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금년 4월 9일에 찍은 나무꽃들. 왼쪽부터 매화, 산수유, 진달래, 개나리, 목련, 벚꽃, 명자꽃, 조팝나무꽃. 본래 이들 꽃들은 매우 적은 시차로 또는 거의 동시에 피기는 하지만 이처럼 이들 모두가 같이 만개한 모습을 보기는 쉽지 않다.
▲ 4월의 나무꽃들 금년 4월 9일에 찍은 나무꽃들. 왼쪽부터 매화, 산수유, 진달래, 개나리, 목련, 벚꽃, 명자꽃, 조팝나무꽃. 본래 이들 꽃들은 매우 적은 시차로 또는 거의 동시에 피기는 하지만 이처럼 이들 모두가 같이 만개한 모습을 보기는 쉽지 않다.
ⓒ 이효성

관련사진보기


지금은 절기상 청명 어간으로 연중 가장 화사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이 무렵에는 청명이라는 절기 명칭이 시사하듯 날씨도 맑고 밝아 화창할 뿐만 아니라 유독 많은 꽃들이 일시에 피어나기 때문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순진무구와 행복의 시기였던 황금시대는 어디를 가나 꽃들이 피어 있고 강은 우유와 포도주가 흐르는 상춘(常春)으로 묘사되어 있다.

청명 무렵에 각종 꽃들이 만개한 때가 그런 황금시대가 아닐까? 그런데 꽃만큼 인간에게 여러 감흥을 일이키는 사물도 없을 것이다. 꽃 중에서도 봄꽃, 특히 이 무렵에 화사하게 피어난 각종 나무꽃들이 더욱 더 그렇다. 많은 꽃들이 일시에 피어나 세상을 화려하고 아름답게 꾸며놓는가 하면 또 얼마 가지 않아 허무하게 다 져버리는 모습이 감수성을 자극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무렵 수선화, 보춘화, 유채꽃, 할미꽃, 제비꽃, 민들레, 얼레지, 꽃다지, 광대나물, 물망초, 눈꽃풀, 크로커스, 튤립, 프리지어, 히아신스, 팬지, 데이지 등의 아름다운 풀꽃들이 핀다. 그러나 이 무렵을 정말 화사하게 만드는 것은 역시 나무꽃들이다. 이 무렵 중부 지역에서는 매실나무, 산수유, 개나리, 진달래, 목련에 이어 벚나무, 살구나무, 배나무, 자두나무, 복숭아나무, 앵두나무 등이 잎보다 먼저 꽃을 피우고, 남부지방에서는 명자나무, 조팝나무, 수수꽃다리(라일락), 철쭉 등이 잎과 함께 꽃을 피워 봄을 화사한 꽃의 계절로 만든다.

"나의 살던 고향은 / 꽃피는 산골 / 복숭아꽃 살구꽃 / 아기진달래 / 울긋불긋 꽃 대궐 / 차리인 동네 / 그 속에서 놀던 때가 / 그립습니다"라는 이원수 시와 홍난파 곡의 저 유명한 우리의 동요 <고향의 봄>의 시기는 바로 이 무렵이다. 이 무렵은 이들 꽃으로 인하여 산야는 온통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꽃 대궐"이 된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이때의 꽃들을 노래했다. 두보의 "산은 푸르고 꽃은 불타오른다(山靑花欲然)"라는 시구도 아마 이때의 울긋불긋한 산야를 묘사했을 것이다. 이백의 "술잔 마주하고 날 저무는 줄 몰랐는데 / 꽃이 떨어져 내 옷 위에 가득하구나"라고 읊은 시점도 벚꽃 등의 나무 꽃잎들이 바람에 날리는 이 무렵이었을 것이다. 중당의 여류 시인 설도를 "꽃이 피어도 함께 즐기지 못하고 / 꽃이 져도 함께 슬퍼하지 못하네 / 그대여, 어디 계신가요 / 꽃 피고 꽃 질 때에"라며 봄 시름에 젖게 했던, 꽃 피고 꽃 질 때도 이즈음이었을 것이다. 한국의 시인 오철환이 "온 세상에 낙화가 하얗게 휘날린다 / 쌓여서 어쩌자는 건가 / 무정한 봄이 물오르기도 전에 떠나간다"고 낙화에서 세월의 덧없음을 본 것도 이 무렵일 것이다.

봄을 주제로 한 노래도 대부분 꽃으로 화사한 이 무렵이 그 대상이다. 예컨대, 제목에 그 시기가 드러나 있는 박목월 시 김순애 곡의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 구름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 아 아 멀리 떠나와 이름 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라는 구절로 시작하는 <사월의 노래>와 조영식 시 김동진 곡의 <목련화>는 말할 것도 없고, 제목에 그 시기가 특정되지 않은 파인 시에 이흥열이 곡을 붙인 <봄이 오면>, 이은상의 시조에 홍난파가 곡을 붙인 <봄 처녀>, 박화목 시에 채동선이 곡을 붙인 <망향>, 그리고 앞에서 언급한 설도의 한시를 김억이 번안하고 김성태가 곡을 붙인,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로 시작하는 <동심초> 등의 가곡을 들 수 있다. 팝송 그룹인 버스커버스커의 <벚꽃 엔딩>도 마찬가지다.

이런 아름다운 꽃들을 감상하고 그 향기를 맡는다는 것은 큰 즐거움이다. 청명 어간은 꽃놀이 또는 꽃구경에 가장 좋은 때이기도 하다. 우리 선조들은 이맘 때 특히 음력 3월 3일 즉 삼짇날 음식과 술을 장만하여 야외에서 화류(花柳)놀이 또는 화전(花煎)놀이라고 부른 꽃놀이를 즐겼다.

이러한 봄꽃놀이의 전통은 봄꽃 축제와 함께 오늘날에도 면면히 이어져오고 있다. 지역에 따라 약간의 시차가 있기는 하지만, 전국 각지의 봄꽃축제들이 대체로 청명 어간에 개최된다. 이 무렵은 꽃놀이나 꽃축제를 즐기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전국 어디서나 각종 봄꽃들이 만개하여 꽃의 낙원이 펼쳐지는 최고의 꽃철인 것이다. 이런 때에 종종걸음 멈추고 꽃잎 날리는 벚나무 아래서 한 잔 술과 함께 인생을 한 번 돌아보는 여유를 가져보지 못한다면 저주 받은 삶을 사는 것이 아닐까?


태그:#나무꽃, #풀꽃, #꽃놀이, #상춘, #사월의 노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