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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오후 11시. 한나라당 당사 2층 상황실에 모인 안상수 대표와 최고위원들은 방송사 ENG 카메라를 앞에 두고 넙죽 큰 절을 올렸다. 비슷한 시각, 민주당 영등포당사 2층 상황실에 들어온 정세균 대표와 최고위원들은 굳은 얼굴로 기자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국민의 뜻을 받들겠다"는 짦은 인삿말을 뒤로 한 채 정 대표는 당 대표실로 사라졌다.

 

불과 50여 일. 6.2 지방선거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분위기는 뒤바꿨다. 7.28 재보선 결과, '민심의 회초리'를 맞은 쪽은 여당이 아니라 야당이 돼 버렸다. 5대3. 여당의 압승, 야당의 참패였다.

 

이번 재보선 결과는 여야 어느 쪽도 예상하지 못했다. 선거 직전만 해도 한나라당은 "한 두석 정도면 잘 한 것"(안상수 대표)이라는 분위기였다. 선거일 아침, 한 라디오 방송에 나온 민주당 재선의원은 "8곳 중 6곳 정도는 이길 것이라고 본다"고 낙관했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로 나왔다.

 

안일했던 민주당... '인물'로 지고, '양보' 안해 인심 잃고

 

결과만 놓고 보면, 야당의 7.28 재보선 패배는 자초한 길이었다. 제1야당으로 선거전의 주도권을 놓지 않았던 민주당 지도부는 6.2 지방선거 승리에 도취한 듯 안일하게 대응했다.

 

가장 큰 패인은 역시 '인물'이었다. 가장 극명한 예로, 민주당은 최대격전지이자 최대 강적이 등장한 서울 은평을 지역구에 구시대 이미지가 강한 70살 장상 후보를 내세웠다. 이유는 하나다. 장 후보에게 민주당이 진 빚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최근 사석에서 "장 후보를 내세운 것은 빚을 갚아야 했기 때문"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하지만 장 후보의 적합성을 놓고 선거 기간 내내 당 안팎의 비판은 끊이지 않았다. 막판까지 후보단일화를 놓고 국민참여당과 민주노동당이 반발한 것도 민주당 후보에 대한 못미더움이 컸다. 우여곡절 끝에 다른 야당의 동의를 받아냈지만, 장 후보는 18%p차로 허무하게 무릎을 꿇었다. 민심의 요구보다 당의 이득을 먼저 쫓은 결과다.

 

서울 '은평을'뿐만 아니라 충북 충주, 충남 천안 등에서도 후보 적합성에 대한 비판이 컸다. 7.28 재보선 과정에 깊이 참여한 민주당의 한 원외인사는 "만약 선거에서 진다면 원인은 후보 때문일 것"이라는 진단을 내린 적도 있다. '계파 안배' 차원에서 공천을 한 게 선거전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얘기다. 그의 진단은 맞아 떨어졌다. 민주당은 최선의 후보를 찾았다고 했지만, 거대 여당의 대표급 선수들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민주당의 안일함은 인천 계양을의 패배와 광주 남구의 '신승'(辛勝, 매우 어렵게 이김)에서도 드러났다. 민주당은 두 곳 모두 '텃밭'으로 여겼다. 결과는 패배와 위험으로 나타났다. 광주에서 민주노동당 오병윤 후보가 40% 이상 지지율을 얻은 것은 호남이 더 이상 민주당의 표밭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줬다.

 

'반MB 연합전선'을 표방하고도, 다른 야당에 양보하지 않는 편협함을 유권자들에게 보인 것도 민주당의 실수였다. 한나라당에 붙어 있던 '오만하다'는 이미지가, 이번에는 민주당에 덧씌워졌다.

 

반면 한나라당은 '지역일꾼론'을 내세우며 철저하게 각개전투를 벌인 게 승리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 6.2 지방선거의 패배를 교훈 삼고, 재보선의 특성(낮은 투표율)을 파악해 바닥의 조직표를 끌어모은 것도 유효한 작전이었다. 안상수 대표 등 당 지도부가 전국을 다니며 바닥에 무릎을 꿇은 것은 '미워도 다시 한 번'이라는 유권자들의 감성을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

 

5석 전리품 챙긴 한나라당, '공룡 여당' 주도권 쥘 듯

 

7.28 재보선 결과로 여야는 희비가 극명히 엇갈리는 8월을 맞게 됐다.

