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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오후 문자가 하나 왔습니다. 늘 저를 걱정해주는 지인이었습니다.

"창기, 똥통 청소하고 일당 벌어봐. 나보고 보조해달라는데 난 일이 있어 못해. 너를 추천했다."

요즘 백수 상태라 하루 일당이라도 벌어보자 생각하고 가보리고 했습니다. 보통 정화조라 불리우는 곳을 청소하는 것이라는데요. 저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 그분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일하겠다고 하고 언제 어디로 가야 할지 물었습니다.

일은 13일 아침부터 한다고 했고, 오전 7시까지 OO 정화조 업체 사무실로 가라고 했습니다. 작업복과 출퇴근복을 따로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그날 저녁 일복을 가방에 챙겨 넣고 다음날을 기다렸습니다.

오전 5시 30분에 일어나 간단하게 밥을 먹고 오전 6시 출근했습니다. 집에서 시내 정화조 업체까지는 30분 정도 버스를 타고 가야 했고, 걸어서도 10분 정도 가니 그정도면 출근시간에 맞춰 갈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사무실 근처로 가니 오전 6시 50분 정도 됐습니다. 지인이 보내준 문자 연락처로 "영도형이 소개해서 일하러 왔습니다"라고 하니 업주는 일단 사무실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습니다. 간판에는 '정화조 청소 전문업체 00기업'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오늘 할 일은 땅을 파는 일입니다..."

"어서와요. 오늘 일이 좀 바쁠 겁니다. 정화조 차량과 작업 차량이 같이 가야해요. 운전 할줄 알죠? 작업 차량 몰고 저를 따라오면 됩니다. 오늘 창기씨가 할 일은 땅을 파는 일입니다."

차 한잔 하고 업주가 일하러 가자고 하더니 사무실을 나갑니다 저도 뒤따라 나섰습니다. 무슨 일을 할지 몰라 안전화도 신고 해가림 모자도 준비했습니다. 업주는 5톤 정화조 차량을 몰았고, 건설 도구가 가득한 트럭은 제가 몰았습니다. 짐칸에 자갈 모래가 가득 실려 무거웠던 데다 오래된 트럭이라 잘 나가지 않았습니다. 뒤따라 간 곳은 시내 중심에 있는 어느 마을. 오래된 빌딩 두 채 사이에 있는 화장실 앞에 도착했습니다.

업주는 제게 삽과 곡괭이를 주면서 할 일을 알려줬습니다. 건물과 건물 사이에 나무가 심어져 있었고, 한 사람 겨우 다닐 수 있는 작은 공간이 있었습니다. 하수도관을 새로 만들어 밖에 있는 하수 시설까지 파이프를 연결한다고 들었습니다. 20미터 정도 되는 길이를 100mm 파이프가 묻힐 정도로 파야 한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제게 일을 맡긴 업주는 정화조 일을 하러 갔습니다. 천천히 파라고 했으니 모래흙인지라 잘 파였습니다. 두어 시간 파내니 건물 밖 길 앞에 있는 하수시설까지 다 파버렸습니다.

오전 10시가 넘자 건설 현장에서 주로 주는 '참' 시간이 됐습니다. 일을 시킨 건물주는 즉석 라면에 물을 부어 김치랑 내줬습니다. 아침에 볼 땐 멀쩡하던 업주는 온몸이 오물 투성이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을 하기에 방수 장화와 작업복이 붙어 있는 옷을 입고 있었고, 모자며 안경까지 오물이 튀어 엉망이 돼 있었습니다. 참을 먹으며 오늘은 무슨 일 하는지 물어봤습니다.

"어제요. 여기 너무 오래되어 세 번이나 똥 퍼냈어요. 안에 파이프 관이 노후되어 수리도 하고, 청소도 하고…. 여기 마무리 되면 창기씨가 파놓은 곳으로 파이프관을 연결하는 작업도 해야 합니다. 그래서 바빠요."

오래된 건물이고 건물 세운 후 한번도 정화조를 비우지 않았는지 오물양이 엄청 많았다고 합니다. 우리는 화장실 옆에서 참을 먹고는 서둘러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업주 보조일은 대학 1학년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학생이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사회 경험도 할 겸 '힘들고 더럽고 어렵다'는 3D 업종 일을 해보고 싶었다 했습니다. 대학생은 보기만 해도 구역질 날 것만 같은 정화조 안을 들락날락거리면서 보조를 잘해냈습니다.

저도 보조일을 했습니다. 대학생은 정화조에 내려가 보조일을 하고 저는 밖에서 보조일을 봤습니다. 큰 건물 사이 화장실마다 맨홀뚜껑이 있었습니다. 그 아래 깊은 정화조가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파이프를 내려주며 안을 들여다 보니 똥 냄새는 나지 않으나 쿰쿰한 하수구 냄새가 진동했습니다. 파이프관 교체작업를 위해 똥통을 다 비워내고 수압으로 어느 정도 물청소를 마친 상태라고 했습니다. 바닥에는 검은 물이 발목까지 있어 보였습니다.

"일당 날로 받는 것 같아 미안"... 왜?

