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분상승의 욕망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쌓아올린 대한민국 사교육 시장, 그 속에서 남다른 능력과 처세를 통하여 '권력자'가 되어버린 한 강사가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그는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개인의 욕구를 채우기 시작했고, 일종의 공동체를 구성하여 타인을 착취하고 군림하는 자신만의 소왕국을 건설했다. 그리고 그 모습은 마치 일종의 사이비 종교와 교주를 연상시킨다.
 
25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선생님의 두 얼굴 - 금기, 시험 그리고 변화'라는 부제로 입시 전문 유명 강사의 가스라이팅과 성착취 의혹을 둘러싼 미스터리를 추적했다.

고교 교사 출신으로 학원장을 맡아 여러 학원을 운영하며 승승장구하던 '최 선생', 그런데 최근 그의 성공 뒤에 감춰진 어두운 비밀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최 선생의 학원에서 근무하던 한 20대 여성 강사가 노동청을 찾은 것. 제보자 김정민씨(가명)는 상담자로 굳이 여성 노무사를 요청했고, 상담 과정에서 최 선생의 학원에서 일하며 무려 5년 넘게 임금을 받지 못했다고 폭로했다.

그런데 당시 노무사는 상담을 진행할수록 수상한 점을 느끼고 이 사건이 단순한 임금체불 사건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성범죄 관련성을 의심한 노무사의 권유로 정민씨는 변호사를 찾아갔고 여기서 더욱 충격적인 진실을 밝혔다.
 
정민씨는 학원 직원들과 함께 무려 8년이나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숙식과 잡일까지 했다고 밝혔고, 그 과정에서 성희롱이 있었다는 사실도 결국 털어놨다. 변호사는 정민씨의 증언에서 "사이비 종교에 연루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회상했다.
 
정민씨는 최 선생에 대해 '아빠'이자 '선생님'이라 부르도록 강요받았다. 최 선생은 평소 정민씨에게 절대적인 복종을 요구했고, 복종을 벗어나면 처벌을 가했다고. 정민씨가 2015년에 녹취한 음성 파일에는 최 선생이 정민씨를 질타하며 지속적이고 반복된 성적 요구를 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정민씨는 "잃어버린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고 진짜 상상도 못할 일이다. 그곳에서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아무도 이해할 수 없을 거"라면서 가슴 속에 맺힌 한을 털어놨다.
 
정민씨는 2006년 입시를 준비하던 상황에서 논술 시험 대비를 위한 토론수업에서 최 선생을 처음 만났다. 당시만 해도 최 선생은 교과서에 나오는 지식 대신 학생들과 소통하며 니체의 철학에 대하여 이야기하던 스승이었고, 정민씨를 비롯한 많은 제자들이 그를 진심으로 존경했다고 한다. 강사로서의 실적도 뛰어나 명문대에 진학한 선배들이 최 선생의 옛 제자들로 토론수업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고 신뢰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정민씨는 고3이 되어 최 선생과 상담을 나누는 과정에서 부모에게도 하지 못한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털어놓으며 눈물을 흘렸다. 최 선생은 정민씨를 유심히 지켜보다가 "아빠가 되어주겠다"고 거듭해서 제안했다.
 
또한 정민씨는 최 선생이 평소에 '변화'라는 표현을 유독 자주 사용하고 학생들에게도 요구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최 선생이 요구한 변화의 실천 방식이라는게, 모범생인 여학생들에게 미니스커트를 입거나 화장. 음주를 해보라는 내용들이었다.
 
제자들은 처음엔 이를 일종의 실험 정도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작은 일탈에서 시작된 최 선생의 요구는 점점 수위가 높아지더니 급기야 성기 사진을 찍어보라는 요구까지 했다고. 정민씨는 처음에 거절했지만 최 선생은 '더 큰 변화를 위하여 단계를 뛰어넘는 것 뿐'이라며 정민씨를 계속 압박했다. 결국 정민씨는 최 선생이 요구한대로 사진을 찍어서 보여주고 말았다. 정민씨가 최 선생에게 착취당하는 잃어버린 10년의 시작점이었다.
 
최 선생은 이번엔 "내 말이 너희에게 법처럼 되어야 한다. 그래야 너희가 변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스승과 성관계를 할 수 있냐"는 요구를 해왔다고. 2007년 정민씨가 녹취한 파일에서 최 선생은 그날도 제자들에게 '암적 신체'라는 주제로 난해한 강의를 이어갔다. 정민씨는 당시 강의의 내용이 성관계를 수락하지 않은 자신에 대한 비난처럼 들렸다고 진술했다. 정민씨를 포함한 학생들은 최 선생의 거듭된 강요와 분위기에 휩쓸려 금기된 질문(최 선생과의 성관계)에 동의하는 의사를 표할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했다.

