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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천년고도옛길'은 오랫동안 잘 보존돼 온 산, 강, 마을, 각종 문화재 등을 잇는 12개 구간으로 나뉘어져 있지만 모두 하나로 연결돼 있다.
 '전주천년고도옛길'은 오랫동안 잘 보존돼 온 산, 강, 마을, 각종 문화재 등을 잇는 12개 구간으로 나뉘어져 있지만 모두 하나로 연결돼 있다.
ⓒ 박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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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걷는 길이지만 자연이 선물로 내어준 풍경의 색채와 바람 소리의 빛깔이 철 따라 다르니 지루하지 않다. 자연은 사시사철 다양한 볼거리와 활력을 불어넣어주니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게다가 매일 걷는 산책길이 천 년 동안 쭉 이어온 옛길이라니, 조상님들의 숨결까지 저절로 느껴진다.  

도심 맹꽁이 생태습지로 많이 알려진 오송제 입구.
 도심 맹꽁이 생태습지로 많이 알려진 오송제 입구.
ⓒ 박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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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사는 전주시에는 오랫동안 잘 보존돼 온 산과 강, 마을과 각종 문화재들을 잇는 '천년고도옛길'이 12개 구간이나 있어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 모으고 있다. 가고 싶은 옛길을 골라 걸으며, 다양한 풍경을 맘껏 감상할 수 있는 일이야말로 큰 축복임을 길 위에서 항상 깨닫는다.

전주를 천년고도라고 부르는 것은 900년 견훤이 전주에 '견훤성'을 쌓아 후백제의 수도로 삼은 데서 비롯된다. 여기에다 전주는 조선시대의 발상지로 경기전(慶基殿, 사적 제339호)이 있는 곳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과 '완산지'에 따르면 전주는 '조선 왕조 임금들의 고향[帝鄕, 豊沛]이며 산천이 빼어나게 아름답다'고 기록하고 있다.  

'전주천년고도옛길' 1구간, 한 여름에도 볼거리 '풍성'

오송제를 지키고 서있는 고목들, 나이가 궁금하다.
 오송제를 지키고 서있는 고목들, 나이가 궁금하다.
ⓒ 박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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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천년고도옛길'은 '(사)우리 땅 걷기'가 주관하고 전주시가 후원하여 2011년 복원·개통한 옛길이다. 옛길의 이름들이 고스란히 담긴 '천년고도옛길'은 경기전을 출발하여, 완산칠봉과 다가공원을 지나 전주천 변을 거쳐 덕진공원을 경유, 건지산길을 천천히 걸으며 소중한 역사와 조상들의 숨결을 동시에 만날 수 있도록 했다.

1코스부터 12코스로 나뉘는 '전주천년고도옛길'은 1코스(건지산 옛길), 2코스(완산칠봉 옛길), 3코스(학산길), 4코스(흑설골과 남고산성 옛길), 5코스(기린봉 옛길), 6코스(만경강 옛길), 7코스(추천대와 서고사 옛길), 8코스(삼천천 옛길), 9코스(귀신사와 금산사 옛길), 10코스(전주천 옛길), 11코스(한옥마을 길), 12코스(통영대로 길)로 이어진다.

이 중에서도  1코스인 '건지산 옛길'은 한 여름에도 다양한 풍경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이 길은 전주덕진공원에서 출발하여 최명희 혼불문학공원, 오송제,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전주동물원, 대지마을, 건지산, 조경단, 편백나무 숲, 체련 공원을 잇는 구간으로 모두 돌아보려면 4~5시간 정도 소요된다. 차를 타고 외지에서 온 사람들은 한국소리문화의전당이나 덕진공원 무료주차장에 차를 놓고 걷는 것도 괜찮다.

 오송제에는 최근 멸종위기식물인 '전주물꼬리풀'이 101년 만에 돌아와 관심을 끌었다.
 오송제에는 최근 멸종위기식물인 '전주물꼬리풀'이 101년 만에 돌아와 관심을 끌었다.
ⓒ 박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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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에는 생태습지인 오송제에서부터 역순으로 걸어보았다. 최근 하천과 사람이 공존하는 생태하천 조성사업과 도심의 맹꽁이 생태습지로 많이 알려진 오송제는 초입부터 활짝 핀 연꽃들이 반겨주니 둔탁했던 마음이 한결 맑아지는 듯했다.

한국소리문화의전당과 전북대학교를 마주하고 있는 오송제는 희귀종인 낙지다리 군락 등 식물과 오색딱따구리·기러기·쇠오리 등 조류, 밀잠자리·모메뚜기·게아제비 등 곤충을 합쳐 동·식물 300여 종이 생태 가족을 이루고 있다.

한때 인근 과수원 농가들에서 유입되는 농약과 낚시꾼, 등산객이 버리는 쓰레기에 의해 저수지가 훼손되고, 제방 아래 대단위 아파트단지들이 들어서면서 위기를 맞았지만, 전주시 송천동 및 호성동 주민들은 2007년부터 '오송제 지킴이'를 만들어 주민 스스로 저수지 주변 생태환경 보호에 앞장서고 있어서 지금은 도심의 허파기능을 잘 유지하고 있다.     

오송제, 101년 만에 돌아온 '전주물꼬리풀'로 유명

오송제는 희귀종인 낙지다리 군락 등 식물과 오색딱따구리·기러기·쇠오리 등 조류, 밀잠자리·모메뚜기·게아제비 등 곤충을 합쳐 동·식물 300여종이 생태 가족을 이루고 있다.
 오송제는 희귀종인 낙지다리 군락 등 식물과 오색딱따구리·기러기·쇠오리 등 조류, 밀잠자리·모메뚜기·게아제비 등 곤충을 합쳐 동·식물 300여종이 생태 가족을 이루고 있다.
ⓒ 박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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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송제 습지복원과 생태보호는 2011년 환경부와 (사)한국환경계획·조성협회가 주최하는 자연환경대상 공모전에서 대상을, 2012년 제2회 대한민국 경관대상에서 최우수상을 받는데 기여했다. 또 오송제에는 최근 멸종위기식물인 '전주물꼬리풀'이 101년 만에 돌아와 관심을 끌기도 했다.

