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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여기저기 꽃 박람회와 축제가 한창이다. 혼자 보기 아까운지 지인들이 현장의 다양한 꽃 사진을 연신 보내준다. 그런데 이상하다. 아름다운 꽃 사진을 보면서도 감흥이 별로다. 사진을 공유하고 이를 활용하는 쪽은 아내다.
     
꽃 사진에 냉담한 것이 녹록지 않은 삶 탓으로 돌리지만 실은 내가 꽃을 제대로 볼 줄 모르는 것이다.
 
길가에 심은 해당화
 길가에 심은 해당화
ⓒ 이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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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병원을 다녀오다 도로에 심어놓은 꽃을 보고 아내가 걸음을 멈췄다. 활짝 핀 '해당화' 때문이다. 화려한 꽃잎은 부드럽고 촉촉하다. 사진을 찍기 위해 핸드폰을 갖다 댔다.  
    
아내는 꽃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감수성이 예민하다고 할까. 꽃을 보는 눈이 남다르다. 흔들거리는 '버들강아지'를 보고 귀여운 애교를 부린다고 한다.  
    
아내가 꽃을 바라보는 모습은 사람과 대화하는 장면과 유사하다. 봄을 알리는 연두색 꽃망울을 보고는 "저 이쁜 것들 봐!"라며 반가워 어쩔 줄 모른다. 감동이 강물처럼 흐른다.  
   
바로 그거다. 아내는 꽃을 사랑의 눈으로 바라본다. 수술과 씨방, 꽃받침까지 속속들이 살피는데 관찰하는 모습은 마치 식물학자 같다.
     
아내는 시골에서 자라서 들에 핀 꽃들도 많이 알고 있다. 내가 모르는 풀과 꽃들을 가끔 가르쳐주기도 한다. 설명을 들을 때 아내의 따뜻한 마음이 절로 드러난다.
     
아내는 어릴 적 친구들과 쑥을 뜯거나 나물을 캔 추억을 들려준다. 60세가 훨씬 넘은 친구들은 지금도 쑥을 뜯어 이것으로 떡을 만들어 돌린다고 한다.

어려서 시골에서 자란 아내는 도회지에서 큰 나와 여러모로 정서가 다르다.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하는 아내의 어린 시절 풍경은 내게는 동경의 대상이다.

아내의 풀과 꽃사랑은 환경이 바뀌고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여전하다. 아내가 지금도 고향 사투리를 잊어버리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아내는 산길에서 예쁜 꽃이나 풀을 보면 씨를 받거나 집에 가져가고 싶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그러나 나는 아내의 그런 마음이 결코 밉지 않다. 꽃을 대하는 심성이 착해 생기는 단순한 욕심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내가 애지중지하는 화초'게발선인장'
 아내가 애지중지하는 화초'게발선인장'
ⓒ 이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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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애지중지하는 꽃이 시들거나 죽으면 굉장히 안타까워한다. 꽃이 잘못된 것이 내 탓이라 의심하기도 한다.
     
한 번은 장독대에 심어놓은 야생화꽃을 아버지가 시들어 죽은 것으로 착각해 버렸다가 난리가 났다. 그래서 아내가 관리하는 화분에는 얼씬 하지 않는다. 별도 표지를 달거나 아내가 특별히 키우는 것이니 물을 주거나 손대지 말라고 아버지께 신신당부하기도 한다.
     
난초 소식을 기다리는 아내는 난이 대견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은은한 향기가 나면 내게 제일 먼저 알린다. 그러면 나는 난에 코를 박고 킁킁거린다. 아내는 '돌나물'도 화분에 심어놨다. 걱정하지 않아도 무성하게 자라는 조그만 나물이 밥상에 오르다니 신기하다.
 
화분에 심은 돌나물
 화분에 심은 돌나물
ⓒ 이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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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대파뿌리 사랑은 수십년째다. 자란 파를 잘라 요리하는 아내에게 갖다 주는 건 내 몫이다. 악착같은 아내 모습과 꽃을 대하는 아내 모습은 조금 다르다. 이런 차이를 요즘 뒤늦게 재발견하고 있다. 분명한 건 꽃을 가까이 하는 아내가 행복하다는 사실이다.
    
어제는 해당화 꽃이 잘 자라고 있다고 넌지시 귀띔해 준다. 나 모르게 길가 해당화꽃씨를 기어코 집에 가져온 모양이다. 그렇게 꽃을 좋아하는데도 아내에게 꽃선물 한 기억이 없다. 살면서 몇 번 시도했는데 언제부터인가 포기하고 살았다.

속으로 다짐했다. 아내가 꽃선물을 받고 "웬일이야?"라며 생뚱한 반응을 보이더라도 무안해하지 않기로 했다. 올해 아내 생일날 선물은 꽃으로 정했다. 남은 건 꾸준한 실천이다. 이렇게 단순한 이치를 그간 잊고 괜히 마음 고생만 한 것 같다. 아내의 꽃사랑을 생각하면 아래 시구절이 자연 떠오른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김춘수의 꽃 중에서)      

태그:#해당화, #생일선물, #꽃도둑, #버들강아지, #김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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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메모와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기존 언론과 다른 오마이뉴스를 통해 새로운 시각과 영감을 얻고 있습니다. 주요 관심사는 남북한 이산가족과 탈북민 등 사회적 약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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