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아무리 자살률이 높은 나라라 하지만 일국의 대통령이었던 분을 죽일 정도로 심각한 사회문제를 안고 있을까요? 무슨 말도 안되는 헛소리냐구요? 어떤 분처럼, 본인이 원인이어 어쩔 수 없으며, 좀 더 큰 배포를 가지지 못한 죄라 할까요.

왜 그런 성격을 가지고 대통령까지 하셔서 지지리 욕만 먹고 고생만 하셨지요. 시골로 내려가서 조용히 살려 하는데 가만 놔두질 않고, 만만한 동네북처럼 얻어 맞고 터지고, 그리고 대통령을 한 죄로 당연히 자신과 관련된 사람들 또한 고생 받는 것이라 여겨야 하는데 그런 생각조차 자책에 쌓고 쌓아서 자신을 원죄의 덩어리로 만들어 놓고는 그 이른 아침에 결국 '자연의 한 조각'이 되어 버리셨군요.

꼭 내가 그를 죽이기라도 한 것 같습니다.

불안하다 했습니다. 제가 그를 처음 안 것이 겨우 2002년 대통령 경선 때였으니 아무것도 몰랐다고 해야 맞지요. 그 과정에서 널리 퍼지는 '바보스러움'이 왠지 어두운 사회현실에 작은 등불이라도 될 것 같아서 지지했더랬지요. 권위는 집어던지고, 진중함과 허례를 벗고 나니 검사들과 '막가는' 논쟁도 벌이고 대통령직을 걸고 정치모험을 하다가 탄핵소추를 당하고, 거대 권력인 언론과 혈혈단신 맞서다가 '노무현 때문이다'라는 우스갯소리의 주인공이 되고도 남았을 것이지요.

적어도 몇 천 억을 가지고 놀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떳떳함을 과시했던 여느 전 대통령과는 다르게 너무 청렴함과 도덕성을 강조하다보니, 본인 뿐 아니라 주변 모두가 괴로웠을 겁니다. 잡범 취급하며 들추어 언론에 까발리는 검찰의 행태도 그렇지만 이와 장단 맞추어 국민의 조롱거리로 전락시키는 일부 언론은 듣는 이들까지도 민망하게 만들었습니다. '생계형' 비리라니.

지금 이 사회는 비통함 속에 있습니다. 슬픔보다는 안쓰러움. 그리고 자괴감이 더 큰 느낌입니다. 왜 일반 시민들이 그를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것일까요.

저는 그를 아는 척 했습니다. 언론과 검찰이 아는 그를 말입니다. 신문이 떠들 때 나는 그를 이해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이제 나는 면목이 없으니 '나를 버리라' 했을 때 나도 그를 버렸습니다. 그래 너도 똑같은 '권력'의 유형과 다를 게 뭐 있느냐. 결국 그런 버림과 실망감이 노 전 대통령에게 전해진 것일까요. 그랬다면 정말 저는 이 글조차 쓸 수 없습니다.

'본인은 아직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 엄청나게 남아 있습니다.' 제가 당신의 등 뒤에 던지는 말입니다. 무엇이 당신을 불행 속에서 가게 했나요.

그 의문들을 제 스스로 정리하면서 한창 자라나는 아들에게 전해주고자 글을 써 봅니다.

아들아, 네가 태어날 즈음에 대통령직을 마치고 우리처럼 시골로 내려와서 살았던 대통령이 있었단다. 네가 보지 못했지만 그는 여느 대통령들과는 너무 달라서 주변 사람들을 실망시켰지.

하고 싶은 말은 그 자리에서 하고, 엄숙함이나 권위가 없어서 누구든 그를 만만하게 보고 비판의 말을 아끼지 않았지. 덕택에 임기 중반에는 탄핵소추를 당해서 대통령직을 내놓을 뻔할 지경에도 이르렀단다. 국민이 뽑아 놓은 대통령을 국회에서 탄핵하게 할 수는 없다는 모임이 촛불시위를 일으키고 다시 그를 대통령 자리에 올려놓았지만 그의 행동이나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단다. 강한 자에게 강하고 약한 자에게 약한 모습이 때로는 정말 '바보'스러울 정도였지.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지. '비교'가 우리를 깨닫게 하는 것이란다. 인간은 그래서 어리석지. 일본이나 미국을 대하는 방식 또한 지금과는 달리 당당하기 그지 없었다. 다 잘했다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그는, 아니 그래서 좋은 대통령이었다. 우리랑 가장 가까웠고 이 사회의 많은 권위와 형식을 물리쳐서, 전에는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병폐와 잘못된 점을 몸소 느끼게 해 주었지. 몰랐단다. 대통령 하나가 이렇게 다른 세상을 만들 줄은 그 다음 대통령이 취임하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알게 되었지. 하지만 그런 그를 그리워하기만 할 수는 없었단다. 우리가 보는 그의 모습은 '살아있는 권력'이 국민들에게 건네준 것이었다.

낚시 알지? 먹이를 던지고 걸릴 때까지 기다리는 거. 애초에 그의 취임 당시부터 그를 좋아하지 않던 검찰 권력이 정권이 바뀌자 '없으면 말고'식의 장기 수사를 하면서 드러난 가족들의 비리였던 거지.

네 아빠도 비리투성이란다. 지인이 무상으로 집을 빌려주어 산 적도 있고, 네가 태어나기 얼마 전 작은아버지가 잘 살라고 트럭을 한 대 사주셨고, 아버지가 집지으라고 돈을 준 것을 넙죽 받았으니 말이다. 아빠가 군의원이라도 되었다면 아마도 더 했을 것이다. 대통령은 어떻겠니. 콩 볶듯이 주변인들을 들들 볶아서 기름이 한 방울이라도 나올 때까지 짠 결과 지금 우리 사회 전반이 그러하듯 가지고 있던 대통령가의 사적인 '비밀'들이 펼쳐져 버린 것이지.

그런데, 아빠가 살면서 느낀 점은 유난히 큰놈의 비리에는 유연하고 작은 놈의 비리에는 칼 같은 이 나라의 단죄법이 이때도 여실히 보이는 거지.

'삼김 시대'. '친이친박'은 들어봤니? 정계 데뷔 때부터 계파정치와 지역정치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쳤던 그 대통령은 결국 그 뜻을 이루지 못했지. 그 혼자서 허물어 내기엔 쌓인 벽이 너무 두터웠던 거야. 그런 그는 역설적이게도, 주변의 세력이나 계파가 뚜렷하지 않아서 자신을 '살아있는 권력'으로부터 지킬 수 없게 된단다.

아빠는 정치가 그래서 싫더구나. 그래서 내가 가진 투표권을 최대한 신중하게 행사해야 겠다는 생각도 들어.

아들아, 아빠는 갑자기 오늘 두렵구나. 네가 이 사회에서 독립하여 살아갈 때 즈음이면 이 사회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말이다.

'바보'가 사랑받는 사회가 왔으면 하는 것이 지금 아빠가 가진 가장 큰 소망이란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진안신문(janews.co.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노무현 서거, #대통령 서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사는데로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는데로 살기 위해 산골마을에 정착중입니다.이제 슬슬 삶의 즐거움을 느끼는 중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