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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예술에 대한 모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미술품들이 뻣뻣하게 서서 친하지 않은 녀석들이랑 한 구석에 전시된 장면을 보는 것이 좋지 않다."

참언론실천시사기자단(이하, 시사기자단)의 자칭 치어리더 고재열 기자의 토로다. 시사기자단은 지금 2라운드 진행중. 인사동 갤러리 '눈'에서 테이프를 끊은 '굿바이 시사저널展'은 발 디딜 틈도 없을 정도로 첫날밤을 치렀고, 아름다운 가게 옥상에 마련된 일일호프 '웃어라, 정의夜' 역시 주문한 음식을 받기도 어렵고 받더라도 먹을 공간이 없을 정도로 제대로 된 잔치집 분위기였지만, '펜과 지면'을 잃은 기자들 마음은 한쪽 가슴에서부터 타들어 간다. 하지만 전 시사저널의 한 기자가 고백했듯 "차원이 다른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기자들의 속내를 추적하며 안국동에서 일어난 일까지를 재구성해본다.

▲ 갤러리 '눈'에 전시된 작가들의 기증품. 작품들이 빨간 딱지에 의해 팔렸음을 보여주는 일종의 '예술의 왜곡' 장면이다(1)
ⓒ 오승주

▲ 갤러리 '눈'에 전시된 작가들의 기증품. 작품들이 빨간 딱지에 의해 팔렸음을 보여주는 일종의 '예술의 왜곡' 장면이다(2)
ⓒ 오승주

▲ 갤러리 '눈'에 전시된 작가들의 기증품. 작품들이 빨간 딱지에 의해 팔렸음을 보여주는 일종의 '예술의 왜곡' 장면이다(3)
ⓒ 오승주


내 마음속에 새로 생긴 유전자를 어이하리

남문희 기자(전 시사저널 한반도 전문기자)는 돈을 끌어 모으는 역할을 했다. 기사의 '신비한 마력'과는 전혀 다른 '어쭙잖은' 목소리로 투자자와 통화하며 '허허' 하고 헛웃음을 지어 보일 때의 비애란 저런 모습일까.

기자는 잔인하게 물었다. "남 기자님! 요즘 한반도 이슈가 빠르게 돌아가고 있는데 속 타지 않으세요?" 돌아온 대답은 "하~" 하는 신음이었지만, "9월까지 기사는 미리 다 써뒀다"는 여유도 보였다. 이것은 시사기자단 기자들의 공통적인 특징인 것 같은데, "어떻게 돌아가는 지 대충은 알지만" 다행히 창간 때까지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BDA 문제가 해결되고 나서 IAEA가 북한을 방문하고, 2·13 합의에서 '-100일'을 만회하기 위해서 각국이 속도감 있게 일을 진행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그들에게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세인의 바람처럼 한 바람에 풀려버리는 것은 "게임의 룰"이 아니라는 거다. 그러면서 그는 "중국이 위태위태하다"는 의미심장한 분석을 내놨다. 미국의 유대자본이 슬슬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성우제 전 기자(캐나다 거주)가 "기자로 산다는 것"에 짤막하게 남겼던 남문희 기자에 대한 촌평처럼 한 주제에 대해서 1시간 가까이 붙들려 있어야 했지만 문제의식과 애정이 담긴 논평은 하루 종일 듣고 있어서 심심하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투자자의 전화가 오는 바람에 다시 '어쭙잖은 투자담당관'으로 돌아가야 했다.

노순동 기자는 단아하고 세련된 문체를 뽐내던 '글쟁이'이다. 특히 영화에 대한 기사는 많은 팬을 보유할 수 있을 정도로 '문화부 기자'의 장점을 두루 갖추고 있다. 그러는 그가 지금은 전투적이고 상투적인 '성명서' 쓰는 일을 하고 있다. 아마 시사기자단 기자들 중에 가장 '잔인한 보직'을 받은 사람은 단연 노순동 기자일 것이다. 급기야 지난 7월 3일 방영된 "PD수첩"으로 인해 '욕설녀'라는 불명예(?)스런 별명을 하나 얻어 후배·동료들에게 자꾸 놀림을 당해 속상하다.

이숙이 기자는 휴대폰에 체크한 번호들과 일정을 보여주면서 기사 쓰러 가야 하는데, 발이 묶여서 매우 안타깝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 마음 속에 또 하나의 유전자가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이숙이 기자의 유전자가 빨리 복제활동을 재개하기 바란다.

신호철 기자는 요즘 무엇을 하고 다니는지 통 종잡을 수가 없다. 파업 기간 동안 사비를 털어서 중국에 JMS 취재하러 다녀오더니, 요즘은 시사기자단 사무소에도 실종 상태다. 답답해서 이숙이 기자에게 신호철 기자의 근황을 물었더니. "걔 요즘 OOO(대통령 후보) 잡으러 다니느라 바빠!"하고 귀띔해 준다.

