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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가 '오연호의 기자 만들기'에서 20명의 시민 기자들에게 강연을 하고있다.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가 '오연호의 기자 만들기'에서 20명의 시민 기자들에게 강연을 하고있다.
ⓒ 허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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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사각형의 당구대 위에 '오연호'라는 흰색 당구공이 있다. 20명의 시민기자들이 큐대에 초크질을 하며 흰 공에 집중한다. 어딘가에 있을 각자 다른 빨간 당구공을 맞추기 위해서.

25일 강화도의 한 폐교를 리모델링한 오마이뉴스 시민기자학교에서 '오연호의 기자만들기'가 2박3일 일정으로 진행됐다. 메르스 사태로 많은 행사들이 취소되고 있는 가운데 20명의 많은 시민기자들이 참석했다. 대학교를 겨우 한 학기 다닌 20살 새내기부터 막 직장 생활을 시작한 30대 직장인, 정년퇴직하고 제 2의 삶을 꿈꾸는 60대 할아버지까지. 시민기자들의 연령 구성은 다양했다.

三人行必有我師 (삼인행필유아사) "세 명이 같이 길을 걸으면 반드시 내 스승이 있다." 공자는 말했다. 20명의 시민기자들은 내게 모두 스승이었다. 학생운동을 하며 가슴 속에 자리 잡은 깊은 상처를 20개의 삶들이 어루만져주었다. 눈을 감고 나의 아픔과 마주해본다.

"허우진씨 석방입니다." 철문이 열렸다. 또각또각 구두소리가 울려 퍼지는 긴 복도를 걸으며 생각했다. '박근혜. 이제 끝이다.' 구치소에 들어가기 전, 경찰 병력 4천명이 압수수색 영장 없이 민노총 건물을 침탈했다는 기사를 확인했다. 깨져 쏟아 내리는 유리문에 몸을 날려 경찰을 막았던 스스로의 행동에 보람을 느꼈다. 구치소에서 30여 시간이 물 흐르듯 흘러갔다. 내가 할 일은 경찰서 밖에서 박근혜 정권을 끝장내는 일에 숟가락 하나 얹는 일이라 생각했다.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경찰서 앞 벤치에 앉아 핸드폰을 켰다. 들끓는 여론을 상상했던 내 기대감이 산산조각 났다. 겨울 새벽 바깥 공기처럼 여론은 조용히 차가웠다. 눈물이 흘렀다. '민노총이 침탈당했는데 그대들은 도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나 여기 있네." 2013년 대학교 1학년 겨울에 던진 물음에 20개의 삶이 답한다.

행정 공무원을 퇴직하고 글을 배우기 위해 참석한 60대 할아버지. 10년간 직장 내 부조리와 법정 싸움을 해, 이긴 경험을 글로 쓰고자 했다.

'와락' 치유단 멤버이자 직장인들을 치유해주는 30대 심리상담사. 모든 시민이 기자이듯, 모든 사람이 심리상담사가 될 수 있다며, 심리상담의 메커니즘을 설명하는 글을 쓰고자 했다.

중학교 2학년 때 자퇴를 하고 평생 스스로 공부하며 자신이 원조 '인생학교' 설립자라던 50대 아저씨. 자본주의 사회에서 제도권 내의 삶을 거부하고, 주체적이고 독립적으로 살았던 삶을 책으로 쓰고자 했다.

그 외에도 에세이를 쓰고자 하는 삶, 대안학교 선생님이자 교육을 위한 글을 쓰고자 하는 삶, 사회 진보를 위해 기자를 준비하는 삶 등 수 많은 삶들이 나의 물음에 답하며 나의 상처를 어루만졌다. 희망이 생겼다. 아니, 희망은 이미 존재했다. 그리고 그 희망들이 모여 또 다른 희망을 만들어냈다.

강화도의 한 '죽은 학교'는 '시민기자학교'로 되살아났다. '죽은 대한민국'도 되살아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슴에 품고 나는 오늘도 글을 쓴다. 아니, 우리는 글을 쓴다.



태그:#오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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