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0.21 14:52최종 업데이트 22.10.21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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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 1구에 있는 파리바게뜨 샤틀레점 앞에서 프랑스 최대 노동조합 중 하나인 프랑스노동총동맹(CGT)이 한국의 파리바게뜨를 규탄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 목수정


지난 20일, 프랑스 파리 1구에 있는 파리바게뜨 지점 앞에서 프랑스 최대 노동조합 중 하나인 프랑스노동총동맹(CGT)이 한국의 파리바게뜨 규탄 집회를 가졌다.  

CGT 노조원 15명이 참여한 이날 집회는 오전 11시 30분부터 1시간 동안 파리바게뜨 샤틀레점 앞에서 열렸다. 이들은 파리바게뜨가 속한 SPC 그룹이 노동자들의 노조할 권리를 박탈하고, 안전을 위협하는 노동환경을 방치하며, 인권유린과 여성차별은 물론 상식적인 국제 노동법을 준수하지 않는 기업임을 전했다.  


CGT 아시아협력국장인 실뱅 골드스타인은 '1주일 전 한국에 가서 SPC의 노동탄압과 기본적 인권도 무시되는 인권탄압, 노동자 안전을 위협하는 야만적 노동환경을 확인했다'며 '파리바게뜨에 민주노조 설립을 위해 싸우고 있는 화섬식품노조와 함께 시위하고 이후 파리에서 연대투쟁을 지속할 것을 약속했다'고 말했다.

불과 며칠 전 평택에 있는 SPC 계열사 SPL 제빵공장에서 끼임사고로 23살의 여성 노동자가 사망한 사건에 대해서는 사태를 좀 더 자세히 알고 있는 내가 마이크를 받아 증언했다. 마침 점심시간이었고 식당이 운집해있던 거리의 테라스에서 여러 사람이 점심을 먹으며 우리의 발언에 귀를 기울였다.

"여러분이 지금 드시고 계시는 빵은 노동자의 피와 살을 갈아 만든 빵입니다. 파리바게뜨라 써 있는 이 빵 가게는 한국의 거대한 제과 재벌의 체인점입니다. 그 반죽 공장에서 며칠 전 한 노동자가 기계에 삼켜지며 사망했지만 사측은 사고 현장에 흰 천을 씌우고 다른 기계를 여전히 돌리게 했습니다.

비슷한 안전사고가 1주일 전에도 발생했지만, 사측은 오히려 노동자를 혼내고, 알아서 치료받게 할 뿐, 아무런 안전 조치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한국에서는 이 살인 기업의 빵을 더 이상 먹지 않겠다는 불매운동이 번지고 있습니다.


파리에 있는 다른 모든 빵집과 전혀 다를 바 없는 이 평범한 빵집이 어떤 실체를 가지고 있는지 여러분들이 아셨으면 합니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물론, 함께 집회에 나왔던 CGT 노조원들도, 이토록 끔찍한 사건의 전말에 대해선 자세히 알지 못했는지 경악하는 모습이었다. 놀란 얼굴로 발언을 듣고 있던 한 청년은 내게 다가와 사태를 더 자세히 알고 싶다고 청하기도 했다.

그는 이 빵집이 한국 제과업계의 체인점이라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고, 판매되는 제품에 대한 만족도는 낮지만 이 동네에 살기 때문에 오곤 한다고 했다. 사고를 대하는 파리바게뜨 측의 경악스러운 태도를 듣고, 끔찍한 얘기라고 말하며 다시는 들르지 않을 거라고, 알려줘서 고맙다고 했다.

실망스러운 파리의 파리바게뜨
 

이날 집회에는 SPC 계열사 SPL 제빵공장에서 사망한 여성노동자를 추모하기 위해 꽃을 들고 찾아온 교민들도 있었다. ⓒ 목수정


이날 집회 장소였던 파리바게뜨 샤틀레 매장은 무려 7개의 지하철 노선이 교차하는 파리 중심가이자 교통의 요지에 있다. 입지 면에선 최고의 자리, 관광객이 지나가다 들를 수 있는 좋은 자리다. 파리바게뜨의 또 다른 매장도 주로 관광객들을 상대로 하는 생 미셸 지구에 위치한다. 구글에 달린 평가를 들여다보니 비교적 높은 평점에도 악평도 적지 않다.

