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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제주도 남쪽의 섬, 가파도에 간 일이 있다. 한반도 최남단 마라도와 제주도 사이에 솟은 가오리 모양의 작은 땅, 이제는 철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 자전거를 타고 땅콩막걸리를 마시며 백패킹을 하는 관광지가 된 섬이다.

친구들과 이 섬을 한 바퀴 휘 도는데 특이하게 생긴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가파도아티스트 인 레지던스'랬나, 실제로는 제법 큰 건물이 일층만 빼꼼 지표 위로 고개를 들고 동남편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다.

거센 바닷바람을 피해 한 층만 땅 위에 솟게 지었나 살펴보다보니 문학인과 음악인들이 몇 주, 혹은 몇 달간 머물며 작품을 쓰다가 떠나는 공동생활공간인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곳에 김연수가 있다는 것도.

김연수, 1970년생 작가로 이제는 한국 문단의 중심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 인물이다. <굳빠이 이상> <이토록 평범한 미래> 같은 작품이 널리 읽히며 소설 깨나 읽은 독자들에게 그 존재를 확실히 각인시킨 복 받은 작가다. 섬세하고 온유하며 감각적인 이야기는 위로며 공감을 필요로 하는 이 시대 독자들에게 상당한 인기를 누렸다. 다채로운 감각을 일깨우고 일면 환상적인 구석도 비치는 특징에 누군가는 그가 무라카미 하루키와 닮았다고 말하기도 한다.

김연수가 그곳에 머물며 글을 쓰고 있다는 생각은 외로 오랫동안 마음에 남았다. 어느 작가가 작은 섬 가파도의 지하 작업실에서 어떤 소설을 짓고, 그 소설이 마침내 지표 위로, 바다 건너 세상으로 나와 사람들과 만날 것이다. 그가 작은 섬 지하에서 길어 올린 이야기가 어떤 것일지를 나는 오랫동안 기다렸다.
 
책 표지
▲ 너무나 많은 여름이 책 표지
ⓒ 레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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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단편 포함 스무 편의 소설을 묶었다

<너무나 많은 여름이>는 김연수의 소설집이다. 그저 소설집이라고만 부르기 어색한 것은 통상의 단편들이 묶인 소설집이라기엔 작품 수가 매우 많기 때문이다. 무려 스무 편에 달하는데, 짧은 것은 고작 여섯 쪽이나 여덟 쪽에 지나지 않을 정도다. 이토록 금세 전개되고 끝나는 짧은 단편은 그리 흔하지가 않은 것이어서 제법 흥미를 갖고 읽게 되었다. 곧 닥쳐올 여름을 미리 맞이하는 심정으로.

작가가 비슷한 시절 배태한 소설 사이엔 얼마간의 공통점이 발견되게 마련이다. 다른 많은 예술이 그러하듯, 소설 역시 작가의 가치관과 관심, 취향 따위가 반영되기 때문이다. 2020년을 전후하여 쏟아낸 일련의 작품군인 <너무나 많은 여름이> 또한 그러하다. 작품과 작품 사이, 주제와 착상, 인물과 분위기 가운데서 맞닿는 부분을 여럿 발견하게 된다.

단편 '젖지 않고 물에 들어가는 법'은 아내를 잃고 난 뒤 새로운 인식에 눈 뜬 유명 코미디언을 어느 연구소 연구원이 인터뷰한 내용을 담았다. 일상 가운데 마치 공황장애를 연상케 하는 충격을 받은 코미디언, 그러나 그는 그로부터 현실을 넘어서는 초월적 지각을 경험케 된다. 물이 수소와 원자로, 또 그 입자 대부분이 실은 빈 공간일 뿐임을 지각한 뒤 물에 들어가도 젖지 않게 되었다는 식의 이야기가 통상의 인식으론 좀처럼 다가오지 않는다.

그러나 이 코미디언의 인터뷰는 자못 진지하고 색다르다. 또 연구원은 일련의 연구를 통하여 팬데믹 뒤 새로운 인식에 눈을 뜬 이들을 여럿 만나본 터다. 코미디언은 조지 오웰의 저 유명한 르포,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을 예로 들어 말한다. 오웰은 영국 북부의 낙후된 탄광 지역에 두어 달을 머물며 광부들의 실상에 깊이 다가서는 글을 썼다.

그는 영국인 모두가 이 광부들의 일에 기대어 살면서도 그들의 삶을 이해하려는 노력조차 않는 모습에 개탄했다. 계급에 갇히고 편견에 찌든 시선으로 노동계급을 내려다보면, 자신들이 누리는 건 당연한 대가이고 광부들의 아우성은 그저 갖지 못한 이들의 분노 정도에 그치고 마는 것이다.
 