최 선생은 어느날 토론을 빙지하여 정민씨를 자신의 집으로 불러들여 결국 강제로 성관계를 맺었다. 정민씨는 미성년자였던 고등학교 3학년 때만 5회 이상의 성관계가 있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피해자임에도 처음 당하는 경험에 혼란스러웠던 정민씨는 그 사실이 알려지는 것이 두려워 어디에도 이야기할 수 없었다고. 하지만 최 선생은 이날의 관계가 정민씨와 합의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2008년 정민씨와 최 선생이 실제로 나눈 메신저 대화록에서는 성관계를 암시하는 표현들과, 최 선생이 반복해서 '아빠에 대한 복종'을 강요하는 내용들이 다수 등장한다. 정민씨는 고교를 졸업한 이후 최 선생의 요구로 부모로부터 독립하여 그의 집 아래층으로 이사했다.
 
최 선생은 정민씨를 비롯한 여러 제자들을 합숙시키며 양치질 등 개인적인 수발을 들게 하고 자신의 부업에 동원하기도 했다. 정민씨는 최 선생의 운영하는 과외방에서도 일했으나 한번도 수입을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최 선생이 운영하는 학원들이 날로 번창하면서 제자들은 강사로 근무했고, 2015년에는 최 선생과 제자들이 고급주택으로 이사하여 아예 한집에서 거주하기 시작했다.

정민씨는 보수도 제대로 받지못하고 강사로 근무하는 동안에도 수시로 최 선생의 성관계 요구에 시달려야했다. 정민씨는 이른바 '5분대기조'라 불리우면서 최 선생이 원할때마다 수시로 불려가 성착취를 당해야했고, 여러 명이 같이 불려가기도 했다고 폭로했다.

최 선생은 정민씨를 비롯한 여성들의 신체사진을 찍어놓고 언제든 유포할 수 있다고 협박하기도 했다. 2015년 8월 녹취록에서는 힘들다고 하소연하며 눈물을 흘리는 정민씨에게 최 선생은 "궁핍하고 인색하게 굴지말라" "내가 뽀뽀도 풍부하게 해주는데, 인색한 X"라며 오히려 조롱섞인 면박을 주기도 했다.
 
이대로는 자신이 이 고통으로부터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직감한 정민씨는 "그때 내가 거부했다면, 그때 신고했다면, 학원 다닐 때 증거를 모아서 나왔다면"이라고 자책했다. 정민씨는 지난해 8월 최 선생을 경찰에 고소했다. 경찰은 준강간치상과 공갈 등의 혐의에 대한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하지만 최 선생은 혐의 사실을 대부분 부인하며 피해자와 '사랑하는 사이'였고 모든 관계는 합의된 것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제작진은 최 선생의 토론동아리에 참여했던 다른 제보자들을 통하여 정민씨 외에도 비슷한 경험을 겪었던 또다른 피해 사례가 있었음을 밝혀냈다. 최 선생은 자신의 주장에 반박할 수 있고 자신만의 가치관이 확고한 아이들에게는 상담 자체가 없었다고 한다.

최 선생은 유독 여성 제자들에게만 '변화'라는 키워드를 강요했고 2007년에는 한 남성 졸업생이 이에 강하게 항의하는 일이 발생했다고 한다. 당황한 최선생은 자신에게 복종하는 제자들을 중심으로 '너희를 나를 지켜야한다', '걔네들이 나를 배신한 것'이라고 주장했고 이후 토론 모임은 분열됐다. 그로부터 4년 뒤에 최 선생은 교단을 떠났다.
 
최 선생의 남제자이자 학원 강사로 함께 일했다는 박수인씨(가명)는, 최 선생과 가까워진 이후 자신에게 돈을 바칠 것을 요구받았다고 밝혔다. 최 선생은 "너희는 노예 상태이니 주인에게 다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요구하며 제자들이 과외방과 학원에서 받은 월급을 다시 상납해야했다고 폭로했다.
 
또한 수인씨는 최 선생이 '금기를 깬다'는 명목으로 제자들에게 또다른 먹잇감이 될만한 학생들을 '물색'해오라는 임무를 내렸다고 밝히며, "내가 사이비 종교의 추수꾼이 된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정민씨 역시 같은 요구를 받았고 이를 충족시키지 못할 시에는 어김없이 최 선생의 추궁이 이어졌다. 심지어 최 선생은 제자의 여자친구에게 '아빠'라는 호칭을 쓸 것을 요구하며 접근하기도 했고, 이를 거부한 여성은 얼마 뒤 최선생의 제자인 남자친구로부터 일방적인 이별 통보를 받아야했다고.
 
