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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이 크게 변했다. 고급 호텔의 화장실 풍경을 이제는 시내 곳곳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다.

서울시 화장실수준향상반의 2002년 추진실적을 보면, 17,422개의 다중화장실 상태 점검이 실시됐고, 그 중 7,221개(41.4%) 화장실의 개선이 완료된 상태다.

2003년에는 1만여 개의 공중·다중 화장실과 3만여 개의 음식점 화장실을 대상으로, 개선 작업을 실시할 계획이다. 화장실의 변화는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남자화장실에는 여전히 변하지 않고 있는 문제점들이 있다.

남자 화장실, 가려 주세요

지난 3월 2일 서울시내 150명의 시민(남:80명, 여:70명)들을 대상으로 남자 화장실에 관한 설문조사를 펼쳤다. 설문조사 결과, 남녀 공통으로 지적된 문제가 있다. 바로 남자화장실의 '외부 노출' 문제다.

이에 대해 남성응답자 중 83%가 불편함을 얘기했고, 이 중 50%가 프라이버시 침해라며, 가림막 설치를 요구했다. 여성의 경우, 응답자의 거의 대부분인 95%가 가림막 설치에 동의했다.

화장실 외부 노출 문제는 서울시와 화장실 문화시민연대가 공동으로 벌이는 [실태조사 체크리스트] 사항에도 포함돼 있다. 실제적으로 많이 개선된 것도 사실이다. 신규로 설치되는 화장실의 경우 외부 노출 방지가 중요 고려 사항이다.

그러나 아직도 상당수의 남자 화장실들은 외부에 노출돼 있다. 화장실 입구에서 조금만 눈을 돌려도 남성들이 소변보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강남역의 한 화장실은 '기분 좋은 화장실' 이라는 표지가 무색하게, 외부 흡연실에서, 남자 화장실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인다.

화장실문화시민연대(이하 화문연) 표혜령 사무국장에 따르면, 기존 화장실의 경우, 공간 부족과 구조변경에 들어가는 추가예산을 핑계로 개선이 잘 안 되고 있다고 한다. 기본 사양이 옵션(선택사양)이 되고 있는 것이다.

남성들, 소변 볼 때 불편 느껴. 그러나

▲ 강남역 남자화장실. 내부가 훤히 들여다 보인다.
ⓒ 이호찬
남녀 화장실 구조에는 큰 차이가 하나 있다. 소변기와 대변기의 구별이다. 남자 화장실의 경우 소변기가 별도로 설치돼 있다. 이것은 남녀의 신체적 차이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소변기 사이에 칸막이가 없는 것은 무엇으로 설명될까?

현재 우리나라 대부분의 남자 화장실은 소변기가 좌우 일렬로 배치돼 있다. 소변기 사이에 칸막이가 설치돼 있는 곳은 거의 없다. 소변기 개수가 많은 곳일수록, 칸막이를 찾아보기는 더욱 어렵다.

설문조사 결과 75% 이상의 남성들이 칸막이가 없는 것에 대해 '불편을 느낀 적이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이 중 80%는 '칸막이가 꼭 있을 필요는 없다'는 다소 이중적인 태도를 보였다. 설문조사에 응한 조도연(28, 직장인)씨는 "칸막이가 있어야 한다.

남자들이 소변볼 때 쓸데없이 경쟁의식이 생기기도 한다"면서, "사춘기 때는 신경이 많이 쓰였지만, 지금은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고 답했다. 화장실 구조에 익숙해진 것이다.

▲ 서울 서초동 만남의 광장 휴게소 화장실. 소변기 사이에 칸막이가 설치돼 있다. (사진제공: www.toilet.seoul.kr)
칸막이 한 개당 가격은 보통 4-8만원 선. 대규모 화장실의 경우 소변기마다 칸막이가 설치될 경우, 50-100만원 사이의 비용이 들어간다. 설치자의 입장에선 적지 않은 금액일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비용보다 설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다. '쾌적한 화장실'을 지향하며, 화장실 혁명이 일어나고 있는 요즘이다.

이제 남성들도 굳이 적응할 필요 없이, 마음 편히 소변볼 권리를 누릴 때가 오지 않았는가?

남자화장실의 여성 청소부, 서로간의 배려 필요

▲ 서울 마포 월드컵 시범 공중화장실. 대부분의 남자화장실은 이처럼 소변기 사이에 칸막이가 없다. (사진제공:www.toilet.seoul.kr)
남자 화장실에서 개선돼야 할 또 한가지는 '남자화장실을 여성이 청소하는 문제'다. 남자 화장실안에서 여성청소부들을 만나는 것은 이제 흔한 일이다. 기자 역시, 소변을 보던 중 여성청소부가 들어와 소변기로 몸을 밀착시켰던 경험이 종종 있다.

이번 설문조사에서 36%의 남성들은 여성청소부가 남자 화장실을 청소하는 것이 '상호간의 인권침해'이며, 남자화장실은 '남성이 청소해야한다'고 답했다.

