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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리얼 파크 입구, 한신대지진 당시 파괴된 모습을 기억하기 위해 붕괴된 지반을 복구하지 않고 그대로 남겨둔 현장이다.
 메모리얼 파크 입구, 한신대지진 당시 파괴된 모습을 기억하기 위해 붕괴된 지반을 복구하지 않고 그대로 남겨둔 현장이다.
ⓒ 안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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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도 안 가봤으면서 보나마나 뻔하지 싶어 별다른 호기심이 일지 않던 나라. 사무라이 할복 기모노 가부키 경제벌레 강제위안부와 같은 낱말들로 내 머릿속에 조합되어 있던 일본을 어느 날부턴가 제대로 알고 싶어졌다.

때는 4월 중순, 날씨 한번 화창한 평일 오후 거금 4000원짜리 멀미약을 복용하고 팬스타크루즈 써니호에 올랐다. 석식, 조식 두 차례의 소찬과 유치한 공연을 공손하게 서비스하며 18시간을 항해한 끝에 써니호는 이튿날 아침 승객들을 오사카항에 내려놓았다.

지문인식과 사진촬영을 통과하는 것으로 일본 관광객 자격을 획득한 여행팀은 나흘간의 일정을 점검했다. 고베의 난킨마치와 메모리얼파크, 나라의 동대사와 사슴공원, 교토의 기요미즈데라(청수사), 그리고 오사카성. ‘일본을 알고 싶다면 간사이 지방을 가라'고 했던 여행전문지 카피를 쫓아온 길이었다.

동대사의 금당대불전. 세계최대의 목조건물이라는데 지붕 양쪽에 꽂힌 꿩꼬리가 인상적이다.
 동대사의 금당대불전. 세계최대의 목조건물이라는데 지붕 양쪽에 꽂힌 꿩꼬리가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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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불전에 자리한 약 15미터에 달하는 금동좌불상. 콧구멍지름이 50센티미터고 손바닥위에 장정 세 명은 올라간다고 한다.
 대불전에 자리한 약 15미터에 달하는 금동좌불상. 콧구멍지름이 50센티미터고 손바닥위에 장정 세 명은 올라간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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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항에서 고베로 이동해 일본의 3대 차이나타운 가운데 하나라는 난킨마치를 눈요기만 하고 메모리얼파크를 찾았다. 메모리얼공원은 1995년 한신대지진을 잊지 말자 하여 만들었다는데 지진 당시의 모습을 기억하기 위해 남겨둔 현장이 인상적이었다. 관광객의 눈으로 붕괴된 지반을 내려다보던 대목에서 뜬금없이 숭례문을 울컥 떠올렸던 건 불타버린 현장을 복구할 거 없이 그대로 놔두어 경계로 삼자 싶었던 억하심정 때문이었을 게다. 메모리얼파크가 속해있는 메리켄파크는 고베시가 '포트 르네상스' 계획 하에 조성한 해안매립지라는데 잔디밭 곳곳에 항구도시 고베를 상징하는 조형물이 눈길을 끌었다.

이튿날 동대사가 있는 나라(奈良)로 가다보니 창밖으로 묘지 수십 기가 모여있는 게 눈에 띄었다. 멀쩡한 주택가에 웬 무덤인가 했더니 납골당이라 했다. 거처에서만큼은 삶과 죽음의 영역을 엄격히 구분하는 우리네와 참 다른 일본인의 정서가 느껴지던 장면이었다.

동대사로 들어서자 일본 최대의 남대문이라는 대화엄사가 앞서 방문객들을 맞았다. 왜 남대문이라 하는지 물어볼 새도 없이 관광객들에 떼밀려 안으로 들어가니 정면에 버티고 있는 금당대불전이 보인다. 금당대불전이 세계최대의 목조건물이라는데 지붕 양쪽에 꽂힌 꿩꼬리가 깜찍해 보인다는 거 말고 별다른 감흥은 일지 않았다. 그보다는 대불전에 덧대어 지어진 나지막한 건물이 잔디밭을 싸안듯 양쪽으로 이어지면서 고즈넉한 느낌을 주는 정원이 일품이었다.

