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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임 후 나의 삶이 궁금하기도 하고, 시골살이에 대한 호기심 등으로 지인들이 여기까지 찾아올 때가 있다. 우리 집 가까이에는 절집, 계곡, 폭포, 숲 등 풍광이 아름답고 좋은 곳이 많다. 이곳저곳을 다니다 시간이 허락되면 직지사로 안내한다. 집에서 직지사로 가기 위해 지례면을 지나야 하고 공자동을 거쳐야 한다.

처음 지례면을 지날 때는 하나의 지명으로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지나갔다. 조금 더 가다 보니 '공자동'이라는 마을 표지석이 있다. 지례가 지례(知禮) 아닐까 하면서 찾아보았다. 지례(知禮)가 맞다.

지금은 흑돼지로 유명한 곳이지만 시간을 조금 거슬러 올라가면 이곳은 예를 중시하였던 고을이었을 것이다. 그러면 공자동은 공자를 흠모하는 사람들이 모인 마을일 것이다. '공자동'이 있는 현재 행정 구역 지명도 대성리(大聖里)이다. 대성(大聖)은 공자를 높여 부르는 말이다.

사람의 길로 이끄는 공자의 <논어>

공자의 <논어>를 가까이 하고 있기에 이 지명이 반가웠다. <논어>는 옛날 사람들의 필수 교양서일 뿐만 아니라 현재도 사람의 길로 이끄는 교과서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 인품의 모자라고 모난 부분을 채우고 다듬어 사람의 길로 나갈 수 있도록 곁에 두고 거듭 읽고 있다. 이를 보고 지인들은 왜 <논어>를 좋아하는지, 추천해 주고 싶은 구절은 무엇인지 물어보기도 한다.

그때 나는 서슴지 않고 팔일(八佾)'편에 나오는 한 구절을 말한다.

'子入太廟 每事問 或曰 孰謂鄹人之子知禮乎 入太廟 每事問 子聞之 曰 是禮也(공자께서 태묘에 들어가서는 모든 일을 물으셨다. 어떤 사람이 말했다. 누가 추 땅의 아들이 예를 안다고 말했는가? 태묘에 들어서는 모든 일을 묻더라. 공자께서 이 말을 듣고 말씀하셨다. 이것이 예이다).

공자의 <논어>에 대해 제대로 공부한 적이 없는 내가, 이 구절의 뜻을 정확히 이해할 리는 만무하다. 하지만 나름대로 이 구절을 이해하며 깊이 새기고 있다.

공자는 당시 예법의 일인자로 인정받고 있었던 것 같다. 공자가 주나라 태조인 주공을 모신 사당에 제사 모시러 왔을 때 그곳 사람들은 공자의 제례 진행을 조심스럽게 지켜보았을 것이다. 자신들의 예법과 무엇이 다른지, 혹시 자신들의 예법이 도에 어긋났다며 호된 꾸지람을 듣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 등등의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공자는 제사를 모시면서 담당 관리에게 꼬치꼬치 묻는다. 그 담당 관리는 공자보다 한참 신분이 낮은 사람이었을 것이다.

이 모습을 지켜본 사람이 이제 공자를 비난하고 조롱한다. 예법을 제대로 몰라 우리 담당 관리에게 하나하나 물으면서 제례를 진행하더라고. 그 잘났다는 공자는 어디에 있느냐고.

이 말을 듣고 공자는 말한다. 이것이 예법이라고.

공자가 그 관리에게 태묘의 예법을 물었을 때 자기가 알고 있던 예법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대로 따르는 것이 예다는 것이다. 제례는 형식적인 틀보다는 흠모의 마음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큰 틀에서 벗어났다면 공자는 당연히 그 제례의 잘못을 지적하였을 것이다.