현재 서울 시내 공중화장실 관리원 중 8-90%가 5-60대의 여성들이다. 화장실 관리를 지원하는 남성 인력이 드물기 때문이다. 5-60만원의 저임금 때문이기도 하지만, 남자가 하기에는 더럽고 천한 일이라는 남성 우월적 직업의식이 사회 속에 강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이 더 큰 이유다. 현실적으로, 대부분의 남자화장실 청소를 여성들이 맡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화장실 안에서 남성들이 용변을 볼 때, 꼭 청소를 해야 되는 것일까? 이에 대해 화문연 표사무국장은 "남성들이 화장실을 깨끗이 이용하는 것이 먼저다"라고 지적하면서 "소변볼 때 한발짝만 더 다가서기를 바란다"고 부탁한다.

원래 사람이 없는 아침, 저녁을 이용해 청소하는 것이 원칙임에도, 불과 20여명만 이용해도 냄새가 나고 지저분해지기 때문에, 수시로 청소를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표 사무국장은 화장실 관리원 대상의 교육에서, 사람이 없을 때를 골라 '청소중' 표시를 하고, 청소하기를 권장한다. 그러나 이 역시도 '나만 잠깐 들어갈께요'하며 밀고 들어오는 남성들이 있는 한 쉽지 않은 대안이다.

교대역의 화장실 관리를 담당하고 있는 청소부 박복순(63)씨는 '남자화장실 청소의 가장 어려운 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예상치 못한 답을 줬다.

"대변이나 아무데나 안 봤으면 좋겠다"는 것. 소변기, 세면대 아래, 포대자루 위, 심지어는 지하철 선로 위에 대변을 보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인권 침해를 논하기에는 아직 상호간의 기본적 배려가 부족한 현실이다.

사람과 구조, 함께 변해야

화장실은 더 이상 부끄러움, 불쾌함의 대상이 아니다.

화문연 표사무국장의 말처럼, 배설이라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를 해결하는 아늑하고 쾌적한 공간이어야 한다. 그렇게 바뀌어 가고 있는 요즘이다.

예로부터 화장실은 좋은 생각을 하는 3곳 중의 1곳이라는 뜻의 삼상사(三上思 : 좋은 생각은 말 타고 가면서 하고 베갯머리에서 하고 화장실에서 한다)라고 했다. 옛 말씀대로 공중화장실이 좋은 생각을 함께 할 수 있는 곳이 되기 위해선, 좋은 생각만을 떠오르게 하는 환경이 돼야 한다. 사람과 구조의 동시 업그레이드(Upgrade)가 필요하다.

남자화장실과 남성중심주의적 문화?

기자가 실시한 이번 설문조사 결과에는 특이한 점이 있다. 대부분의 남성들이 소변기 사이에 칸막이가 없는 것에 대해 '가끔 불편할 때'가 있음에도, 칸막이가 없어도 '상관없다'고 답한 것이다. 또, '외부노출'에 있어서도, 거의 모든 여성들(95%)이 '보기에 불쾌하다'며 '가림막 설치'를 요구한 반면, 남성들의 상당수는 '불편하지 않다'(16%)거나, 가림막 설치까지는 필요 없는 '조금 불편한' 정도(43%)라고 답했다.

이런 현상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경희대 여성학 강사 정희진씨는 "대다수 남성들은 칸막이가 없는 것에 크게 문제 의식을 못 느낄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이것은 남성들의 돌 사진에는 누드사진이 꼭 있는 것처럼, 남성이라는 것이 하나의 '라이센스' 인 사회분위기의 반영이라고 평했다. 즉,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로뎅은 남자), 인류라는 뜻의 영어 단어 'Mankind'에서 드러나듯, 남성우월주의 문화가 남성의 몸을 인간의 몸과 일치시키며, 남성들에게 노출에 대한 거부감을 없애줬다는 것이다.

한편, 남성들에 따라 노출에 대한 부담 차이가 있다는 심리학적 분석도 있다. 윤가현 전남대 심리학과 교수는 "화장실에서 여러 사람이 소변을 볼 때, 자신의 성기가 다른 사람에 비해 크다고 생각하는 남성들은 고의로 성기를 노출시킨 상태에서 소변을 보거나, 자리가 여러 개 비어 있어도 옆에 사람이 있는 곳에 가서 소변을 보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윤교수는 이 같은 현상이 "성기의 크기를 인간다움(남자다움)의 기준으로 여겨온대서 비롯됐다"고 분석했다. 또한, 남성들간에 서로 의식하지 않고 소변을 보기 위해 칸막이의 필요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남자가 뭘..'이라거나, '남자는 이래야 한다'는 말을 우리는 쉽게 들을 수 있다. 이런 말들 속에는 남성우월주의적 가치관과 왜곡된 남성상의 강요가 함께 내포돼 있다. 남성들의 대다수가 하루에 적어도 한번은 이용하는 공중화장실. 지금의 공중화장실의 구조 역시도, 이러한 문화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더 나아가 남자화장실이 진정한(?) 남자다움을 반복 학습하는 공간이 되고 있다고 볼 수는 없을까? / 이호찬 기자

덧붙이는 글 | 한겨레문화센터 21기 기자학교 실습신문 '한우리'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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