정화조 안에 일이 많은지 점심 때가 많이 지나도록 일은 계속 됐습니다. 점심은 건물 식당에서 건물주가 시켜줬습니다. 때늦은 점심을 먹은 후 업자는 제가 땅을 잘 파놨는지 확인하러 갔습니다. 땅은 100mm 파이프가 묻힐 정도로 조금 더 깊이 파고 건물 입구에 있는 하수관 아래로 파이프를 연결해야 하니 더 파내라 했습니다.

오후엔 다시 땅 파는 작업을 했습니다. 더 깊이 땅을 곡괭이로 파니 나무 뿌리가 많았습니다. 일일이 톱으로 썰어내며 작업을 하자니 힘이 많이 들었습니다. 하수관이 이 건물, 저 건물에서 두 개나 지나갔습니다. 그걸 피해 땅을 파느라 조심해야 했습니다. 힘들어서 쉬었다 일했다를 반복하며 작업을 이어갔습니다. 100mm짜리 긴 파이프관을 가져다 적당한지 보면서 파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오후 4시가 돼서야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온몸에 힘이 빠졌습니다.

쉬러 올라온 업주에게 다시 잘 파졌는지 확인해 달라하니 이 정도면 됐답니다. 오후에 잠시 쉬러 올라온 업주는 오전보다 더 많은 오물을 뒤덮어쓰고 있었습니다. 정화조 밖으로 배수시설을 하려면 드릴로 벾을 뚫어야 하는데 오래된 콘크리트가 잘 뚫리지 않자, 코아드릴이라는 콘크리트 타공 기계로 작업을 해야 한다고 하빈다. 제게 보조를 해달라고 했습니다. 대학생과 제게도 장화와 방수 옷이 지급됐습니다. 코아드릴 기계는 80킬로그램 정도 되는 것 같았습니다. 혼자 들기는 힘들었습니다.

콘크리트 타공작업이 시작됐습니다. 끈에 매달아 정화조 안으로 조심스레 코아드릴을 내렸습니다. 전기선과 물통도 내려보냈습니다. 뚝딱 거리는 소리가 나고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하게 났습니다. 몇십 분 후 100mm 두께의 콘크리트가 50cm 정도 뚫렸습니다. 오후 5시가 넘어 정화조 안의 일이 마무리됐습니다.

쓰던 도구들을 모두 밖으로 꺼내고 마무리 청소도 했습니다. 물에 젖어 무거운 마대자루가 여러 포대 안에서 밖으로 올려졌습니다. 정화조 안에서 나온 업주는 쉴 틈도 없이 밖으로 파이프관을 연결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건물 사이가 좁아 몸집이 있는 저는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업주는 몸이 호리호리해 간신히 사이로 들어가더니 낡은 파이프를 잘라내고 새 파이프에 접착제를 발라 연결했습니다. 파이프 관은 30미터가량 연결했습니다. 제가 파놓은 땅을 지나 밖 하수시설까지 다 연결하고 나니 오후 7시가 넘었습니다. 대학생이 보조일을 잘했습니다. 파이프를 잘라 가져다주고, 연결 파이프를 실수 없이 잘 가져다줬습니다. 힘든 일은 업주가 다하고 우린 땅을 파고 보조일을 했습니다. 대학생은 "일당 날로 받는 것 같아 미안하다"라고 말했습니다. 정직하고 착한 학생인 것 같았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얹어준 사장

저와 대학생은 본래 오후 6시면 마쳐야 했습니다. 그런데 업주가 일을 계속하니 우리도 같이 있어야 했습니다. 더구나 저는 트럭을 운전해야 하기 때문에 일이 끝나도 퇴근할 수가 없었습니다. 업주는 미안해 했지만 우리는 괜찮다고 했습니다. 오히려 너무 열심히 일하는 업주를 보면서 우리가 미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화조 차에 있는 호스를 정화조 안에 넣고 작업하고 난 물을 퍼올렸습니다. 사용한 도구를 모두 차에 싣고 작업을 마무리 하니 오후 8시가 됐습니다. 트럭을 몰고 출근했던 사무실로 갔습니다. 대학생과 저에게 수고했다며 일당을 줬습니다. 본래 그 일을 하루하면 일당이 12만 원이라고 합니다. 대학생과 저는 더 오래 일했다며 조금 더 얹어줬습니다. 목욕도 하고, 저녁도 사 먹으라면서요. 고맙게 받았습니다.

업주가 건물주에게 얼마 받았는지는 모릅니다. 정화조 청소하는 분을 따라 다니며 그분이 무슨 일을 하고 돈을 버는지 똑똑히 봤습니다. 그분은 보기에 딱할 정도로 열심히 일했습니다. 온몸에 오물로 뒤덮히도록 똥 통 안에 들어가 파이프관을 교체하고 말끔하게 청소해주었습니다. 더럽고 힘들고 어려운 일을 하는 3D 업종 중 하나인 것 같았습니다. 힘들게 일하는 그분들이 있기에 깨끗한 사회가 유지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태그:#똥 통, #정화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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