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널A <블랙: 악마를 보았다>의 한 장면.

채널A <블랙: 악마를 보았다>의 한 장면. ⓒ 채널A

 
악마에게는 나이가 없다. 가출한 여고생을 감금하고 성매매를 강요하며, 끝내는 집단폭행해서 숨지게 만들기까지, 성인 뺨치는 끔찍한 범죄를 아무렇지 않게 저지르고 그에 동참한 '악마'들의 물리적 나이는 10~20대에 불과했다. 그리고 경찰은 피해자를 보호하고 사건을 조기에 해결할 수 있는 기회가 분명히 있었음에도 직무유기로 더 큰 비극을 키웠다. 날로 잔혹해지는 청소년 범죄의 심각성과 우리 사회의 대응에 대하여 고민해보게 만드는 순간이다.
 
6월 10일 방송된 채널A 범죄다큐스릴러 <블랙: 악마를 보았다>에서는 전 국민을 충격에 빠뜨린 '김해 여고생 시멘트 암매장 살인 사건'을 조명했다. 집단으로 범행을 저지른 이들은 피해자의 또래 친구들이었던 '김해 가출팸'이었다.
 
국가적 재난이었던 세월호 참사, 대한민국 군대의 민낯을 드러낸 윤일병 살인사건까지 충격적인 사건사고가 잇달았던 2014년 봄, 경남 김해에서 한 여고생의 실종사건이 발생한다. 아버지는 고교 진학 후 한 달도 안 되어 어느날 갑자기 흔적도 없이 사라진 딸을 애타게 찾았다.
 
하지만 불과 26일 만에 소녀는 결국 신원확인도 불가할 만큼 처참하게 훼손된 시신으로 발견되고 말았다. 발견 당시 시신에는 시멘트가 뿌려져 있었고 암매장 당한 상태였다. 그리고 피해자는 죽음에 이르기까지 상상도 할 수 없는 끔찍한 고통을 겪어야 했다. 

이 사건이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체포된 가해자 7명 중 4명이 피해자와 같은 또래인 10대 여학생들이었다는 사실이다. 여학생들의 나이인 만 14~15세, 또다른 가해자 남성 3인은 성인이었지만 만 24~25세에 불과한 역시 젊은 나이었다. 불과 10~20대가 저지른 짓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잔인하고 끔찍한 집단 범행은 국민들을 경악하게 했다.
 
국립과학수사원은 피해자의 사인에 대하여 사체부패로 인하여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으나 폭행와 연관된 질식이나 일차적 쇼크 등의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을 내렸다. 피해자는 생전에 질병-수술 이력없이 건강했기에 폭행으로 사망했다면 그 정도가 얼마나 심각했을지 짐작케 한다. 피해자는 고문에 가까운 고통을 반복적으로 당했고, 가해자들은 그런 피해자의 고통을 놀이처럼 즐겼다.
 
가해자 양아무개양을 비롯한 10대 여학생 4인은 김해시 소재 중학교 선후배로서 인연을 맺게 된 허아무개씨 등 남성 3인과 함께 집을 나와 모텔에서 생활중인 가출팸(가출한 청소년들이 무리를 지어서 생활하는 집단)이었다.

경제적 능력이 없는 미성년자 가출팸은 성매매-조건만남 등 범죄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대부분 뚜렷한 직업이 없었던 남성 가해자들은 가출한 10대 청소년들을 물색하여 성매매 알선 사업을 했고, 그로 인하여 벌어들은 수익으로 생활비-유흥비 등을 충당했다. 이른바 가출팸 범죄의 전형적인 방식이다.
 
피해자가 성매매에 내몰린 것은 2014년 3월 15일, 가해자들은 울산 모처의 모텔에 피해자를 감금하고 1일 평균 3회 가량 성매매를 강요했다. 재판 과정에서 남긴 기록만 그 정도였고 실제로는 하루에 4~8회 이상 성매매를 강요한 적도 있다고.
 
피해자 아버지 성매매 4차례나 신고했지만...
 
 채널A <블랙: 악마를 보았다>의 한 장면.

채널A <블랙: 악마를 보았다>의 한 장면. ⓒ 채널A

 
가해자들이 피해자를 이용한 수법을 보면 어른들보다 더 영악하고 교활했다. 채팅사이트에서 게시글을 올려 성매수 남성을 물색했다. 성매매 과정에서 문제가 생길 경우 제압이 쉽지 않은 젊은 남성들은 배제하고 나이 많은 남성들을 성매수자로 선호했다.
 
당시 피해자는 김해로 이사온 지 얼마 안 되어 학교에서 말씨 때문에 따돌림을 당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가해자들은 피해자에게 잘해주는 척 환심을 사며 가출을 유도했다. 피해자는 가해자들과 부산 일원의 여관에서 함께 투숙하여 강요에 못 이겨 성매매를 했다.
 