박수인씨는 최 선생이 원하는 물색의 목적이 단순히 성관계만이 아니라, 일부러 금기를 건드리고 비상식적인 요구를 수용하게 함으로서 그만큼 상대를 '복종'시키려는 의도가 있다고 분석했다. 최 선생의 변호인 측은 사실관계를 부인하며 허위로 인한 무고로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최 선생은 자신의 공동체에서 벗어나려는 사람들에게는 '배신자'라는 낙인을 씌워서 피해자들에게 오히려 죄의식을 유발했다고 한다. 박수인씨 역시 최 선생으로부터 벗어났을 때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며 "내부 논리처럼, 최 선생을 비판하는 게 아니라 내가 최 선생의 은혜를 갚지 못하고 나왔다는 죄책감을 느끼게 하는 것"라고 주장하며 "사이비 종교 그 이상"이라고 평했다.
 
최 선생의 부인이자 역시 교사 출신인 이모씨도 남편의 피해자 착취에 함께 적극적으로 동참한 공범이라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씨 역시 남편 못지 않게 왜곡된 성 인식을 가지고 있으며 제자들에게 가스라이팅을 일삼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전문가인 오윤성 순천향대 교수는 "최 선생의 아내가 이번 사건에서 대단히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이 사건을 이렇게 오래 끌지 못했을 것"이고 진단했다. 표창원은 "두 사람 다 교사라는 지위를 이용하여, 학생이라는 정신적으로 취약하고 자신들이 쉽게 지배-세뇌할 수 있는 대상으로 삼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하며 "자기를 우러르며 자신을 주인으로 섬기고 노예처럼 일하게 만드는 소왕국을 세운 것"이라고 말했다.
 
최 선생의 공동체에는 최 선생과 이씨 부부외에도 그들이 착취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준 조력자들이 더 있었다. 제작진은 제보자들이 공범으로 거론한 조씨, 홍씨 등을 만나 인터뷰를 시도했지만 모두 거부당했다. 표창원은 "단독 거주형태, 외부와 차단, 자기들만의 공동체 등 점점 폐쇄적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이들의 행태를 분석하며 "처음부터 계획했던 모습이 아마도 이런 폐쇄적인 형태의 소왕국이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인도에서 '구루'는 원래 신성한 스승을 의미하지만, 교묘하게 철학적 지식을 왜곡한 사이비 구루들이 범람하면서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됐다. 전문가들은 최 선생 사건 역시 스승이라는 지위를 이용한 한국판 사이비 구루의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다.
 
표창원은 "선생님이라는 지위는 정통적인, 정당한 권위를 지니고 있다. 그런 사람이 사이비 교주처럼 종교 교리를 비틀어서 맹신을 이끌어내고 자신의 개인 욕구를 채우는데 사용한다면, 학생들은 저항할 수 있는 어떤 방어막도 없다"고 우려하며 "이번 사건은 교사라는 지위와 특권이 사적으로 남용되고 악용된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전문가들은 최 선생이 작성한 논문과 대화, 강의록을 분석한 결과, 그가 대단히 위험한 사고방식을 지닌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해당 기록에서 최 선생은 "공부 못하는 학생을 위하여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 첫 남자가 되어줄 수도 있다"고 주장하며 "그런다고 자신이 비난받아야 하냐?"고 반문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이를 두고 "가스라이팅에 대한 명백한 자백이다. 본인의 오만한 모습에 도취되어 저지른 말실수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정민씨는 지난 고통스러운 10년을 회상하며 모든 일이 없었던 일이었으면 좋겠다거나, 가해자를 모르는 사람이었다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반복했다. 이광민 정신건강의학 전문의는 "피해자의 회피 심리 속에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T) 증상이 숨겨져 있다"고 우려하며 "이분의 치료를 위하여 가장 중요한 건 누군가가 함께 피해받은 것에 목소리를 내주는 것이다. 그래야 피해자 본인이 잘못이 아니라는 걸 인식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최 선생 측은 자신들의 공동체가 일반적인 형태와는 다르지만, 당사자들의 자발적인 자유의지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반박했다. 또한 만일 기소될 경우 '소수자의 가치를 지향하는 자신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하여' 국민참여재판을 원한다는 입장을 밝혀왔다고 한다.
 
최 선생이 자주 인용해 제자들에게 써먹었다는 니체는 "내게는 상처 입히지 못하는 것, 결코 파묻어버릴 수 없는 것, 바위라도 뚫고 나오는 것이 있으니 바로 나의 의지가 그것이다. 의지는 말없인 변함없이 세월을 뚫고 뚜벅뚜벅 걸어간다"는 어록을 남겼다.
 
그리고 정민씨는 지난 10년의 착취에서 벗어나 이제야 '자신의 의지'로 새로운 삶을 위하여 한걸음씩 나아가기 시작했다.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늦었지만 올바른 진실을 밝히고 그에 걸맞는 처벌을 통하여 더 이상 왜곡된 가스라이팅으로 고통당하는 피해자들이 없게 만드는 일일 것이다.
그것이알고싶다 사이비구루 가스라이팅 니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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