며칠 후 간신히 만난 신호철 기자에게 짓궂게 물었다. "요즘 OOO 잡으러 다니시느라 바쁘시다면서요?" 신호철 기자는 다른 기자들과는 매우 다른 방식으로 불안해했다. "아! 요즘 OOO이 간당간당하다. 내가 기사를 쓸 때까지 그가 살아있었으면 좋겠다"고 털어놓는다. 요즘 연이은 신문 보도로 매우 다른 방식으로 잘 알려진 그 후보에 대해서 신호철 기자가 기사를 썼더라면 어떤 그림이 나왔을까 하고 생각하니 아쉬움이 짙게 밀려왔다.

미술에 대한 모욕, 프로듀서(PD)에 대한 모욕

▲ 7월 18일 아름다운 가게 옥상, 기자는 다큐멘터리를 담고 있는 카메라 기자를 두 가지 모습으로 찍었다. 카메라 기자는 차가운 벽면을 찍었을까, 희망을 찍었을까?(1)
ⓒ 오승주

▲ 7월 18일 아름다운 가게 옥상, 기자는 다큐멘터리를 담고 있는 카메라 기자를 두 가지 모습으로 찍었다. 카메라 기자는 차가운 벽면을 찍었을까, 희망을 찍었을까?(2)
ⓒ 오승주

갤러리 '눈'에서 미술품들은 모욕과 외면을 감내해야 했다. 청중들은 미술품보다는 미술품에 붙은 붉은 딱지(구매가 완료된 그림에 붙는 표시)에 더 관심이 있었고, 마음은 이미 콩밭도 아니고 시사기자단이 만들어낼 새 매체에 벌써 가 있었다. "기자들의 미술전" 콘셉트부터 참 안 어울리는 조화다. 오죽하면 고재열 기자가 '모욕'이라는 단어까지 꺼냈을까.

미술부의 이정현 기자는 '이 PD'로 불린다. 다른 기자들이 사진기를 들고 덤빌 때, 시사기자단에서 유일하게 '촬영용 카메라'를 들이대는 사람이 바로 이정현 기자이다. 이정현 기자는 시사저널 사태의 전모를 담아서 기록으로 남기는 '특명'을 수행하였던 것인데, "맨 마지막 장면은 사태가 해결되고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는 장면"을 넣고 싶었다는 이 기자의 말이 귀 끝에 애잔하게 울린다.

그가 이번 행사를 위해 준비한 '9분짜리 다큐멘터리'는 원래 갤러리 '눈'에서 상영하기로 했는데, 현지 사정으로 인해 매우 엉뚱한 장소에서 상영되었다. '아름다운 가게' 옆 건물의 흉터투성이 벽이 스크린이 되어주었다. 동료 기자는 "기자가 셔터와 펜을 잡아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일깨워준 감동적인 다큐였다"고 촌평했다. 칭찬인지 욕인지 이 '같기도'한 상황을 오랜 시간 무마해야 했다.

새 매체, 내리치는 '지상명령'

새 매체라는 지상명령은 많은 사람들을 변화시켰다. 미술을 선전물 또는 출자금으로, 어엿한 문화부 기자를 성명서 글꾼으로, 전문 기자들을 '장사꾼'으로 만들어버렸다. 어디 그뿐이랴? 독자들도 지금의 상황이 '특별한 때'라는 것을 알고 있는 듯하다. 독자가 가지고 있는 애정과 감시라는 두 개의 시선을 포기할 수 없다는 이른바 '시사기자단의 2중대 견제론'을 펼쳤던 시사모의 회원은 지금은 '2중대 선봉론자'가 되었다.

미술부 양한모 기자는 시사저널 표지를 위해 정성껏 만든 '캐리돌(caridoll)'(캐리커처를 담아낸 인형)을 장터에 팔기 위해 내놓았다. 뿐만 아니라 관객들에게 작품의 우수성을 소개하며 구매를 권장하는 판촉행사도 직접 열었다.

'아름다운 가게' 옥상에서 했던 이숙이 기자의 인사는 가히 '아름다운 인사'로 기억될 만하다. "7월에는 후원금 많이 주시고, 8월에는 특집기사거리 많이 주시고, 9월에는 우리 잡지 많이 사주세요!" 이숙이 기자는 이렇게 '뻔뻔'해졌고, 그것은 시사기자단에서는 매우 당연한 현상이었다.

정도(正道)로 가기 어려울 때 우리 조상들은 상황을 봐가며 임기응변을 사용했는데, 유가에서는 이를 '권도(權道)'라 했고, 불가에서는 '방편(方便)'이라고 했다. 시사기자단 기자들이 꼭 이와 같다. 하지만 권도든 방편이든 주의사항이 있다. 이것들은 양날의 칼과 같아서 오래 쓰면 반드시 역풍으로 되돌아온다는 사실이다. 정도와 권도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진 기자들. 그들에게 판단의 기회란 없다. 오직 지상명령만 있을 뿐이다. 기자들이 어서 빨리 '정도'로 되돌아오기를 바란다.

태그:#참언론실천시사기자단, #시사기자단, #아름다운 가게, #굿바이시사저널전, #시사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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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놀이 책>,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 <공자, 사람답게 사는 인의 세상을 열다> 이제 세 권째네요. 네 번째는 사마천이 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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