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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네트워크 활동가들이 천막 앞에서 음식을 나누고 있다.
 낙동강네트워크 활동가들이 천막 앞에서 음식을 나누고 있다.
ⓒ 박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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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 천막 농성장에서 잔치밥을 얻어 먹네~"


오늘은 소풍이다. 자갈밭 돗자리에 둘러앉은 사람들이 탄성을 한다. 연잎밥, 찰밥, 들깨찜, 쑥개떡, 두부부침, 어묵탕, 김밥까지 자리를 깔고 모래 언덕 위에 앉으면 팽팽하게 긴장되어 있던 천막농성장에 화기가 넘친다. 세종보 재가동 중단과 물정책 정상화를 촉구하면서 천막을 친 지 18일째. 전국 곳곳에서 강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천막으로 속속 모여들고 있다.
 
낙동강에서 준비해온 음식들
 낙동강에서 준비해온 음식들
ⓒ 대전충남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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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이 살아야, 낙동강도 살고 낙동강 주민들도 산다! 세종보 재가동 절대 반대한다!"

지난 17일, 낙동강에서 고군분투해 온 환경단체 활동가들이 천막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낙동강과 금강이 뭉친 셈이다. 부산, 대구, 안동, 마산, 창원, 진해 곳곳에서 모인 '낙동강네트워크' 활동가들이 삵, 수리부엉이, 참매 등 멸종위기종 가면을 쓰고 등장해서 기자회견문을 읽었다. 이들은 4대강 16개 보 중 유일하게 7년 이상 장기간 개방으로 야생동물들의 천국이 된 세종보 상류, 낙동강을 지키려면 금강을 살려야 한다는 이들의 주장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낙동강네트워크 활동가들의 세종보 천막농성 지지 연대 기자회견
 낙동강네트워크 활동가들의 세종보 천막농성 지지 연대 기자회견
ⓒ 김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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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금강 현장 농성을 지지하고 연대한다!"

4대강사업으로 건설된 16개 보 중, 8개의 보가 낙동강에 있다. 낙동강은 그만큼 연장이 길고 규모가 큰 강이다. 게다가 낙동강은 1300만 명의 영남인 식수원이자 농업용수로도 쓰인다. 그곳에 매년 녹조가 창궐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자신의 삶과는 무관하다고 치부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다. 심지어 낙동강에서 수백킬로미터 떨어진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끼친다. 
 
금강 부여 농수로 녹조
 금강 부여 농수로 녹조
ⓒ 대전충남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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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2022년 6월, 낙동강 물로 경작한 농작물에서 녹조 독성 마이크로시스틴이 검출됐다. 이 성분은 간에 치명적인 손상을 일으키는 '독'이다. 8월에는 부산 경남 대구지역 수돗물에서 녹조 독성 마이크로시스틴이 검출됐다. 연이어, 2023년 11월 녹조 공기 중 확산 조사 결과, 40개 조사지점 중 35개 지점에서 공기 중 마이크로시스틴이 검출됐고, 심지어 낙동강으로부터 3.7km 떨어진 아파트 실내에서도 검출됐다. 그럼에도 정부는 보 개방을 하지 않고 있다. 
 
보 개방이후 회복된 금강 모래사장 위에 전시된 고충환 목수 물살이 작품
 보 개방이후 회복된 금강 모래사장 위에 전시된 고충환 목수 물살이 작품
ⓒ 임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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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금강은 2018년 세종보 공주보 개방 이후 기적적으로 생환했다. 16개 보 중, 단 2개 보를 개방하고 자연성 회복 모니터링을 시작했다. 금강이 다른 강보다 중요해서가 아니고, 가능한 신중하게 가장 규모가 작고, 가장 부담이 적은 세종보를 개방한 것이다. 

그렇게 개방 후 4년의 모니터링과 국민합의를 통해서 2021년 1월 18일 보 처리방안이 확정됐는데, 확정 이후 만 삼년이 넘도록 윤석열 정부의 환경부는 직무를 유기한 채 후속 절차를 이행하지 않았다. 오히려 보 처리방안을 취소하고, 국가물관리기본계획을 졸속으로 변경하면서 물정책을 수십년 전으로 퇴보시켰다. 
 
2023년 대백제전 공주보 담수이후 펄밭이 된 공주 고마나루
 2023년 대백제전 공주보 담수이후 펄밭이 된 공주 고마나루
ⓒ 대전충남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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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보 처리방안 마련은 여전히 표류 중

2021년 11월 진행됐던 '금강 영산강 보 처리방안 이행을 위한 세부계획 수립용역 중간보고'에 따라 2024년 6월 착공이 진행됐다면, 세종보는 다음 달인 6월이면 철거가 시작됐을 것이다. 금강 보 처리방안이 이행되면 그 다음은 낙동강 보 처리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수순이었다. 그러나 낙동강 보 처리방안은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주민들은 매년 창궐하는 녹조에도 불구하고 이미 효과 없음이 증명된 녹조 저감 대책만 되새김질하는 환경부에 분노하고 있다. 

우리는 단순히 세종보 재가동 반대만을 외치는 것이 아니다. 위법적으로 취소된 금강 영산강 보 처리방안과 치졸하게 변경된 국가물관리기본계획을 원상회복하고, 물정책을 정상화해야 한다. 그래서 금강 영산강 보 처리방안을 이행함과 동시에, 빠르게 낙동강 보 처리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세종보 개방 이후 금강으로 돌아와 산란 서식하는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 흰목물떼새
 세종보 개방 이후 금강으로 돌아와 산란 서식하는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 흰목물떼새
ⓒ 대전충남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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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강이 회복되는 것을 눈으로, 과학적 모니터링 데이터로 확인했다. 국민 합의를 위해 오랜 시간을 논의했고, 많은 자원을 들였다. 어렵게 천천히 진전을 보인 물 정책을 대통령 한 사람의 "재자연화 정책을 철회하겠다."는 말로, 손바닥 뒤집듯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금강을 지켜야 한다. 그래야 낙동강이 산다. 그래야 우리 강이 산다.

"금강 호텔이 아주 좋네~"

천막 텐트에서 밤샘 농성을 진행한 낙동강 활동가의 말이다. 잠자리가 편했을 리 없었겠지만, 이렇듯 금강과 함께하는 게 반갑다는 뜻으로 읽혔다.   
 
천막농성장 야간 전경
 천막농성장 야간 전경
ⓒ 대전충남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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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물정책을 역행하는 것과는 아랑곳하지 않고 강물은 오늘도 유유히 흐른다. 교각 기둥 물구멍에 바쁘게 먹이를 나르는 박새는 천연덕스럽게 지저귄다. 고라니도, 너구리도 천막을 받아들이고 주변을 어슬렁거린다. 수문을 닫아 자연이 내어준 것들을 죽이면서 진짜 오리 대신 오리배를 띄우면, 우리는 더 풍요로워질까.

강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연대의 발길 때문일 것이다. 오늘은 천막농성이 소풍 같다.

태그:#금강, #세종보, #낙동강, #천막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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