만약 공자가 제례를 안내하는 관리를 무시하고, 자기의 예법대로 주공의 제사를 모셨다면 그 관리는 어떻게 될까? 높은 관리로부터 질책을 당하고, 지금까지 지녀왔던 자부심도 무너졌을 것이다. 공자가 관리의 예법을 따라주었기에 그 관리는 물론 그 고을 전체도 자부심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공자는 사람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이 예의 시작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공자가 사람을 존중하는 마음은 <논어> '향당(鄕黨)' 편에 잘 드러나 있다.

廏焚 子退朝曰 傷人乎 不問馬(마구간에 불이 났다. 공자께서 조정에서 물러 나와 말씀하셨다. 사람이 다쳤느냐 그러고는 말에 대해서는 묻지 않으셨다).

당시 말의 값은 노비의 값보다 몇 배나 더 비쌌다고 한다. 그런데 공자에게는 신분이 비록 노비이지만 그래도 사람인 노비가 말보다 훨씬 더 중요했다. 마구간 불을 끄기 위해 애쓴 하인이 부상에는 관심을 보이지만 말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사람에 대한 공자의 사상을 엿볼 수 있다. 

예는 사람의 길이다. 그 길은 사람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사람에 대한 존중과 배려는 말과 옷 그리고 다름을 인정하는 데에서 잘 드러난다.

존중과 배려의 말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기주의 <말의 품격>에 잘 드러나 있다. 프랑스의 어느 카페에서는 커피 한 잔을 주문할 때 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커피값이 달라진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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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나 백화점, 심지어 은행, 행정복지센터 등등의 공공장소에서도 직원들에게 말을 함부로 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그 사람의 얕은 인품이 그대로 드러난다. 지위가 낮은 사람, 어린 사람에게 함부로 낮춤말, 짧은 말, 얕보는 말을 사용하는 사람에게 인품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이다. 아무리 많이 배우고, 지위가 높고, 교양 있는 척 하여도 그 사람의 인품에는 교만이 깔려 있다.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말은 쉽지 않다. 화가 났을 때도 감정을 절제하여 말해야 하고, 가까운 사이라도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 상대를 존중과 배려하는 말, 살아가는 동안 되돌아보고, 배우고, 익혀야 할 끝없는 숙제이다.

음식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맛있게 먹고 그 즐거움을 누리면 된다. 하지만 옷은 그렇지 않다. 누군가를 만난다면 상대의 눈을, 마음을, 상황을 헤아려 주어야 한다. 상대의 눈이, 마음이 편하지 않고, 상황에 맞지 않는다면 그것은 상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없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의 인품에는 자만이 깔려 있다.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다. 다름을 인정하는 것은 상대를 인정하는 것이다. 이는 겸손에서 비롯된다. 겸손은 인품이 도달해야 하는 가장 높은 경지라 할 수 있다.

앞의 구절이 눈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논어>에서 가장 좋아한 구절은 '자로(子路)' 편에 나오는 다음 구절이었다.

子曰 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조화를 이루지만 (대세를) 따라가지 않고, 소인은 따라는 가지만 조화를 이루지는 못한다).

화(和)는 조화이다. 조화는 다름을 전제로 한다. 조화를 추구한다는 것은 상대를 인정하는 것이다. 동(同)은 같아지려 노력하는 것이다. 대세를 따라가는 줏대 없는 태도이다. 대세를 따라가기에 다름을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바탕은 다양성이다. 다양성은 다름을 인정하는 데서 비롯된다. 다름이 인정되어야 창조가 있고, 발전한다. 케이콘텐츠가 세계로 널리 알려진 것도 민주화가 이루어진 뒤부터이다.

'다르다'와 '틀리다'를 구별하여 쓰는 것은 이제는 거의 상식이 되었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상대를 무시하고 자기만 잘났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의 인품에는 오만함이 깔려 있다.

사람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사회를 꿈꾼다. 내가 그 길로 다가서길 바란다. 공자의 예는 아직도 살아있다.

태그:#공자,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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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 배우고 가르치는 행복에서 물러나 시골 살이하면서 자연에서 느끼고 배우며 그리고 깨닫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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