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5년 야심차게 출발한 프로배구 V리그가 어느덧 6번째 시즌을 맞고 있다. 그러나 지난 5번의 시즌을 돌이켜 보면 한마디로 '그 나물에 그 밥' 이었다.

탄탄한 조직력을 자랑하는 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가 3번, 압도적인 높이를 앞세운 천안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가 2번씩 우승을 나눠 가졌기 때문이다. 두 팀의 치열한 라이벌전은 연일 명승부를 연출했지만, 덕분에 배구팬들은 5년 동안 똑같은 개막전과 똑같은 챔프전을 봐야만 했다.

드디어 여섯 번째 시즌. 팀 별로 고작 2~3 경기를 했을 뿐이지만, 드디어 배구판에 작은 변화가 생기고 있다. '양강' 삼성화재와 현대캐피탈이 나란히 시즌 첫 패를 당한 가운데 지난 3년간 플레이오프조차 나가지 못한 팀이 개막 후 3연승의 고공행진을 펼치고 있다. 바로 구미 LIG손해보험 그레이터스가 그 주인공이다.

이경수 없이도 개막 3연승을 달리는 원동력은?

LIG손해보험은 지난 1일 개막전에서 대한항공 점보스를 3-1로 꺾은 후 KEPCO45와 삼성화재를 연파했다. 특히 '디펜딩 챔피언' 삼성화재를 상대로 단 한 세트도 내주지 않고 3-0 완승을 거뒀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팀 전력의 절반이라는 '거포' 이경수가 빠진 상태로 거둔 연승이라는 점이다. 무릎 수술 여파로 올시즌 선발 출장하지 못하고 있는 이경수는 지난 시즌까지 정규시즌에서만 무려 2577득점(역대 1위)을 기록할 정도로 LIG손해보험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진 선수다.

최고의 선수가 빠졌음에도 팀이 잘나가고 있다는 것은 그 공백을 메워주고 있는 대체 선수의 활약이 크다는 뜻이다. 그러나 V리그는 아직 신인 드래프트도 시행하지 못했다. 팀 분위기를 바꿔 놓은 '슈퍼 루키'가 들어 왔을 리도 없는 노릇이다.

이경수의 빈자리를 탄탄하게 메워주며 LIG손해보험을 3연승으로 이끌고 있는 주인공은 다름아닌 상무에서 갓 전역한 '예비역 병장' 임동규와 김철홍이다.

지난 4월 전역 후 각각 레프트와 센터에서 주전 자리를 확보한 두 선수는 쏠쏠한 활약으로 시즌 초반 LIG 돌풍을 주도하고 있다.

'레프트 변신' 임동규, 수비에 눈을 뜨다.

 안정된 서브리시브로 조직력을 살려준 임동규

안정된 서브리시브로 조직력을 살려준 임동규 ⓒ LIG손해보험 그레이터스

배구명문 경기대 출신의 임동규는 지난 2005~2006 시즌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전체 2순위로 LIG 유니폼을 입었다.

임동규는 193cm의 신장에 경쾌한 스파이크를 자랑하는 오른쪽 공격수로 주목을 받는듯 했지만, 외국인 선수 키드, 노장 김성채 등 선배들에 밀려 벤치로 밀려나기 일쑤였다.

결국 팀 내에서 입지를 다지지 못하고 상무에 입대했지만, 임동규는 상무에서 '반전의 계기'를 만나게 된다. 왼쪽 공격수가 부족했던 상무의 팀 사정 탓에 임동규는 자연스럽게 레프트로 변신할 수 있었고, 불안했던 수비 실력이 일취월장한 것이다.

지난 4월 전역한 임동규는 마침 이경수가 빠진 레프트 한 자리를 꿰찼고, 안정감 있는 플레이로 '주포' 김요한과 피라타의 공격력을 극대화하고 있다.

특히 임동규는 개막 후 지난 3경기에서 61.8%의 높은 서브 리시브 성공률을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주공격수 김요한(31.7%)은 물론이고, 수비전문 리베로 한기호(56.7%)보다 뛰어난 성적이다. 여기에 51.6%의 높은 공격 성공률까지 갖추고 있으니 보조 공격수로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활약을 하고 있는 셈이다.

LIG손해보험은 2라운드부터 이경수가 본격적으로 가세할 예정이지만, 이미 팀에 없어서는안될 존재가 돼버린 임동규의 주가는 한동안 상승세를 이어갈 전망이다.

자신감 찾은 김철홍, 최고 센터로 우뚝

 초반 3경기만 보면 김철홍은 분명 리그 최고의 센터 중 한 명이다

초반 3경기만 보면 김철홍은 분명 리그 최고의 센터 중 한 명이다 ⓒ LIG손해보험 그레이터스

임동규가 상무에서 배운 것이 '안정감'이라면, 김철홍이 군생활을 통해 얻은 것은 '자신감'이다.

프로 원년부터 LIG손해보험에서 활약한 김철홍은 입단 후 3년 동안 방신봉, 홍석민, 하현용에 밀려 자신의 기량을 제대로 뽐내지 못했다. 세 시즌 동안 기록한 득점은 고작 61점에 불과했다.

그러나 김철홍은 상무 입단후 김상기(KEPCO45)라는 걸출한 세터를 만났고, 상무에서의 두 시즌에서 무려 375점을 올리는 성과를 이뤄냈다.

상무에서 거둔 '실적'은 전역 후에도 곧바로 코트에서 증명되고 있다. 올 시즌 하현용과 함께 LIG손해보험의 센터라인을 지키고 있는 김철홍은 속공 성공률(66.7%)과 블로킹(세트당 0.91개) 부문에서 각각 2위를 달리며 리그 최고의 센터 중 한 명으로 거듭나고 있다.

특히 대한항공과의 개막전에서는 무려 8개의 블로킹을 잡아내며 '불가리아 특급' 밀류셰프를 철저히 봉쇄했다.

'모래알 조직력'이라는 비아냥거림을 들었던 LIG손해보험에 안정감을 가져다 준 임동규와 언제나 경기 후반에 맥없이 무너지던 팀에게 '뒷심의 위력'을 보여주고 있는 김철홍. 누가 운동 선수들에게 군대는 치명적이라 했던가.

V리그 LIG손해보험 임동규 김철홍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