전주'라는 지명이 붙은 유일한 다년생 야생화인 '전주물꼬리풀'은 자연발아율이 10% 이하로 매우 낮고 우리나라 남부지방의 햇빛이 잘 드는 습지에서 자라는 특성이 있다.

천년고도옛길을 따라 한국소리문화전당 쪽으로 걸어가면 마주하게 되는 울창한 편백나무 숲.
 천년고도옛길을 따라 한국소리문화전당 쪽으로 걸어가면 마주하게 되는 울창한 편백나무 숲.
ⓒ 박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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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송제에서 '전주천년고도옛길'을 따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쪽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울창한 편백나무 숲과 마주하게 된다. 한 여름 더위에도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이 편백나무 숲길은 나무에서 뿜어대는 '피톤치드'라는 물질이 많아 항상 인기를 누리는 곳이다.

피톤치드라는 물질이 사람들에게는 좋지만, 곤충들에게는 치명적이어서 편백나무 숲에는 모기나 파리 등이 없고 거미조차도 거미줄을 치지 못한다고 한다. 또한 편백나무 숲에는 어떤 다른 종류의 나무들 허락하지 않는다. 관목도 그 어떤 잡초도 자라지 않는 것이 편백나무 숲이다.

한 여름에도 피톤치드를 많이 내어주는 편백나무 숲은 사람들에게 인기다.
 한 여름에도 피톤치드를 많이 내어주는 편백나무 숲은 사람들에게 인기다.
ⓒ 박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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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백나무 숲에 서면 몽글몽글한 편백 낙엽과 이미 도태되어 사라진 다른 나무들의 흔적만이 뒹굴고 있을 뿐이다. 사람에게 피톤치드를 마음껏 누리게 하고 사람들을 귀찮게 하는 해충들은 접근조차 허락하지 않으니 이런저런 이유로 편백나무 숲은 인기가 좋다.

덕진공원 '처염상정' 연꽃 가득... 부도덕한 사람들에 경종 울려줘

해마다 이맘대면 화려한 연꽃이 활짝 피어 사람들이 발길이 줄을 잇는 전주덕진공원.
 해마다 이맘대면 화려한 연꽃이 활짝 피어 사람들이 발길이 줄을 잇는 전주덕진공원.
ⓒ 박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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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천년고도옛길'의 정점은 역시 덕진공원이다. 해마다 이맘때면 화려한 홍련이 활짝 피어 사람들이 발길이 줄을 잇는 곳이다. 덕진연못 길에 들어서면 언제나 진흙탕 속에서 피어나지만, 결코 더러운 흙탕물이 묻지 않는 연꽃을 상징하는 '처염상정(處染常淨)'을 떠오르게 한다.

수줍은 듯 노란 속살을 다 드러내지 않고 있는 연꽃.
 수줍은 듯 노란 속살을 다 드러내지 않고 있는 연꽃.
ⓒ 박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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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은 진흙탕에서 자라지만 진흙에 물들지 않는다. 주변의 온갖 부조리한 무리와 환경에도 물들지 않고 고고하게 자라 아름답게 꽃피우는 연꽃은 넘쳐나는 이 시대의 관피아(관료+마피아), 또는 언피아(언론인+마피아, 폴리널리스트) 등 부도덕한 모든 이들에게 따끔한 경종을 울려주는 듯하다.

활짝 핀 연꽃 쌍둥이.
 활짝 핀 연꽃 쌍둥이.
ⓒ 박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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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그뿐이랴. 연꽃잎은 한 방울의 오염도 허용하지 않는다. 물이 연잎에 닿으면 그대로 굴러 떨어진다. 물방울이 지나간 자리에 그 어떤 흔적도 남지 않는다. 악과 거리가 먼 사람, 악이 있는 환경에서도 결코 악에 물들지 않는 사람을 그래서 연꽃처럼 사는 사람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햇빛이 따가웠는지 얼굴을 잎으로 살짝 가리고 있는 연꽃.
 햇빛이 따가웠는지 얼굴을 잎으로 살짝 가리고 있는 연꽃.
ⓒ 박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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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맘에 드는 것은, 연꽃은 어떤 곳에서도 푸르고 맑은 줄기의 잎을 유지한다. 바닥에 오물이 즐비해도 그 오물에 뿌리를 내린 연꽃의 줄기와 잎은 청정함을 잃지 않는다.

완결, 절정에 이르렀음을 만 천하에 고하고 있는 붉은 연꽃.
 완결, 절정에 이르렀음을 만 천하에 고하고 있는 붉은 연꽃.
ⓒ 박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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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진연못의 연꽃은 전주8경 중 하나다. 해마다 7월이 되면 큰 연못을 가득 채우는 붉은 연꽃이 장관을 이뤄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연꽃은 온갖 잡념을 버리고 무념의 상태에서 바라볼 때 가장 아름답게 보인다고 한다.

조용히 연꽃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온갖 시름이 금세 씻은 듯 사라져 버린다. 언제든 이 무렵, 전주에 올 기회가 있거든 처염상정의 풍경들을 꼭 놓치지 말것을 권한다.


태그:#전주천년고도옛길, #오송제, #덕진공원, #편백나무 숲, #한국소리문화의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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