프랑스에는 한국과 달리 체인 제과점이 극소수다. 대부분의 동네 골목마다 매일 직접 빵을 반죽해 구워서 파는 소규모 빵집들이 포진하고 있다.  

마치 파리를 대표하는 바게트를 팔 것처럼 여겨지는 상호, 100% 현지인으로 구성된 직원, 한국색을 드러내는 단 하나의 상징물이나 장식도 없는 이 매장이 한국에서 진출한 대기업 체인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근처 직장에서 일한다는 또 다른 청년은, 이 매장의 책임자가 자주 손님들과 트러블을 일으킨다며, 그 트러블은 직원의 불친절한 태도나 제품의 질이 떨어지는 문제에서 온다고 지적했다. 그 역시 이 빵집이 한국체인이라는 건 전혀 알지 못했고, 알 수 없는 게 당연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2014년 파리바게뜨가 처음 파리에 진출한다는 소식이 알려졌을 때, 교민들 사이에선 은근한 기대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한국에서만 먹을 수 있는 특유의 빵들에 대한 향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문을 연 매장은 파리의 다른 빵집들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혹시 잘못 온 것인가 다시 나가서 이름을 확인했을 정도로.

우리가 알고 있는 에펠탑이 그려있는 로고도 아니었고, 익히 보아온 군청색 간판도 아니었다. 교민들이나 유학생들도 이구동성으로 이 실망스러운 파리바게뜨에 대해 원성이 높았다. 현지 입맛에 맞추기 위한 노력이었을까?

SPC 행보를 주시하는 CGT
 

CGT 노조원들은 파리바게뜨 샤틀레 매장 앞에서 '단결투쟁'이라고 한글로 적힌 띠를 두르고 행인들에게 전단을 나눠주었다. ⓒ 목수정


파리 중심가인 오페라 지구에는 아키 불랑제라는 일본식 빵집이 있다. 그곳은 전원 일본인 직원으로 운영되고, 전적으로 일본식 베이커리를 선보인다. 그래서 일본 베이커리에 익숙한 일본이나 한국 손님도 많지만, 다른 나라 음식문화에 왕성한 호기심을 보이는 프랑스인들로 문전성시를 이루며, 같은 거리에 이미 세 개의 매장을 냈다.

그러나 파리의 파리바게뜨는 여느 빵집들보다 큰 규모, 휘황한 실내장식을 하고 있지만, 서비스와 맛에서 좋은 평가를 못 듣고, 미심쩍은 신선도로 현지인들의 불평을 살 뿐 아니라, 한국식 베이커리를 세상에 알리는 일도 하고 있지 않다.

파리바게뜨가 한국 진출 기업이라는 사실을 알고 난 현지인들의 반응은 "대체 왜?" 였다. 한국기업이 와서 비슷한 맛을 흉내 내려는 이유가 뭔지 묻는다. 파리지앵들도, 파리에 사는 한국 교민들도 마찬가지다.

파리바게뜨를 거느린 SPC 그룹은 사고 다음 날에도 사고에 대한 공식 언급 없이 그들의 해외 진출에 대한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인간의 기본적 태도를 상실한 채, 오직 '공격적' 경영에 몰두하는 듯하다.  SPC 그룹은 프랑스의 샌드위치 전문점 리나스(LINA'S)를 지난 6월에 인수하기도 했다. CGT의 고민은 여기 있다. 악덕 기업, 노조탄압 기업이 프랑스 땅에 점점 넓게 발을 들이는 것을 이들은 결코 원치 않는다. 더구나 한 나라의 수도인 파리라는 지명을 버젓이 상호로 사용하고 있기에, 이들은 더욱 민감하게 SPC의 행보를 주시할 수밖에 없다. 

그들이 직접 한국 노동자들과 연대하기 위해 한국을 다녀가고, 지난 6월에 이어 다시 한번 집회를 연 것은 바로 이런 각별한 요주의 기업 목록에 SPC 그룹이 올라와 있기 때문이다. 이미 삼성이 2014년 프랑스 인권단체가 주는 피노키오상(가장 거짓말 잘하는 기업)을 받으면서 그 악명을 널리 떨친 바 있다. 

집회가 끝나고 헤어지며 한국 노동자들을 위해 함께 싸워주어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그들은 "만국의 노동자들이 연대해야 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먼 나라 노동자들의 뜨거운 연대에 한국의 시민들이 화답할 수 있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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