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9.06 05:06최종 업데이트 22.09.06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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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소식을 보내오는 시민기자들과 함께 '2022 글로벌 리포트 : 불타는 지구... 이상기후 현장을 보다'를 내보냅니다. 폭염, 폭설, 산불, 홍수와 같은 각종 이상기후 현상과 현지인들의 반응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이에 대한 각국 정부의 대응, 전문가들의 진단을 소개합니다.[편집자말]
8월 초부터 오마이뉴스는 <지구온난화와 북극>(http://omn.kr/208pe)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북극 얼음의 변화가 인간과 동물 그리고 지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심층 분석 보도입니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거칠게 요약하자면 급격한 지구온난화로 인해 극지방의 얼음이 전례 없이 빠른 속도로 녹고 있으며, 그로 인한 기후변화와 자연재해, 생태계 교란 등이 벌써 시작되었다는 겁니다.

이 기획기사가 아니더라도 요즘 여러 매체를 통해 기후위기에 대한 기사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극지방의 얼음이 녹고, 알프스와 히말라야의 만년설이 무너져 내린다는 뉴스들을 보면 맨 먼저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먹을 것이 부족해져 앙상하게 말라 버린 북극곰? 아니면 남극에 내리는 비를 맞고 서식지를 잃어버린 펭귄?

얼음이 녹고 빙붕(얼음덩어리)이 깨지는 모습에서 위기감을 느끼기엔 극지방은 너무 멉니다. 그 곳에 사는 동물들이 어려움에 처한 안타까운 모습 말고는 우리가 체감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습니다. 오히려 북극의 얼음이 녹으면 인도와 아프리카로 돌아가야 하던 뱃길이 북극으로 날 수도 있으니 유럽에 물건을 배로 실어 날라야 하는 우리 입장에서는 더 좋은 거 아니냐는 말도 합니다.
 

우리나라 쌍용건설이 세운 싱가포르의 대표적인 건축물 마리나베이샌즈. 이 건축물 역시 간척지 위에 세운 겁니다. 싱가포르의 주요 시설은 모두 이 같은 간척지 위에 모여 있습니다. ⓒ 이봉렬

  
하지만 싱가포르에 사는 사람들은 좀 다릅니다. 극지방의 얼음이 녹는다는 뉴스를 들을 때마다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바다를 바라봅니다. 출렁이는 파도가 언제 방파제를 넘어서 집과 도로를 덮치게 될지 걱정하는 겁니다.

싱가포르는 적도 부근에 위치한 작은 섬나라입니다. 부산시보다도 작은 면적의 이 섬나라는 1965년에 말레이시아로부터 독립한 후 꾸준한 간척사업을 통해 국토 면적을 25% 이상 넓혔습니다. 2030년까지 10% 이상 추가로 확장할 계획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넓힌 간척지들은 모두 바다와 접해 있으며 해수면에 비해 높이가 그리 높지가 않습니다.

기후변화 데이터 전문단체 클라이밋 센트럴(Climate Central)에서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예상 침수 지역을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아래 그림에서 붉은 색으로 표시된 부분이 해발 5미터 미만의 저지대입니다. 해안선을 따라 싱가포르 국토 전체 면적의 30%가 해수면 상승의 영향을 받는 침수 예상 지역입니다. 싱가포르를 대표하는 건물인 마리나베이 샌즈 호텔이나 주변의 금융 빌딩가, 공항까지 모두 바로 이곳에 세워져 있어서 해수면이 상승하면 바로 영향을 받게 됩니다. 세계 최초로 물 위에 떠 있는 애플스토어도 여기에 있는데 해수면 상승으로 물속에 가라앉을 수도 있습니다.
 

붉은색으로 표시된 부분이 해발 5미터 이하의 저지대입니다. 해안가를 따라 싱가포르 국토의 30%에 해당합니다. ⓒ Climate Central

  
싱가포르 30% 침수 위험

그럼 해수면 상승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지난해 8월 6차 보고서를 펴냈습니다. 여기서는 해수면 상승 부분만 집중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00년간 지구의 평균 해수면은 0.2m 상승했습니다. 고작 0.2m냐고 할 수도 있는데 눈여겨봐야 할 것은 해수면 상승 속도입니다. 1901부터 1971년까지의 평균 해수면 상승률은 연간 1.3mm였는데 2006년부터 2008년 사이에는 연간 3.7mm로 세 배 가까이 빨라졌습니다.