 

한나라당은 희색이 가득하다. 가장 큰 성과는 야당에 뺏긴 정국 운영의 주도권을 다시 찾아온 것이다. 7.28 재보선의 전리품으로 5석을 추가한 한나라당은 172석의 '공룡 여당'으로 몸집을 부풀렸다. "민심이 돌아왔다"는 주장과 함께 9월 정기국회에서부터 4대강 사업, 2011년 예산안, 개헌 등 각종 현안을 주도할 힘을 갖게 된 셈이다.

 

당내에서는 '쇄신 실패론'을 잠재울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지난 7월 14일 전당대회를 통해 등장한 안상수 대표 체제는 불과 14일 만에 재보선 승리를 거머쥐면서 안정된 길로 접어들게 됐다. 6.2 지방선거의 후유증을 말끔히 털어냈다고 볼 수 있다.

 

탄력을 받은 한나라당은 '친서민-중도실용'을 내세우며 2012년 총선과 대선까지 정국 운영을 주도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다만 '왕의 남자' 이재오 후보의 귀환으로 인해 꺼져 가던 계파 갈등이 다시 불 붙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은 문제다. 이명박 대통령의 직계로 분류되는 이 후보는 4선 중진의원으로 화려하게 복귀하면서 곧바로 친이계의 좌장으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높다. 이럴 경우, 당 지도부의 "계파 해체" 선언에도 친박계의 위기감이 높아지면서 계파 재결집 효과를 불러 올 수 있다. 7.28 재보선의 승리가 당 분열의 씨앗을 낳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민주당은 비통한 표정이다. 이번 재보선 결과로, 민주당 지도부는 안팎의 도전에 부딪히며 극심한 내홍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당 바깥에서는 "민심을 외면했다"는 진보진영의 비판에 직면하게 됐다. 정부 여당의 천안함 외교 실패, 민간인 사찰, 특정 인맥의 국정 농단, 여당 의원의 성희롱, 외통부장관의 막말 등 쏟아진 '호재'에도 불구하고 민심을 얻지 못한 민주당에 진보진영과 다른 야당의 비난이 쏟아질 것은 뻔한 이치다.

 

'맏형론'과 '당선 가능성'을 내세우며 8곳 지역구 어느 한 곳도 양보하지 않은 민주당에 떨어질 돌팔매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가 될 것으로 보인다. 6.2 지방선거를 치른 지 불과 50여 일 만에 민심을 잃은 민주당에 "더 이상 기대할 게 없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시간 문제다. 

 

당내에서는 '정세균 리더십'을 의심하는 비주류의 공세가 거세질 전망이다. 이번 선거 패배로, 8월 말 전당대회를 앞둔 정 대표는 입지가 크게 흔들리게 됐다. 이미 그는 당 대표 재선의 뜻을 굳힌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손학규, 정동영, 박주선, 김효석 등 당내 유력인사들도 당 대표 출사표를 써놓고 있는 상황이다. 7.28 재보선 패배를 기회로, 정 대표 체제에 가려졌던 비주류가 일제히 '책임론' 공세를 퍼부을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민주당의 8월은 '잔인한 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에 남은 것은 하루 빨리 패배의 상처를 딛고 일어서는 것뿐이다. 그나마 3석을 얻어 늘어난 87석으로 9월 정기국회에서 공룡 여당과 맞서 싸우기 위해 대비할 시간은 한 달 밖에 남지 않았다. 정 대표가 얼마나 빠른 시간 내에 당을 추스르고, 잡음을 줄이며 전당대회를 잘 치르느냐에 따라 민주당의 운명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태그:#7.28재보선, #한나라당, #민주당, #6.2지방선거, #공룡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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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오마이뉴스 입사 후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편집부를 거쳐 정치팀장, 사회 2팀장으로 일했다. 지난 2006년 군 의료체계 문제점을 고발한 고 노충국 병장 사망 사건 연속 보도로 언론인권재단이 주는 언론인권상 본상, 인터넷기자협회 올해의 보도 대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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