유물'로 여기고 있음이 명백히 드러난 말들이었다. 가족이 '내 것'이니 내 마음대로 해도 되고 '도둑 당한' 물건처럼 찾아야 한다는 그가 식구들을 인격체로 보았을 리 만무하다. 그랬기에 자신의 기분을 거스른다는 이유만으로 폭력을 행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의 이런 소유욕은 다음과 같은 소름끼치는 유서로도 이어진다.
 
'그 놈과 내가 함께 죽으면 내 이름 아래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 그럼 강상두는 무연고자로 기록될 것이고 양재경의 남편이자 정기호 정채호의 아버지로 기록될 거다. 살아서 못한 가장 노릇을 죽어서 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12회)
   
 봉완은 가족을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고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른다.

봉완은 가족을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고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른다. ⓒ tvN

   
그렇다면 도대체 그는 왜 이토록 가족을 소유하지 못해 안달이 난 걸까. 드라마에 그 이유가 나오지 않듯, 봉완은 자신의 이런 모습에 대해 전혀 성찰하지 못한다. 가족에게 집착하는 이유를 알려고 하지도, 폭력에 시달리며 괴로워하는 가족의 마음을 헤아릴 시도조차도 하지 않는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정신화 (자신의 마음을 성찰하고, 타인 역시 그들 나름의 이유가 있음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태도)가 전혀 되지 않는 인물인 것이다.
 
봉완은 정신화 능력이 없이 오직 자신의 기분에 매몰된 채 맺은 관계가 타인은 물론 자기 자신에게도 얼마나 폭력적인지를 잘 보여주었다. 기호, 채호, 재경은 트라우마에 시달려야 했고, 그 스스로도 자살로 생을 마감하니 말이다.
 
이용과 계산 – 매니저들

 
한편 란주를 둘러싼 인물들은 자신의 이득을 위해 타인을 이용하고 계산적으로 대하지만, 마음의 이유를 깨닫고는 반성할 줄도 아는 현실적인 관계를 맺는다.
 
병각(송경철)은 란주의 중학교 시절 음악 선생님으로서 그녀의 재능을 알아보고 최고의 가수로 키워낸다. 하지만, 전성기의 란주는 자신을 함부로 대하는 병각이 아닌 '아티스트'라 불러주는 서준(김주헌)과 손을 잡는다. 서준과 란주는 함께 회사를 키운다. 하지만 서준은 회사가 커지자 점차 마음이 달라진다. 통산 앨범 2000만 장 판매를 달성하면 란주에게 회사 지분의 절반을 넘겨주기로 했던 계약을 파기하기 위해 꼼수를 부리고, 오히려 란주가 그 빛을 잃어가기를 바란다.
 
이런 일들을 겪은 란주는 사람을 쉽게 믿지 못한다. 시간이 흐르고 팬들마저 자신들을 떠나자 점점 더 피폐해져만 간다. '이용되고 버림받는' 두려움 속에 지낸 란주는 그래서 3회 관객들의 환호에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이 바람둥이들아. 당신들 나 잊었었잖아. 나 버렸었잖아. 근데 왜 이제와서 박수 치고 지랄이야.'

하지만,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관계를 맺는 병각과 서준은 적어도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고 성찰할 줄은 안다. 그리고 이 성찰을 실천할 용기를 내기도 한다. 5회 병각은 란주에게 이렇게 사과한다.
 
"가족들 떠나고 일 안 풀려서 화날 때 내가 너한테 화를 냈어. (...) 내가 발탁했고 내가 키웠으니까 내 물건이라고 생각했지. 그때는 그래서 막 대했지."
 

서준 역시 자신이 지나치게 이득만 따져왔음을 깨닫고 "쓰레기는 되기 싫다"며 란주에게 그 동안의 일들을 사과한다. 란주는 이들에게 다시 마음을 연다.
 
