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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자기와 비슷한 텔렉스.
ⓒ 한미숙
대전 국립중앙과학관에서 옛날에 쓰던 텔렉스를 봤다. 요즘엔 잘 쓰지 않는 텔렉스 앞에 서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무역회사를 다니던 때의 기억이 밀려온다.

첫 직장에서 내가 하던 일은 영업부에서 '네고서류'를 작성하는 고참언니(미스명)의 보조였다. 운동장 같이 넓은 사무실에는 영업과 업무, 경리, 자재 등 각 부서마다 칸막이가 되어 있었다.

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자리가 내 자리였다. 내 옆 안쪽으로는 서류를 만드는 언니자리가 있고, 그 언니와 내 뒤로 남자직원 2명이 있었다. 남자직원 뒤에는 대리와 과장, 그리고 그 뒤엔 따로 문을 열고 들어가는 회장님 방이 있었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자리가 높다는 걸 알았다.

회사유니폼 원피스를 어설프게 입고 덩그러니 놓인 책상에 앉아 도대체 무슨 일부터 해야 할지 두리번거리는 내 모습은 영락없이 '촌닭'이었다. 낯선 사람들 틈에서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미스 명' 언니밖에 없었다. 그때 언니 나이는 스물셋이었다.

회사에서는 '미스' 누구로 불리는 여직원들이 10명정도 있었다. 내 이름도 '미스 한'이었다. 미스 명 언니는 날마다 서류더미에 묻혀 살았다. 언니는 그때 회사 텔렉스로 들어오는 L/C(신용장)를 보면서 외국 회사가 물건을 얼마나 주문하고 우리는 어느 시기에 완성품을 보내야 하는지, 또 결재는 어느 은행에서 하는지를 훤하게 꿰고 있었다.

외국에서 오는 급한 신용장은 은행을 통하지 않고 바로 회사 '텔렉스'를 통해 들어왔다. 가끔 언니는 퇴근시간을 넘어 밤늦게까지 텔렉스 앞에 앉아 신용장을 기다리기도 했다. 나는 텔렉스로 들어오는 신용장이나 이미 지난 서류들을 더듬어가며 일을 배우고 있었다.

"미스 명! 텔렉스 올 거 있는데 확인 좀 해줘!"

영업부 과장이 외근을 나갈 때면 미스 명 언니에게 부탁하곤 했다. 텔렉스실을 마음대로 드나드는 사람은 여직원 중에 미스 명 언니 뿐이었다. 언니는 회사에서 없으면 안 될 사람이었다. '저 일을 어떻게 감당할까' 내색은 안 했지만 일머리를 조금씩 알아 갈수록 은근히 걱정스러웠다. 언니가 혹시 회사를 그만두면 저 일들이 내게 맡겨질 텐데, 생각만 해도 두려움이 앞섰다.

'미스 한, 내가 텔렉스 가르쳐줄게. 한 번 해 볼래?' 어느 날, 언니가 웃으면서 내게 말했다. 막상 멍석이 깔리니 왠지 불안했다. 신용장을 겨우 이해하고 텔렉스도 언니가 옆에 있을 때 어깨너머로 알아가던 그해 초여름이었다. 언니가 나를 조용히 불렀다. 그리고 왠지 짐작만으로 불안했던 것들이 현실로 나타났다.

언니는 더 늦기 전에 공부를 해야 한다고 했다. 회사를 그만둔다는 말에 직장에서 인정받고 별다른 걱정이 없을 것 같은 언니가 왜 새삼 대학을 가려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언니가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 나는 서류를 집에까지 들고 와서 '공부'를 하고, 텔렉스를 보내고 받는 것 때문에 긴장하며 새벽출근을 하기도 했다.

텔렉스가 놓였던 자리에 지금은 컴퓨터가 있다. 텔렉스가 무역의 한 '역사'에 있던 때, 사무실이나 학원에서 텔렉스를 배우던 사람들은 이제 컴퓨터를 할 것이다. 과학관 한켠에 전시된 텔렉스는 유물이 되어 '나'를 바라본다.

덧붙이는 글 | 한겨레에 실린 글입니다.


태그:#텔렉스, #타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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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가면을 줘보게, 그럼 진실을 말하게 될 테니까. 오스카와일드<거짓의 쇠락>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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