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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원하던 날 아이가 유난히 잠만 자는 것을 뇌수막염의 증상인지 모르고 하루를 보냈다. 닥쳐올 일들을 예측하지 못했던 폭풍전야.
▲ 입원하던날 입원하던 날 아이가 유난히 잠만 자는 것을 뇌수막염의 증상인지 모르고 하루를 보냈다. 닥쳐올 일들을 예측하지 못했던 폭풍전야.
ⓒ 이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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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이 일어났다. 고맙고도 반가운 사건.

우리 아이가 드디어 뒤집기를 해낸 것이다. 만 17개월을 하루 앞둔 날 오후였다. 보통 아이들이라면 100일을 전후해 해내는 뒤집기. 그러나 그동안 우리 아이는 할 수 있을 것만 같은데도 아슬아슬하게 해내지 못했다.

잠자기에 몹시도 인색한 아이는 낮잠시간도 30분 정도가 고작이다. 오전에 물리치료를 마치고 돌아오면 피곤할 텐데도 꼭 30분이 지나면 깨고야 만다. 잠을 깬 후에는 모자란 잠 때문에 칭얼대는 시간이 평균 한 시간. 하여 어김없이 바쁜 엄마의 성질을 꼭 건드리곤 한다. 

그런 아이가 그 날 따라 한 시간이 넘도록 깨어나지 않아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어보았더니 똑바로 눕혀놓았던 아이가 엎드려 자고 있는 것이 아닌가. 순간 내 눈을 의심하였다. 아니 내 기억력을 의심하였다. 내가 엎어 재워 놓았던가.

아이는 바로 눕혀놓으면 저 스스로 뒤집기를 못한다. 그래서 항상 자기 전에 보채고 뒤척일 때도 힘들어 했고, 낮잠 자다 깰 때에도 몸이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고 짜증내다 잠에서 깨는 경우가 태반이다.

전날 밤 몹시 바둥거리다 어쩌다 우연히 뒤집는 모습을 보면서 대견해 했는데, 저렇게 낮잠자다 고요히 뒤집고 계속해서 자는 모습은 아이가 태어난 이후 처음 목격한 장면이었던 것이다.

앗, 내가 엎어서 재웠던가?

앉은 상태에서 상체의 힘으로 다리를 끌어당겨 조금씩 움직이고 있다.
▲ 문화센터_주언 앉은 상태에서 상체의 힘으로 다리를 끌어당겨 조금씩 움직이고 있다.
ⓒ 이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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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생후 100일이 지나도 뒤집기를 못하였다. 뒤집기를 못할 뿐 아니라 목 가누기도 또래에 비해 많이 뒤처졌고 등에는 엄마만 눈치챌 수 있는 아주 작은 언덕도 볼록 솟아있었다.

생후 일주일경 세균성 뇌수막염으로 중환자실 신세를 지긴 했지만 거뜬히 이겨냈기에 아이의 움직임에 장애가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런데 정기 예방접종을 위해 찾은 소아과 의사가 "운동발달에서 의미있는 지체가 있다"는 소견을 제시하면서 발달지체의 원인을 찾기위한 여러 검사가 진행되었다.

그러나 모든 검사의 결과는 지극히 정상으로 판명되었고, 원인불명의 운동발달지체를 극복하기 위한 재활치료가 시작되었다. 그 때가 생후 5개월경이었다.

재활치료를 시작하면서 제일 처음 보인 변화는 울음소리였다. 배에 힘이 모자라서 울음소리마저 가늘가늘 위태했던 아이의 울음소리가 조금씩 커졌다.

뒤집기나 기기와 같은 눈에 띄는 발전은 없었으나 혼자 앉혀두면 짧은 시간이나마 구부정하게 앉아있을 수 있게 되었다. 돌 무렵이 되었을 때에는 상체의 힘으로 하체를 끌어당겨서 조금씩 움직일 수도 있었다.

처음 재활치료를 시작할 때에는 이렇게 열심히 1~2년 받으면 아이가 다른 아이처럼 걸을 수 있겠지 생각했었다. 그러나 치료가 한달 두달 거듭되면서 주변에 함께 치료받는 아이들을 지켜본 결과, 재활이라는 것이 그렇게 빠른 시간 안에 일구어낼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장애가 심한 경우 9살, 10살이 되어도 제 스스로 일어나 앉지도 못하는 것이 다반사라고 하고, 초등학교 입학 전에 걷는 것을 목표로 하루하루 운동하고 있는 수많은 아이들을 보며 우리 아이에 대한 목표도 장기적인 것으로 수정해야 하리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러니 아이에게 의미있는 진보가 하나하나 눈에 띌 때마다 육아와 치료 등 힘겨운 싸움으로 조금씩 지쳐가고 있는 나에게 다음 한 발을 내딛기 위한 새로운 힘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불확실한 미래, 실낱같은 희망... 그래도 힘내야지

물리치료실에서 서는 자세의 연습을 하고 있다.
▲ 치료실_주언 물리치료실에서 서는 자세의 연습을 하고 있다.
ⓒ 이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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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 이제 태어난지 17개월.

처음으로 뒤집기라는 것을 하였다. 그것도 자는 시간에 무의식적으로 움직인 것으로 혹시 깨어있는 시간에도 뒤집기를 할 수 있는지 여러번 시도하여 보았으나 아직은 안 되고 있다.

몸은 할 수 있는 능력을 간신히 갖게 되었지만 머리에서 동작을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보통의 아이들이라면 성장과 함께 본능적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신체적 장애를 가진 아이들은 하나씩 하나씩 세분화된 단계를 학습한다.

움직임의 동력이 되는 힘을 키우고, 몸을 만들고, 움직임을 배우고 다시 그것을 머리로 익히고…. 게다가 걸음마에 대한 심리적인 두려움과도 싸워야 한다.  

비록 무의식 중이긴 하나 뒤집기에는 성공하였지만 네발기기, 무릎으로 서기, 두발로 서기, 걷기 등 우리 아이가 갈 길은 아직도 멀고 과제는 참으로 많다.

그러나 이러한 사건은 앞으로 아이와 함께 할 시간들에 더 큰 힘을 불어넣어주는 희망이다. 장애아이를 키우는 것은 그런 것 같다. 앞을 예측하기 힘든 불확실한 상황 가운데 실낱같은 희망 하나를 부여잡고 한발짝씩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것.

이제 아이가 깨어있는 시간에도 뒤집기를 할 수 있도록 부지런히 도와주고 운동시켜 줄 일이 엄마와 아빠 몫으로 또 남는다.

엄마아빠가 해야할 일이 아무리 많아진다고 해도, 누워있을 때는 자유자재로 뒤집고, 저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나 서고, 또 한발을 내딛는 아이의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무척이나 즐거운 일이다.


태그:#장애, #재활치료, #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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