이처럼 살면서 우리는 누군가를 이용할 때도 있고, 때로는 배신을 하기도 한다. 우리가 몸 담고 있는 사회는 종종 사람보다 재물과 힘을 더 숭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성찰 능력을 잃지 않고 반성하고 말할 용기만 있다면, 관계를 다시 회복할 수 있다. 그럴 때 우리의 상처도 함께 치유되어 간다.
  
 병각은 란주에게 함부로 대하지만 이에 대해 성찰하고 사과한다.

병각은 란주에게 함부로 대하지만 이에 대해 성찰하고 사과한다. ⓒ tvN

 
신뢰와 진심 – 기호와 목하
 
기호와 목하는 다른 이들에게 바라는 것 없이 오직 신뢰와 진심에 기반해 관계를 맺는다. 기호는 목하를 사랑하지만, 목하를 소유하려 들기는커녕 목하에게 연인으로서의 사랑을 바라지도 않는다. 대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하면서 목하를 도울 뿐이다. 목하가 봉완을 만난 후 자신이 기호 가족에게 리스크가 될까 떠났을 때 그는 목하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는 너고 우린 우리야." (8회)
 
이는 그가 목하를 '자신의 사람'이 아닌 '독립된 존재'로 바라보고 있음이 잘 드러난 말이었다. 이후 기호는 신분 도용이 세상에 알려져 스스로가 목하에게 리스크가 되었을 때 목하가 자신과 더 분리되도록 돕는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내 것'을 만들려고 하지 않고 존재 자체를 진심으로 응원하는 기호의 모습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아마도 기호의 이런 사랑은 누군가를 소유하려 들 때 '폭력'이 발생할 수도 있음을 아버지로부터 뼈저리게 경험했기 때문일 것이다.
 
목하는 란주에게 일관된 신뢰를 보낸다. 목하는 란주를 15년 전과 똑같은 마음으로 응원하고 그녀의 성공을 진심으로 돕는다. 란주가 부당하게 화를 내도, 갑자기 잠수를 타도 개인적인 공격으로 받아들이거나 분노하지 않는다. '그저 나름의 사정이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기다린다. 목하의 이런 모습은 사람은 저마다의 이유로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음을 이해하는 마음, 즉 정신화된 태도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9회엔 목하가 폭력적이었던 아버지의 죽음을 확인하고, 애도하는 마음을 표현하기도 하는데 자신에게 준 상처와 아버지의 삶을 분리해 이야기하는 이 장면은 목하가 정신화능력이 매우 발달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정신화는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하는데 아마 목하는 스스로를 이해하고 수용하는 능력이 있었기에 무인도에서의 15년도 버텨낼 수 있었을 것이다. 
 
기호와 목하처럼 '아무런 대가없이 남의 행복을 진심으로 기뻐해주는 건 어렵고 대단한 일'(11회, 란주)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들은 과거 경험으로부터 배우고, 스스로를 성찰함으로써 키워진 정신화 능력을 통해 보다 진실한 관계를 맺을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목하는 한결같은 마음으로 란주를 응원하고 기다린다.

목하는 한결같은 마음으로 란주를 응원하고 기다린다. ⓒ tvN

 
드라마 곳곳에서 목하는 무인도에서 버틸 때 친구를 만들려고 애쓴 이야기를 들려준다. 갈매기 친구가 무척 소중했다면서 말이다. 이처럼 사람은 완전히 홀로는 살아가기 힘든 존재다. 우리는 늘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그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무인도의 다바>는 서로 관계를 맺어가는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내 마음을 돌아보고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는 정신화 능력임을 잘 보여주었다.
 
나는 얼마나 나에 대해서 알며, 타인의 마음을 존중하는 태도를 지니고 있을까? 지금 관계가 힘겹거나 외롭고 고립감을 느낀다면, 이 드라마 속 인물들에게 나를 비춰보았으면 좋겠다. 이런 성찰을 통해 '마음의 무인도'에서 탈출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송주연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serenity153)에도 실립니다.
무인도의디바 박은빈 김효진 정신화 대인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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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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