얼마 후 가해자 일당은 피해자의 아버지가 가출신고를 한 것을 알게 되고 처벌을 받을 것을 우려하여 피해자에게 성매매 행위를 한 것을 누설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고 귀가시켰다. 하지만 가해자들은 지인으로부터 피해자가 아버지에게 성매매 행위를 한 일을 사실대로 밝혔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피해자를 미행하여 교회에서 예배중인 그녀를 납치한다. 피해자는 아버지와 함께 교회에 갔었지만 성인부와 고등부 예배 장소가 달라 잠시 떨어져 있던 사이에 딸을 빼앗기고 말았다.
 
당시 경찰의 안이하고 무책임한 대응은 국민들의 분노를 자아냈다. 피해자의 아버지는 딸의 성매매 사실을 4차례나 신고했지만 정작 윗선에 보고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심지어 교회 납치 이후 피해자 아버지가 다시 실종신고를 했음에도 해당 경찰은 '우리 관할이 아니다'라는 핑계로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
 
교회 CCTV를 확인하여 피해자가 납치된 장면을 파악한 것은, 사건이 벌어진 지 무려 12일이나 지나서였다. 피해자 측의 간절한 호소와 다급한 상황을 인식하고 처음부터 제대로 수사했다면 최소한 피해자가 참혹한 시신으로 돌아오는 일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가해자 일당이 피해자를 납치한 이후, 약 열흘 만에 피해자는 사망했다. 새로운 가해자 2명이 이 당시부터 합류했다. 가해자 일당은 번갈아가면서 피해자에게 폭력을 반복했다. 피해자에게 가해자들에게 번갈아가며 싸우게 하기도 하고, 술을 강제로 먹인 뒤 피해자가 구토한 토사물을 다시 핥아먹게 하거나, 심지어 끓는 물을 피해자의 몸에 붓기도 했다. 피해자의 생명이 꺼져가고 있는 것이 눈에 보일 만한 순간에도 그들은 끝까지 멈추지 않았다.
 
피해자는 이미 사망 2~3일 전 이온음료 외에는 아무것도 섭취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가해자들은 그런 상황에서 "죽으면 누구를 데려갈 것이냐"라고 피해자를 조롱했다. 피해자가 누군가를 지목하면 곧바로 또다시 잔혹한 폭행이 이어졌다. 단순히 가해자의 범죄를 누설한 데 대한 보복만이라고 하기에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집요하고 잔혹한 행위들이 내내 이어졌다.
 
그런데 가해자 중 과연 일말의 죄책감이라도 느끼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을까. 프로파일러 권일용 교수는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이 있었다고 해도 집단 내에서 가혹행위에 대한 정당화-합리화가 이루어진 모습이다. 집단이 가진 압력을 가해자 개개인도 그래도 받아들인 것이다"라고 설명하며 "집단 내 권위자가 행위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면 죄책감 없이 집단폭행도 저지를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아무리 끔찍한 일이라도 구성원들이 그대로 따랐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가해자들이 다른 공범자들을 폭력에 동참시킨 이유는 다른 구성원들을 통제하기 위한 위협이었다. 누구라도 가해자의 말을 거스르면 똑같이 당할 수 있다는 공포심을 심어줌으로써 무언의 협박을 한 것. 동참한 가해자들에게는 자신만이 그런 것이 아니다. 내가 죽인 것은 아니다라는 죄책감을 집단으로 분산시키거나 회피하는 효과도 있었다.
 
가해자들 처음 만나고 26일 만에 사망한 피해자
 
 채널A <블랙: 악마를 보았다>의 한 장면.

채널A <블랙: 악마를 보았다>의 한 장면. ⓒ 채널A

 
피해자는 2014년 4월 10일, 지속적인 폭행과 가혹행위를 견디지 못하고 승용차 뒷좌석 바닥에서 탈수와 쇼크로 인한 급성 심장정지로 사망하였다. 가해자들은 인근 과수원에서 시신을 불에 태우고 다시 야산으로 옮겨 암매장했고 시멘트까지 부었다.

시신이 발견되고 신원이 확인될 경우, 자신들이 유력한 용의자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1988년 일본에서 여고생을 납치하여 성폭행 끝에 살해하고 암매장했던 '콘크리트 살인사건'과 흡사한 범행과정과 수법은 전 국민을 경악하게 했다.
 