가장 일본다운 도시이자 일본인들이 가장 가보고 싶어하는 도시라는 교토. 차창 밖으로 보이는 거리며 집들이 한결같이 단아하고 정갈하다.
 가장 일본다운 도시이자 일본인들이 가장 가보고 싶어하는 도시라는 교토. 차창 밖으로 보이는 거리며 집들이 한결같이 단아하고 정갈하다.
ⓒ 안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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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요미즈데라의 무대. 저 멀리 왼쪽에 서있는 게 삼층탑으로 도넛이 꽂힌 듯 동글동글 달린 장식은 윤회를 상징한다.
 기요미즈데라의 무대. 저 멀리 왼쪽에 서있는 게 삼층탑으로 도넛이 꽂힌 듯 동글동글 달린 장식은 윤회를 상징한다.
ⓒ 안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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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참, 대불전 앞 팔각등롱도 짚고갈 만한 볼거리겠다. 욘사마 배용준이 이곳을 돌고나서 대박을 터뜨렸다니 연예인 지망생이나 예술학도라면 속는 셈 치고 한바퀴 돌아볼 일이다. 사슴공원이 이웃해 있어서인지 동대사를 돌아보는 중에 뿔 잘린 사슴들이 겁도 없이 사람들 엉덩이 새로 건들건들 돌아다니던 장면도 잊을 수 없다. 털갈이 철이어서인지 사진에서 본 거만큼 예쁘지는 않았지만.

동대사를 본 뒤 달려 간 곳은 교토. 운도 좋지, 교토로 들어서자마자 기모노를 입은 여자가 지나가는 모습이 두엇 눈에 띄었다. 가이드 말이 전통기모노 한 벌 값이 100만원 정도인데 비싼 건 수천만 원이 넘는다고 한다. 오사카는 먹다 망하고 교토는 입다 망한다더니 과연. 
어쨌거나 가장 일본다운 도시이자 일본인들이 가장 가보고 싶어하는 도시라는 교토는 도시 전체가 문화재라 하여 주민들 자부심이 대단하다고 한다.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전역이 쑥대밭이 되었어도 국제문화재보호법에 의해 교토만은 한차례의 폭격도 당하지 않고 말짱하게 보존되었다니 자부심이 어느 정돈지 짐작이 된다. 하긴 이번 일본 여행에서 가장 가보고 싶었던 기요미즈데라(청수사) 역시 교토의 명물인 바에야.

인왕문에서 무대로 가는 도중 사랑의 점을 쳐주는 언덕위의 집. 통에 담긴 쪽지를 하나 집어 풀이를 해주는 데 100엔. 대부분 학생들인데 한 남자아이가 사랑점을 치고는 진지한 자세로 기도를 하고있다.
 인왕문에서 무대로 가는 도중 사랑의 점을 쳐주는 언덕위의 집. 통에 담긴 쪽지를 하나 집어 풀이를 해주는 데 100엔. 대부분 학생들인데 한 남자아이가 사랑점을 치고는 진지한 자세로 기도를 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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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여행철이어선지 가는 데마다 까만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몰려와 있다. 예전에 우리가 중고등학교 때 수학여행을 경주로 갔듯이 일본 중고교생들은 교토로 수학여행을 온단다. 사실 일본 만화가 한국 만화로 둔갑해서 나오던 시절 교토는 늘 '경주'로 번역이 돼 나왔다.
 수학여행철이어선지 가는 데마다 까만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몰려와 있다. 예전에 우리가 중고등학교 때 수학여행을 경주로 갔듯이 일본 중고교생들은 교토로 수학여행을 온단다. 사실 일본 만화가 한국 만화로 둔갑해서 나오던 시절 교토는 늘 '경주'로 번역이 돼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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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요미즈데라는 작년에 세계 7대 불가사의(The New 7 Wonders of the World)를 뽑기 위한 인터넷 투표에서 일본과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후보로 나간 곳이다. 만리장성 급의 장관을 기대하며 가게가 즐비한 비탈길을 10분쯤 걸어 올랐나, 갑자기 시야가 훤해지더니 인왕문과 삼중탑이 보였다. 삼층탑은 한눈에 쏙 들어올 만큼 예뻤는데 뾰족한 상부에 도넛이 꽂힌 듯 동글동글 달린 장식은 윤회를 상징한다고 했다.

