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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자전거 파는 가게에 가서 전기 자전거를 샀다. 남편이 2년 전부터 사 달라고 노래 불렀는데 사 주지 않았다. 남편이 아직 회사에 다니고 있어서 자전거를 사도 많이 탈 것 같지 않아서다. 남편은 물건 사는 것을 좋아한다. 사 두고 사용하지 않는 것도 많다. 전기 자전거는 가격도 만만치 않다. 100만 원이 훌쩍 넘는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자전거 배터리 충전할 때 폭발 위험도 있다고 하니 그것도 걱정이 됐다. 나중에 처리하는 것도 문제라고 들었다. 사용법이나 주의 사항을 찾아보고 꼼꼼하게 읽어 봐야겠다. 사 두고 안 타면 소용없기에 열심히 탈 것이라고 약속해서 미루고 미루다가 2년 만에 드디어 샀다.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주는데 산 사람 소원은 들어주어야지' 하는 마음이었다.
 
남편에게 2년 만에 사준 전기 자전거다. 접어서 세워두니 자리도 많이 차지하지 않는다.
 남편에게 2년 만에 사준 전기 자전거다. 접어서 세워두니 자리도 많이 차지하지 않는다.
ⓒ 유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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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자전거를 사 주었더니 남편이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 세워둔 자전거를 이리 보고 저리 보고, 여기 만져보고 저기 만져보며 행복해했다. 자전거를 접어보고 또 펼쳐보며 사용법을 열심히 익히고 있다. 좋아하는 남편과 달리 나는 걱정부터 앞섰다. 바퀴가 너무 작아서 남편의 몸무게를 견딜지도 걱정이고, 타다가 넘어져서 다칠까 봐도 걱정이 된다.

마음은 청춘이나 몸은 마음 같지 않다

걱정이 현실로 나타났다. 지난 토요일에 이발한다고 자전거를 타고 신나게 미용실에 다녀왔다. 자전거를 현관에 세워두고 들어오더니 소독약을 찾았다. 자전거를 타고 오르막길을 올라오는데 갑자기 어르신이 지나가셔서 급정거를 하려다가 몸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넘어졌다고 한다. 약상자를 꺼내와서 다친 곳을 소독하고 약을 발라주었다. 멍이 좀 들고 찰과상 정도라서 이만하길 다행이다.
  
전기 자전거를 타고 이발하러 갔다가 넘어져서 다친 상처다. 처음에는 멍이 크게 들었었는데 약 바르고 상처가 아물고 있다.
 전기 자전거를 타고 이발하러 갔다가 넘어져서 다친 상처다. 처음에는 멍이 크게 들었었는데 약 바르고 상처가 아물고 있다.
ⓒ 유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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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친 다리 상처는 약을 바르니 아물었다. 조심 또 조심해서 타라고 했다. 절대로 속도 내지 말고 천천히 타라고 일렀다. 헬멧도 쓰면 좋은데 불편하다고 쓰지 않는다. 요즘 내가 아들 한 명을 다시 키우는 기분이다. '물가에 내놓은 아이 같다.'는 말이 실감이 된다.

남편은 일흔 살이다. 마음은 청춘이겠지만 몸은 그렇지 않다. 그래도 요즘 자전거 덕분에 아파트 앞 상가에 가는 일도 신나 한다. 주말이다. 주말에는 아침을 빵과 커피로 가볍게 먹는다. 만들어놓은 샐러드로 샐러드빵을 만들어 먹으려고 하는데 빵을 다 먹어 버렸다. 남편이 자전거를 타고 빵집에 가서 모닝빵을 사 왔다. 자전거를 사 준 보람이 있다.
  
자전거 덕분에 남편은 심부름 가는 것도 신나한다.
 자전거 덕분에 남편은 심부름 가는 것도 신나한다.
ⓒ 유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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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사 온 모닝빵으로 샐러드빵을 만들었다. 커피도 남편이 내려서 샐러드빵과 맛있게 먹었다. 아침을 먹으며 남편이 나도 한 번 타 보라고 했다. 자전거 타 본 것이 아주 오래되어 탈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어렵지 않다고 하며 조작법을 가르쳐 주었다. 자전거를 가지고 아파트 마당으로 내려갔다. 혹시 넘어질지 몰라서 헬멧까지 썼다. 페달을 밟으니 자전거가 앞으로 나가서 신기했다. 처음에는 불안했는데 조금씩 자연스럽게 탔다.
  
남편이 어렵지 않다고 한 번 타보라고 해서 아파트 마당에서 전기 자전거를 처음 타 보았다.
 남편이 어렵지 않다고 한 번 타보라고 해서 아파트 마당에서 전기 자전거를 처음 타 보았다.
ⓒ 서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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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고등학생 시절이 생각났다. 가끔 일요일 아침에 자전거를 타고 송정 솔밭을 지나 경포바다를 돌아오던 때가 생각났다. 자전거를 타고 바다를 보고 오면 공부하느라 받은 스트레스가 확 풀렸다. 바다를 향해 크게 "야호!"를 외치며 마음속에 있던 답답함도 날려 보냈다.

우리 집은 강릉 시내에 있어서 송정 쪽으로 돌아 경포 바다를 보고 경포 호수를 돌아오는 코스였다. 1시간 정도 걸렸으나 바닷가에 머무는 시간에 따라 달라졌다. 오늘 자전거를 타며 학창 시절 추억을 돌아보니 고향에 한번 다녀오고 싶다. 5월에는 어버이날도 있어서 돌아가신 부모님도 많이 생각난다. 강릉에 가면 남편과 자전거로 경포 호수도 한 바퀴 돌아봐야겠다.

가까운 거리는 걷거나 자전거로

남편은 걷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늘 차로 다녔다. 차로 다니던 마트나 교회, 은행 등 가까운 곳은 이제 자전거를 타고 다녀온다. 가까운 곳을 자전거로 다녀오면 환경보호에도 좋다고 하니 자전거는 잘 산 것 같다. 남편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진작 사 줄 걸 후회도 된다. 그러나 여전히 걱정은 된다. 잠시 방심하면 다칠 수 있으니 정신 바짝 차리고 조심 또 조심하며 타라고 오늘도 신신당부한다. 마치 그 옛날 아들이 자전거 탈 때처럼 잔소리를 하게 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브런치에도 발행될 수 있습니다.


태그:#전기자전거,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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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교원입니다. 등단시인이고, 에세이를 씁니다. 평범한 일상이지만, 그 안에서 행복을 찾으려고 기사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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