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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서산에서 마지막 촛불집회중에 현장을 찾은 필자에게 서산의 촛불소식을 오마이뉴스를 통해 전국에 알려줘서 많은 힘을 줬다며 '서산시민행동'이 직접 수작업으로 만든 기억물품을 전해줬다.
 8일 서산에서 마지막 촛불집회중에 현장을 찾은 필자에게 서산의 촛불소식을 오마이뉴스를 통해 전국에 알려줘서 많은 힘을 줬다며 '서산시민행동'이 직접 수작업으로 만든 기억물품을 전해줬다.
ⓒ 신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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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의 국정농단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과 함께 세월호의 진실규명을 위한 서산지역 촛불은 지난해 10월부터 광장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광장에서 촛불 혁명이 일어나면서 꾸준히 촛불을 들고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이 광장을 채워 주신 분들이 계십니다"

"전국적인 언론사인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하면서 지난해부터 매주 토요일마다 광장에 찾아와서, 시골 소도시인 서산에서 일어나는 촛불을 전국에 알려주셨던 OOO 시민기자님 앞으로 나와주세요"

당황스러웠다. 8일 서산에서 세월호 참사 3주기를 일주일 앞두고 열렸던 마지막 '서산시민 촛불집회'를 취재하기 위해 갔던 필자의 이름이 주최 측으로부터 불리는 것이다. 얼떨결에 앞으로 나간 필자에게 사회자가 소개한다.

"그동안 정말 많이 고생했고 매주 빠지지 않고 이렇게 시골의 작은 지역에서 일어나는 촛불집회를 매주 인터넷 지면을 통해서 전국에 알려줘서 서산시민들에게 힘을 주었다"라는 소개와 함께 서산시민행동이 준비한 선물을 주었다.

선물은 '서산시민행동'이 직접 만든 세월호 리본이 그려진 조각품이다. '함께 한 모든 날이 좋았습니다'라는 글과 함께 기억 물품을 받은 필자는 너무 감격했다. 또 그 순간 '이런 기억 물품을 받아도 되나? 그리고 내가 정말 이분들에게 많은 힘을 주었나?'라는 생각과 함께 '전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글이라는 것이 이렇게 많은 분에게 힘을 줬구나'하고 생각하니 더더욱 가슴이 뭉클했다. 이날 필자외 3명의 시민이 기억물품을 받았다.

세월호가 인양되어 9일에는 육지로 거치 된다고 한다. 기억 물품에 하나하나 그려져 있는 세월호 리본을 보면서 당연히 시민들에게 전해야 할 소식을 전했을 뿐 인데 너무 과분하다는 생각과 함께 그동안 서산촛불집회 생각이 많이 났다. 물론 서산뿐만 아니라 필자를 찾는 곳이나 널리 알려야 하는 소식이 있는 곳이면 가리지 않고 취재하러 다녔다. 물론 그중에는 기사로 완성이 된 것도 있고 꼭 전해야 할 소식이 채택이 되지 않은 것도 있지만 어쨌든 언론에서 소외당하는 시골 지역을 다니면서 뿌듯함까지 느꼈던 순간들이 머릿속을 지나갔다.

필자가 생각해도 용케 여기까지 왔다. 사실 시민기자로 활동하면서 필자가 사는 홍성에서 일면식이 없는 서산까지는 42km, 시간으로는 44분 정도 걸린다. 6개월여 동안 매주 왕복을 했으니 상당한 거리를 다녔다. 또한 서천, 예산, 청양, 부여까지도 다녔다.

앞서도 설명했듯이 뿌듯하고 벅찬 시간이었다. 힘든 시간이었지만 현장에서 촛불을 들고 있는 시민들을 보고 있으면 힘이 생긴다. 기억 물품을 전해주면서 "시민들에게 촛불 소식을 전해줌으로써 힘을 주었다"라고 이야기하지만 힘을 받은 것은 오히려 필자이다.

8일 저녁 서산에서의 마지막 촛불집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내내 선물로 받은 기억 물품을 바라보면서 많은 생각과 함께 벅찬 감동(?)까지 한순간에 밀려왔다.

"그래. 맞아... 이런거구나... 시민기자가 이런거구나."

"시민들과 함께 촛불을 들고 시민들과 함께 함성을 지르고, 시민들과 함께 진실규명을 외치며, 광장에서의 목소리를 전달해야만 진정성을 알아주는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지난해 10월부터 매주 촛불현장에 찾았던 필자에게 서산시민행동이 직접 만든 촛불과 세월호 핀버튼 등 기억물품을 주었다.
 지난해 10월부터 매주 촛불현장에 찾았던 필자에게 서산시민행동이 직접 만든 촛불과 세월호 핀버튼 등 기억물품을 주었다.
ⓒ 신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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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그간 촛불 현장에서는 "요새 오마이뉴스는 왜 그래요? 왜 기사가 그렇게 나와요?"라는 이야기도 듣는다. 물론 필자의 기사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요즘 전체적인 오마이뉴스 기사들이 맘에 안 든다고 항의 아닌 항의를 듣기도 한다. 그럴 때는 내가 죽을죄라도 진 것처럼 "아니예요.. 간혹 독자 여러분에게 마음이 들지 않는 기사가 있더라도 이해해주시고 더욱더 열심히 노력할게요"라고 이야기를 한다. 그런 만큼 어느 순간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라는 책임과 의무가 필자의 가슴에 박혀있던 모양이다.

지난해부터 빠지지 않고 매주 촛불집회에 참여한 덕(?)으로 받은 기억 물품 때문에 순간순간 떠오르는 생각들이 많아 글이 논조를 벗어나는 듯하다. 그런 만큼 촛불현장을 다니면서 기억나는 것들이 많은 모양이다. 수많은 기억들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서울 광화문 광장을 비롯해 전국에서 들었던 촛불로 이제 대한민국을 제자리로 돌려놓았던 것이다. 그것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 그 역할 중에 필자는 미미하게 글로써 소식을 전했을 뿐이다. 이 모든 것이 서산, 홍성, 예산, 청양, 서천, 부여 등 필자가 다녔던 지역 시민들의 힘이다.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는다. 언론에서 소외당하는 많은 시골의 작은마을 소식까지도 앞으로 더 많이 전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서산에서의 촛불집회는 8일 열린 '리멤버0416추모음악회'를 끝으로 마지막 촛불을 밝히고, 이제 16일 세월호 참사 3주기 문화제-진실도 인양하다 '추모제 일정만 남았다. 물론 추모 기간 서산에서는 학생들에게 리본을 나눠주고 분향소를 운영한다.

좀 더 많은 지역 소식을 전할 것이다. 필자에게 8일, 이날은 아마도 잊히지 않는 날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세월호 참사로 희생되어 하늘의 별이 된 학생들과 일반인들의 명복을 빌며, 또한 돌아오지 못한 미수습자 9명이 하루빨리 우리 곁으로 돌아오기를 기원한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필자에게 서산시민이 전해준 이야기가 아직도 귓전에 맴돈다.

"벅찬 감동을 늘 주시잖아요~. 서산에서 가끔은 지쳐있던 서산시민행동도 기자님께서 기사로 승화시켜주시니 그 또한 감동이고 고마운 일이지요.  저희와 이제 동병상련이십니다. (웃음)"


태그:#기억물품, #세월호촛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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