삼층탑을 지나자 아찔한 난간과 거대한 축대로 관광객들 입에 오르내리는 무대(舞臺)가 나타난다. 뭐가 어떻게 대단하다는 건가 해서 멀뚱거리고 있으니 가이드가 따라오라며 앞장선다. ㄴ자로 돌아가서 바라보니 무대가 그 전모를 드러낸다. 멋지다. 순전히 목재로만 축대를 쌓고 그 위에 건물을 얹어놓은 형태가 독특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무대위 건물과 건너편 산이 어우러지면서 커다란 정원을 이룬 형국이다. 그래도 세계 7대 불가사의에 들 정도로 멋지고 독특하지는 않았던지 투표에서는 탈락했다. 지금도 아쉬운 건 기요미즈데라, 곧 淸水寺의 폭포라 이름붙인 데가 워낙 인기인지 길게 줄지어 선 사람들 틈에 끼어들 엄두가 안나 입맛만 다시며 돌아왔다는 것.

다음날 이번 여행의 마지막 방문지인 오사카성을 찾았다. 일본은 어딜 가나 성을 중심으로 도시가 이루어진다는데 오사카성이 자리한 곳도 오사카의 중심지라 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을 통일한 뒤 3년에 걸쳐 지었다는 오사카성은 히메지 성에 비하면 껍데기뿐이라는 말을 듣고는 있지만 7층 꼭대기에서 바라보는 전망만큼은 기가 막혔다.

전망 탓인가, 오사카가 일본 전통문화의 본거지라 일컬어지는 나라나 도시 자체가 문화재라는 교토와는 또 다른 매력을 지닌 도시인 듯했다. 그 매력의 실체는 아무래도 운하와 바다, 6개의 강을 안고있으면서 공중을 가로지르는 다리의 수만 600여 개인 도시 자체이지 싶다. 게다가 자연재해로 파괴된 거리를 바둑판처럼 재정비하고 새로 건축물을 올려놓아 세계건축학도들의 발길이 향한다니, 일본인의 의지가 아닌 게 아니라 존경스럽다.

기요미즈데라 주변에는 유난히 떡집이 많다. 접시 가득 맛보기 떡을 담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들이미는데 이집 저집 지나치며 시식만 해도 배가 부를 정도다.
 기요미즈데라 주변에는 유난히 떡집이 많다. 접시 가득 맛보기 떡을 담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들이미는데 이집 저집 지나치며 시식만 해도 배가 부를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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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성을 지키듯 둘러싸고 있는 해자. 적군을 방어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을 거라는 걸 짐작하게 할 만큼 위압적으로 보였다.
 오사카성을 지키듯 둘러싸고 있는 해자. 적군을 방어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을 거라는 걸 짐작하게 할 만큼 위압적으로 보였다.
ⓒ 안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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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성을 나와 도톰보리의 한 식당에서 스시를 먹고 근처 신사이바시를 거닐었다. 서점에 모여있는 사람들 가운데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십대 여자애들이 있어 가까이 가보니 만화삼매경에 빠져있다. 전날 밤 호텔 주변을 산책하다 들어간 편의점에서도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스무 살 남짓 남자애들이 잡지 만화 단행본 등이 비치된 진열대 앞에 모여 있더니. 길거리에서도 담배를 피우며 걸어가는 노랑머리 청소년이 자주 눈에 띈다.

도톰보리와 신사이바시를 돌아보는 것으로 일본 여행을 접고 여행팀은 오사카항으로 향했다. 지루한 출국심사를 거쳐 배에 오르니 온몸이 노곤하게 풀어졌다. 그 와중에도 일본의 일단을 드텨봤다는 만족감을 느끼는 걸로 여행의 소회를 간단히 정리해버리자니 뭔가 찜찜했다. 그저 가깝고도 먼 이웃 정도로 밀쳐두기에는 일본은 우리 속내쯤 상관없이 실속을 빈틈없이 채우고서 저만치 앞서가는 나라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밤중 대마도 부근을 지날 때 거세게 일던 파도를 타고 복병처럼 밀려왔던 멀미가 일본의 이면처럼 느껴졌던 것도 아마 그래서일 것이다.

淸水寺의 청수폭포. 중간물줄기는 건강, 오른쪽은 사랑이고 왼쪽은 학업의 뜻이 이뤄지게 하는 물이란다. 인기만점으로 기나긴 줄에서 빠져나와 마시는 사람들 보며 입맛만 다셨다.
 淸水寺의 청수폭포. 중간물줄기는 건강, 오른쪽은 사랑이고 왼쪽은 학업의 뜻이 이뤄지게 하는 물이란다. 인기만점으로 기나긴 줄에서 빠져나와 마시는 사람들 보며 입맛만 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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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국제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간사이, #오사카, #교토, #고베,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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