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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채널을 돌리다 보면 만나게 되는 수없이 많은 광고들 중에 유독 관심을 끄는 것이 있다.  바로 가슴을 크게 보이는 보정물 광고, 브래지어 광고 심지어 바르면 커진다고 하는 광고들이 그것이다. 이런 광고들은 신문 광고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가슴이 커진다고 유혹하는 광고들 중 하나는 재미있게도 여성들에게 직접적으로 '이거 함 이용해봐라'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남자들을 이용한다. 남자들이 광고 첫머리부터 나와서 '여자를 볼 때 가슴을 먼저 본다느니, 가슴이 예뻐야 몸매가 좋아 보인다느니' 한다.  그것을 보면 그 뻔히 보이는 상술에 헛웃음이 나오지만 더 씁쓸한 것은 그런 남자들의 말들과 태도들이 여성들에게 먹힌다는 것이다. 

 

빅토리아 시크릿이라는 속옷 브랜드를 아는가? 화려하고 거대한 규모의 속옷 패션쇼를 한번이라도 본 사람들이라면 그 매혹(?)적인 모델들의 모습에 눈을 빼앗기게 될는지 모른다. 재밌는 것은 그 브랜드의 마케팅이다. 여자들이 아닌 남자들을 타깃으로 했다. 남자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하는 여심을 이용한 것이다. 그 마케팅은 성공했다. 보라, 많은 남자들이 빅토리아 시크릿 쇼를 기다리며 여자들은 그 속옷들을 입으려고 한다. 

 

여기서 나의 의도를 가슴 보정물 사지마라, 빅토리아 시크릿 속옷을 사지마라로 오해하지 마시길.(물론 궁극적인 것은 그런 것들 없이도 당당한 여자들의 모습이지만)  다만 <유방의 역사>(The history of the Breast)에서 지적한 것처럼, 우리 여성들의 가슴이 남성들의 시각으로 보이고 이용당하고 또 괴롭힘을 당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과거에도 그랬으며 그것은 현재에도 유효하다. 많은 여성운동가들이 여성 가슴의 해방을 위해 브래지어를 불태웠지만 여전히 브래지어는 강력하다. 그것도 암묵적인 사회적 합의에 의해서. 유방암 때문에 인조 유방을 만들기보다 잘라내는 것을 선택한 여성, 그것을 보는 많은 다른 여성들은- 남성들은 말할 것도 없이- 그 용기를 응원하기보다는 안됐다는 시선을 보낸다. 

 

이 책의 부제는 "여성의 가슴에 대한 소유와 인식의 9가지 고찰"이다. 그에 따라 역사적으로 여성의 가슴이 어떻게 인식되어 왔으며 또 어떤 역할을 하였는지 이야기하고 있다. 물론 그 가슴의 소유자로서 명령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은 어제나 오늘이나 여성 자신이 아닌 남성이라는 것이 이 책이 지적하고자 하는 바다. 

 

유방이라고 하면 대부분 에로틱한 감정을 먼저 떠올리는데, 이 책은 성스러운 유방에 대해서 먼저 말하고 있다. 즉, 여신이나 여사제, 성경 속에 나오는 여성 그리고 성모 마리아까지 남성들은 그들의 유방에 신성함을 부여했다는 것이다. 반면 에로틱한 유방은 남성들에게 쾌락을 주는 원천으로 곧잘 골짜기로 비유되어 왔다. 

 

그 뿐인가. 가정에서 생명의 원천과 편안함의 상징이 되어 있는 어머니 그리고 아내로서의 유방도 있다. 다만 그네들 유방의 역할은 거기서 그쳤을 뿐이지만. 국가를 위한 유방도 있다. 우리들은 학창 시절 사회책에 나온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란 그림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여성들의 유방은 국가를 위해서도 선전해야 했다. 여성에게 주어진 역할이 그것뿐이라는데 문제가 있지만 말이다. 

 

시장통에 내걸린 유방, 이것이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가장 친숙하다.  광고에서, 쇼 프로에서 지하철을 타도 어디에나 유방은 활보한다. 더 큰 가슴, 더욱 더 보기 좋은 가슴을 위해 여성들은 오늘도 고민한다. 잠깐, 그런데 왜 그래야 하는 건데?  왜 작은 가슴과 덜 보기 좋은 가슴은(사실 이 표현도 문제 있지만) 자꾸만 어깨가 작아지는 거지?

 

그런데 과연 여성의 가슴이 남성의 것이 아닌 온전히 여성의 것으로만 인식될 수 있을까?  이 책에서는 긍정적인 대답을 하고 있다. 다만 그러기 위해서 우리 모두가 룩셈부르크가 되지는 못하더라도 우리 여성들의 자각이 먼저이어야 한다. 지금은 당연한 권리로 느껴지는 것들, 여성들이 브래지어를 착용할 것인지 아닌지, 아이에게 모유를 먹일 것인지 아닌지, 유방성형을 할 것인지 아닌지를 여성들이 주장할 수 있게 된 게 불과 100년도 채 되지 않았음을 기억한다면. 


유방의 역사

매릴린 옐롬 지음, 윤길순 옮김, 자작나무(1999)


태그:#유방의 역사, #가슴, #빅토리아 시크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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