<위건 부두로 가는 길>에서 조지 오웰이 광부들의 세계에 대해 언급하는 장면을 제가 좋아한다고 말했던 거, 기억납니까? 그 세계는 우리가 디디고 선 이 땅의 아래에 있습니다. 지상의 사람들은 몰라도 되는 세계지만 그렇다고 해서 없는 세계는 아닙니다. 우리가 알든 모르든 광부들의 세계는 존재합니다. 조지 오웰에게 소설가란 이 두 세계 사이를 넘나드는 존재입니다. 비유하자면 소설가는 마르고 젖은 존재인 셈이죠. 소설가는 몰라도 되는 세계를 인식함으로써 그 세계를 가능하게 합니다. -113p
 
두 세계를 오가며 인식의 지평을 열다

인지하는 순간 전에 없던 지평이 열리고 세계가 생긴다. 그 세계에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 사람들의 삶이 그곳에 있다. 오웰은 독자 앞에서 광부들이 사는 세계를 열어 빛을 비추었다. 그를 읽은 이들은 광부들이 제가 딛고 선 땅의 아래에 있음을 알게 된다. 세계는 비로소 전과 같지 않아진다. 조금 더 온전해진다.

작가가 두 세계 사이를 넘나들며 몰라도 사는 데 지장이 없던, 그러나 알아 마땅한 세계의 문을 열어주는 존재란 것. 이는 오웰에 빗대어 풀어놓은 작가 김연수의 작가론처럼 읽힌다. 또 이 같은 주제의식은 다른 소설에서도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세월호 침몰참사 희생 학생의 부모를 등장시킨 <거기 까만 부분에>가 그렇다. 소설은 사진을 끔찍이 싫어하던 학생의 엄마가 제 아들이 나온 사진을 찾는 과정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녀에 대한 글을 쓰러 온 작가는 이 엄마로부터 어느 여학생이 가지고 있는 제 아들의 사진과 그에 얽힌 사연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여학생과 제 아들은 전혀 접점이 없는 사이인데, 무슨 일인지 아들을 수목장한 나무 아래 여학생이 '잊지 않겠다'는 내용이 담긴 편지를 두고 갔다는 것이다. 편지엔 그 학생이 제 아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 있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다정함이 세상을 구하리라는 믿음

한 장 사진이 간절했던 엄마는 어렵게 그 학생에게 연락을 취하지만 돌아온 답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학생이 보내온 사진엔 아들이 없는 것이다. 여학생은 까맣게 보이는 부분 안에 아들이 들어 있다고 말하지만 엄마는 도통 무슨 말인지를 이해할 수 없다. 따로 만나주지도 않는 학생 탓에 엄마는 이 작가에게 그녀를 대신 만나 자초지종을 알아봐달라고 부탁하는 것이다.

소설은 죽은 이와 직접적 관련이 없는 여학생이 검은 사진을 찍어 그 안에 그가 담겨 있다고 이야기한 이유를 보인다. 이는 앞서 적은 광부의 세계를 열어낸 오웰의 시선과 겹치는 것으로, 이미 죽은 아이를, 또 세월호 침몰참사의 여러 희생자들을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이유를 되새기도록 한다.
 
천문학적인 발견이란 관측을 통해 어떤 별을 존재하게 만드는 일이다. 말하자면 어떤 별은 우리가 보는 순간부터 반짝이기 시작한다. 우리의 관측이 별을 탄생시키는 것이다. -238p
 
첨단 물리학 이론과도 통하는 관측으로부터 존재하는 대상에 대한 이야기, 그것이 김연수가 세계를, 우주를, 문학을 바라보는 태도다. 작가는 두 세계를 오가며 잊혀지는, 알려지지 않은, 그러나 기억되고 알아 마땅한 이야기를 발굴한다. 그로부터 독자는 이전까진 알지 못했던 세계를 인식한다. 세계는 그로써 비로소 생명력을 얻는다.

김연수의 문학을 다정하다 하는 건 이러한 이유일 테다. 닿지 않았던 세계에, 없이 살아도 별 문제 없어 보이는 곳에 굳이 관심과 시선과 애정을 두는 것 말이다. 그 관심으로부터 독자의 세계는 조금씩 넓고 깊어져 간다. 그 관심과 애정이 마침내는 세상을 구하리라는 믿음, 그것이야말로 작가 김연수가 문학을 지탱하는 자세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서평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독서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너무나 많은 여름이

김연수 (지은이), 레제(2023)


태그:#너무나많은여름이, #김연수, #한국소설, #단편소설, #김성호의독서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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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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