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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토) 오후 5시 김대중 대통령 모교인 하의초등학교에 입촌한 '2010 청년김대중캠프' 회원들은, 하의도 부녀회원들이 지어내 온 밥과 반찬으로 저녁을 맛있게 먹고,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의 추모강연(주제: 젊은 그대, 피스 메이커가 되자)를 들었다. 

 

 

정 전 장관의 강연에 앞서 (사)'행동하는 양심' 이사장 이해동 목사의 인사말, 박준영 전남 도지사, 박우량 신안군 군수, 박종원 하의도 면장, 김용국 하의초등학교 교장의 따뜻한 환영사가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이 3년 동안 다녔던 하의초등학교 발전기금 전달식과 하의중고등학교에 전하는 양심문고 기증식에 이어 시작된 추모강연에서 정 전 장관은 김대중 대통령을 '화해와 용서'의 상징으로 정의했다.

 

정 전 장관은 평화의 제작자인 피스 메이커(Peacemaker)가 된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떤 상태를 의미하는지부터 말하겠다며 평화를 깨뜨리기보다는 지키는 것, 그러니까 안보만 외치는 게 아니라, 튼튼한 안보를 전제로 대화와 협력을 통해 평화를 정착시키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김대중 대통령은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내일을 준비했고, 마지막까지 소신을 잃지 않았던 정치인이었다"고 평가하면서 "김 전 대통령의 고귀한 정신과 삶을 젊은이들이 나서서 배우고 확산시켜 역사를 바로 세우는 계기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을 바보로 만드는 관료는 잘라야"

 

정 전 장관은 이명박 정부는 남북협력기금을 1조 이상 만들어놓고도 임기 절반을 넘긴 7월 말 현재 집행을 3.3%(336억)밖에 하지 않고 있다며 그러한 결과는 현 정부가 피스메이킹에 얼마나 소홀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자신이 통일부 장관이었던 시절에는 95%를 집행했다는 것.

 

남북협력기금은 북방정책을 추진했던 노태우 정부에서부터 책정되기 시작했는데 김대중 정부 때는 김영삼 정부에서 넘어온 협력기금이 3천억 원 정도 되었다면서 자신이 통일부 장관일 때 북한에 쌀과 비료를 가장 많이 지원했다고 밝혔다.  

 

그렇게 남북관계가 활성화되면서 기금도 5천억 원으로 올라갔고, 쌀 120만 톤, 비료 30만 톤을 북에 보냈는데 돈으로 환산하면 4억 불 정도 된다면서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으로 한반도에 평화가 유지되어 신용등급이 올라가고 외국자본이 들어와 IMF 체계도 빨리 벗어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정 전 장관은 지난 3월 26일에 일어난 천안함 사태를 계기로 5월23일 발표된 대북성명과 대북군사조치로 피스메이커 프로세스까지 중단되었다고 지적하면서 남북 사이에 긴장과 대치가 길어지고 있는 현 시국을 우려했다.

 

정 전 장관은 이명박 정부는 무기로 평화 만들기에 집착하고 있다면서 천안함 사태를 구실로 매달 군사훈련을 시행하는 방법으로는 남북관계가 원만하게 발전하지 못하고, 경제도 살아날 수 없다면서 현 정부의 대북강경정책을 비판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8·15 경축사에서 나왔던 통일세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던졌다. 군사훈련을 하면서 난데없이 통일세를 걷겠다고 발표해놓고 여론이 좋지 않으니까 "당장 과세할 것 아니다!"며 한발 물러섰는데, 그렇게 일관성 없는 업무로 대통령을 바보로 만드는 관료는 잘라야 한다는 것.  

 

"북한이 자생력 키우는 길 택해야"

 

개성공단 사업은 개성 근처에 주둔하던 북한군 2개 사단과 2개 포병 여단이 북쪽으로 물러나고, 군사지역에서의 긴장완화, 북한 주민이 남한을 호의적으로 대하는 효과를 가져왔는데도 퍼주기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겠느냐며 답답함을 표출했다.

 

정 전 장관은 외교부는 물론 통일부나 국정원이나 우리나라 외교관이야말로 진정한 피스메이커가 되어야 한다며 "우리나라 사람들은 미제를 너무 좋아한다"는 말로 대량살상무기를 앞세워 전쟁으로 평화를 지키려는 미국을 에둘러 비판했다. 

 

96년 1월 초에 미국의 정보기관에서, 연구기관에서 '북한은 10년 안으로 붕괴된다'는 내용의 연구결과가 쏟아져 나왔는데, 북한은 2006년에 멀쩡히 체제를 유지하고 있었다면서 그 책임을 김대중·노무현 정부에 돌리는 분도 있지만, 북한이라는 사회주의는 CT나 MRI 검사로도 감식할 수 없는 특수한 체계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리 밑에 사는 가난뱅이 예를 들기도 했다. 부자가 볼 때는 다리 아래에서 살아가는 가난뱅이가 금방 굶어 죽을 것으로 보이겠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 해서 진정한 피스메이커가 되려면 북한이 자생력을 키우는 길을 택해야지, 붕괴를 전제로 하는 대북정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강연 시작 1시간이 가까워지면서 빨리 끝내달라는 쪽지가 들어오니까 "오늘 이 자리에는 피스메이커 책을 출판한 임동원 장관이 서 계셔야 하는데, 임 장관이 '저는 나이가 많으니까 젊은 정 장관이 다녀오시지요'라고 해서 오게 되었습니다"라고 해서 웃음이 터지기도.

 

정 전 장관은 강연 말미에 상대를 내치기보다는 따뜻한 심장과 넓은 가슴으로 상대를 안아 주는 마음으로 너와 나의 상생을 위한 피스메이커가 되어 남북이 공생, 공영으로 가는 길을 택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정 전 장관은 당장 허덕이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북한과의 관계는 정상으로 회복되어야 한다면서 피스메이커는 자기 자식을 병신으로 만든 사람을 용서할 수 있을 정도로 속이 넓은 사람만이 할 수 있다며 김대중 대통령의 화해와 용서의 철학을 강조하는 것으로 강연을 마쳤다. 

 

언제부터 김대중 대통령과 인연을 맺기 시작했느냐는 질문에는 대학원생이었던 71년 4월 장충단 연설에서 통일문제에 대해 결정적인 영향을 받았다며, 77년부터 통일원에서 일하다가 국민의 정부가 출범하던 1998년에 차관으로 임명장을 받으면서 첫 대면이 시작되었다고 회고했다. 

 

 

'2010 청년김대중캠프' 둘째 날(22일)은 김대중 대통령이 한문을 배우러 다녔던 '덕봉서원'과 '하의3도 농민운동기념관', '소금 박물관' 등을 견학하고, 하의도 명물로 주목받기 시작한 '큰 바위얼굴'을 둘러본 뒤 근처 해수욕장에서 피로를 푸는 것으로 일정을 마쳤다.

 

1976년 3.1 민주구국선언사건으로 감옥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는 이해동 목사는 '2010 청년김대중캠프'를 무사히 마치게 된 데 대해 하의도 주민과 면사무소 직원들, 하의면 이장단, 특히 청정해역에서 나오는 농수산물로 음식을 제공해주고 환대해준 부녀회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정세현, #피스메이커, #행동하는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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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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