보고서는 "지구 평균 해수면이 21세기 내내 상승할 게 거의 확실하다"고 단언했습니다. 대신 온실가스 배출량에 따라 각기 다른 시나리오를 내놓았습니다. 지금 당장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기 시작하는 가장 바람직한 시나리오(SSP1-1.9)에서는 0.28~0.55m 정도 상승하는 걸로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온실가스 배출 감소에 손을 놓고 지금처럼 계속 가는 가장 나쁜 시나리오(SSP5-8.5)에서는 0.63~1.01m 상승하게 됩니다. 여기에 "빙상의 불안정을 고려한다면 2100년까지 2m, 2150년까지 5m 상승한다는 가능성도 (아직은 신뢰도가 낮지만)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IPCC에서 예측한 평균 해수면 변화. 우리가 하기에 따라서 최대 1미터까지 해수면이 상승할 수 있고, 빙상 불안정 과정을 포함하면 1.5미터 이상으로 높아질 수도 있다고 예측하고 있습니다. ⓒ IPCC

 
2150년은 너무 멀고 신뢰도도 아직 낮다고 하니 5m는 일단 제외하더라도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2100년까지 0.28m에서 최고 1.01m 상승할 거라는 건 분명해 보입니다. 해수면이 1m 높아지는 게 무슨 대수냐 할 수도 있습니다. 해수면의 높이를 이야기할 때는 간조나 만조의 높이가 아니라 평균 높이를 이용합니다. 지면이 평균 높이보다 높다고 하더라도 하루에 두 번 발생하는 조수 활동으로 인한 해수면의 최고 높이는 그보다 높습니다. 여기에 폭풍에 의해 발생하는 비정상적인 수위 상승, 지반 침하, 홍수 등의 조건이 맞아 떨어지면 갑작스럽게 해수면이 지면보다 높아질 수 있습니다. 이를 극한 해수면 현상이라고 하는데 보고서는 지금까지 이 같은 현상이 100년에 한 번 정도 발생했다면 앞으로는 지역에 따라 1년에 한 번씩 발생할 수도 있다고 경고합니다.

싱가포르 대표 일간지 <스트레이트 타임스>역시 국립수자원국(PUB) 책임자와의 인터뷰 기사에서 "해안 해일, 극한의 만조 및 지반 침하를 포함한 모든 요인을 고려하면 싱가포르 부근의 해수면이 4m에서 5m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전했습니다. 종합하자면 싱가포르 해안가를 따라 들어서 있는 공항과 호텔, 초고층 빌딩들이 1년에 한 번씩 침수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웃나라 인도네시아의 수도 자카르타는 해수면 침식과 지반 침하 등으로 도시 면적의 40%가 해수면보다 낮은 상태라 이미 매년 침수를 겪고 있습니다. 결국 인도네시아는 수도를 보르네오 섬의 칼리만탄으로 옮기기로 결정한 상황입니다.

할 수 있는 건 다하는 싱가포르
 

싱가포르 국립수자원국 PUB는 해수면 상승을 대비하기 위한 주무기관으로 선정되어 대대적인 캠페인을 벌이고 있습니다. ⓒ PUB

 
이와 같은 상황에 대한 싱가포르의 대응은 무엇일까요? 해수면 상승에 대한 정부차원의 본격적인 대응은 2019년 리셴룽 총리의 독립기념일 연설로부터 시작됐습니다. 총리는 기후 변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은 싱가포르 국민 모두에게 삶과 죽음에 대한 문제라면서 싱가포르를 보호하기 위해 100년 동안 1000억 싱가포르 달러 (약 95조 원) 이상 필요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 발언 이후 다음 해 4월에 PUB를 해수면 상승에 대비하는 주무 기관으로 선정하고 정책 개발 및 집행, 정부 기관, 전문가, 기업, 이익단체 등 다양한 이해 관계자와의 협력과 조율을 책임지는 역할을 맡겼습니다.

싱가포르가 해수면 상승에 대응하기 위해 제일 먼저 떠올린 방법은 기존의 생태계를 보존하거나 복원하면서 해안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일명 NbS(Nature-based Solutions)라고 부르는 자연기반 해결책을 먼저 시작했습니다.
 

싱가포르 국립공원위원회가 내놓은 NbS(자연기반해결방안) 항목들. 맹그로브 숲 복원, 해양생물 서식지 마련 등 해수면 상승을 대비하기 위한 다양한 자연친화적인 방안들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 싱가포르 국립공원위원회

 
열대지역 바닷가에서 주로 볼 수 있는 맹그로브 숲은 해일이 몰아쳐도 파도에 맞서 해안 지반을 보호하고 해일의 높이를 75%까지 낮출 수 있습니다. 싱가포르 정부는 이 맹그로브 숲을 체계적으로 보호하고 그 범위를 넓히고 있습니다. 산호를 비롯한 해양 생물의 서식지는 파도의 영향을 줄이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방파제를 만들 때 해양 생물이 성장하기 좋은 구조의 경사 방파제를 설치하고 있습니다. 이 밖에도 습지 보호 및 해조류 옮겨심기 등 자연을 이용한 다양한 방법을 시도 중입니다.