피해자가 가해자 일당을 처음 만난 후 세상을 떠나기까지의 시간은 약 26일이었다. 약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서로를 알지도 못했던 한 사람의 인생을 무참히 파괴하고 끝내는 생명까지 빼앗은 것이다. 가해자들도 체포 후 진술에서 피해자의 고통이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상태였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었음에도 끝내 멈추지 않았다고 말했다. 재판부가 가해자 7명 전원에서 살인죄를 적용한 것은, 범인들이 살인의 목적과 고의성을 스스로 충분히 알고 있었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가해자들은 범행 이후에도 계획했던 것처럼 신속하게 증거를 인멸했고, 피해자의 시신을 유기한 이후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숙소로 돌아와 예전처럼 일상을 보냈다. 자신들이 살인을 저질렀다는 죄책감이나 두려움과는 시종일관 거리가 멀었고, 심지어 이 사건을 은폐할 수 있다는 완전범죄에 대한 오만함까지 느껴지는 방증이다.
 
이들은 김해 여고생 피해자를 잔혹하게 살해한 이후에도 강도-살인을 저지르며 폭주했다. 대전에서 조건만남을 구실로 40대 남성을 유인하여 잔혹하게 폭행 및 살인을 저질렀다. 김해 여고생 살해 이후 불과 열흘 만의 일이었다. 가해자 일당은 사망한 피해자의 금품을 강탈한 뒤, 피해자의 시신을 인근 공원 주차장에 유기하고 도주햇다.
 
경찰은 가해자 일당이 머물던 모텔 주인의 신고로 출동하여 피해자를 폭행하고 차에 태우는 CCTV 영상을 확보했다. 이동경로를 추적하던 경찰은 사건발생 4시간 만에 피해자의 시신을 발견하고 차량 블랙박스를 확보했다. 가해자 일당은 시신을 유기한 공원 주변에 다시 나타나 배회하다가 잠복중이던 경찰에 체포됐다. 또한 이 사건을 조사하면서 가해자 중 일부가 김해 여고생을 납치했던 교회 CCTV 속 인물과 동일인임이 확인되며 김해 여고생 사건의 진상도 드러났다.
 
사건의 주범으로 지목된 20대 남성들은 "범행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하며 일말의 죄책감이나 반성도 없는 뻔뻔한 태도로 일관했다. 하지만 10대 여학생 가해자들의 진술은 엇갈렸다. 여학생들은 "자신들도 피해자"라고 주장하며 남성 가해자들의 협박에 못이겨 강제로 성매매와 각종 범행에 동참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20대 남성 가해자들은 "여자애들끼리 먼저 피해자를 때린 적도 많다. 겁을 줬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대부분 여자애들이 폭행했다"고 반박했다. 분열된 가해자들은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추태를 보였다.
 
재판부는 여학생들에 대하여 '가해자 겸 피해자'라는 결론을 내렸다. 판결문을 보면 '남자 공범들이 미성년자인 여자 공범들보다 신체적-정신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있었고, 피해자에게 저지르는 가혹행위를 보며 두려움을 느꼈을 것'이라고 인정하면서 '피해자 사망 이후 범행발각을 염려하여 여성 공범들을 감시하고 성매매를 강요했다'는 점을 지적했다.하지만 재판부는 동시에 '여자 피고인들도 피해자의 고통을 잘알고 있음에도 그에 가담했다는 점에서 책임의 정도가 가볍다고 보기 어렵다'는 판결을 내렸다.
 
남성 가해자 중 2인은 무기징역, 1인은 35년형을 선고받아 복역중이다. 여성 가해자중 15세인 2인인 장기 9년, 단기 6년, 14세 2인은 장기 7년-단기 4년을 각각 선고받았다. 중학생이었던 여성 가해자 2명은 2022년 올해 초에 이미 출소했으며 나머지 2인도 출소를 앞두고 있다.
 
여성 가해자들은 복역 중에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실제로 여학생 중 한 명은 사건이 일어난 후 신고를 하러 경찰에 찾아간 적도 있었지만 자신 역시 성매매로 처벌받을 것이 두려워 끝내 신고를 포기하기도 했다고 .
 
하지만 뒤늦은 후회와 반성도 잃어버린 김해 여고생의 목숨을 되돌릴 수는 없다. 피해자의 아버지는 "처음에는 용서할 수가 없었다"고 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아이들도 어른들의 보호를 받지 못했다. 그들 역시 가해자 겸 피해자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잔혹하게 딸을 죽인 가해자들을 용서한 아버지의 심경을 과연 누가 헤아릴 수 있을까. 가늠할 수 없는 슬픔 끝에 용서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닐까.
 
청소년 범죄가 날로 잔혹해지며 촉법청소년을 포함하여 미성년 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동시에 시민과 피해자들을 보호해야 할 경찰과 우리 사회의 진정한 역할에 대한 질문도 계속된다.

피해자의 부친이 가장 처음 경찰에 신고하고 절박하게 도움을 요청했을 때, 혹은 가해 여학생이 경찰에 손을 내밀었던 그때, '제대로 된 보호'를 받았더라면 어쩌면 애꿎은 죽음은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피해자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 것, 가해자가 된 피해자를 만들어낸 것 모두, 당사자들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모두가 공통의 책임의식을 느껴야 할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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