이 같은 노력은 해일이나 홍수에 의한 지반 침식을 막을 수는 있지만 해수면 상승 자체에 대한 대안은 되지 못합니다. 때문에 PUB는 간척지 최소 매립 기준을 해수면 대비 3m 높이에서 4m로 높였습니다. 해수면 대비 지대가 낮은 기존의 간척지는 콘크리트 방파제나 석조 옹벽 등의 구조물을 쌓아 보호하고 있습니다. 투아스 항구나 창이공항 5터미널 같은 국가 기반 시설의 경우는 최소 5m 이상에 건설하도록 기준을 더 높였습니다. 국토의 25%가 간척지일 만큼 간척 사업에 진심인 나라에서 간척지 높이를 1m 더 높인다는 건 해수면 상승을 대비한 막대한 추가 비용을 지불하겠다는 뜻입니다.

해수면 상승이 예측보다 더 높아지는 경우 간척지 높이를 올리고 제방을 쌓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시도하고 있는 건 해수면보다 낮은 곳에서 살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겁니다. 간척지 전체를 높게 쌓는 게 아니라 제방은 높게 만들고 그 안의 간척지는 해수면보다도 낮은 상태에서 지속적으로 물을 퍼내는 이른바 폴더식 간척지를 만드는 겁니다. 국토의 3분의 1이 해수면 아래인 네덜란드에서 이미 하고 있는 방식인데 그걸 배워 와서 싱가포르 팔라우 테콩 지역에서 시범적으로 시공하고 있습니다. 해수면 상승에 대비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건 다 시도해 보는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라가 물에 잠기게 되니까요.
 

팔라우 테콩 지역에서 시도하고 있는 폴더식 간척지 모습. 해수면 보다 낮은 땅에서 지속적으로 물을 관리하는 형태의 간척지입니다. ⓒ HDB


한국은 해수면 상승에서 안전할까

천문학적인 예산이 소요되는 이러한 노력들도 해수면 상승이 최대 예측치를 벗어나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북극의 얼음이 모두 녹으면 해수면이 7m까지 올라 갈 수도 있다는데 지대가 낮은 섬나라 싱가포르엔 절망적인 상황이 되는 것입니다. 남극의 얼음이 녹는 건 아직 계산에 안 넣었음에도 이 정도입니다. 그래도 싱가포르는 수십조 원의 예산을 들여서 상황에 따른 대책을 세우는 중입니다.

적도의 많은 나라들은 부족한 예산 때문에 근본 대책은 포기하고 바다만 바라보거나 기껏해야 더 높은 지대로 옮겨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과연 싱가포르와 같은 적도의 섬나라에만 해당되는 일일까요?
 

클라이밋 센트럴의 시뮬레이션 결과. 한국도 인천, 부산, 울산을 비롯한 바닷가 여러 지역들이 해수면 대비 5미터 이하로 해수면 상승에 곧바로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 Climate Central

 
앞서 이용한 클라이밋 센트럴의 시뮬레이션 도구를 이용해서 한국의 해발 5미터 미만 지역을 확인해 봤습니다. 인천공항을 포함한 인천지역에서 시작해 평택과 서산을 거쳐 부안과 김제, 군산을 지나 전남의 섬 지역 모두가 붉게 표시된 걸 볼 수 있습니다.

김해공항은 해수면 대비 고작 1.8m 높이에 있고, 부산에서 포항과 울산을 지나 강원도의 동해안 일부 지역까지도 저지대가 많습니다. 50년 뒤인 2070년,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연간 피해액이 부산의 경우 30억 달러(약 3조6000억 원), 울산은 5억700만 달러(약 6000억 원), 인천은 9억6200만 달러(약 1조1600억 원)에 이른다는 예측도 있습니다.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피해에 한국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겁니다.

싱가포르는 진작부터 해수면 상승에 대비하기 위해 전담 부처를 지정하고 생태계 복원부터 방파제 건설 등 다양한 대책을 마련하는 중인데 반해 한국은 정부 차원의 별다른 대책을 찾아볼 수가 없을 뿐 아니라 해수면 상승에 대한 위기의식조차 부족한 것처럼 보입니다.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북극곰이 굶고 펭귄의 서식지가 줄어드는 차원을 넘어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곳까지 벌써 물이 차오르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우리 세대가 살던 땅에서 우리의 2세가 살지 못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해수면 상승에 대비하기 위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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